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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성도의 기쁨이란 – 빌립보서 2:16-18

2026.03.26 14:09

참 성도의 기쁨이란
빌립보서 2:16-18

 

 

빌립보서 1장부터 4장까지 볼 때, 제가 ‘바를 정(正)’자 써가지고 ‘기뻐한다’는 말을 세어 보았는데 자그마치 18번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양발은 착고에 채워진 채 형무소에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뻐할 조건이 하나도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고통 중에 자유가 있습니까? 말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마음대로 갈 수가 있습니까? 죄인인데 편안하게 대우해 주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사도라는 직분을 받았습니다. 이방을 담는 큰 그릇으로 인정받았죠. 주님을 만나서 영적 구원의 소망 때문에 기뻐 안 할 수가 있습니까? 이중, 삼중, 사중의 기쁨. 기뻐하고 기뻐하라, 또 기뻐하라.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십자가 복음을 기뻐했습니다.

에덴동산이 죄짓기 전에는 즐겁고 기쁘고 아주 아름다운 곳입니다. 여러분이 신앙 생활하면서 영적인 그러한, 마음의 흐뭇한 체험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한테 “너희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기록돼 있다.” 추상적으로 말했습니까? 분명히 보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볼 때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이라 했습니다. 배운 예수, 들은 예수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같이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받은 증거! 확신을 가지고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썩어 들어가는 세상 기쁨은, 하나님 나라 소망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몸 튼튼하고 돈 많고, 명예 있고, 권세 있고, 목에 힘주고, 우쭐대고, 많은 분이 알아줄 때 은근히 기뻐하죠. 다양한 취미 가지고 살 때 기뻐하겠죠. 그러나 그것은 동태 눈같이 썩어 들어가는 기쁨, 세상의 기쁨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 소망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세상 기쁨은 순간! 빤짝! 가시적이고, 가볍고, 가변적입니다. 첫째, 일시적인 똑딱 기쁨입니다. 둘째, 전도서 7장 6절을 볼 때 날아가는 먼지만도 못한 무익한 기쁨입니다. 셋째, 야고보서 4장 9절을 볼 때 슬픔으로 한숨과 한탄만 나오는 기쁨입니다. 헤헤 하다가 바로 슬픔을 맛보는 똑딱 기쁨입니다. 그걸 붙잡고 살겠다고, 교회 나오는 연조만 자랑하고, 공부 많이 했다고 합니다. 돈 좀 들어오고, 자녀들 공부 잘하고, 가정이 편안하면 헤헤 합니다. 그건 날아가는 기쁨, 폭풍 불 때 날아가는 기쁨, 먼지만도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왜 옥중에서 기뻐했습니까?

사도 바울의 기쁨은 끊어지지 않는 기쁨입니다. 똑딱이 아니라, 믿음의 줄, 마음의 줄, 말씀의 줄, 은혜의 줄이 끊어지지 않고 하늘까지 닿아 있는 기쁨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다 압니다. 한번 자신을 들여다보세요. 여러분 자신이 다 알 거 아닙니까? 만약에 예배드리는데 사고 났다, 불났다 연락이 옵니다. 안 나갈 자신 있습니까? “예배 시간이야.” 딱 끊고 축도 끝날 때까지 급한 거 없이 평상시 같이 예배드립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 아시는 분입니다. 이왕 불난 거 남편이나 아내가 와서 소방수 역할 하겠습니까? ‘주여, 주님만 믿습니다. 어찌하오리까? 나에게 시련 주신 것은 큰 믿음 주시기 위해서, 더 큰 것을 나한테 선물로 주시기 위해서 이런 시련 주신 줄 믿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래야 진짜 기쁨입니다. 속상한 거 쳐다보면 밤낮 속상합니다. 자녀들 말 안 듣고 도둑질하고 거짓말하고, 학교 안 갑니다. 타일러도 안 되면 속상합니다. 뚫린 곳은 하늘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간절히 내 자녀 맡기면서, 하나님! 진짜 믿고 애절하게 간절한 소원을 올릴 때,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믿음을 보십니다. 걱정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한번 권념의 축복 주시면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첫째, 구원받은 확신이 있기 때문에 옥중에서 기뻐했습니다.

