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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지도자의 규칙 – 고린도전서 4:1-2, 로마서 15:1-2

2026.09.22 15:33

영적인 지도자의 규칙
고린도전서 4:1-2, 로마서 15:1-2

 

 

그리스도의 일꾼은 육적이 아닌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지도자(指導者)는 ‘손가락 지, 인도할 도, 사람 자’를 쓰는데 “가르쳐서 이끌어주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 지도자는 꼭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운동할 때 규칙을 위반하면 아무리 1등으로 달려도 꼴찌이고 등수 안에도 들지 못하게 됩니다.

이 영의 직분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구약 때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얼굴이 해같이 빛났습니다. 백성들이 눈이 부셔서 보지 못해서 수건을 썼습니다. 죽는 직분도 영광이 있는데 예수의 직분은 영원히 살아 있는 직분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영적인 직분 맡은 지도자, 영의 지도자들입니다. 가르쳐서 이끌어 줘야 하는데 남한테 가르치려면 내가 먼저 깨닫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예행연습을 해야 합니다. 말씀 한마디가 잘못 나가게 되면 모든 것이 삐거덕거리게 됩니다. 영적인 지도자로 하나님 말씀의 비밀을 맡은 여러분들은 늘 마음에 중심을 잡고, 세상 풍속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풍속과 상관없는 전무후무한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먼저 자신이 훈련받아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먼저 자신이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직분 맡은 분들은 자신이 먼저 덕망을 세우고 훈련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밑에 있는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며 자만합니다. 자만심, 이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영적인 그리스도의 일꾼, 직분 맡은 자, 지도자로서 여러분 자신이 훈련받는 것입니다.

교회 직분자들은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밖에서도 직분자로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은 “저분은 참 그리스도인이고,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이라서 지도자의 자격이 있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직분을 받았다고 모두가 다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직분자 세미나에 오신 모든 분은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자리에서 귀한 직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 다. 그러므로 영적인 지도력이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 규칙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도자가 되었다고 해서 자신을 계속 갈고닦지 않으면 녹슬게 됩니다.

저는 신앙의 신조가 있습니다. 계속 자신을 연마하고, 계속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주시는 말씀을 받아서 배우고, 깨달아 완전히 본인이 안 다음에 지도자의 자격을 갖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신앙 철학입니다. “하나님 저는 녹이 슬어 쓰지 못하는 칼이 되기보다, 너무 써서 반질반질하게 닳아서 쓰지 못할 때까지 사용되는 칼이 되게 해 주세요” 이게 저의 평생의 기도 제목입니다.

칼만 좋으면 뭐 합니까? 쓰지 않아서 녹이 슬어 있는데. 칼만 자랑하면 뭐 합니까? 남이 볼 때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정도로 너무 써서 칼날이 칼등까지 닳아 없어질 정도의 칼이 되어야 지도자 자격이 있습니다. 칼을 갈 때 자기희생, 자기 고통, 자기 괴로움이 있습니다. 점점 형태가 찌그러지는데 남이 그것을 알아주겠습니까? 남이 볼 때 우습게 알죠. 저는 사람은 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칼은 사용하지 않으면 녹슬어 버립니다. 자꾸 써야 칼이 빛나는 거예요. 자꾸 써야 칼이 손에 익어요. 부엌에서 몇 년 동안 쓴 칼과 갑자기 구매한 새 칼을 비교해 보세요. 잡는 것도 두툼하고 낯선 사람 만나듯이 손에 잘 익지 않습니다. 영적인 그리스도의 일꾼, 지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지도하는 것도, 말씀을 듣는 것도, 전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귀한 종을 사랑하고, 모든 가난하고 어려운 자, 약한 자를 돌보는 것도 칼을 가는 순간이고 칼을 써먹는 순간입니다.

 

교회 책임을 지고 있는 지도자들이 알아야 할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자기의 위치를 철두철미하게 지켜야 합니다.

