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 옛터 탐방 ‘다음 세대가 이어가야 할 믿음의 출발점’ – 평강 청소년·청년들의 교회 탐방
구속사 옛터 탐방
‘다음 세대가 이어가야 할 믿음의 출발점’
평강 청소년·청년들의 교회 탐방
60년여의 세월, 그 흔적들은 오늘날까지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옛터들을 직접 눈에 담기 위해 지난 6월 말, 100여 명이 넘는 평강의 청소년, 청년들이 ‘옛터 탐방’에 나섰다. 평강제일교회의 역사와 구속사의 발자취를 다시 되새기기 위해서다. 오전부터 비가 내리는 가운데, 탐방은 대방동의 전극화 장로의 사택을 시작으로 신길동의 <시온산한돌교회>, 신림동의 <일석교회>, 노량진의 <대성교회>를 방문하는 일정으로 진행됐다. 특히 노량진 대성교회는 단순히 옛 건물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회의 역사가 녹아든 내부 공간까지 직접 둘러볼 수 있었다.
60년여 남아있는 교회 터
남아있는 건물의 형태와 주변 풍경은 사뭇 달랐다. 첫 방문지인 대방동 전극화 장로의 사택은 오래된 주택가 골목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교회사에 “1964.10. 24.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노량진(당시 노량진은 영등포구에 속해 있었음) 전극화 집사님 댁으로 옮겨 예배를 드리고 교회로서의 명분을 세우다(교인 26명).”로 기록된 그 현장이다. 좁은 골목에는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전신주와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현재 건물은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지만, 교회 초창기 역사가 시작된 장소라는 설명과 함께 당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1969년 9월 10일 건축된 ‘첫 성전’ 대방동 <시온산한돌교회>는 17평 규모의 2층 벽돌 건물로, 연한 색으로 덧칠된 외벽과 낮은 지붕, 외부로 노출된 배관과 전선, 실외기가 건물의 나이를 보여 주고 있었다. 지리산에서 3년 6개월 산상 기도를 마치고 서울로 온 박아브라함 목사가 10년 가까운 가정 교회 시대를 거쳐 건축한 역사적 성전. 적산가옥(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지은 주택) 대지 40평에 1, 2층 각 17평 크기로 지어져 1층은 사무실, 2층은 예배당으로 사용했다. 박 목사는 성전 건축과 함께 한 달 반에 걸쳐 우물을 팠는데 그 흔적은 사라졌다. 교회가 떠나고 한동안 어린이집으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자재 창고로 활용되고 있는 듯 건물 앞에 파란색 플라스틱 팔레트와 각종 자재가 쌓여 있었다. 여러 차례 용도가 바뀌었음에도 외벽 일부와 머릿돌에는 당시 성전의 흔적이 또렷했다.
대방동 성전 건축 후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71년 11월 15일 서울 신림동에 대지 244평, 건평 200평으로 헌당된 신림동 <일석교회>. 붉은 벽돌 외벽과 외부 철제 계단 등은 그대로였으나 건물 하부는 오랜 시간의 습기 등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창문에는 녹색 차양과 방범창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건물 외벽 한편에는 ‘미용실’ 간판 일부가 남아있었다. 건물은 공장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됐던 흔적이 드러나 있었고 지금은 빈 공간으로 주변에 들어선 신축 건물과 아파트가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과 대비되었다. 건물 뒤편에는 박아브라함 목사가 거주했던 사택도 당시의 외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탐방단이 건물 외부에서 설명을 듣는 동안 거주자가 밖으로 나와 일행을 지켜보기도 했다.
1977년 7월에는 서울 노량진동 273-7번지 1,000평 부지에 신축된 노량진의 ‘대성교회(大聲敎會)’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소속이 달라졌을 뿐 계속 성전과 그 부속시설로 사용되었던 덕분이다. 외벽에는 높고 긴 아치형 창문.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정면에는 넓은 출입구와 계단이 있었다. 정문에서 바라보면 교육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흰색 외벽 건물 옥상 위로 세 개의 십자가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두 강도를 형상화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성장의 상징과도 같았을 교회 앞 주차 공간은 지금은 답답할 만큼 작게 느껴졌다. 2층짜리 성전 본당에는 목재 장의자가 가득했고 강대상과 대형 스크린, 강단 양쪽의 현수막을 통해 지금도 예배가 이어지고 있는 공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을 향해 말씀이 소리치고, 숱한 구국 기도회를 비롯한 대규모 집회가 열린 구속사의 현장이었다.