전도서 5장 15절을 보면 우리는 세상에 적신(赤身)으로 왔다가 적신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의 확신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형무소가 형무소로 보이지 않고, ‘내가 예수 안에 갇혀 있다, 내가 주 안에 갇혀 있다.’ 형무소를 예수님으로 본 것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을 볼 때 우리는 다 사형수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둘도 없는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낼 때 그 자체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 피의 공로로 죄사함 받고 천국 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대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나 때문에 처참하게 죽였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사랑을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이 희생과 사랑을 성경을 보고, 알고 믿는 내가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확신 있는 사람은 예배 시간에 전화 와도 슬그머니 화장실 나가지 않습니다. 예배 시간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데 어딜 나갑니까! 예배 중의 예배가 축도인데, 축도 받고 나가야 합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거짓말로 예수 믿으면 언젠가는 경칩니다. 혼납니다. 피곤하죠. 애쓰고 잠 못 자는데 되는 게 없습니다. 그물을 던지면 잡혀야 할 텐데 잡히지 않습니다. 기도해도 확신이 없고, 말씀을 들어도 확신이 없습니다. 피차 망하는 일입니다. 목사 망하고, 교인 망하고. 그래서 직분자들은 확신! 구원의 확신, 은혜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35장 9절, 로마서 3장 20-27절, 베드로전서 1장 3-4절, 에베소서 1장 3-10절 네 구절을 대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진리 말씀을 확실히 알고 체험했습니다. 뭐 ‘구원 받을 거다, 받겠지’가 아닙니다. ‘나는 구원받았다!’ 그러니 기쁨으로 형무소를 주 안으로 보았습니다. 주 안에 갇혔다. 신앙의 확신 있는 사람은 모든 환경을 초월합니다.

둘째,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옥중에서 기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 보게 되면 너무 좋아 어쩔 줄 모릅니다. 로마서 8장 38-39절, 요한일서 4장 10절, 19절은 ‘하나님의 먼저 사랑’을 말씀합니다. 나를 먼저 사랑해 줬는데, 사랑을 많이 받은 내가 보답 안 하면 되겠습니까?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매 맞을 자리 대신 맞아 주고, 내가 죽을 자리 대신 죽어 줬는데, 이게 입으로만 사랑입니까? 뒤늦게라도 깨달았다면, 성경을 통해서 알았다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예배 시간에 마음을 다해야죠. 99%가 아니고 100%입니다. 99% 예배드리고 왔다 갔다 해도 그건 가짜이고, 사단과 짝짜꿍하는 겁니다. 로마서 5장 8-10절 말씀을 잊지 마세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이 말씀만 들어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감사한 마음 없이 무미건조하게 읽어서 다 그 모양입니다. 무화과나무 열매가 없고, 포도나무 열매가 없고, 사업은 되지 않고 만사가 다 불통일 때, 하박국 3장 17절 말씀같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의지하고, 의뢰하고, 믿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요한일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예레미야 31장 3절을 볼 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에 감격하면서 얼마나 울었습니까? 민족들의 죄를 볼 때 날벼락 쳐야 하는데, 그래도 선지자 통해서 권고하는 거 볼 때,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을 깨닫고 눈물로 외치는 예레미야 선지자 보세요. 나태해져서 기도도 안 하고 빌 바를 알지 못합니다. 성령님이 너무 안타까워서 나 대신 나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구하십니다. 로마서 8장 27절 말씀이 거짓말입니까? 무한한 탄식으로 각자를 대신해서 기도해 주십니다.

로마서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산 소망을 맛본 자에게 주어지는 기쁨입니다.

성도 여러분, 베드로전서 1장 3-4절 볼 때, 산 소망이라고 했죠.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늘에 간직해 뒀다 했습니다. 디도서 3장 7절 말씀 보겠습니다.