죄를 진 아담은 자기 처소를 떠났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은 하나님께서 자기 위치와 처소성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직분을 맡으면 뭐 합니까? 일하지 않고 쓰지 않는 칼은 녹슬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평신도의 지도자입니다. 그 평신도의 지도자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교회에서 평신도 지도자는, 쉽게 말해서 앞서가는 사람입니다. 가만히 있다가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기도하고 애쓰고 힘쓰고 교회를 돌보는 신령한 어머니가 되고, 아픈 자를 찾아가서 위로해 주고,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그런 마음과 행위의 결과로서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앞서가는 것입니다.

무엇이 앞서가야 합니까? 믿음이 앞서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고전 4:20). 말씀 가르칠 때마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님이 오셔서 나를 지켜 주시고,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 말씀의 능력이 나가게 해 달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능력이 나가서 상대방을 사로잡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지도자의 마음 자세입니다. “내가 전도했다”라는 생각은 금물입니다. 바울은 다른 사도보다 수고가 많았던 사람입니다.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고, 일주야 동안 깊은 바다에서 광야에서 동족의 공갈과 협박, 미움을 당하고 배고프고 춥고 헐벗고 온갖 고난을 다 당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일은 고사하고 교회 때문에 염려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내가 다른 사도보다 수고 많이 했지만, 내가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가 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규칙입니다. 주의 복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성령님께서 역사해 주심으로 상대방 마음을 감동하게 하되, 다만 성령님께서 내 입을 빌렸다고 생각하며 전부 다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고백하는 신앙! 이러한 겸손한 마음 자세를 가져야 교만하지 않고, 교인들이 볼 때 덕이 있는 지도자, 덕이 있는 집사, 전도사, 권사가 될 수 있습니다. 능력이 나가지 않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지루해 하고 다른 약속만을 생각하며 도망갈 궁리만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보다 신앙생활에 더 앞서야 합니다.

우선 헌금 생활에 앞서야 합니다. 다윗 왕처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마음으로 내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대상 29:10-14). 그래야 다른 사람보다 헌금 생활에 앞설 수가 있습니다. 지도자는 가르쳐서 사람들을 이끌어 줘야 하는데 앞서야 이끌어 줄 수 있습니다. 뒤따라가는 사람이 어떻게 이끌어 줍니까?

또한 지도자는 교회 출석에서도 앞서야 합니다. 그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교회 일을 더 열심히 찾아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해야 하며, 연약하고 약한 자를 내 몸과 같이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롬 15:1-2). 지도자는 진실해야 하는데 그 진실의 결과는 친절입니다. 친절은 진실해야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도자는 모든 면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남을 속이고 거짓말하는 장로, 집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기를 치고 교회를 어려움에 빠뜨리는 자들은 전부 다 자손만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모든 면에서 본이 돼야 합니다. 교회에서 모든 사람의 본이 되는 사람이 평신도의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평신도의 교회에서는 힘이 있고, 말을 잘하고, 키가 크다고 해서, 학벌이 좋고,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지도자로 인정해 주고 세워 줄 때 더욱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교인들을 대할 때 한 가족같이, 자기의 친자식같이 애정과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감언이설로 꾀어서 돈이나 꾸고 갚지 못해서 숨고, 도망을 다니는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일꾼, 영적인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깊은 말씀만 달라고 요구하기 이전에 자신부터 먼저 수양하고, 갈고닦아야 합니다.

녹슨 칼은 냄새나서 아무도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권세 있고, 능력 있고, 힘있고, 지옥 세계에서 천국까지 이끌어 주는 강력한 말씀을 가지고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운동을 해야 하는데, 도리어 교회의 직분자라는 허울 좋은 이름만으로 남을 이용해 먹고 남을 구렁텅이에 집어넣고 자기만 빠져나가 도망치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려운 분들의 자녀들의 등록금을 마련한다고 순수한 의도인 척 계를 결성해 놓고 남의 돈을 갈취하는 악질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전도사 중에 그러한 분이 있어서 전도사를 파직시켰습니다. 절대 용서 안 합니다. 그러한 자들은 잘사는 집만 골라 다니고, 심방을 가도 가난한 집은 곁다리입니다. 그래서 때 되면 점심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집을 마지막에 갑니다. 제가 목사들한테 야단치는 게 그 이유입니다. 그러한 집 가지 말고 가난한 집 가서 냉수 한 그릇 먹고 나오는 것이 진수성찬을 얻어먹는 것보다 하나님께 진짜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교육시킵니다. 속이는 것 다 알지만 모르게 넘어갑니다.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님이 역사해서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씀의 제 위치에 돌아오겠지 생각하며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둘째, 성도와 교회 약점을 알고 담당해야 합니다.

