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나’(우리들) 요나같이 이사야 6:1-8, 요나 3:1-10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나’(우리들) 요나같이
이사야 6:1-8, 요나 3:1-10
요나 1장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첫번째 말씀을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 말씀을 저버리고,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가던 요나의 배가 얼마나 요동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받은 은혜를 망각하면 무서운 폭풍과 물결로 요동쳤던 요나의 배처럼 가정이나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니느웨의 백성들과 그들의 나라는 큰 위기에 처해 있었으나 회개를 통해서 참 살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요나는 부르심을 위한 사명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니느웨에 가서 외쳐봤자 “누가 보냈느냐? 보낸 사람의 명령장이 있느냐?”라고 사람들이 따지며 불신할 것 같았겠지요. 무엇보다 니느웨 사람들은 보통 죄가 아니라 악독을 저질렀다고 했습니다. 악독은 죄 위에 있는 것인데 이 죄가 하늘에 사무쳤다고 요나 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나 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할 정도인데 ‘나 같은 사람이 가서 말한다고 그것이 통할까?’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저버렸습니다. 욥바로 가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고, 그 배 밑에 들어가 코를 골면서 깊이 잠들었습니다(욘 1:5). 그런데 갑자기 조용한 바다에 폭풍이 일어나면서 배가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기도하며 부르짖었고, 그 원인은 하나님 말씀을 헌신짝같이 집어 던진 요나에게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나를 붙잡아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언제 요동쳤더냐 할 정도로 바람이 잦아들고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래같이 큰 물고기를 준비했다가 요나를 삼키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만 하고 교회를 우습게 알았습니다. 교회 가면 돈이나 내라고 하고, 쓸데없는 말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얼마나 놀랐는지 “하나님, 나 이제부터 다시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이 무슨 사업을 하든 교회는 하나님의 몸, 예수님의 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고 우리는 지체들입니다.
요나 2: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니느웨로 가는 길은 험합니다. 험난한 준령도 있고 중간에 강도떼도 많습니다. 어느 시대나 사리를 따지는 것이 상례인데, 요나에게는 별 유익이 없는 길이었습니다. 이 심부름을 하게 되면 어떤 보상을 해 주겠다는 약속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거역하고, 말씀을 집어 던지고 욥바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명을 받은 것이 요나 3장 1절입니다. 요나 1장 2장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 성도들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도망갈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숨을 곳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명 받은 사람도 사명을 저버릴 수는 있으나 숨을 수는 없습니다. 회피하고 도망쳤다가는 큰일이 납니다. 다윗은 시편 139편 7-10절에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마음이 두려워지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또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나는 망했다’ 싶어 자포자기하게 되는 순간마다 엎드려서 하나님께 구하면 응답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찾으면 찾게 해 주시고 두드리면 열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제2의 기회를 주시는 은총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1장에서 요나는 도망갔다가 숨을 곳이 없었고, 하나님의 추격을 당했습니다. 2장에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회개하며 순종했고 결단했습니다. 3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서 전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요나 1:6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가만히 살펴보면 잠 때문에 학교 시험에 불합격하고, 잠 때문에 전쟁에서 죽고, 잠 때문에 가난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잠언에 잠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가난이 강도떼같이 들어 온다고 말씀합니다(잠 24:33). 성경 볼 때 깨어있는 사람치고 망한 사람은 없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만사가 형통하고, 마음먹은 대로, 손으로 일한 대로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와 한시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도록 나와 같이 기도하자.”라며 책망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책망하셨고, 세 번째는 “이제는 그만이다. 악당들이 나를 잡으러 왔다. 일어나 함께 가자.”라고 하셨고, 이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마 26:36-46).
