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제일교회  ›  평강미디어  ›  평강라이프  ›  참평안
참평안

날마다 주님을 만나는 생활 – 이사야 55:6-11

2026.08.31 16:17

날마다 주님을 만나는 생활
이사야 55:6-11

 

 

이사야 55:6-11,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복되고 거룩한 주의 날을 맞이해서 하나님께서 이날을 성결시키는 가운데 하나님의 존전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여러분 가정마다 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는 축복의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사랑해 주시는 가운데 이사야 55장 6-11절까지 말씀 앞에 초대해 주셔서 저와 여러분은 방금 2700년 전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 앞에 도착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할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여기 6절의 원어 말씀을 상고해 볼 때, ‘때’라는 표현이 두 번 나옵니다. ‘만날 만한 때’, ‘가까이 계실 때’. 이 ‘때’의 원어적 뜻은 ‘기회’입니다. 세상 모든 일에 기회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반드시 ‘때’라고 하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5장 6절이 만날 만한 때에 찾고,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예수 믿고 구원받을 만한 기회와 소식이 귀로 들려왔을 때,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을 만한 기회가 주어져 있을 때, 구원과 축복 받으라는 말씀이 전파될 때, 저와 여러분은 그때라고 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잡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죄가 생각날 때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죄가 생각날 때마다, 과거에 알고 지은 죄나 모르고 지은 죄 생각날 때, 뻔히 윤리나 도덕면에서, 신앙 면에서 ‘이건 나쁜 생각인데’ 하는 마음이 들어왔을 때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을 해결 받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이사야 55장 7절 말씀을 볼 때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오라 그가 널 용서하리라”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의 후예인 나와 여러분은 한 사람도 ‘나는 죄가 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있다면 하나님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인데 죄 없다는 그분이 참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를 향해서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롬 3:10-18). 그저 눈으로, 입으로, 마음의 생각으로, 발로, 손으로 온 몸덩어리 자체가 죄를 짓기 위해서 빠른 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윤리, 도덕적 측면에서도 손과 발과 눈으로, 말과 입으로 마음으로 지은 죄까지, 죄의 늪지대에 살면서 어떻게 스스로 죄가 없다고 말할 수가 있겠느냐?’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죄가 없다고 느낀다면 바로 자기 기만에 빠진 것임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할 때에 죄인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의인을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강건한 사람을 위해서 오신 게 아니라 병든 자를 위해서 만인간의 의사로 왔다고 주께서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아직까지 죄의 의식에 사로잡혀 고민하는 분이 계십니까?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자세히 주목해서 상고해 보시길 바랍니다. 죄책감이나 죄의식으로 고민하지 않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 친히 하신 말씀 가운데 내가 일러준 말로 네 죄가 이미 사함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죄로 인해 울고불고할 게 아니라 이미 모든 죄를 사함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악에서 구원한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속해 줬다는 말씀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마 1:21, 롬 5:8-11).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일찍이 시편 기자는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겼다’고 했습니다(시 103:12). 이사야 38장 17절에는 나의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눈으로 자기 등을 볼 수가 있습니까? ‘죄를 안개가 사라짐같이 도말했다’(사 44:22)는,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미가서 7장 19절에는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다 던지게 했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고, 예레미야 31장 34절에는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겠다’ 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듣고 또한 성경을 읽으면서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용서하셨는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 긍휼, 용서의 높이와 깊이, 너비를 인간의 적은 지혜로서는 측량할 수가 없다고 에베소 교인들에게 바울은 역설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며 이전 것은 지나갔다’(고후 5:17)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과거에 어떤 죄를 졌든지 회개하고 철두철미한 신앙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 서는 생활, 그리스도 앞에서 사는 생활, 그리스도와 같이 동행하는 생활을 할 때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말씀한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기독교는 인간을 사정없이 정죄합니다.