사진으로 보던, 세월을 발로 딛고 눈으로 확인한 기념물들
교회마다 현재의 모습들은 모두 달랐다. 주택으로 바뀌었거나, 어린이집 또는 공장으로 사용되었고, 하나는 예배 공간으로 남았다. 모습과 용도가 바뀌었음에도 머릿돌, 외벽, 계단, 벽돌, 간판과 같은 흔적은 당시 성전의 모습을 지금까지 전하고 있었는데, 이는 ‘대개발의 시대’를 거친 서울에서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택에서 시작해 시온산한돌교회, 일석교회, 대성교회를 지나온 이 흔적들은 자료처럼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해 거기에 남아있던 ‘기념물’들이었다.
탐방을 앞두고 ‘교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왜 찾아가야 하느냐’라는 반응도 없지 않았다. 남겨진 시각 자료들을 통해 충분히 볼 수 있는데, 오래된 교회 터를 굳이 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쉽게 와닿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작은 가정교회에서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 오늘날 누리고 있는 예배 환경과 신앙의 터전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했다. 사진 한 장으로는 전해지지 않던 무게가 그 자리에 서는 순간 마음에 내려앉은 것이다. 이번 탐방을 통해 이전 성전은 더 이상 부모님 세대만의 추억이 담긴 장소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이어가야 할 신앙의 역사이자 믿음의 출발점으로 자리 잡게 됐다. 가장 마음 깊이 남은 건 당시 성도들이 쏟았을 헌신이었다. 오늘 우리는 잘 갖춰진 예배 환경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뒤에는 이름 없이 헌신했던 수많은 성도의 땀과 눈물, 기도와 수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다음 세대가 이어갈 몫
청년 세대는 교회가 처음 세워지던 시절의 어려움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선대가 교회의 성장 과정에서 느꼈을 은혜와 감동, 노고와 애씀을 실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랬기에 이번 탐방은 교회의 역사를 배우는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다. 사진과 영상으로는 다 담을 수 없었던 그 자리의 무게를, 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눈으로 보고 발로 디뎠던 그 자리들이 다음 세대에게도 살아 있는 신앙의 이야기로 남아 전달될 때 하나님께서 남기신 구속사의 기념물들은 오래도록 빛을 발할 것이다.
“오늘도 걷습니다. 내일도 걷습니다.”
그루터기 97또래 이준열
부모님께서도 이전 교회의 현장을 직접 경험하신 것은 아니었기에, 저 역시 그 시절 교회의 모습이나 신앙생활에 대해 가까이에서 전해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교회 역사에 대해서도 주로 큰 행사나 예배 시간에 전해지는 이야기로만 접했을 뿐, 그것을 제 신앙과 직접 맞닿아 있는 역사로 깊이 받아들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탐방을 통해 평강제일교회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직접 확인하고, 그 역사를 가까이 느껴보고 싶은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막상 현장에서 마주한 모습은 막연하게 떠올렸던 교회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예상과 다른 낯선 풍경은 오히려 깊은 인상을 남겼고, 교회 역사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대성교회’를 제외한 ‘시온산한돌교회’, ‘일석교회’는 현재 창고 또는 공장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거나, 오랫동안 방치된 모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훼손된 창문과 보수가 필요해 보이는 부분들을, 사전 정보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마주했다면, 과거 교회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라고 쉽게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모습 때문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겉으로는 더 이상 교회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외형이었지만, 이런 현실적인 풍경 속에서 오히려 교회 역사를 선명하게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기 8:7)’라는 