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 예레미야 31:1
내가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예레미야 31:1
본문 예레미야 31장 1절 말씀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솔직해야 합니다. 자문해 볼 때, 여러분 가정에 하나님께서 가장(家長)이 되셨습니까? 가족의 하나님이 되셨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불행합니다. 고대광실(高臺廣室)에서 진수성찬에 많은 사람 부리고 스스로 알 수 없을 만큼 돈이 많다 할지라도 불행한 사람입니다. 가정에 하나님이 주인 되지 못하면, 그 가정은 빛이 없는 세계입니다.
우주 천지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터지고 찢기시고 우리 죄를 위해서 물과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쏟아주셨습니다. 그 십자가 피가 우리 죄를 사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지 못하고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말짱 헛것인데, 진짜 부활하셨죠.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예수는 잠자는 자들에게 첫 열매가 되셨고(고전 15:20), 죄 없으신 분이 우리 죄 때문에 대신 죄를 걸머지셨다(고후 5:21)고 했습니다.
사단이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완전히 파괴시켰는데,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것은 이 가정을 회복하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 평강제일교회 성도님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한 구주로 믿는 통일성을 가진 영적인 한 가족입니다. 찬송가에도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통일찬송가 278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라고 말씀하고 있잖아요? 너 따로 나 따로가 아닙니다. 한 하나님, 한 아버지를 믿고 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으니 믿음은 하나입니다. 성령도 하나고, 한 가족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말입니다. 이상적인 성도의 가정은 바로 교회와 같은 가정을 이루는데, 이방 사람은 될 수가 없습니다.
에베소서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가정을 세우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가정을 세우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누가 중매했든 마음이 맞아서 한 부부가 됩니다. 그러나 부부가 됐다고 해서 다 부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부부여야 합니다.
“아름다운 교회는 아름다운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과 사실을 우리 성도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가 믿음과 사랑과 화목이 있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식구끼리 치고받고 싸우면 교회 와 봐야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 마음이 지옥이고 불 꺼진 항구입니다. 전깃불 나가면 캄캄한 것처럼 가정이 어둡습니다. 그러니 가정이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천지와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특별히 인간을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세가지 축복을 주셨습니다(창 1:26). “만물을 다스리라, 만물을 주관하라, 땅에 충만하도록 번식하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죄가 없습니다. 흠과 티가 없이 깨끗합니다. 맑고 거룩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원수, 어둠의 권세를 붙잡고 사는 사단이 남자보다 의지가 약한 여자한테 와서 넌지시 떠봅니다. 사단은 하나님과 아담 하와 부부간에 주고받은 내용을 모르죠. “이 동산 안에 모든 과실을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물을 때 여자가 지혜가 있어 “알고 싶으면 하나님께 직접 물어 봐. 하나님과 우리와의 대화를 왜 알려 해? 왜 속을 떠보려 하지?” 했다면 인류의 타락은 없습니다.
그런데, “아냐. 동산의 모든 과실을 따먹되, 저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지 말라 하셨어.” 하니 사단이 ‘아 저거구나!’ 싶어서 여자를 꾀었습니다.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돼.” 여자가 하는 말이, “따먹으면 하나님께서 죽는다고 말씀했는데?” “아냐! 죽지 않아. 눈이 밝아져.” 그 말을 믿고, 사단의 말에 유혹당한 뒤에,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하고 손이 갈 만큼 탐스럽고, 좋게 보였습니다. 따먹고 사랑하는 남편 아담한테도 줘서 같이 먹었습니다. 먹고 나니 부부지간이지만 옷 벗은 것이 창피하고 부끄럽습니다. 창세기 2장 25절에서는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라고 정확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저녁 서늘할 때 에덴동산을 거니시면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도, 아내도 벗은 것도 흉합니다. 무화과나무 잎을 따서 임시변통으로 가리고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르고 부르신 게 아니라 다 보고 계십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하라더냐?” 하니 아담은 “하나님이 나한테 짝지어 주신 여자가 그랬습니다.” 여자는 “하나님이 만드신 뱀이 속여서 내가 속았습니다.” 하며 전가했습니다.
가정이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러니 가정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껍데기만 가정이지, 그 속에는 늘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가 언제 죽나, 내가 몸이 왜 아프지? 내가 감기 들었나? 속에 무슨 질병이 있나’ 하는 두려움이 늘 있습니다. 자식이 성공해도 두려움, 실패해도 두려움이 있습니다. ‘끝까지 성공해야 될 텐데, 직장 들어가면 승승장구 진급하고 끝장을 봐야 될 텐데⋯.’