기독교는 인간을 사정없이 정죄합니다. 모조리 죄인이다. 모조리 타락했다고 말합니다. 모조리 범죄했다고 정의를 내리는 것이 우리 기독교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특별히 매력적인 말씀이 있는데 주님이 친히 이 땅에 오셔서 나를 통해서만 영원한 천국을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 친히 말씀하기를 “나는 길이요 나는 진리요 나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요 14:6)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도 죽어도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붙잡고 모시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께서 친히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정확하게 만인간들에게 외치는 그 소리를 듣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 예정을 입은 인간이 죄 사함 받고 구원을 얻는 길을 우리에게 지금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만나느냐? 죄는 불안과 절망과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죠? 죄로부터의 해방은 주님을 만나는 길이라고 성경은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롬 8:1-2). 그래야 죄의 올무가 벗어지고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것은 주님을 구주로 믿고 모신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구경만 해서는 절대 안 되겠습니다. 삭개오같이 만나야 합니다. 여리고 도성에 주님이 입성하십니다(눅 19:1).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저 구경꾼들입니다. 한 사람, 세무서장! 이리저리 공갈치고 착취하던 악질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삭개오야 내려오너라’는 말씀에, 주님을 만나 고백했습니다. 나쁜 짓해서 돈 벌은 것 4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이 고백을 할 때에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면서 죄를 사해 주고 ‘너도 오늘부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이다.’ 이렇게 주께서 선언하시는 말씀이 여러분들 귀에 지금도 쟁쟁하게 들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을 나의 삶 속에 영접하시어 괴로우나 즐거우나 일편단심 오직 주님의 뜻을 위해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삶이 고달플 때마다 주님을 만나야 한다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모든 생활 가운데 짜증이 나고 고달플 때가 한두 번이 아니겠지요. 그러나 고린도 후서 1장 4절 이하의 말씀 볼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모든 생활에 권태와 실패와 절망과 낙심 속에 사는 분들에게 주님 친히 말씀하기를 ‘나만을 바라보라’(사 40:28-31)고 말씀합니다. 피곤한 자에게 강건한 축복을 주신다는 말씀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찍이 시편 기자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15)고 했는데, 이 말씀은 벽에 걸어놓는 어떤 악세사리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믿음으로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반드시 만사형통의 축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마다 여러분들의 가는 곳마다 만사형통의 문이 열려질 줄로 믿습니다. 확실히 나와 여러분들이 사는 이 시대는 고달픈 시대입니다. 세상의 말과 물질로는 해결할 수가 없고 영원히 위로가 될 수 없다고 하나님은 이미 성경을 통해서 우리한테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고달픈 세 가지를 꼽자면 우선은 경제적인 고달픔일 것이고, 둘째는 육체적인 고달픔입니다. 모두가 피곤하다고 합니다. 만사가 풀리지 않고 짜증나는 일투성이 입니다. 세 번째는 정신적인 고달픔입니다.

사람은 너무 잘살아도, 살기가 편해도 고독합니다. 인생이 이게 다냐? 합니다.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돈이 없을 때는 ‘그저 부자가 되면 좋겠다’ 해도 부자가 되어 보면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너무 살기 편해도 고독하고 허무해지는 것입니다. 반면 너무 살기가 힘겹고 어려워도 고독해지는 것입니다. 가난해 우울해지다가 ‘내가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으면 좋겠다’하는 말을 두려움 없이 남발합니다. 이런 허탈감에 빠져 너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서 웃는 웃음이 이 세상에 얼마나 꽉 차 있습니까? 만나면 물가 걱정, 기름 걱정, 돈 걱정, 경제적인 걱정이 가득합니다. 고달픔이 넘칩니다. 바로 여기에 신앙의 힘이,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바로 그 장소가 여러분이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드리는 이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전 세계를 다 가진다 해도, 손에 쥐었다 놓았다 해도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좌정할 수 있도록 하나님만을 모실 때라야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했다면, 이 말씀이 담겨 있는 여러분들은 아무 것도 안 가졌어도 부족함이 없는 줄로 압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을 환난 날에 부르라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건져 주고 영화롭게 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의 고달픔과 무거운 짐을 해결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니 그분을 어떻게 만나느냐? 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만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아침에 직장 나갈 때 성경 보세요. 아침에 직장 나갈 때 기도하세요. 몇십 분, 몇 시간 하라는 게 아닙니다. 간단하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오늘도 나에게 주신 은총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매사가 하나님께 영광이요 또한 교회와 내 자신과 국가 민족에 유익을 가져올 수 있는 그런 하루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어둠의 역사가 틈타지 못하도록 성령의 불담으로 나를 지켜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세요. 이런 기도 1분도 안 걸립니다. 꼭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요한복음 6장 35절, 요한계시록 7장 16절 말씀을 기억하셨다가 보시길 바랍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고달픈 인생들아’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여러분 귀에 들리지 않습니까? 주께서 오라고 합니다. 빨리 말씀을 붙잡고 주 앞으로 달려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소매치기 날치기가 많은데 나갈 때 손가방이나 지갑을 허술하게 보관합니까? 그러나 집에 들어오면 잃어버릴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믿을만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는 장소, 기도하는 장소, 말씀 듣는 장소, 전도하는 장소 이것이 안전하고 믿을 만한 장소요 소매치기, 날치기가 없는 세상입니다.

