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어른들에게 듣는 이 시대를 사는 법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어른들에게 듣는 이 시대를 사는 법
참으로 ‘은혜’ 받기 어려운 요즘이라고들 합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는 마지막 때에 개인, 가정, 교회와 세상에 은혜가 끊어지는 영적인 기근과 환란이 임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은혜받기 어려운 때 어떻게 신앙생활을 영위하면 좋을지 윤성원 장로, 정주용 권사 두 분의 어른에게 물었습니다.
‘은혜’가 귀해지는 시기 어른들은 지금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지,
어떻게 이 시기를 지나가야 하는지 말씀 들어보고 싶습니다.
정주용 권사
젊은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고, 누구나 은혜를 갈구하게 되는 시대가 아닌가 해요.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느끼고들 있는 거죠. 목이 마르면 물을 찾게 되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는 안 되고 매일매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여러 각도로 은혜를 받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원로목사님이 살아 계셨을 때는 예배드리고, 말씀 좇아가는 것만으로도 너무 버거웠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수조차 없었죠. 말씀이 쏟아지니 그걸 받아두는 것도 힘들었잖아요. 지금은 ‘물이 어디서 나오나’ 스스로 찾아야 하는 때인 듯해요. 코로나19 이후에는 유튜브가 그 통로인 것 같아요. 뉴욕, 올랜도, 애틀랜타, 워싱턴, 싱가포르 등 유튜브로 전 세계의 지교회들을 방문하는 거죠. 지인들과 링크를 공유해서 듣고 그렇게 원격으로 심방 다니다 보면 다 못 듣는 경우도 있고요.
교구에서는 <구속사 시리즈>에서 읽은 중요한 구절들을 나누고, 가족 단톡방에는 매일 성경 구절 하나씩 올리죠. 친구든 교구든 가족이든 은혜를 나눠야 해요. 논어에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고, 3명이 가면 스승님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저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건데 저분은 저렇게 깨달으셨네’ 하며 배우게 되어서, 성도의 교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5개월째 아침마다 20분씩 지인들이랑 구속사 시리즈 영문판 읽기를 하고 있는데, 같이 시간을 정해서 읽고, 발표도 하다 보면 함께여서 얻는 도움이 많다는 걸 느껴요. 나이도 상관없고, 모임이 크든 작든 상관없어요. 신앙을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만남이 있다면 이겨낼 수 있어요.
윤성원 장로
신앙생활에는 마치 계단처럼 일정한 구간이 있는 것 같아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할 때, 결혼할 때, 아이를 낳을 때 등 분기점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덜컹거리는 친구들이 있어요. 학창 시절 같이 신앙생활을 했는데 취업 때문에, 결혼 때문에 덜컹거리기도 하죠. 이럴 때 중요한 건 권사님 말씀처럼 혼자서는 힘들어요. 누군가 걸려서 넘어지려고 할 때 옆에서 잡아 주는 신앙의 동역자가 필요해요. 교회 나오라고 권면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붙잡아 주는 친구가 중요해요. 저는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신 것도 아니고, 교회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성경을 많이 알아서 온 것도 아니고요. 어떻게 내가 지금 있을 수 있었는지 돌이켜보면, 때마다 나에게 이런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게 돼요. 가끔 ‘지금 내 신앙은 어떤가?’ 하는 되새김을 해요. 그 답은 교역자님들의 설교를 통해서, 아내나 옆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주시기도 해요. 주신 답을 잘못 이해하면 잘못되었겠지만, 하나님께서 올바로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고 ‘이것을 놓으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주셔서 여기 버티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요.
