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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으로 신앙의 기초를 굳건히 세우자 – 요한복음 6:60-69

2025.08.19 15:37

생명의 말씀으로 신앙의 기초를 굳건히 세우자

요한복음 6:60-69

 

 

제가 동마산에서 목회할 때, 권능의 두 목사님을 모셨습니다. 황해도 출신 김익두 목사님, 감리교 출신 박재봉 목사님입니다. 집회가 끝나면 제가 가방을 들어드리고, 새끼줄을 풀어가지고, 비누 대신 양잿물에 적셔서 목사님의 고무신을 깨끗하게 닦아서 말려 놓고 했습니다. 제가 그 말씀의 은혜를 얼마나 사모했던지 그 목사님 신발을 한번 신어본 적도 있습니다. 제가 말씀의 은혜를 그렇게 사모한 것은 예수님의 인류 구원의 구원 역사가 ‘말씀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첫째, 창조력이 있고 두 번째,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세 번째, 말씀은 한번 나가면 그냥 돌아오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성취가 됩니다.

멀쩡한 사람도 아파서 누워 있다가 열흘 만에 일어나 보세요. 화장실 가려해도 균형이 잡히지 않아 휘청거리게 됩니다. 그런데 38년 동안 걷지 못한, 앉은뱅이 환자에게 예수님께서 “너 낫고자 원하느냐?” 물으셨고 “주여 낫고자 원합니다.” 답하니 “일어나서 걸으라!” 말씀하셨고 그는 걸었습니다. 

또 더러운 귀신이 들려서 부모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수님을 보자마자 그 속의 귀신이 예수를 알아보았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여기 어쩐 일입니까.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왔습니까?” 물으니, 주께서 “귀신아 그 속에서 나와라!” 말씀하셨고, 이 한마디에 귀신이 달아났습니다.

마태복음 9장 2절에는 장정 네 사람이 중풍에 걸린 환자를 들것에 메고 예수가 계신 곳으로 왔습니다. 예수님은 환자의 믿음이 아니라 환자를 메고 온 네 사람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가 사함 받았다.” 말씀하셨고, 이 말씀 하나로 불치병이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독자가 죽었습니다. 그 처지가 너무 불쌍해서 나인성이 전부다 눈물바다가 되어 그 독자의 상여를 메고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멈추어라. 울지 말라.” 하십니다. 예수께서 책임지실 것이기 때문에 울지 말라고 하신 것 입니다. 관에 손을 대고, “청년아 나오라” 하니 청년이 나왔습니다. 온 동네가 다 놀라서 “아! 선지자가 나타났다! 오실 메시아가 아니냐?” 웅성거렸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마리아와 마르다의 형제 나사로가 죽어 벌써 나흘이 지나 부패하여 썩은 냄새가 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고, 나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겠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의 근원되는 예수님이 사망에게 호령합니다. “ 나사로야 나오라.” 그때 붕대를 칭칭 감은 나사로가 걸어 나왔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볼 때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집니다. 죽은 사람도 예수의 말씀 안의 생기, 권세와 능력, 창조의 능력으로 일어납니다. 기독교의 근원은 “말씀”입니다. 끝 날에 예수께서 “내 말을 듣는 사람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리라.” 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삽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말씀 자체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죄가 있기 때문에 그 죄를 담당하려면 하나님이 사람 모양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뜻으로 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믿는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바가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보내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주신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엘리야조차 몰라봤습니다(말 4:5-6, 마 17:10-13). 엘리야를 몰라보는 세상인데 예수님을 어떻게 알아보겠습니까? 로마서 1장 21절은 믿지 않는 사람을 지적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되, 감사치 않는” 이들을 말씀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감사하기를 아까워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범사에 감사”입니다(살전 5:10).