성도와 교회 약점을 가지고, 공갈,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는 것이 아니라 성도와 교회 약점을 알아서 담당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것이 지도자의 자격입니다(롬 15:1). 약점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종 삼으려고 하는 자는 자격이 없습니다.

지도자는 강해야 하는데 그리스도 말씀의 은혜로 강해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다 도둑놈들이에요. 말씀이 늘 감시하고 권고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일꾼, 영적 지도자인 여러분들, 날마다 주의 은혜로 강해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그래야만 모든 생활에 승리의 승리를 가져올 줄로 믿습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패배자입니다. 가장 약한 자이며, 가장 보잘것없는 자입니다. 그런데 승리는 혼자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같이 승리해야 합니다. 너 나 따로 없이 약한 자나 강한 자나 다 합심해서 승리해야 다 같이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같이 칭찬받아야 기분 좋고, 기쁩니다. 그렇게 하려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돌봐야 합니다. 늘 붙잡아 주고, 늘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심방도 해 주고, 그래서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려움이 약점이 될 때 그걸 내가 담당해주는 것입니다.

 

약한 자는 무엇이 약한 것입니까?

믿음이 약한 자입니다. 믿음이 약하면 아무리 높은 집에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산다 해도 약한 자입니다. 약해서 하나님의 일에 돈 쓸 줄 몰라서 헌금도 안 하고, 물질을 하나님같이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돈이 빠져나가면 근심이 태산같이 커지지만 믿음이 강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약한 자를 붙잡아 줄 때 날마다 콩나물 자라듯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도자들은 볼 수 있습니다. 행함이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얼마나 귀한 직분을 주셨습니까? 땅의 직분이 아니라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영의 직분, 그것만 생각할 때 감격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벌을 보나, 집안 가문을 보나, 조상을 보나, 도무지 영의 직분을 받을 자격이 없는 나인데, 이 영의 직분은 대통령의 직분보다 더 크다”는 것이 믿어지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4:36절에서 바나바라는 사람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분은 일곱 집사 축에도 못 들었던 평신도였습니다. 바나바가 얼마나 많이 일했습니까?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강권 역사로 회심해서 이방을 담는 그릇, 이방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나가서 외칠 때, 많은 사람과 주님의 제자들까지도 사도 바울을 믿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사도 바울을 외면했는데 일곱 집사도 아닌 평신도 바나바가 사람들에게 가서 바울의 간증을 그대로 믿고 전했고, 바울이 외톨박이가 되자 주의 제자들과 같이 일한 그 역사를 보세요. 안디옥 교회를 소개했고 많은 사람의 앞장을 섰습니다. 바나바는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눈코 뜰 새 없이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좇아가서 도와주었습니다. 지도자가 아니지만, 지도자로 일하는 바나바를 보세요. 이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일꾼 아닙니까? 교회마다 어려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빚쟁이들, 도망가는 자, 어려움 당하는 자들이 많잖아요? 여러분들이 신령한 바나바가 돼서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성도, 직분자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을 볼 때마다 바나바가 앞장서서 바울은 그러한 사람이 아니라고, 진짜 하나님의 거룩한 사자라고 증명했습니다. 바나바가 사도 바울과 사람들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 것입니다.

 

교회 일을 할 때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옵니다.

