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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은혜로 나를 부르심 – 갈라디아서 1:1-17

2025.08.19 16:31

그리스도의 은혜로 나를 부르심

갈라디아서 1:1-17

 

 

갈라디아서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갈라디아서 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유대인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가서 교인들을 교란시키고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가짜이며, 자기 멋대로 사도라고 칭한 자이고, 하나님의 사도로 임명한 사람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잠깐 다른 데 떠나 있는 동안 교회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을 때 중심이 없던 교인들은 휘둘렸고 갈라디아 교인들은 바울이 받은 소명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셨고, 그 은혜로 나를 부르셨다.’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했고, 그에 반해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내세우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역설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귀중하고 가치가 있는지, 또한 얼마나 보배로운지 뼈저리게 느끼며 자기 삶 가운데서 향수의 그윽한 향이 퍼져나가듯 은혜의 향기를 퍼뜨렸습니다.


그 은혜는 첫째, 앞서가는 은혜입니다.

뭔가를 구상하고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우리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앞서가 있습니다. 이제부터 기도할 때 “하나님, 내 머리가 둔탁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내가 이러한 마음으로 이러한 것을 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렇게만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가 앞서 가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다 이룩할 수 있도록 역사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가 앞서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나기 전, 이미 은혜로 나를 택하여 불러 주셨습니다. 바울이 어머니 배 속에 있기 전부터,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은혜가 벌써 불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단인 줄 알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다가 고문하고 때리고 죽이기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도 바울이 그 현장에 있지 않았습니까(행 7:58)? 그런데 바울이 교회를 핍박하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가 벌써 그를 불렀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밝은 빛이 그를 두루 비추며 생포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여러분들도 ‘나는 아무리 믿어도 틀렸어. 나는 되지 않아. 내 자식들, 남편을 봐도 그렇고 사업도 잘 안 돼.’ 그러지 마세요. 오늘부터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내 남편보다, 아들딸보다 앞섰다는 것을 깨닫고, ‘내 남편 내 자식, 내 부모, 내 사업체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앞서 있으니, 하나님께서 불초한 종의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룩할 수 있는, 뜻을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하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은혜로 나를 택하여 불러 주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소명(召命)을 말합니다(갈1:15).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선행(先行), 벌써 나보다 앞서서 행한다는 것입니다. 앞설 “선(先)”자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나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사야 49장 1절의 이사야의 소명과 예레미야 1장 5절의 예레미야의 소명, 두 곳의 말씀을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49:1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예레미야 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바울은 위대한 두 예언자가 부르심을 받은 것이 자기의 경우가 같다는 것을 알려서 자기의 사도직의 권위를 말씀한 것입니다. 모태로부터 하나님이 역사하셨다는 것과 자기의 의식이 발달하기 전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앞서가고 있다는 것을 바울이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내가 사람을 잘 만나서 이렇게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혜가 앞서간 것입니다. 유아 세례를 떠올려 보십시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신앙 고백하며 신앙 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인간의 두뇌 형성 과정보다 앞서 가서 아기에게 세례를 주는 역사이고, 하나님 일에 부모님이 대신 호응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베풀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그 어머니가 아기 대신 답변한 것이고, 그것을 아이가 커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내 의식이 제대로 형성되지도 못했을 때 나의 부모가 내 대신 교리 문답을 했구
나.’ 하고 뒤늦게 깨닫는 것입니다, 그와 동일하게 바울도 자기가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사람들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사람에게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되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열심히 해서 은혜 받았다, 열심히 살아서 돈 벌었다, 또 좋은 사위, 며느리 얻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은혜가 벌써 앞서가서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여러분 마음속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할 때 누구의 요청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에게 전하기 위해서 내 속에서 나타나시기를 기뻐하실 때 나는 어떤 인간 혈육과도 의논치 아니하고 먼저 사도가 된 사람과도 의논하지도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라비아로 갔고, 그곳에서 3년 동안 엎드려 눈물로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기도한 결과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의논하지 않고 아라비아와 다메섹으로 가서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16-17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성도 여러분, 자기의 생각과 계획이나 세상의 배움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속에서 역사해서 나를 신앙으로 성장시켰다는 것을 모두가 깨닫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예수를 믿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의 결정보다 먼저 역사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 속에서 역사했고, 그래서 믿음이 생겼다는 것,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하나님이 주장하신다는 그 놀라운 체험을 여러 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간 것은 예수 교도들을 체포하고, 죽여서 공을 세우기 위해서, 가장 열렬한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으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 율법에 흠이 없고 가장 충성스러운 종교 권위자로서 행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던 바울이 180도 돌아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둘러싸서 생포했기 때문입니다.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행 9:3) 아그립바 왕에게도 ‘정오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추었다.’라고 했습니다(행 22:6-12).