요한복음 6장 보면,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2만 명이 먹고도 사람 키만한 광주리가 12개가 남았습니다. 기사 이적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를 임금으로 모시면 이 나라가 얼마나 풍요롭겠는가 하여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요 6:14-15). 예수께서 그것을 듣고 가버나움으로 숨었습니다. 해가 저무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고 가버나움까지 따라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 살은 참된 양식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내 살과 내 피를 먹는 자, 나를 먹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요 6:48-58). 그 말씀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41-42절을 보면 디베랴에서 온 유대인들이 수군거렸고, 예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로 싸움까지 일어났습니다. 요한복음 6장 60~61절을 볼 때, 70문도들까지 수군거리니 예수께서 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참된 양식”, “살리는 말씀”을 주셨는데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면서도 통분하며, 울고 있었습니다(마 8:20).

공동번역 성경 요한복음 6장 63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으라는 것인데 그 말씀을 듣고 사람들은 다 물러갔습니다. 성경에는 “그때부터 다시 예수와 다니지 아니하더라.” 했습니다(요 6:66). 사람들이 완전히 예수를 다 떠나고 12제자만 남았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도 가려느냐?” 그때 베드로가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 하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예수 믿는 신앙인에게 있어야 할 신앙의 본질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창조 이후로 예수님 앞에서 당당하게 겸허한 자세로 이런 고백을 한 사람은 베드로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이렇게 고백해 놓고도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기사 이적을 행하고 하늘의 비밀의 말씀을 할 때는 파리떼처럼 모였다가, 불리해지고 말도 듣기 어려워지니 온다간다 인사도 없이 다 떠난 것이 이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뜻과 이치를 몰랐던 것입니다. 끝 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증거할 때 들을 줄을 모르면 다 떨어져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1차 전도 여행을 할 때 바나바가 부잣집 외아들, 요한이라 하는 마가를 소개했습니다(행 12:12). 마가가 사도 바울을 따라 다니는데, 고생이 말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말도 없이 슬그머니 도망쳤습니다. 2차 전도 여행을 떠날 때 바나바가 바울에게 다시 마가를 데리고 가라고 하니, 사도 바울은 “그런 사람 필요 없다.”라고 하면서 바나바하고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도 바울은 안디옥에서 실라를 데리고 가고, 바나바는 자기 생질, 마가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3차 전도 여행 이후, 바울이 로마에서 첫 번째로 투옥이 되었을 때 데마와 누가가 바울의 동역자로 있었습니다(골 4:14). 데마가 바울한테 얼마나 큰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의 눈에 안질이 생겨 고름이 차고 의사였던 누가가 그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는 비참한 광경을 보고, 데마는 말도 없이 도망을 쳤습니다(딤후 4:10). 하지만, 바울은 로마에 두 번째로 투옥되었을 때,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마가요한이 말씀 사역에 보탬이 되니 데려오라고 요청합니다(딤후 4:11). 오직 말씀을 위해서!

정도(正道)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 와서는 “주여, 믿습니다.” 해놓고, 정작 실생활에서는 말씀을 내동댕이치고, 자기 생각이 중심이 되어, 자기가 하나님 돼서 살아간다면 목사나 장로라고 할지라도 다 죄인들일 뿐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감사하고,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이름으로 하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천국에 갈 때까지 “말씀의 자리”를 이탈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요 8:47). 아담의 7대손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고, 항상 말씀의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3장 1절을 볼 때 사도 바울은 ‘범사에 양심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했다.’라고 했죠. 양심을 속이고 신앙생활이 됩니까? 말씀을 깨달으면 첫째, ‘경건’하게 살게 됩니다. 둘째, ‘성결’하게 살고 셋째, ‘정직’합니다. 넷째, ‘성실’합니다. 이 네 가지가 없으면 하나님과 동행은 불가능합니다. 글로만 배워서 “하나님과 동행한다.”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말씀의 자리는 “우리 성도들의 본질적인 자리”입니다. 말씀의 자리를 떠나면 돈을 좋아하든가, 남자를 좋아하든가, 여자를 좋아하든가, 물질을 좋아하든가, 오락을 좋아하든가, 마음이 계속 딴 곳으로 흘러갑니다. 예수님이 이 시간에 오셔서 나와 여러분들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합니다. “넌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넌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 물으실 때 “전 지금 말씀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말씀과 함께 가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함께 가는 것이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입니다. 땅속에 묻힌 그 보화를 캐내려면 호미나 삽, 곡괭이처럼 땅을 파는 기구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 노력도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을 선포할 때, 말씀을 증거할 때 성령이 내리는 것입니다(행 10:44). 주의 말씀을 해석해 주면, 어떤 우매한 자에게도 말씀의 빛이 들어가서 모든 것을 다 볼 수가 있습니다(시 119:130). 