교회와 학업, 세상 일과의 관계 설정에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정주용 권사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원 졸업할 때까지 쓴 다이어리가 있어요. 7년 동안 쉬는 날이 하루도 없었더라고요. 토요일과 주일엔 헵시바 나와야지, 대학교 졸업하고 나선 대학원 다녀야지, 과외까지 2~3개 하다 보니 몸이 너무 지쳐서 주일이나 공휴일만 되면 아팠던 기억이 나요. 여러분도 임원 생활과 학업 등을 병행하면 많이 바쁘잖아요.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인 폴 발레리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는데, 아무런 주체성 없이 막 바쁘게만 살다 보면 나를 잃어버리게 되고 내가 사는 걸 합리화하게 돼요. 왔다 갔다 하는 게 그저 종교적인 행위일 수 있고, 그게 믿음은 아니에요. 나를 반드시 점검해 봐야 해요.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을 믿잖아요. 그러면 그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 것인지, 어떻게 기도하고,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 지금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는 정상인지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해요. 교회에 열심히 나온다고 해서 믿음이 괜찮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지 말아야 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보이는 걸 믿는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근데 세상은 끊임없이 보이는 걸로 유혹하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추구한다는 건 너무 어려워요. 창세기 6장 8절의 말씀을 원어로 봤을 때 노아는 하나님의 눈속에 있는 은혜를 찾았다고 했잖아요. 노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눈을 어떻게 보았을 것이며, 그 눈속에 있는 은혜는 어떻게 발견했다는 건지, 그러면 그 말씀은 나에게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 인생에서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과의 보이지 않는 시선과 내가 부딪친 적이 있는지, 만나려고 애를 쓰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까 장로님께서 언급하신 되새김이 아주 중요한 말씀이에요. 되새김하는 동물이 정한 짐승이었잖아요. 말씀에 비추어서 지금 나는 어떠한 상태인지 돌아봐야 하는 거죠. 히브리서 4장 12절에 ‘좌우에 날 선 검이 우리를 쪼갠다’라고 하잖아요. 어떤 때는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고 찔릴 때가 있는데, 그게 우리를 수술하시는 과정이 아닌가 해요. 늘 생생하고 살아 있는 예배를 드리면 좋겠지만 그게 너무 어렵잖아요. 그래서 애써야 하는데, 어떤 때는 그 애쓰는 것조차도 안 돼요. 내가 너무 지치고 영적으로 침체해 있으면 내 힘으로 하기가 힘들어요. 그럴 때 정말 나를 위해 누군가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회복이 더 빠르죠. 장로님께서 하신 말씀이 공감이 많이 돼요.
윤성원 장로
신앙은 ‘자기 체험’이라고들 하죠. 대학에 입학하면서 친구의 전도로 처음 교회로 오게 됐고, 1년쯤 되어 헵시바에서 총무가 되었어요. 그때는 뭔지도 모르지만 수업이 끝나면 매일 교회에 왔어요. 기관 활동하시면서 힘들 거예요. 중요한 건 같이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거기서 어떻게 경험했느냐가 그 사람들에게 신앙의 자양분이 된다는 거예요. 찬양기도회 2시간 동안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해요. 그때는 기도가 잘 되는데, 돌아서서 혼자 기도하려 하면 그때만큼 기도가 안 돼, 돌이켜보면 내가 기도한 게 맞나, 내 신앙이 맞나 갸웃하게 되죠.
새 신자가 안 와서 고민, 온 사람을 잘 정착시키지 못해서 고민, 잘 정착해서 일을 하다 보니 지쳐 떨어져서 안타까워하는 과정들이 신앙이 성장하는 모습이죠. 이런 체험이 없으면 사실 신앙도 굳건해지기 어려워요. 그런 과정을 다 겪어서 여러분이 나중에 권사님, 장로님이 되는 거죠. 매 토요일, 주일 아침마다 교회에서 빗자루질하는 분들 계시죠? 대단하신 분들이에요. 누가 상 주나요? 자기 은혜로 하시는 거잖아요. 부부가 결혼해서 사는 것도 기적이고 작년에 본, 10년 전에 만난 우리가 오늘 또 만나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에요. 모두가 나름대로 신앙생활하며 여기 남아 계신 거잖아요. 직접 인사는 나누지 못할지라도 오며 가며 보게 되고 ‘저 집사님, 장로님 여전히 잘 계시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게 감사해요. 그리고 더불어 제가 여기 있는 게 제일 감사해요. 솔직히 교회에서 하루하루가 사투예요. 하지만 받은 은혜가 나를 나가지 않게 붙잡아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아 주고 계시기 때문에 저는 여기 있고, 저는 그걸 놓고 싶지 않아요.
지금의 청년, 청소년들은 나고 자라면서부터 구속사 시리즈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 어른들만큼 이 말씀이 얼마나 대단하고 귀한지 체감이 잘 안 된다고도 해요.
