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주간 지키는 모범 답안
고난 주간 지키는 모범 답안
“중앙의 십자가, 나와의 관계입니다”
십자가 좌우에 달린 두 강도는 어제까지 악한 일을 저지른 악의 동업자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만은 한가운 데 달리시므로 좌우로 나뉘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과업도 혼돈으로부터 빛과 어둠을, 윗물과 아랫물을, 바다와 육지를 분리하시며 진행됐습니다. 영적인 창조라 할 수 있는 거듭나는 도리, 즉 신앙의 길도 바로 분리였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관에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자기관에서 양심에 화인(火印) 맞은 자와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는 자로, 구원관에서,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길 바라는 현세적 구원관과 장차 올 당신의 나라 를 기다리는 내세적 구원관으로, 그리스도의 응답에 있어서, 침묵과 낙원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이것이 중앙에 선 십자가와 회개한 강도와의 관계이며, 십자가와 나와의 관계입니다.
“신기한 뜻, 때가 찬 경륜을 간직한 중앙의 십자가”(히 11:10-16, 계 21:1-4) 1988년 8월 7일 주일 3부 설교 중
“주님의 사건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금년 고난주간에는 말씀이 그저 귓가에 스쳐가는 설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하나 그때의 사건과 사정을 헤아리며, 2000년 후에 사는 우리도 말씀을 붙잡고 다시 그 현장에 서야 합니다. 깨닫지 못한 제자들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말씀 앞에서 뜨거운 눈물과 감격과 감사로 응답해야 합니다. 내가 이 땅에 생명이 있는 한 절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바로 하며, 자손만대 다른 유산은 남기지 못해도 영원한 생명, 죽지 않는 생명의 유산만은 반드시 물려주겠다는 각오와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은퇴의 날” (눅 22:7-15) 2002년 3월 27일 수요일(고난 주간) 저녁 집회 중
“고난 주간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는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의 33년간 이 땅의 생활에서 이 한 주간에 이루어진 사실을 빼놓는다면 주님의 생애는 다 무의미할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도 이 고난주간 한 주간에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간에 세속적인 말과 세속적인 생활에서 끊으세요. 말씀을 받고 말씀 을 맡은 자가 고난주간에 어디를 왔다갔다하고 있습니까? 교회에 나오셔야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피와 땀의 기도, 마가 요한 다락방의 성만찬, 체포와 매맞음, 비난과 조소, 심문과 십자가의 못박힌 처참한 모습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산 소망을 주는 십자가” (고전 1:17, 2:1-2) 1999년 3월 29일 월요일(고난 주간) 저녁 집회 중
“주님이 입성하지 않으면 성전이 아니라 창고입니다”
수난 주간으로 알려진 십자가의 주간은 종려주일로 시작하여 부활주일로 이어지며, 주님께는 고통과 괴로 움의 기간이었습니다. 주님은 죄악이 가득한 도성에서 죽음만 남은 인생들의 죄를 걸머지시고 십자가를 향하 여 입성하셨습니다. 이는 저주와 죽음과 심판 아래 있는 백성에게 생명과 부활과 영생을 주시기 위한 입성이 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모습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담당하시고 사 망을 멸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 모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또한 2천년 전에 입성하신 속죄의 주 님이 오늘 우리의 생활과 마음과 교회에 입성하셔야 합니다. 주님이 입성하지 않으면 성전이 아니라 창고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승리의 입성” (막 11:1-10, 마 21:1-17, 눅 19:28-40) 2002년 3월 24일 주일 2부 설교 중
“고난 주간, ‘아리마대 요셉’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바로 나와 여러분 때문에, 아니 억조창생 때문에 저주를 받으시 고 몸이 상하시며 십자가의 극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불량한 양심 때문에 창에 찔리시고, 우리의 죄 때문에 몸이 찢기고 상하고 터지고 깨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해마다 이 고난을 만나면서도 얼마나 그 뜻을 헤아리기 위해 몸부림치며 기도하고 자나깨나 주님을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고난 주간은 주님의 아픔과 심정을 깊이 헤아리며 회개하는 때가 되어야 하며, 끝내 아리마대 요셉처럼 주님 편에 서서 교회를 지키고 감싸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인생들아 예수님의 아픔은 어느 정도였는가” (사 53:4-9) 1997년 3월 25일 화요일(고난 주간) 저녁 집회 중
- 26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