디도서 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글자만 봐도, 읽으면 더 믿어지니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은 후사가 없으면 끝입니다. 벌어놓은 돈을 누가 가져가죠? 후사가 있으면 후사에게 줍니다. 아무리 요란하게 떠들어도 실은 다 거지입니다. 우리는 부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150층 빌딩에 살아도 그건 흙집입니다. 쇠도 흙에서 나왔죠. 나무, 돌 다 흙에서 나온 겁니다. 흙집에 살면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영생의 소망이 있습니다. 이 말씀만 들어도 얼마나 좋습니까. 땅의 것 땡전 한 푼 못 가지고 갑니다. 다 그냥 갑니다. 오직 구원의 말씀만을 가지고 갑니다. 호세아 14장 2절에도 잊어버린 말씀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 볼 때 말씀을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호세아 14:2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구원의 말씀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1절을 볼 때 자기 땅에 왔는데, 자기 백성이 내동댕이치고 이방으로 내쫓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를 내쫓은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있겠습니까? 성경 볼 때 아닙니다. 하나님은 쫓김을 당한 예수님과 함께 이방에 있습니다. 말씀을 영접하면 하나님이 가시고, 말씀을 영접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안 가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영접하는 개인, 가정, 자식이 성공합니다. 아무리 공부 못해도 하나님이 가만두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영접한 여러분들의 아들딸, 과외 공부 못 시켜도 소망이 있잖아요. 구원의 소망, 영생의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나 같은 것을 사랑했습니다. 내가 무엇이라고 당신이 아들을 죽이기까지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시키십니까? 확증!(롬 5:8). 그러니 안 믿을 수가 있습니까?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있는 소망이 있고,
‘영원’ 속에 묻혀 있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평강제일교회 성도들은 시간 속에 묻혀 있는 소망에 헤헤 하지 말고, 영원 속에 묻혀 있는 소망을 찾을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20장 31절, 로마서 15장 4절에 있죠. 소망은 상대적 소망과 절대적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적인 소망입니다. 영원한 소망, 썩지 않고 망하지 않는 소망입니다. 사업이 안 될 때 ‘아하 나를 깨닫게 해 주시려고 시련을 주시는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볼 때, “야, 너 진짜 믿음 좋다” 인정해 주십니다. 아브라함같이, 이삭을 바쳤을 때 “네가 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줄 알겠다.” 그전까지는 가짜입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손대지 말라!” 가만 두었다가는 아브라함이 칼을 빼서 아들 목을 내려칠 뻔했지요. 하나님이 얼마나 급한지 수양 한 마리를 가시나무에 걸리게 해서 그걸 잡아 대신 제사 드리고, 이삭은 살아난 거 보세요. 이삭은 주님의 모형 아닙니까? 상징 제물이죠.

