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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회에 모여야 하는가? – 히브리서 10:19-25

2026.06.23 16:34

왜 교회에 모여야 하는가?
히브리서 10:19-25

 

 

 

히브리서 10:19-25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24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특별히 사랑해 주기 때문에 히브리서 10장 19-25절까지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또한 축복된 말씀을 주시기 위해서 저희를 초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감사와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돌립니다.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왜 교회에 모여야 하는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교회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인데, ‘밖에서 불러냈다.’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 멸망의 자리에서 십자가 구속의 사랑 안으로, 영생의 자리로 옮겨진 집단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르심을 받은 백성,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지정된 장소에 모인 모임을 말합니다. 이렇게 지정된 장소에 모이는 것은 기독교의 일대 특색입니다. 모이는 일 자체는 교회 존립 자체를 좌우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교회를 무시 방관하는 경향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의 교훈에서 볼 수 있고, 사도들의 교훈에서도 볼 수 있는데, 사도 바울이 이 사실을 언급하는 것을 보니 모이는 것을 폐하는 어떤 자들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지 않습니까?


모이는 것을 폐하는 어떤 자들

교회에 나오지 않고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을 다음과 같은 역사적 경향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사랑과 행실로 족하며, 번거로운 집회로 인해 돈도 벌 수 없다. 자유롭게 사는 생활이 방해받기 때문에 교회 나갈 필요가 없다.’ 당시 유대인들이 기독교 집회를 방해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주가 되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십자가 속죄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 교만해져서 교회 집회를 거부합니다.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라고도 합니다. 교회 핍박이 시작됐을 때 이를 피하기 위해 ‘무엇 때문에 시끄러운 교회에 나가느냐?’라고 교회 출석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지정된 예배 처소가 너무 멀어서 밤 예배는 아예 안 나옵니다. 한 집안에 믿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 핍박 때문에 무서워서 못 나옵니다. 어떤 분은 세속적 향락에 도취하여 주일 오후, 주일 밤, 수요일 밤은 라디오, 텔레비전, 친구, 극장, 유흥지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내 부도덕한 생활이 드러날까 봐 지나친 종교 관심에서 오는 배타 관념 때문에, 형제간 불화, 물질 관계, 지위·지식의 유무, 심한 빈부 차이 등으로, ‘교회 나갈 필요 없다!’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교인 때문에 교회 집회가 거치는 돌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신자들이 귀찮아하고 짐이 되는 교회를 무엇 때문에 두었을까요? 지금까지 말씀드린 여러 경우는 교회라는 말의 근본 의의나 성격, 존재 목적을 파악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병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모이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무감이나 종교적 규례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더 차원 높은 이유가 있습니다.


어째서 교회에 모여야만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에게 경배받는 이 일을 최고로 기뻐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모든 곳, 모든 일에 경배 받으시지만, 지정된 처소에서 경배 받으시기를 더욱 기뻐하십니다.

신명기 12장 5-6절을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12:5-6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사랑하는 우리 평강의 성도들은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예배 의식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지정된 처소에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경배 받으십니다. 무질서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시편 5편 7절에 있죠? 96편 6절에도 있습니다.

시편 5: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시편 96:6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

예배에는 찬송이 있습니다(대하 5:13). 예배에는 복 받는 헌금이 있습니다. 또한 설교가 있습니다. 다 같이 느헤미야 8장 4-10절 읽겠습니다.

느헤미야 8:4-10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매 그 우편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 좌편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5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이 다 그 처소에 섰는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는데 8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9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10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예배에는 성례(세례와 성찬), 축도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인의 최고 특권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일들은 사가(私家)에서 개인적으로 집행될 수 없습니다. 복되고 거룩한 성일(聖日)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지정된 장소, 영광 받으시기 위해 당신의 피로 사신 몸 된 교회로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백성입니다. 엿새간의 모든 일도 그 예배하는 사명을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교회의 모든 순서와 일들은 예배를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예배드리도록 지정하심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벧엘, 이스라엘은 성막, 신정 시대에는 성전, 선지 말기에는 회당, 지금은 교회에서.

교회 모임은 하나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 말씀 선포가 최고입니다. 참 주의 십자가 말씀을 중심한 교회는 말씀 전파가 중심입니다. 교회는 위대한 영적 양식의 보급소이며 말씀의 센터입니다. 마치 영적 병을 치료하는 종합병원 같은 곳입니다. 성령으로 다시 출생시키는 산파와 같습니다. 말씀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여 신자가 되게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 말씀을 보세요.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연약한 생명을 강건케 하는 병원이 바로 신령한 교회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 말씀을 볼 때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얼마큼 신령한 젖을 사모했습니까? 말씀은 약입니다. 어떠한 병이든지 몸 된 교회에 나오면 주의 말씀을 통해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고 모든 나태한 심령들이 다시 소생함을 입는 놀라운 축복된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 주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이 교회입니다.