이 빛은 해보다 더 밝은 영광의 빛입니다. 결론은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과 은혜를, 샤워할 때 물이 쏟아지듯이 한없이 부어 주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다면, ‘내가 이만큼 성공한 것도 내 재주로, 내 노력으로, 내가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밤 잠자지 않고 노력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했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면 안 됩니다.


둘째, 구원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곧 구원의 역사도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을 밝히면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었다. 이것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몇 번 나오는지 찾아보았더니 153번 나옵니다. 대부분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 등장하는데 구원의 요건이 명료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것, 우리를 구원시켜 주시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혜입니다. 자다가 눈 뜨고, 숨을 쉬는 것, 아름다운 만물을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상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 저버리지 마세요. 얼마나 귀한 말입니까?

구원의 출발점은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와서 나를 믿게 해 주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입니다. 나에게 공로나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은혜인 것입니다. 참 감사하죠. 교회 나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갈까 말까 고민할 때 첫 번째로는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역사하며, 두 번째로는 믿음이 교회에 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서포트(support)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 은혜입니다. 말씀이 육신 됐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심으로 말씀이 하나님이라.” 예수님은 육신이 있지만 죄가 없으신 분이고, 부모의 부정모혈로 낳은 우리는 죄가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죄를 짓지 않아도 아담의 지은 원죄, 조상들의 유전죄, 사기, 도둑질하고 간음한 모든 죄악들이 우리에게 다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해서 예수님을 믿게 했습니다. 예수 믿는 그 믿음으로 그리스도 십자가 보혈의 피가 우리의 원죄, 유전죄, 자범죄를 사해 주고 “죄 없다” 선포해 주시며, 다시 우리를 의로 인정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5장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2006년도 하계 수련회, 평생 잊지 못할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혜입니다. 우리는 공로가 없습니다. 내가 새벽기도로, 산 기도로 애쓴 것,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나 모르는 가운데서 서포트해 준 것입니다. 은혜 주고 함께해 주셨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이지,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한순간도 살 수 없는 게 우리 인생입니다. 역대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동행했다”라는 말은 “하나님과 동행했다”라는 말인데 은혜가 바로 예수 자신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은혜와 진리로 임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예수를 받은 것이며,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이 예수가 마음속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복된 시간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림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섭섭하게 해 드리는 일이 없도록 끝까지 앞서가는 은혜를 따라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또 한 가지 깨달아야 할 비밀은 시편 기자가 말씀한 ‘구원’입니다.

시편 85:9-10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이에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리이다 10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아버지의 엄한 마음과 어머니의 인자한 마음, 하나님은 이 두 가지 속성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엄한 아버지의 마음도 가지셨는데 그것이 “의”입니다. 인자한 어머니의 마음도 가지고 계시는데 그것은 “은혜”입니다. 은혜 속에는 ‘긍휼’과 ‘용서하는 의지’가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지가 있으므로 구원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즉 이 두 가지 속성은 ‘구부러지지 않는 진리’와 ‘용서하시는 긍휼’입니다. 죗값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의와 다시 받아 주시는 화평,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개의 신성이 입 맞추는 것이 “은혜”이며, 그때 구원이 가능해지는 것이 은혜의 역사입니다.