말씀처럼,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강제일교회의 모습은 처음부터 크고 화려하게 세워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작고 소박한 공간에서 말씀이 선포되었고, 가정에서 시작된 교회가 수많은 성도의 기도와 헌신을 통해 오늘의 평강제일교회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와 사명이 분명히 있었음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루터기에서 조별 공과 시간을 통해 ‘교회 이름에 담긴 사명’이라는 주제로 총 4주에 걸쳐 교회의 역사를 미리 배웠는데, 60여 년의 역사 속에서 교회의 이름은 시대마다 달라졌지만 그 이름들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었습니다. 각 이름 속에는 그 시대마다에 맡겨진 교회의 사명과 구속사적 방향이 담겨 있었고, 그 흐름은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교회의 역사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가 어떤 방향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도 성경적으로 제시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탐방 전 헵시바, 샤론과 함께 모여 과거 교회의 사진을 보며 시대별 흐름을 미리 익혀본 덕분에 미리 익힌 내용과 과거 사진 속 모습들이 실제 현장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이전 교회의 터들이 훨씬 생생하고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단순히 오래되고 낯선 장소를 둘러보는 느낌이 아닌, 공간과 시간을 넘어서 성경 공부를 통해 배웠던 말씀과 교회의 역사가 하나씩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탐방은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어떤 교회로 서야 하는지를 묻는 시간이었습니다.
역사를 걷고, 믿음을 배우다
샤론 92또래 강영주
평소 영상으로만 접하고 이야기를 통해 들었던 대성교회가 재개발로 인해 곧 철거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전국에 있는 우리 교회 연수원은 찾아가 보았지만, 정작 우리 교회가 걸어온 믿음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장소들은 한 번도 방문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마침 교회 탐방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탐방 당일에도 현장에서 자세히 설명을 들을 수 있었지만, 사전 연구를 통해 교회의 역사를 큰 흐름으로 먼저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알고 현장을 둘러보니 각 장소가 가진 의미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원로목사님께서 겪으셨던 많은 오해와 고충에 대해 막연히 알고만 있었을 뿐, 누군가에게 설명할 만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사리원 출신, 6·25전쟁 참전과 총상, 동마산교회 사역, 지리산 기도처럼 이미 알고 있던 주요 사건들 사이사이에 어떤 과정들이 있었는지를 들으면서,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춘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만약 혼자 방문했다면 그저 주마간산 격으로 끝났겠지만 현장에서 설명이 더해지니 평범한 공간 하나하나가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어떻게 100여 명이 예배 드렸을까?’, ‘어떻게 불과 3년 만에 다섯 배의 부흥을 이루었을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면서 현재 편안한 환경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됐고,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탐방 중 문득, 한산 연수원에서 에어컨도 없이 무더운 텐트 생활을 하며 수련회에 참석했던 기억과 여주 연수원에서 돌비를 닦고 청소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제 경험이 당시 성도님들의 헌신에 비할 수 없지만, 일석교회 성전 건축 이전 천막에서 예배드리던 시절과 성전을 세워 가던 과정을 조금이나마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교회의 중요한 전환점마다 원로목사님과 성도님들의 뜨거운 기도와 헌신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평강제일교회가 그 믿음 위에 세워졌으니, 저 역시 기도와 헌신으로 함께할 수 있는 성도가 되자고 다짐해 봅니다.