고달픈 세상을 만났으니 우리는 열심을 다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이제부터 핑계대지 마세요. 장로님, 집사님 교회 왜 요즘 잘 안 나오십니까 물으면, ‘뭐 사업이 되어야죠. 마음이 편해야 교회 나오죠.’, ‘몸이 좀 아파서요. 보약 먹을 때에는 바람 쐬면 안 된대요.’ 합니다. 태초의 말씀을 먹어야 건강합니다. 38년 동안 걷지 못하고 누워 있던 환자가 ‘주여 낫고자 원합니다’ 했을 때 말씀으로 죄를 사했 주셨고, 그 순간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고 요한복음 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건강이 안 좋을수록, 사업이 어려울수록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의 음성이 얼마나 자비스럽습니까? 주의 음성은 마치 여름에 속이 갈할 때에 시원한 산기슭에서 나는 냉수를 먹는 것 이상의 만족에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을 줍니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는 정신의 긴장을 풀고 마음의 평화를 성령의 은혜를 통해서 공급하는 장소인데 왜 교회를 등한시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 주의 몸된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얼마만큼 감사하고 있습니까? 이 교회가 사업의 시작이며, 이 교회가 남편과 아내, 자식의 시작이고, 우리 교회가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의 시작입니다.


교회 생활을 등한시 하면 안 됩니다.

일이 잘 안 될 때, 고독과 우울함과 병으로 고생할 때, 삶이 고달플 때, 삶이 허무해질 때, 도움이 필요할 때, 삶에 실패하였을 때, 절망과 불안이 앞을 가로막고 하는 족족 길이 막혔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이 바로 성경입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이 꼭 보는 가운데 예수를 만나는 역사의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이 자살과 관련 대책 10가지를 내놓았다는데 잠깐 인용하겠습니다. 이 지구촌에 자살자가 한 해에 수십만 명이라고 합니다. 유식한 자나 무식한 자나 사업에 실패했건 안했건 ‘에라 모르겠다’하고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는 자 용서받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아닙니다. 자살자는 입이 억만 개라도 하나님 앞에 서서 용서받을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낙태된 영아도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 올라가서 ‘나는 사람 형태가 되어 보지 못하고 이렇게 올라왔습니다’하고 보고한다는 겁니다. 구약성경 욥기에 있습니다. 청소년 전문가들이 부모들에게 자살 방지책으로 제시한 것은 ‘죽어버리라는 식으로 나무라지 말라. 자식들 앞에서 절대 부부싸움 하지 말라. 자식들을 고독하게 만들지 말라. 청소년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라. 가정을 대화의 장소로 만들어라. 부모 자신들의 성격에 대하여 반성하라. 타이르고 좋은 습관을 가지도록 선도하라’ 등입니다.