그러니 우리 평강제일교회 가정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급할 때만 하나님 찾아서는 안 됩니다. 내 자식 유학 간다. 대학 시험 친다. 뭐 한다 할 때 그저 일회용 커피 모양으로 한번 쓰고 팽개치듯 하나님을 일회용으로 그렇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사람입니다. 창조의 세계가 다 풍부한 세계였지만 한 가지, 독처(獨處)가 좋지 못했습니다.창세기 2장 18절을 볼 때, 아담이 혼자 있을 때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돕는 배필, 여자를 지어준 것입니다. 부부지간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창 2:24) 하셨죠. 그리고 하나님이 그 가정의 가장(家長)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야 하는데 예레미야 31장 1절 말씀 다 빼고, 남자 혹은 여자가 주인 행세합니다. 잠시 좋을지 몰라도, 해가 가고, 달이 가고, 세월가게 되면 비참한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분명히 여러분 마음 가운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 믿는다고 하면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 와 계셔야 합니다. 기도할 때 높고 높은 보좌에 계신 하나님도 귀하지만 ‘그 하나님이 내게 왔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계신 하나님을 볼 정도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죄와 흠과 티가 없었고 아주 완벽했습니다. 에덴동산은 ‘기쁘다, 즐겁다’라는 뜻으로 파라다이스입니다. 어둠과 근심의 그림자도 없습니다. 모자라거나 불편함이 없습니다.
창세기 2장 15-17절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신 첫 번째 명령은 “에덴동산을 지키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지키라”하실 때에는 무엇인가 도둑이 들어오기 때문에 말씀한 거 아니겠습니까?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뱀이 들어오는 것 아닙니까. “지키라. 창조는 내가 했지만 너한테 다 줬어.” 이런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다스리라.” 잠언 4장 23절을 볼 때, 성을 지키는 것보다 자기 마음 지키는 것이 어렵다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마음부터 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부터 받은 바 은혜, 하나님의 사랑,축복을 남이 가져가지 않도록, 또 땅에 쏟지 않도록 늘 자기 마음을 지켜야 하는데 다스리지 못하고, 지키지 못합니다.
인류는 자손대대에 살아오는 동안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될 부모들이고 형제자매 자식들인데, 그러한 위계질서가 지금 제대로 돼 있습니까? 부모가 말하면 겉으로는 “예” 하면서도 생각은 다른 데 가 있습니다. 자식들과 부모가 서로한테 거짓말합니다. 엄격히 말해서 가정의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기 때문에 전부 다 어둡기 짝이 없고, 거짓말하고, 성실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고, 참되지 못합니다. 욕먹을 일은 남편한테 얘기안 하고 아내한테 야단 맞을까 봐 얘기 안 하고 속이는 것, 이는 모두 하나님이 안 계신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8절 말씀처럼 가시와 엉겅퀴가 집 안에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 진 다음에 하나님께서 “땅은 너 때문에 저주받았다. 저주받은 땅은 너를 위해서 가시와 엉겅퀴를 나게 하겠 다.” 하셨습니다. 하나님 모시지 않는 가정은 가시와 엉겅퀴가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고통과 괴로움이 시작됐습니다. 병들고, 아픔이 시작됐습니다. 또 죽음을 처 음으로 맛보았습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이 930년을 살았지만 결국 죽었습니다. 분명히 원수 사단은 “따먹어도 죽지 아니한다! 하나님같이 눈이 밝아진다.”라고 거짓말했던 것입니다.
사단이 제일 먼저 공격한 것이 아담의 가정입니다. 아담의 가정이 파괴되면 하나님의 가정도, 하나님의 나라도 파괴될 줄 알았던 것이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그건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가정이 파괴되면 그 나라와 민족에 소망이 없습니다. 지상에 이루어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가정입니다. 가정이 잘 살고 근심 없이 사는 것을 마귀가 시기 질투하고 배아파합니다. 그래서 배우자 바람나게 하고, 자식들 게임에 미치게 합니다. 공부 안하고 PC방 가서 미치게 하고 딸이 잘못되게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사업한다고 하다가 사기꾼 만나서 재산 다 날립니다. 이것이 가정 파괴입니다. 오늘도 사단이 믿는 성도의 가정을 우선적으로 파괴시키려고 믿음의 요람, 기도의 요람, 말씀의 요람지인 교회에 못 나오도록 살살 꼬십니다. 노름에, 춤바람에, 자식 돌보지 않는 등 오만 짓을 다하게 하는 것이 모두 가정 파괴입니다. 창세기 3장 17-19절 말씀을 볼 때 인류의 죄 때문에 땅이 저주받고, 저주받은 땅은 우리 사람에게 가시와 엉겅퀴를 냅니다. 집집마다 콕콕 찌르는 가시와 엉겅퀴가 있습니다. 이리 발을 옮겨도 쿡 찌르고, 저리 옮겨도 쿡 찌르고, 나가나 들어오나 평안이 없습니다. 이 모두가 사단의 장난입니다. 우리 평강교회 성도님들은 예레미야 31장 1절 말씀을 따라 가족의 하나님을 모시는 성도, 가정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아들, 딸들에게 이 불행과 고통과 괴로움, 하나님 모시지 않는 삶을 대물림해 주겠습니까? 부모 때보다 자식은 더 잘 살고 더 잘 믿어야 합니다. 한 가정이 무너지면 교회에 상처를 주고 나라 민족에 큰 불행을 가져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온 가족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함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욥의 건강과 재산, 가정 등 욥의 모든 것을 파괴시킨 사단이 하나님만을 오직 믿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은 욥의 마음은 파괴시키지 못했습니다. 욥은 시험을 이긴 후 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욥 42:10).