평강의 발자취를 따라 내 신앙을 돌아보다
그루터기 93또래 황명신
교회 탐방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교회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내 신앙의 길잡이가 될 수도, 그 안에서 무언가 답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함이 생겼습니다. 사실 대성교회를 포함한 이전 교회 장소들이 제게 큰 의미가 있거나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 교회 탐방을 하면서 과거 ‘대성관’(중식당)이 없어지기 전에 부모님과 함께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원로목사님께서 어렵고 힘들던 시절 대성관 주인 할머니께서 식사를 대접해 주신 게 고마워 그 뒤로 원로목사님께서 성도들을 많이 데리고 가셨고, 미스바 성가대가 원로목사님을 모시고 식사를 할 때면 음식을 나르느라 어머니는 한 젓가락도 못 드셨다는 이야기 등이 생각났습니다. 이제 보니 그 대성관이 없어지기 전에 가 봤던 일도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옛 시온산한돌교회가 위치했던 곳에서 사진 속으로만 봤던 머릿돌을 보니 참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나마 제일 친숙한 대성교회는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들어가 보니 작은 모리아 성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작게만 느껴지는 공간에서 3,000명의 성도들이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모리아 성전이 더욱 차고 넘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기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교회 역사에 대한 교육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교회 탐방과 사전 교육을 통해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었고, 그간 여운초 목사님이나 어른들을 통해 들었던 것들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는 와닿지 않고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신앙의 전수가 왜 중요한지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원로목사님과 많은 성도들의 피와 땀과 눈물과 사랑의 결실이라는 생각이 피부로 와닿는 시간이었습니다. 나의 뿌리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직접 보고,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니 원로목사님과 부모님으로부터 배웠던 신앙의 기본들을 더 되새기고 점검해 보며 배운 대로 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탐방을 통해 체험한 하나님의 경륜
헵시바 21또래 박창호
두 눈으로 교회 역사의 현장들을 살필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에 기대가 되었습니다. 영상이나 글로 접하는 말씀과 성전에 나와 예배드릴 때 받는 은혜가 천지 차이이듯, 신앙의 선배님들이 많은 땀과 눈물로 수고한 공간을 확인할 때 그들의 헌신 덕에 우리가 지금 교회를 편히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가슴에 와닿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류동으로 옮겨오기 직전의 교회인 노량진 대성교회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가 신앙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했고, 가장 큰 부흥을 이룬 곳이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설명해 주신 목사님이 어릴 적 주일마다 뛰어놀던 장소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셨을 때는 “우리 교회 역사가 길긴 길구나”하는 생각도 들며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원로목사님께서 간절히 기도로 구했던 1,000평 넘는 부지에 교회를 세우는 꿈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일반 주택가 사이의 좁디좁은 사택에서부터 여름에는 더위를, 겨울에는 추위나 겨우 면할 수 있는 차고지를 거쳐서 지금의 평강제일교회에 이르기까지, 장소마다에는 기도의 눈물이 어려 있었습니다. 수많은 교회 어른들의 헌신,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더라면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은 있을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강제일교회의 역사는 그저 한 개별 교회의 역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하심 아래 구속사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한 경륜의 일부임을 깨달았고, 더욱 분명한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더 사랑하겠습니다
헵시바 24또래 이은선
우리 교회는 늘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고, 저 역시 구속사 말씀을 배우며 교회의 역사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계속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교회의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거나 직접 알아보려고 했던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어도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탐방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사진이나 이야기로만 접했던 장소에 직접 가 보니 교회의 역사가 막연한 과거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 실감났습니다.
특히 작은 가정교회에서 시작해 지금의 우리 교회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며,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재건축 이후에는 이런 탐방도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아쉬움도 컸습니다.
탐방 전까지 대성교회를 비롯한 이전 성전들은 옛날이야기 속 장소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아무래도 먼 나라 이야기처럼 막연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다른 건물이 들어섰거나 터만 남아있는 것이 오히려 특별함을 준 것은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터에서 당시의 역사와 말씀을 함께 들으니 ‘이곳에서 우리 교회의 역사가 시작되고 이어져 왔구나’라는 사실이 더욱 실감났습니다. 더 이상 부모님 세대의 추억이 담긴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모두 기억하고 이어가야 할 신앙의 역사이자 믿음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배우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배 세대가 믿음으로 지켜 온 신앙을 다음 세대에도 잘 전수하는 것이 지금 우리 청년들의 중요한 역할임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당시 성도들이 직접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리며 성전을 건축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지금 잘 갖춰진 예배 환경 뒤에는 이름 없이 헌신했던 수많은 성도의 기도와 수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교회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고, 저 역시 지금 맡겨진 자리에서 ‘작은 일이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섬겨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겐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김동현, 임수산나, 윤루디아 기자
26년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