사랑하는 지도자, 직분자 여러분, 교회 일을 할 때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옵니다. 죽도록 일했는데 말 많이 듣습니다. 속에서 올라오죠. 그거 참아야 합니다. 양은냄비처럼 바로 끓어오르지 말고, 무쇠솥같이 은근하게 끓어오르는 불을 누르고 그때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지도자의 자세입니다. 지도자가 쉬운 줄 압니까? 무슨 얘기 들으면 꾹 참고,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마지막에 용서해 달라고 고백을 하게 되는 날이 옵니다.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바나바가 같이 갔습니다. 사마리아 교회가 날마다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며 편안해지고 주님을 날마다 경외할 뿐만 아니라 주님을 두려워하고 말씀 받기를 그리워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옛 동지들과 유대 지도자들에게 박해를 많이 받았습니다(행 9:23-30). 그래서 자기 고향 다소로 도망갔는데 여러 해 동안 바울이 보이지 않으니 바나바가 찾아갔습니다. 바울이 예수를 믿고 개종했기 때문에 유대 지도자들이 죽이려고 한 것 아닙니까? 얼마나 핍박이 심했어야 자기 고향 다소로 도망갔겠습니까? 성도 중에서도 말 때문에 시험에 들어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금전 관계 때문에, 누가 날 싫어한다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시험에 듭니다. 그럴 때 영적인 지도자, 직분자들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찾아가서 그런 말들을 귀담아듣지 말고, 다 흘려버리라고 말해 주세요. 이 세상은 말 많은 세상이므로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위로 받으라고 조언해 주세요. 그리고 놀랍고 축복된 말씀을 듣게 해 주세요. 이러한 말과 행동이 그 사람에게는 위로와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바울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바울이 몇 년 동안 더 숨어 있었을 것입니다. 집구석에 숨어 있던 그를 이끌어낸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만나서 안디옥 교회로 바울을 데리고 갔습니다(행 11:25-26).

여러분들도 이처럼 시험 든 자를 끌고 교회로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에 가서 기도하니 성령이 내렸습니다. 그 성령의 지시함을 따라서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받아서 바울은 교회사에 빛나는 하나님의 큰 일꾼이 되었는데, 그렇게 모든 일을 만들어 준 숨은 공신은 바로 평신도 바나바였습니다. 물론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셨지만 보이는 세상에서 바울의 배후는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진정으로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입니다. 남의 약점을 담당할 줄 아는 사람이 교회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본래 강한 자가 모이는 곳이 아니라 자기의 약함을 아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억울함을 당하고, 죄 많고, 낙심할 수밖에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자들이 모이는 곳. 나이는 늙어 40, 50이 넘고 “내가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죽을 것이냐?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데, 소망이 있다는데, 근심이 없는 나라, 눈물이 없는 나라 나도 가야지” 이렇게 찾는 분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교회에 온 사람들은 다 약점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먼저 들어와서 지도자가 된 영적 그리스도의 일꾼된 여러분들이 그분들을 붙잡아 주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셋째, 평신도 직분자, 지도자들은 덕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 일하면서 한 가지 속지 않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교회에서 일 많이 하는 사람이 욕을 먹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일 많이 하고 욕먹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일 많이 하고 칭찬 듣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직분자 여러분! 왜 일 많이 하고 욕을 먹습니까? 한번 깊이 생각해 봤습니까? 성경 말씀을 볼 때, 일 많이 한다고 해서 욕먹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는데 왜 욕을 먹어야 합니까? 억울하지 않아요? 성경은 ‘네가 덕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서 덕을 세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늘 본문에 나온 말씀처럼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웃을 기쁘게 하지 않고 오히려 이웃을 이용해 먹고 결국엔 자기의 만족을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열심히 일한다고 하면서 자기 욕심을 채우고, 자기 만족을 위해서 힘쓰고, 좀 안다고 우쭐대고, 남을 짓누르고, 만인 앞에 망신 주고 말이죠.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 일하고, 자기 기쁨을 위해서 일하는 것, 이것은 절대 덕을 세우지 못합니다. 나를 통해서 상대방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지도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4절, 33절에 지도자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기쁨을 착취하고 그 기쁨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선한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전도해서 데려온 사람을 직분자가 은혜 가운데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원래 전도하신 분에게 그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자신이 전도했다고 스스로 그 공을 돌립니다. 물론 가르치기는 여러분들이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앞에 모시고 오는 분이 있잖아요. 다 가르친 다음에 그 모든 기쁨을 그분한테 돌리세요.