하나님은 인간이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지만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범죄했습니다. 불행을 자초한 이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한 최선의 대안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이 사단의 머리를 박살낸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뒤꿈치 를 문다고 했습니다. 죄는 반드시 대가가 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 6장 23절 말씀을 볼 때, 죄의 삯은 사망이고
소망이 끊어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의 사망은 임시로 죽는 것이 아니라 세세무궁토록 사망입니다. 사도 요한은 고난의 연기가 세세무궁토록 올라간다고 했습니다(계 14:11). 하나님의 세계는 한번 지옥 가게 되면 고통과 고난과 괴로움이 세세무궁토록 고난의 연기가 솟아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의인이 나타나나 봤더니 없습니다(사 59:16). 그래서 둘도 없는 성자, 하나님 되시는 예수, 말씀이신 그분을 육신을 입혀 사람 모양으로 보내셨습니다(요 1:14). 인간의 죄를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그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순종하는 가운데,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고 죄 없다 선언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인류의 가정은 아담의 가정부터 파괴되었으나, 마리아와 요셉 가정을 통해서 마침내 예수가 오셨습니다. 마가 요한 다락방에서 성령이 역사하시기 시작해서 성령 받음으로 교회가 시작됐죠. 가정이 파괴되었으니 가정에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성령 받는 것도 마가 요한의 다락방, 즉 가정에서 성령을 받아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교회는 가정에서 시작됩니다(행 1:12-14, 2:1-4). 성경에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① 빌립보 교회가 루디아 자주(紫紬:자줏빛 명주) 장사 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행 16:14).
② 고린도 교회가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가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행 18:1-4).
사도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가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고전 16:19, 딤후 4:19). 로마서 16장 3-4절에서 이들이 바울 대신 자기의 목을 내어놓았다 했는데 보통 신앙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환난과 핍박과 고통이 심했고 관가에 밀고(密告)하는 일들이 많았는데 그것들을 아굴라와 브리스가가 다 막아냈습니다. 이렇게 가정에서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교회를 자기 집에 세우듯, 여러분 가정에 교회를 세워 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6:3-4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③ 골로새 교회는 빌레몬 집에서 시작했습니다(몬 1:1-10).
빌레몬서 1:1-2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 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게 편지하노니
④ 라오디게아 교회는 눔바의 집에서 시작했습니다(골 4:15).
골로새서 4: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여러분 가정에 교회를 세워 보세요. 교회를 자기 집에 세우는 데 부부 마음이 똑같습니까, 사위 며느리 자식들이 똑같습니까? 주후 313년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했는 데, 그 시작은 가정이었습니다. 가정에서 둘 셋, 7~8명이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평강제일교회도 가정에서 6명이 시작했습니다. 13년 동안 교회 가 없었습니다.
유형적인 교회만 아니라 영적인 교회도 가정부터 시작됩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의 가정에서 교회가 시작되어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에서 메시아가 탄생했습니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탄생할 때마다 가정이 시작점이었습니다. 가정은 말씀의 요람지입니다. 가정은 교회가 퍼져 나갈 수 있는 통로죠. 그러니 가정이 잘되어야 합니다. 행복하면 정말 복된 가정입니다. 가정은 언제든 기도가 끊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성경 보는 것이 끊어지지 않고, 전도가 끊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가정은 교회의 최후의 보루(堡壘)입니다. 단순히 육신적으로 잠자고, 먹고, 자식 낳고 기르는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드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가정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정,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는 가정이 교회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탄생시키는 요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같은 가정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1) 온 가족이 먼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가정, 항상 기쁨과 즐거움과 구원이 머물러 있는 복음적인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2) 온 가족이 성령 충만, 은혜 충만, 말씀 충만하여 말씀을 깨닫고 믿는 대로 소금과 빛의 직분을 다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3) 또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마음에 충만해야 합니다. 서로 꽁하고 물고 뜯고 피차간에 욕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용서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 죄를 사해 준 것과 같이 네가 남의 죄를 사해 주지 않으면 네 죄 영원히 용서치 않겠다.”라고 하셨습니다(마 18:35).