베드로전서 2:1-2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시편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대 교회 박해 30년 동안 교회는 죽음을 각오하고 모였습니다. 박해자의 눈을 피해 ‘카타콤(Catacombs)’이라는 땅굴을 여러 수십 갈래로 파고 그곳에서 신앙을 지키며 성도들이 죽으면 그곳에 시체를 매장하고 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로마 제국을 정복하고, 자유를 누리게 되었으며, 빠른 속도로 말씀이 전파되었습니다.


축복 운동의 강화를 위해서 교회에 모여야 합니다

왜 못 삽니까? 왜 자신이 없습니까? 왜 주저합니까? 하나님 말씀 자체가 축복의 말씀입니다. 육신의 부모들이 자식들 망하는 꼴을 차마 볼 수 있습니까? 잘 되기를 축원해 주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더욱 축복받기를 원하십니다. 모임은 힘을 상징하며 정신력의 표현입니다. 교회는 전투하는 영적 단체입니다. 교회는 철통같이 단결하여 꽉 짜여져 있는 원수들의 작전에 응전해야 합니다. 방어만 아니라 계속적인 공격도 해야 합니다. 다른 종교처럼 수동적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복음으로 정복해야 합니다. 전투하는 병사에게 개인주의는 망조(亡兆)입니다.

이 시대에 마귀 전술 중 하나는 모이기를 폐하는 것입니다. 시험을 줍니다. 교회 험담을 갖다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구든지 교회 나오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거든, 마귀가 시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나와 같이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이지 않는 자는 나를 해치는 자'(마 12:30)라고 말씀했습니다. 교회 출석 안 하는 자는 주님을 반대하는 자요, 해치는 자입니다. 주님은 ‘두세 사람이라도 모이면 내가 그 가운데 역사하겠다.'(마 18:20) 말씀합니다. 우리 영적 운동의 유력한 권세의 기반은 교회입니다. 모입시다. 모이는 곳에서 기도 운동, 성령의 뜨거운 운동, 회개 운동, 전도 운동, 심방 운동이 일어납니다. 자신을 주 앞에 맡길 수 있습니다.

시편 133:1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형제자매들이 모인 곳에 하나님께서 아름다움을 보십니다.