“집사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집사님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전했겠습니까?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고 그다음에 집사님께 감사하고 또 하나님의 영광이 집사님 머리 위에 머물러 있을 줄로 믿습니다”라고 말하고 본인은 빠져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가만히 있지 않고 모든 공을 또 직분자에게 돌리고 감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현명한 말 한마디가 피곤함을 살얼음 녹듯이 싹 녹여주고, 힘이 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한마디의 칭찬으로 “어디 또 전도할 데 없나?”하는 마음으로 의욕이 더욱 솟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씀을 가르쳤다고 내가 다른 사람의 기쁨을 다 차지하려고 하면 전도한 분의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선한 일이 못 되며, 절대 덕이 되지 않습니다. 약한 자를 감당할 줄 아는 교회가 흐뭇해지고 부흥될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교회 떠난 사람들이 많아요.

 

넷째, 교회 직분자들은 참아야 합니다.

내가 말할 때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는 말인가, 또 이 말이 은혜가 되지 않고 구역이나 교회에 해를 끼치는 말이 아닌가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상처가 되는 말은 일단 들으면 마음 가운데 남아있게 됩니다. 팥죽 쑬 때 팥을 삶아서 체에 거르듯 우리의 말도 걸러서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 말은 빼먹는 게 아니라 저금통장에 돈을 넣듯이 보탬이 되고, 위로와 기쁨이 되며, 또한 소망이 됩니다. 이러한 네 가지 보탬이 되어야 지도자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꼭 하고 싶은 저의 신앙의 신조는 칼이 안 써서 녹슬어 못쓰게 되는 것보다는, 많이 써서 다 닳아서 못 쓸 때까지 사용되는 칼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러한 각오와 결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모든 직분자들은 알아도 겸손하게 모르는 척하면서 목소리를 낮추세요. 그리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 얘기하지 말고 말을 아끼세요. 자기 마음 가운데 혼자 한 살짜리 아기 안고 이뻐하듯이 말을 그렇게 아끼고 부드럽게 옆에 있는 사람에게 얘기해 보세요.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게 됩니다. 직분자들이 누구에게나 다 기쁨을 돌려주고 은혜를 끼치고 말을 아꼈을 때 많은 분이 나를 알아 달라고 하지 않아도 우러러보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교회의 직분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꼭 한 사람, 바나바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약점과 어려움을 도와주고, 땅이 꺼지게 한숨 짓는 순간에 구역 식구 찾아가서 위로해 주고, 기도해 주고, 주신 말씀 중 생각나는 것을 하나하나 또박또박 가르쳐 주면서 힘을 주세요. 신앙생활의 약점을 담당하고 노력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이웃의 약점을 담당해서 참 이웃들에게 위로와 기쁨과 소망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신령한 보약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기도 올립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2002년도 전국 여선교회 직분자 세미나에 참석하신 당신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깊이 깨닫고 또 읽고 또 읽어서 완전히 몸에 배어서 모순이 없는 영특하고 아름답고 귀하고 덕망이 있는 신령한 직분자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까지 말 많이 하고 남한테 덕을 끼치지 못한 사람이 있사옵거든 여기 있는 동안에 하나님 앞에 철두철미하게 감사하면서 회개하고, 회개한 것을 보람을 느끼고 결심해서 정말 이번에 세미나 마치고 돌아가서는 내가 로마서 15장 1-2절과 고린도전서 4장 1-2절 말씀같이 충성하겠다는 겸손한 마음 자세로 교회를 받드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로 말미암아 개인이 복 받고 가정마다 축복이 머물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에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감사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02년 2월 25일 전국여선교회 직분자 세미나(한산연수원)
박아브라함 목사

 

 

26년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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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0 “구속사 시리즈”는 한국 교회를 통해 전 세계에 주는 엄청난 선물 2026.09.01
2949 “구속사 말씀으로 구약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더 분명히 보게 됐습니다.” 2026.09.01
2948 구속사 시리즈 9권,「신묘한 영광의 비밀, 성막과 언약궤」서평 마크 마이어, 마르첼-발렌틴 머첼라루 박사 2026.08.31
2947 셀 수 없을 만큼 널려 있는 은혜의 이모저모 2026.08.31
2946 날마다 주님을 만나는 생활 – 이사야 55:6-11 2026.08.31
2945 포토뉴스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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