4) 무엇보다 가정의 어버이의 사랑은 새 역사의 요람입니다.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 어머니 요게벳을 보세요. 아들 모세의 준수함을 보고 집에 석 달 동안 숨기고자 할 때, 남편과 의논 없이 숨길 수가 있습니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나 됐죠. 왕의 명령 어기면 단칼에 목이 달아납니다. 그러나 임금의 말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석 달 기르다 도저히 기를 수가 없어서 갈대 상자에 물이 안 들어오게 역청을 바르고 모세를 그 안에 넣고 강가에 떠내려가게 한 거 아닙니까. 믿음으로 갈대 상자를 떠내려 보내고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잖아요.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보십시오. 공주가 목욕하다가 그것을 발견한다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유모를 찾을 때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재치 있게 자기 어머니를 추천한 거 아닙니까. 2년 이상 궁중에서 친아들 모세를 그 어머니 요게벳이 믿음으로 길렀습니다. 모세는 어머니, 아버지의 기도로 민족의 내일을 밝혀주는, 밝게해 주는 태양 같은 빛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민족 구원에 놀라운 기수가 되고, 광야의 아버지, 율법의 아버지라고 하는 그 모세를 보십시오. 우리 모든 부모님은 다 같이 믿음의 요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모든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에 끝없는 존경과 감사를 드려야 되겠죠.
여러분의 구원이 값진 구원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낳고 자식의 앞날을 놓고 기도 안 하겠습니까? 눈물로 기도할 것 아닙니까. 부모는 늘 자식을 위해서 노심초사,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가정에는 교회와 똑같이 예배와 교육과 전도가 필요합니다. ‘너 학교 친구 있지? 전도해라. 교회 데리고 오너라.’ 부모가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시키는 겁니다. ‘엄마 어디 가, 교회 가?’ ‘넌 집에서 공부해.’ 잠시 좋을 수 있어도 커갈수록 교회 생활 안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근심거리가 되고 눈물 나게 하는 것이 자식들입니다. 자식들이 신앙생활 잘해 보십시오. 가정에 믿음과 말씀이 충만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엄마 나 오늘 시험 있는데 기도해 줘.” 이게 얼마나 좋습니까? 또 부모님들은 “너 시험 있다고 했지?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어디 가도 너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동행하고 하나님이 함께 계셔. 마음 속에 하나님을 뜨겁게 모셔라.” 등산을 가도, 여행을 가도, 외국을 나가도, 가정의 하나님이십니다. 예배, 교육, 전사, 봉사,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이 가정이고 교회입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합니다. 내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받는 사람은 어리둥절해도 하루이틀 지나면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의 아들, 딸들은 나라와 민족에 필요한 인재입니다. 주님 오시는 날까지 여러분의 가정에서 하나님을 잘 모셔야 합니다. 그러니 아들 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17절 말씀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르게 교육하기에 유익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흐지부지한 것이 아니라, 온전케 되며, 완전하게 인격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오늘부터 가정의 하나님 모시는 거룩한 복된 성도, 가정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디모데후서 3:15-17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함이니라
기도 올립시다.
하나님 우리 평강제일교회 가족들, 민족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언약이, 약속이 머물러 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정말 믿고 깨닫는 가운데 보람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서 50, 60, 70, 80, 90년 산다 해도, 하나님을 우리 마음 가운데 뜨겁게 믿음으로 모시지 못하면 말짱 헛것입니다. 우리 평강제일교회 전 성도님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면서 우리 마음 가운데 뜨겁게 모시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평강교회 가족마다 하나님 모시는 가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평강교회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끝까지 우리 평강교회 가족들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항상 말씀 충만, 은혜 충만, 진리 충만, 믿음 충만한 가운데서 이 땅에서 모든 삶의 터전 위에 말씀으로 승리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동서남북 어디를 가든지 믿음이 충만한 성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는,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모든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치는 시간까지 마지막 예배 시간까지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우리 모든 예배를 하나님께서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에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감사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07년 5월 6일 주일 2부 예배
휘선 박아브라함 원로목사 설교
- 25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