이 말씀이 왜 중요한가요?
윤성원 장로
<구속사 시리즈> 말씀은 원로목사님께서 평생을 기도하면서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주신 말씀이고, 족보 등 유구한 역사 속에서 세계 최초로 선포된 말씀이라는 건 우리가 수없이 들었잖아요. 근데 이 말씀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건 당장 나에게 필요하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거예요. 원로목사님 설교가 처음에는 듣기가 어렵다고 하잖아요. 처음 들으시는 분들은 원로목사님 목소리가 특이하시고, 이북 사투리가 심해서 제대로 알아듣기까지 3년이 걸린다고도 해요. 근데 알아들으면 너무 좋잖아요.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해요. 바로 되지 않는 거죠. 이 말씀이 왜 좋은지는 교과서적으로 설명해 줄 수는 있어요. 그러나 체험이 자신에게 없으면 느낄 수 없는 거죠. 원로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7번 읽으면 은혜가 오는 건 분명합니다. 물론 숫자적인 일곱 번만을 말씀드리는 건 아니지만요.
정주용 권사
부모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면 내 신앙이 될 수 없어요. 모태 신앙을 가진 아이들은 신앙생활에 반드시 한 번은 고비가 오는 거 같아요. 한때 제 기도 제목이 ‘큰아들이 자신의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다’라는 거였어요.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두 달 쉬는 기간 동안 성경 공부를 하면서, 그때 은혜 가운데 창세기를 다 읽었대요. 창세기 1장부터 50장까지 읽으면서 족장들 공부를 했겠죠.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 처음 만났을 거예요. 그때 은혜를 많이 받았는지, 많이 바뀌었어요. 누구나 때가 다르지만, 우리 모두 자기만의 구속사가 다 있어요. 그게 20대일 수 있고, 40대에 만날 수도 있는 거고요. 저는 1984년도에 교회에 왔는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건 한참 뒤였어요. 십자가 설교를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도, 교회 다닌 지 30년 정도가 되어서야 십자가가 와닿고 회개하게 된 거죠. 얼마나 창피해요. 그전에는 저도 왔다 갔다만 했던 거 같아요.
제가 치즈케이크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미국에 갔을 때 어느 날 남편이 치즈케이크를 입에 넣고 삼키기 전에 커피를 마시면서 먹으면 맛있다고 그러기에 따라 했더니 우와, 치즈가 뜨거운 커피에 녹으면서 그 맛이 정말 신세계더라고요. 먹어보지 않으면 <구속사 시리즈>가 중요하다고 아무리 100번이나 얘기해도 읽겠어요. 광야 여러 곳을 지나다가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지 않으면, 생수가 터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 지경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펴 본 성경이나 <구속사 시리즈>의 한 구절, 혹은 저자 서문을 통해서도 그런 맛을 볼 때가 있겠죠.
청년들에게 꼭 권면해 주고 싶은 말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윤성원 장로
스스로에게 속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남의 눈치를 많이 보죠.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게 되죠. 신앙적으로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자기 자신에게 관대하지 않고 위장하지 않아야 결국 그 솔직함이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주용 권사
지나고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분이고, 사랑으로 기다려 주시는 분이라는 걸 깨달아요. 부모가 되어 두 아들을 기르면서 믿음이 성장하기까지 어떤 시간이 필요한지 보게 되더라고요. 너무 오래 걸리는 거 같아 안타깝지만 기다려줘야 하는 때도 있고요. 저도 그랬겠지 싶으면서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렇게 기다리고 계시구나 생각하게 됐죠. 너무 어려운 시절도 있었는데 회복이 될 때가 있고, 아버지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되죠. 성령을 만나는 때가 다 다르지만, 아버지께선 여전히 기다리고 계시고, 잊어버렸던 만남을 회복할 때가 있는 거죠. 우리를 기다리시기 때문에 그걸 소망 삼아서 가는 거예요. 청년의 때에 인생의 고민이 많고, 어렵고 눈물도 나겠지만 지금이 황금기예요. 참 부럽지만, 말씀 안에서는 저희도 청춘이니 사실 같이 가는 거예요.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고 감사해요.
김동현, 윤루디아, 임수산나 기자
26년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