지금까지 성령론, 기독론, 은사론, 직분론, 봉사론, 영성 개발 등 많은 신학론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말씀론에 대해서 정리한 책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들 말씀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설교하지만 체계성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전 교회적으로 ‘말씀의 신학’을 다뤄야 합니다. 말씀을 증거할 때 집중적으로 경청하고 그 말씀이 마음속에 있어 보세요. 두려움이 없습니다(딤후 1:7). 말씀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강하고 담대합니다. 두려움이 있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계 21:8).

사람의 신경이 온몸에 골고루 퍼져 있듯 말씀이 온몸에 골고루 퍼져 있어야 합니다. 말씀 위에 기초하지 못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자기 중심의 신비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을 보지 않고, 성경을 믿지 않고, 성경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도한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입니다. 반드시 말씀을 통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호세아 8장 12절에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위해서 만 가지로 말씀을 기록했지만 그들은 관계없는 것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망하는 것입니다(호 4:6, 6:1-3). 힘을 다해서 기도하고, 봉사해도 말씀 위에 세우지 않은 믿음은 다 무너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이스라엘이 내게 돌아오려면 말씀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호 14:1-2).

성도가 참다운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말씀에 충실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롬 8:9).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의 영’은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씀’이고, ‘생명’이라고 했습니다(요 6:63). 자기는 없어지고 말씀에 온 마음과 정성을 바치고, 오직 말씀만 보여야 합니다. 말씀 없이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욥은 노아와 다니엘과 함께 의인이라고 했습니다(겔 14:14, 20). 극심한 고난과 시련 가운데서 흐트러지지 않고 승리하게 된 욥의 신앙 기초는 어디에 있었는지 성도라면 반드시 생각하고 넘어가야 될 문제입니다. 욥은 아브라함과 같은 동시대 사람입니다. 욥이 70살에 환난이 시작되어서 30년 동안 겪었고, 100살이 되어 그 고난이 끝났습니다. 여러분이 3일, 석 달, 혹은 1년만 환난 당해 보세요. 교회 안 나옵니다. 욥은 30년동안 주일에 빠진 적이 없습니다. 인내나 기도도 말씀에 기초해야 합니다. 말씀에서 ‘기도’가 나오고, 기도의 결과 ‘인내’가 되고, 인내의 결과 ‘소망’ 가운데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결국 욥이 얼마나 축복 받았습니까?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말씀’입니다. ‘기도 많이 했다. 전도 많이 했다. 봉사 많이 했다. 방언, 예언을 했다.’ 해도 말씀이 없다면 전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욥이 끝까지 참을 수 있었던 것은, 매일 먹는 생명과 같은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욥 23:12-13).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은 상관없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치 아니하고, 그저 말씀이 상할까봐, 말씀이 오해받을 까봐, 그 말씀을 지키기에 바빴습니다(욥 6:10). 오히려 하나님 손에 죽어도 위로를 받는다고 고백 했습니다. 욥은 말씀 위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생활을 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욥기 6:10(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내가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으니 나는 하나님의 손에 죽어도 위로를 받고, 견딜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직장 사업에 아스팔트 깔 듯 말씀으로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신앙이 서면, 절대 실패함이 없습니다. 언제나 안전 보장으로 하나님께서 늘 함께 동행해 주시고 우리가 원하는 소원대로, 기도한 대로 이뤄진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배드리는 지금 시간이 늦었지만, 우리가 집에 가면 무엇 하겠습니까? 그저 TV앞에 앉아 드라마나 보겠죠. 그런 시간들에는 유익함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항상 말씀을 보세요. 끝 날에는 말씀을 가져야 살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23-25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우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죄 없다 하시면 죄가 없습니다. 그대로 믿으시고 항상 소망 가운데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년 9월 19일 수요 예배
휘선 박윤식 원로목사 설교

 

  • 25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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