제가 성도 여러분에게 말씀드린다면 첫째는 가정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간단한 겁니다. 가정 예배는 대화의 시간 아닙니까? 하나님과 대화하고 부부지간에 모녀지간, 모자지간, 부자지간에 대화의 장소입니다. 가정 예배는 만남의 시간입니다. 가족회의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헌신의 시간이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가정 예배를 통해서 사도행전 10장을 볼 때 고넬료 가정같이 성령 충만히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히 받게 되는 시간, 은혜가 쏟아집니다. 하나님 앞에 앞길이 환히 열리는 것을 신령한 축복을 통해서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가정 예배를 드림으로 마음에 다짐과 결심이 뒤따르고 하늘에 다함이 없는 지혜와 총명과 명철의 신을 받아 가지고 이 험난한 고해 같은 세상에서 능히 오직 천성만 바라보고 힘차게 달음박질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은혜를 받는 시간입니다. 얼마나 유익한 시간입니까? 간단합니다. 10가지 나열하지 않아도 가정 예배 시간에 10가지 이상의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의 행복이란 서로의 노력과 지혜와 양보의 덕을 가지고 오직 주께 맡기면서 주와 만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서로 이해해 주고 붙잡아 주고 도와 주고 서로 알아 주는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고달픈 하루 생활을 너그러운 신앙의 태도와 마음을 가지고 만나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짜증 내거나 야단만 치지 말고 관용의 신앙을 가지고 자녀들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항상 날마다 주님을 만나는 축복

축복을 원한다면 주님을 만나지 않고는 절대 안 됩니다. 역대하 30장 21절에 ‘레위 사람과 제사장들이 날마다 여호와를 칭송하며 큰 소리나는 악기를 울려 여호와를 찬양했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날마다 여호와의 전에 들어간 것인데, 여러분은 날마다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해결시켜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날마다 만나는 생활은 맡기는 생활입니다. ‘모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게 주님 말씀입니다. 죽어도 주의 것이고 살아도 주의 것입니다. 이래도 주님 거고 저래도 주님 것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대능의 손에 있는 줄로 믿고 하나님께 맡기세요. 그래야 속이 편안해집니다. 날마다 여호와의 전에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날마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야 되고,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고, 날마다 하나님께 찬송해야 되고,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생명의 평안이 오기 때문에 날마다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응답이 없습니까? 주님을 만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허망한 것을 버리고 항상 내 영혼과 육신의 삶을 주 안에서 만족하게 살 수 있는 축복의 말씀을 놓치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거룩한 성전에서 이 시간에 주님을 만납시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는 주님을 만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어디를 가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업할 때나 돈을 쓸 때나 저금할 때나 무엇을 하든지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 입회 하에서 돈을 세고, 주님 입회 하에서 저금하고, 주님 입회 하에서 사업의 출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시편 96편 2절에 ‘그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지어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을 받습니다. 형통의 축복을 받습니다.

시편 23편 1절에 날마다 주님 만난 사람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승리적인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 주님을 날마다 만나야 합니다. 시편 55장 17절 말씀처럼 여러분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까? 디모데전서 4장 5절 말씀에 기도로 거룩해진다 했습니다. 우리의 무거운 짐을 져주시는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 천당 갈 때까지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을 말씀한 이사야 58장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반드시 교회에 와서 해야 하느냐? 아닙니다.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기도하고 보고합니다. 사업도 혼자 하려 하지 말고 예수와 동업하시길 바랍니다. 육신으로 볼 때는 내 이름으로 등기되어 있고 내 이름으로 저축한 것으로 사업하고 있어도 이것이 주님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 사업에 앞장 설 수 있는 복음 선교에 쓸 수 있는 사업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까? 꼭 예수님과 동업하세요. 성가대도 그렇습니다. 자기 재능, 자기의 목소리, 자기가 졸업한 학교 간판에 의지하지 말고 주님과 동업하세요. ‘목소리 주신 것도 하나님이시니 은혜 가운데 불러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십시오. 주님 떠나면 썩은 냄새 나는 송장과 한가지입니다. 주님이 같이 계셔야 향기로운 성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시편 55편 17절에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을 불렀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모든 시간 속에서 주님을 만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영적 성장과 생활의 형통이 어디 있느냐 할 때 그 출발이 기도와 성경 말씀입니다. 날마다 주님을 만나는 축복은 하나님께 통치를 받는 축복, 즉 예수의 계명대로 사는 축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에서 사는 축복, 하나님 앞에서 걸어가는 생활의 축복이 날마다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날마다, 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찾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버스 타고 들어올 때 마음 중심에서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날마다 주를 만나는 축복의 시간을 주신 것에 감사하옵나이다. 몇십년 믿는다고 하는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 특히 저희들이 조심해야 될 것은 입으로는 날마다 만나지만 생활 가운데, 사업 가운데, 자녀들 기르는 가운데 부부지간에 주님을 만나지 못한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 먼저 주를 만나서 주께 감사하며 기도하면서 주의 지시를 받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매일 주를 만나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교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질 때 예수를 만나지 못한 불쌍한 영혼들이 예수를 만나는 기적이 이루어지는 산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 주를 만나는 가운데 감사하고 기뻐하며 참 행복을 누리는 맛을 아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알 수 없사오나 지혜를 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을 빌고 원하올 때에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높이 받들어서 감사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1985년 12월 1일 주일3부 예배 박아브라함 목사 설교