은혜는 모두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다시 화평의 마음을 줍니다. 또 억울함을 당한 사람에게도 은혜로서 깨닫게 해 주고 다시 화평의 마음을 줍니다. 은혜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은혜는 원수가 없습니다. 사악한 살인강도도, 도저히 사람으로 취급할 수 없는 악한 사람에게도 차별 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는 원수가 없고, 못갈 데가 없으며, 막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은혜 받은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남의 허물, 죄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나도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마 18:35)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용서해 주는 은혜가 얼마나 귀합니까? 내가 나쁜 마음을 먹었어도 은혜가 임하면 좋은 마음으로 바꿔 주어서 상대방을 나쁘게 인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이 땅에는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롬 3:10).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어서 말할 때마다 독사가 나오고 마음속에는 욕심이 가득합니다. 어떤 살인강도가 죄를 지었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는 직접 그 집에 찾아갑니다. 그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은혜는 막히는 곳이 없고, 우주보다 더 큽니다. 그리고 골고다 십자가는 어떠한 죄인이라도 사랑해 주고 껴안아 주고 그 사정을 들어 줍니다. 놀라운 입맞춤의 주인공은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 자체이며, 태초의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볼 때, 예수는 아버지 품속에 계시는 독생하신 하나님(요 1:18)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은혜 받는다는 말은 지금 우리는 너무 광범위하게 쓰고 있죠. “은혜 받았다”는 것은 예수를 받은 것이며,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은 예수를 깨달은 것입니다. 은혜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은혜와 진리로 이 땅에 오셨다고 요한복음 1장 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와 예수를 모르기 때문에 자유가 없습니다(요 8:32). 부를 가져도 빠져나갈까봐, 손해 볼까 봐 걱정 근심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런 모든 것들에 앞서가는 은혜한테 맡기시길 바랍니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은혜가 앞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갈 때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기도할 때 ‘감사함으로 기도하라’ 우리는 그 뜻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왜 감사해야 하는지 오늘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은혜가 있어서 그 은혜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데, 감사는 바로 그 결과인 것 입니다. 기도할 때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 감사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왔지만 ‘은혜’는 예수님께로부터 왔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에게 넘치는 은혜를 받고 또 받았습니다. 참 멋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는 우리한테 은혜를 주되 은혜 위에 은혜로 측량할 수 없고, 만인간이 다 가져가고 받는다고 해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적으로 강줄기같이 흐른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은혜 받을 때 은혜 위에 은혜가 충만한 데서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내가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6-17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받은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에 감동을 주는 찬송이 있는데 바로 찬송가 405장(새찬송가 305장)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아멘


셋째, 은혜는 새로운 생명의 근거요, 구원의 바탕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모든 생애의 원동력과 힘은 바로 은혜의 샘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영원히 여러분을 떠나지 않고 늘 함께하며, 감싸 주고 도와주고 역사해 주십니다. 사도행전 6장에 스데반은 은혜 충만, 믿음 충만, 말씀 충만 가운데서 일사각오 순교 정신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일한다고 해도 1세기, 백 년도 일 할 수 없습니다. 70년 산다고 해도 잠자는 시간, 이런저런 시간 빼고나면 절반인 35년도 안 될 텐데 그 시간에도 밤낮 주님의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루 동안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 앞에 감사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믿었습니까? 아마 24시간 가운데 한 시간도 되지 않을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벌써 나보다 앞서가 있습니다. 내가 관 속에 들어가는 것도, 무덤에 들어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안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죽음을 예수님이 가져가셨고,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서 홀연히 변화 받을 수 있는데 그때에는 내장 육부의 피가 다 없어지고, 순간적으로 몸의 불순물들이 다 빠져나가며 신령한 몸으로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도 바람벽을 뚫고 들어오셨던, 영과 육이 아울러 부활하신 영체, 즉 신령한 몸이었습니다.

우리가 변화받으면 그 영광의 빛이 지금 태양의 7배입니다. 오뉴월 복중 해는 눈이 부셔 볼 수가 없는데 이 태양 빛보다 7배 강한 빛이 우리를 변화시켜 일곱 날의 빛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30장입니다. 순간 홀연히 변화되는데 그때는 썩어질 양식이 필요 없습니다. 오직 그 세계는 감추었던 하나님의 신령한 만나뿐입니다. 그 세계는 100살 먹은 할머니가 간다고 해도 어린아이 같이 변화하는 그런 세계입니다. 여러분들도 일곱 날의 빛 속에서 도망치지 않고, 그 찬란한 빛 가운데서 홀연히 변화받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이사야 30:26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날의 빛과 같으리라

햇빛의 일곱 날, 일곱 배의 빛입니다. 이것이 믿어진다는 것도 큰 복입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며 그 말씀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곳에 가면 뭘 먹을까 뭘 마실까 고민할 필요도 없고, 늙는다는 것으로 인한 외모를 걱정할 필요도 없이 모두가 동일하게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누가복음 20: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사야가 그 세계는 언제나 기쁨과 웃음이 가득하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언제나 기쁨이 가득한 곳인데 그것도 임시변통이 아니라 세세무궁토록 지속되는 세계라고 말씀합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고단하고 고달파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은혜 받은 것 저버리지 않고 묵묵히 가다 보면 벌써 하나님의 은혜가 거기에 가 있을 것입니다. 마음 가운데 찬란한 기쁨과 희락이 비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나라 갈 때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고 도와주고 있다는 것, 또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할 때 은혜가 먼저 앞서가서 그 일을 해 준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저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우습게 여기고, 가볍게 여긴 것 모두 다 회개하면서 이제 내 일생에 내 평생에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같이 사는 역사가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006년 7월 13일 하계 수련회 첫 집회
휘선 박아브라함 원로목사 설교

 

  • 25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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