감리교 창설자 요한 웨슬리(John Wesley)는 1709년 2월 9일, 당시 6세에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잠이 들었는데 집에 불이 났습니다. 2층인데 동네 사람들이 사다리도 찾을 수도 없어서 두 사람씩 어깨동무해서 올라가 창문을 깨고 들어가 잠들어 있는 웨슬레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때 동네 사람들이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라고 별명을 붙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지금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산 교훈이 되어야 합니다. 얼핏 보면 책망 같으나 사실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말씀의 음성입니다. 우리는 나의 조국, 나의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역대하 7장 14절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네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치리라” 말씀했습니다. 결국에는 기도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 주경학자 중 어느 학자는 ‘요나는 용서할 수 없는 잠을 자고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요나의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명에 불순종하는 우리를 풍랑과 물고기를 이용하여 구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으셔서 말씀을 주시는데 우리는 ‘아멘’만 해놓고 무관심으로 다 저버리곤 합니다. 요나는 풍랑 만나기 전에 배 안에 들어가서 잠을 잤지만 결국 사람들이 찾아내어 바다에 집어 던졌고, 그때 비로소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건강해도 풍랑을 만나게 되면 병들게 되고, 가정이 화목할 때도 풍랑 만나면 서로 미워하고 싸우며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여건이나 조건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그 풍랑이 사라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요나서는 사명자에게 주시는 큰 교훈이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니느웨 백성은 조국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요나는 나라의 왕을 비롯해서 모든 장관, 각 도지사에게 “이 니느웨 성은 지금부터 40일만 지나게 되면 완전히 망합니다.”라고 삼일길을 가며 외쳤습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왕을 비롯한 모든 조정 백관들과 백성들, 심지어 짐승들까지 모두 다 금식 기도했습니다. 왕의 보좌가 아닌 땅바닥에서 불 땐 재를 깔고, 날리면서 기도했습니다. 얼굴이 아궁이같이 까맣게 되고, 몸이 말이 아닐 정도로 될 때까지 온 힘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결과 그 도성은 구원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이 배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내 남편, 내 부모, 내 아내, 내 자식을 위하듯 기도했습니까? 딸이나 아들이 하나 잘못되면 낳은 부모는 가슴이 아픕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어영부영할 수 있습니까? 참기름 쥐어짜듯 자기 영혼과 육체를 쥐어짜면서 하나님 앞에 손을 들고 손바닥으로 땅을 치면서 통곡하며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이 나라, 보이는 세계는 풍부합니다. 스위치만 누르면 밥솥에 밥이 되고, 전기가 켜집니다. 옛날에는 커튼이 없어서 이불보에 못을 쳐서 걸어 만들었는데 요즘은 스위치만 누르면 저절로 올라가고 내려옵니다. 참 얼마나 좋고 풍요로운 세상입니까?
그런데 대한민국 배 안에 들어와 있는 나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풍부합니까? 아모스 선지자는 말씀의 기갈로 “젊은 여자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다.”라고 예언했습니다. 동서남북 분주히 왔다 갔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찾을 길이 없는데, 세상 끝날이 오기 전에 그러한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 공부에 힘쓰고늘 말씀을 읽으며 대비해야 합니다.
아모스 8:11-1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13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요나도 하나님의 말씀이 듣기 싫어서, 꼴도 보기 싫어서, 내동댕이치고 도망쳤습니다. 풍랑을 만나 바다에 던져졌고 큰 고래 같은 물고기에게 잡아먹혔습니다. 3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서 고생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나 이제 하나님의 말씀, 내 주의 몸 된 교회가 그립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말씀을 선포하는데 나 이제부터 성전을 바라보고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요나 3장에서는 용서함을 받고 제2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어릴 때서부터 물고기 잡는 방법을 그 부모에게서 다 배웠습니다. 바람의 방향과 구름의 모양만 보고도 물고기가 어느 지역에 모여있는지, 다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났는데 “고기 잡았느냐?” 물으셨고 “아침부터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하셨는데, 어부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탓에 말씀을 듣고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혀서 옆 배에 있는 동료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해야 했습니다.
예수께서 고기를 잡았느냐 물어보시자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내가 그물을 던지니 이렇게 많은 수확고를 거두었습니다.”라고 하면서 덩치 크고 나이 많은 베드로가 납작 땅에 엎드려 절하며 “주님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했습니다(눅 5:1-11).