 

26년도 8월호

원문 보기 ›

댓글 0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글쓰기
번호 제목 작성일
2970 영적인 지도자의 규칙 – 고린도전서 4:1-2, 로마서 15:1-2 2026.09.22
2969 ‘은혜 언약의 표징, 내가 너희 중에 거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2026 여주 목회자 구속사 대성회 2026.09.22
2968 “한 사람 뒤에 백 명, 천 명, 한 나라가 서 있어요” 다시 펼친 영어책, 열방을 맞이하는 인사가 되다 2026.09.22
2967 ‘이 연합, 얼마나 아름다운가!’ – 2대 교구 남녀선교회 연합 구갓탤 뒷얘기 2026.09.22
2966 “40년의 은혜, 새로운 도약” 40년의 역사와 다음 세대를 향한 새로운 출발 2026.09.22
2965 기쁜 마음으로 잔치를 합시다 – 요한복음 4:24-36 2026.09.22
2964 영적인 지도자의 규칙 – 고린도전서 4:1-2, 로마서 15:1-2 2026.09.22
2963 ‘은혜 언약의 표징, 내가 너희 중에 거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2026 여주 목회자 구속사 대성회 2026.09.22
2962 “한 사람 뒤에 백 명, 천 명, 한 나라가 서 있어요” 다시 펼친 영어책, 열방을 맞이하는 인사가 되다 2026.09.22
2961 ‘이 연합, 얼마나 아름다운가!’ – 2대 교구 남녀선교회 연합 구갓탤 뒷얘기 2026.09.22
2960 “40년의 은혜, 새로운 도약” 40년의 역사와 다음 세대를 향한 새로운 출발 2026.09.22
2959 기쁜 마음으로 잔치를 합시다 – 요한복음 4:24-36 2026.09.22
2958 마라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엘림은 보이지 않는다. 이집트 구속사 세미나 참관기(1) 2026.09.22
2957 누구라도 쉬기 원하는 시간, 고된 봉사를 자원한 평강의 어른들 남선교회 ‘오직봉사팀’ 토요 봉사 체험기 2026.09.22
2956 추석에 관한 잔소리, 금(金)소리 2026.09.22
2955 The Rules for Spiritual Leaders – 1 Corinthians 4:1-2; Romans 15:1-2 2026.09.22
2954 Foreword 2026.09.22
2953 참된 광복 ‘나’로부터의 개혁이 있어야 2026.09.01
2952 ‘열방을 향하여 구속 경륜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의와 영광의 빛을 발하자’ 2026 하계 대성회 2026.09.01
2951 성막 화첩의 인기에 힘입어 번역 출간된「신묘한 영광의 비밀, 성막과 언약궤」 구속사 시리즈 제9권 영문판·일어판 출판 감사예배 2026.09.01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