미스바 부흥 운동은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임으로 일어나 블레셋을 물리쳤습니다. 바벨론의 신앙 운동도 이스라엘 민족이 강변에 모였을 때 가능했습니다. 이스라엘 회개 운동도 수문 앞 광장에 백성들이 모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초대 교회가 왕성한 비결도 날마다 성전에 모였다는 그 모임에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의 성신을 받기 위해서 모였고, 떡을 떼기 위해 모였고, 복음을 위해서, 말씀 전파를 위해서 모였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교역자를 받들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모이지 않을 때 교역자를 배척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우리 교회 부흥의 비결은 어디 있느냐? 모임에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여자들의 모임에서 바울의 설교로 말미암아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의 석방도 믿고 따르던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함으로 성공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완성은 1년간 모여서 사경회를 한 결과였습니다. 고넬료 가정의 축복은 온 가족 친척들을 모아 놓고 베드로 설교를 통해서 임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모든 이적은 모임 중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입시다. 주일 1부, 2부, 3부, 저녁 찬양 예배, 삼일 예배, 목요일 국가 민족을 위해서, 금요일 구역예배, 모든 이적은 모임 중에서 일어납니다. 어떠한 병도 모임 중에서 나았습니다. 역사의 족적(足跡)은 인간 모임의 흔적입니다. 교회의 흔적은 교회 모임의 흔적입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집이 생기고 마을이 생겼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시장, 공장, 전차, 버스, 배가 생겼습니다. 국가, 세계가 생겼으며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모이는 교회는 열심이 일어납니다. 모이는 교회는 축복이 일어납니다. 모이는 교회는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모이는 교회는 말씀이 충만합니다. 모이는 교회는 영적 양식이 충만합니다. 모이는 교회는 비전이 있습니다. 모이는 교회는 어떠한 근심과 걱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이는 교회는 회개 운동이 일어납니다. 기도가 터져 나옵니다. 성령의 불이 내려집니다. 참된 신자가 모이는 곳에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귀가 도망갑니다. 하나님 나라가 건설됩니다. 기독교는 모이는 교회 운동입니다. 기독교는 모임으로 시작해서 진행되고, 결국 최후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함께 모이는 것으로 그 절정을 이룹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들이 흰옷 입고 새 노래를 부르면서 그 최후의 장소 새 예루살렘에 모일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섭리 역사고, 섭리 활동의 특별한 무대입니다. 거기에서 인간 역사의 최절정을 이룹니다. 우리는 모여서 예배드립시다. 어둠이 사라집니다. 모여서 말씀을 받읍시다. 모여서 일합시다. 모여서 십자가적 공동 정서를 펴시기를 바랍니다. 모여야만 예수님을 알고, 예수를 붙잡고,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모여야만 예수님을 통해서 만사형통의 축복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이는 곳에 참 하나님의 집이 생깁니다. ‘신령한 집’을 베드로전서 2장 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세상이 그 어느 집이나 기관을 가리켜서 신령한 집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모여야만 신령한 집이 됩니다. 아무리 예배당이 크고, 좋은 기구가 있어도 모이지 않으면 폐가, 마귀의 집합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신령한 성령의 전입니다. 교회는 성령님의 내적 교통을 위한 거룩한 통치가 유지되는 곳이고, 이 집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신령한 분이기 때문에, 교회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곳이어야 합니다. 산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 예수를 기초석(基礎石)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뜨인 돌’을 심판의 돌이라고 했다면, 교회 나오셔야 심판을 면하지 않겠습니까?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고린도전서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마태복음 21: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다니엘 2:34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입시다. 우리 신앙은 결코 사상적 개념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신앙은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불구자의 것입니다. 모이지 않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야고보서 2장 2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여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모여야만 생명이 움직입니다. 갓난아이를 보십시오. 뱃속에서 움직입니다. 아니 움직임 속에서 잉태되었고, 움직임 속에서 출생했습니다. 출생 후에는 젖을 찾아 몸이 움직이고, 손과 발이 움직이고, 눈물을 흘리고, 보채고,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손과 발이, 목이 흔들리고 야단입니다. 이것은 살았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산 돌 되신 예수, 생수를 내뿜는 주님을 향하여 우리는 움직이고 모여야만 합니다.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 죽은 자들(계 3:1)은 모이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령한 젖을 찾아 신령한 집에 모여야 합니다. 신령한 집에서 신령한 젖을 먹고 신령하게 바쳐지는 남은 생애를 보내야만 합니다. 참 교회는 모이는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똑똑히 알기 위해서 교회 나오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 태어난 보람은 교회 나오는 데 있습니다. 모여야만 생산하는 교회가 됩니다. 모이는 교회를 보십시오. 항상 분주합니다. 항상 무엇인가 계획하고 움직입니다. 창조적 기품이 나타납니다. 자발적이며 협조적 태도를 보입니다. 새것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말씀을 주려고 애씁니다. 꾸준히 노력하고 계획하며, 보다 나은 사고와 이상을 향하여 전진합니다. 한마디로 움직입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이는 교회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 영계를 가동시킬 위대한 생명의 공장입니다. 교회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기관이며, 가장 거대한 조직체입니다. 교회는 역사의 공장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모터와 같습니다. 모터가 돌아가야 밝아지고 모든 생산 기능이 가동합니다. 모여서 말씀의 발동을 거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발동을 거시기 바랍니다. 봉사의 발동을 거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교회는 모이는 교회입니다. 하나님 영광이 충만한 교회는 모이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가는 신령한 교회로서 더 전진, 전진해 나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올리겠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섭리 역사, 섭리 활동에서 인간 역사의 최절정을 이룹니다. 우리는 모여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여서 할 일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교회 모임 가운데 간신이 되지 않게 하시고, 진실되고, 충성되고, 거짓이 없는 모든 성도가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지옥의 명단에 들어갈 자를 요한계시록 21장 8절과 22장 1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을 지어내지 않게 하시고, 자기의 편의를 위해 남을 비방하지 않게 하시고, 당회장 이하 평신도 하나까지 교회에 대한 책임을 지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남한테 전가해선 안 됩니다. 지금 환난 날에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밑에 있는 영적 비상 시기에, 교회에 빈사 상태가 계속되는 이 시기에, 십자가와 관계하고 있는 자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십자가 골고다 언덕에 오직 요한과 마리아와 같이, 요셉과 니고데모와 같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표징입니다. 끝까지 승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1981년 8월 4일 화요 집회

휘선 박아브라함 목사 설교

 

26년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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