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명자인가’ 도전을 던지는 열두 번째 승리의 날 기념일
‘충분히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명자인가’
도전을 던지는 열두 번째 승리의 날 기념일
12월 17일 승리의 날이 2025년에도 돌아왔다. 전 세계에서 평강의 식구들이 여주 평강제일교회 연수원에 모여 이날을 기렸다. 12번째 기념일이다. 한편으로는 ‘왜 승리의 날이냐?’라는 질문을 듣기 시작한 지 열두 해가 되었다는 것이고 무엇으로부터의 승리인지, 왜 승리인지 평강의 식구라면 이제는 충분히 잘 설명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열두 해를 열심히, 정확히 설명했다면 나름의 틀이 짜여졌을 테고, 압축하거나 풀어서 상황에 따라 전개할 만큼의 역량은 누구라도 갖추었으리라. 마치 <구속사 시리즈 제1권> 「창세기 족보」에 나오는 ‘노아 방주 70~80년’ 만큼은 설명을 풀어낼 수 있어야 마땅한 일. 과연 그러한가?
열두 해가 지났으니 그 해에 태어났어도 12살이요, 당시 12살이었다면 24살인데 ‘어른들과 아비들은 답하고 이를 준비는 되었는가?’, 12년이나 지났으니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질문이 되었다.
‘이단’이 무엇인지, 왜 이단이라고 하는지 궁금했던 당시의 초등학생들도 이제는 50이 넘어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이 세대의 부모들은 대개 80 중반이 넘어 별세한 분들도 부지기수다. 개중에는 승리의 날을 보지 못하고 떠나신 분들도 적지 않았으니 평생 이단의 굴레를 벗어보지 못한 셈이다.
믿지 않는 형제에게 말씀을 전하다 배척당하고, 교회로 이끌고 싶은 친구들에게 외면당했던 그 마음의 한은 지금은 헤아리기 어려운 일이다.
이단 시비는 그렇게 오래되었고 그 긴 시간 교회와 성도 전반은 심한 고통과 압박 속에 지내왔다. 그랬기에 2013년 12월 17일은 만세가 절로 터져 나오는 날이었던 데다, 성경 속 곳곳에 감춰진 ‘신비의 수 17’을 선물로 받아 든 엄청난 날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 선물을 받아 든 성도라면 허락된 승리가 ‘어떤 승리’인지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날의 일을 보도했던 어떤 인터넷 기독교 매체는 이런 해석을 내놓았다.
“적어도 이단 조작이 되지 않고 적법한 교리재판이 되려면 1) 교단헌법과 신조를 기준으로 한 이단 정죄, 2) 당사자에게 소명 기회 부여, 3) 교리법 적용을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한국 교회의 이단 정죄는 보편적인 기준도 없이 이단 감별사들과 이에 휘둘린 이대위원(이단대책위원)들이 자의적이고도 주관적인 기준, 당사자에게는 전혀 소명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고, 교리법에 대한 적용 없이 일방적으로 이단 정죄를 하였다.”
참으로 통렬한 분석이 아닐 수 없다는 탄성이 나오는 한편으로 우리에게 부여되거나 적용된 적이 없는 원칙인지라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이어서 이렇게 설파한다. “총회에서는 이대위에서 결정하면 누구 하나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교리적 이단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이단이 되었다. 특히 이단 정죄 작업이 금품과 연결되어 있어서 순수하지 않았다. 교리적 이단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이단, 금품적 이단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이 기회를 준 것은 <구속사 시리즈>였다. 일찍이 들어본 적도 없는 ‘유구한 역사 속 세계 최초’의 성경 속 이야기를 줄줄이 풀어낸 이 책들이 학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았고, 그렇게 해서 자발적으로 모인 학자들이 이야기의 출처를 찾아내 관찰하고 검증한 결과 “처음부터 이단이 아니었다.”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무엇을 설명할 능력도 의지도 부족했으나, 남아있었던 성도들에게는 ‘승리의 날’이 선물로 쏟아진 것이다.
마침 2025년 승리의 날에는 ‘사명자의 복된 출입’(신 28:6, 시 121:3-8)이 허락됐다.
“출입이란, 이 땅에 태어나서부터 그 나라 갈 때까지 생명 가진 자의 기본 움직임”인데 “하나님께서는 구속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명자의 출입을 전폭적으로 지켜준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라는 권고의 말씀에 더욱 힘을 얻게 되는 승리의 날이었다.
열두 돌. 이제는 설명할 수 있는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는 도전을 던지고 있다.
참평안 취재팀
- 25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