로마서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어떠한 환난, 핍박, 고난, 오해를 당해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귓잔등으로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저 허허 웃으면서 영원한 소망 가운데 살면서 그 세계를 마음대로 요리하고 잔치하고, 또 혼자 먹는 게 아니라 “먹고프면 다 오너라” 다 먹여 줍니다. 바울 통해 구원받은 사람이 오늘날까지 수천만만 아닙니까. 상처 입으면 붕대로 감듯이, 땅에서 고통 당할 때 하늘의 영원한 소망의 보자기로 덮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기쁨, 언제나 감사, 언제나 만족. 비천한 자리에 처할 줄도 알고, 존귀한 자리에 처할 줄도 알고, 자유자재로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 마음속에는 감옥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죽인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죽으면 천국이니까요. ‘땅에 갇혀 있는 것도 좋지만, 나 죽으면 하늘나라 간다.’ 하는 마음이죠. 의로운 재판장께서 의의 면류관을 들고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 말씀 볼 때 머리가 숙여집니다. 살아온 생애를 검토해 대조해 보면 너무나 가증스럽고, 너무나 믿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 흘리면서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못 믿어도 잘 믿어도 70~80년이고, 기도하기 싫어도 기도하기 좋아도 70~80년입니다. 양단간 무엇을 택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영원한 영광스러운 하늘의 소망이 바울 마음 가운데 꽉 차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소망이 있는 성도는, 날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시편 71편 14절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바울은 로마 교인들한테 ‘즐거워하라’라고 했습니다(롬 12:12). 분초마다 즐거워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모든 생활에 두려움이 없고 담대해집니다(히 3:6). 그래서 자기를 깨끗하게 합니다(요일 3:3). 의심은 지저분한 것입니다. 내쫓아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소망하지 않고, 구질구질한 먼지 같은 것들을 내쫓는 것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3절 말씀 잊지 마세요.
요한일서 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소망이 없으면 멸망당합니다. 소망이 없으면 순간 살 수 없게 됩니다. 한숨과 눈물만 납니다. 에베소서 2장 12절 말씀대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입니다. 의인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죠(잠 10:28). 주시는 말씀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살맛이 납니다. 그런 분들은 선한 청지기같이 헌신, 봉사, 충성합니다(벧전 4:10-11). 또 주께서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했습니다(요 16:33). 모든 환난, 근심, 고통을 이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먼 데 있는 자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십니다(엡 2:17, 골 3:15). 빌립보서 4장 4-7절을 읽고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빌립보서 4:4-7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뻐하세요. 예를 들어 말씀드렸습니다. 불이 나더라도, 달려간다고 불이 꺼지는 게 아닙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데, 사단이 이걸 도둑질하려고, 구렁텅이에 빠뜨리려고 하는 겁니다. 축도 마칠 때까지 아멘! 하시고 가면 됩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 뜨거운 사랑과 소망과 구속의 은총, 아들을 죽이기까지 해 가면서 나를 사랑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밥 한 끼 얻어먹고, 어려울 때 직장 취직시켜 주고, 쌀 한 가마 갖다 준 거 평생 잊지 못한다고 골백번 절하면서 영원한 사형수 되는, 나를 살려 주신 하나님, 자손만대 축복을 주신 하나님, 구원의 영원한 소망, 썩지 않는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마음으로 감사치 못했습니다. 그 죄를 생각하며 손들고 기도하겠습니다.

고맙고, 감사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뻐할 요건을 찾아보아도 하나도 없는 옥중에서, 낙심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사도 바울은 ‘주 안에 갇힌 나’라고 했고, 구원의 소망과 영생의 부활의 소망과 하나님의 사랑에 너무나도 감사 감격하는 믿음으로 주께 항상 감사하고 기뻐했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은 감사와 기쁨을 가질 수 있도록 큰 믿음들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까지 신앙이 체험도 없이 글로 배운 예수, 들은 예수 믿은 거 용서해 주시고, 진심으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믿는 게 아니라 주의 영이 오셔서 믿게 해 주는, 영으로 믿을 수 있는 그 지경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잘 믿기를 소원합니다. 바울같이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늘 감사하고 기뻐하는 믿음을 갖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이여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나라 갈 때까지 산 생애보다 남은 생애, 바울 같은 믿음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울같이 주 안의 기쁨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내보다 자식보다 어떠한 것보다 세상에서 주님을 더 사랑하고 주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누가 죽어서 넘어진다 해도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면 롯의 처같이 뒤를 돌아보는 일 없는 그러한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예수만을 믿고, 예수만을 소유하고, 예수만을 붙잡고, 예수만을 바라보는 뜨거운 신앙들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어떠한 어려움을 당할 때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기도의 영을 보내어 주시옵소서. 기도 안 하고는 못 살고, 기도 안 하고는 밥을 먹지 않겠다는 그러한 각오와 결심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믿고 구하고 간구할 때 응답받는다는 확신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정마다 어려운 시험이 있는 줄 압니다. 교회마다 어려운 난문제가 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간절히 구하는 가운데 모든 게 해결되는 역사의 축복, 형통의 축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한 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고 확신하면서,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감사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06년 4월 16일 주일 2부 (부활주일) 휘선 박아브라함 목사 설교 중

 

  • 2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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