여러분도 말씀에 의지한 삶을 한번 살아 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성공과 큰 형통의 축복이 임해서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마다, 발로 밟는 모든 곳마다 큰 축복을 실어오는 산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사울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은 영원한 원수이기 때문에 젖 먹는 아이부터 남녀노소에 이르기까지 남김없이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무리 원수이지만 1년도 안 된 아기를 어떻게 죽일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어린애, 젖먹는 아이, 짐승까지도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순종하지 않았고, 좋은 짐승을 수만 마리나 취했고, 여자들은 살려서 종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모습을 다 보시고 너무 답답해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사울 왕의 마음가짐과 행동을 다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듣고 사무엘 선지자가 왕궁으로 가니, 사울 왕은 거짓으로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짐승 소리가 나게 하셨고 사무엘 선지자가 “저 짐승 우는 소리는 무엇입니까?”물었습니다. 사울 왕은 “살찌고 너무 훌륭해서 내가 뜻을 위해서 가져 왔습니다.”라고 답하니 그때 사무엘 선지가가 사울 왕에게 말씀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2-2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사무엘상 15장 26절, 16장 1절도 같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버리면 내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 내 부모도 다 버립니다. 시험 들어도 하나님의 사람 욕하지 말고, 교회 욕하지 마세요. 말씀을 저버리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태까지 하나님의 말씀 받은 것, 은혜 가운데 감사하면서 보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히스기야 왕한테 하신 말씀을 보면 “너 은혜 많이 받았지만 나한테 보답했느냐? 말씀을 저버리고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았느냐? 네가 보답이나 감사가 없으므로 내가 너와 너의 왕궁과 네 집을 가만 두지 않겠다.”라고 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그때 비로소 왕복을 다 집어 던지고 땅에 엎드려 눈물로 회개하였고, 용서함을 받았습니다(대하 32:25-26).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해 주고, 붙잡아 주고, 자손을 주셨으며, 가정에 평안함과 좋은 직장을 주셨습니다. 젊어서나 늙어서나 근심 없는 복을 받아서 풍요롭게 사는데 교회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고, 그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버렸을 때 하나님도 버리십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시험에 들어도 주시는 은혜와 또 하나님 말씀으로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고 ‘내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일해야겠다’ 결심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국가적으로 당하는 시련과 고난에는 여러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않는 것이 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른의 말을 ‘간같이 무겁게’ 들어야 합니다. 세상 어른의 말도 그럴진대, 하나님의 말씀을 무겁게 귀담아 들었을 때 여러분이 성공에 성공, 복에 복을 받는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내 말을 듣는 자마다 살아나느니라” 요한복음 5장 25절 하반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칠 때 전 백성들이 땅에 엎드려서 눈물로 죄 지은 것을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마음을 섭섭하게 한 것을 회개하고 심지어 짐승까지 금식시켰습니다. 모두의 회개로 전부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살면서 하나님 앞에 보답하지 못한 것과 감사하지 못 한 것을 단 1분이라도 간절히 회개함으로 나라와 가정과 개인이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거족적으로 살리는 역사가 기도로 일어나기를, 기도의 불을 붙이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지옥 갈지언정 내 이름이 생명책에 지워질지언정 내 소원은 우리 골육들, 가족을 비롯한 친척들이 예수 앞에 돌아오기를 원한다.”라고 했습니다(롬 9:1-3). 빚진 죄인은 낯을 들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양반이나 상놈이나 구스인이나 이방인이나 유대인들이나 그 누구에게든지 나는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그 빚은 복음을 통해서만 갚을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8-11절에 구원의 능력은 복음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깁니다(롬 10:17). ‘주여 믿음 주시옵소서’ 백날 기도해야,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기고 말씀을 들음으로 마음에 각오와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삶의 현장에 말씀의 향기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반드시 ‘믿음에! 믿음에! 믿음에!’ 63빌딩보다 더 높은 고층 믿음이 될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그 악독이 하늘에 상달됐으나 왕으로부터 백성, 짐승에 이르기까지 전부 재를 무릅쓰고 눈물로 회개하고 말씀을 듣겠나이다 고백함으로 순식간에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 주신 축복이 우리 대한민국에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올리겠습니다.
우리도 요나같이 주시는 은혜를 잊어버리고 또한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무관심했습니다.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까? 우리 삶의 현장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하고 물어볼 때 자신 있게 ‘예, 내 삶의 현장에 예수님이 함께 임마누엘로 계십니다.’ 이렇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 오래 살아봤자 70, 80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영광 돌리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날마다 권고하시고 인도하시고 저희와 같이 진리의 말씀으로 늘 가르쳐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야 우리가 곁길로 나가지 않고 성령님께 근심거리가 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당신의 귀한 아들 딸 될 수 있사오니 성령님이여 항상 우리 마음 가운데, 모든 생활 가운데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편안한 복음을 통해서 편안한 마음, 편안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간절히 간구하오니 편안한 복을 우리 평강 교회 전 성도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 존귀하고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감사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05년 6월 19일 주일 2부 예배
휘선 박아브라함 원로목사 설교
- 25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