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복’ 속 ‘To-Be-List’ 아브라함 시점에서 ‘팔 복’ 다시 보기 (Ⅲ)
‘팔 복’ 속 ‘To-Be-List’
아브라함 시점에서 ‘팔 복’ 다시 보기 (Ⅲ)
#6.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된다는 것은
마태복음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청결한’에 쓰인 헬라어는 ‘카다로스(καθαρός)’로, ‘깨끗한, 정결한’이라는 뜻이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어떤 사람의 마음의 중심, 곧 생각과 동기가 깨끗하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 이기에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죄인은 결코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 수 없다(출 3:6, 33:20, 사 59:2). 아브라함은 마음이 청결한 자로서 하나님을 ‘보는’ 축복을 받았다.
창세기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창세기 17: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창세기 18:1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의 마음은 ‘충성됨’으로 표현된다. 느헤미야 9장 7-8절을 볼 때,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라고 증거한다. ‘충성됨’은 히브리어 ‘아만(ן ַמַָאָ )’으로, ‘신실하다, 충실하다’라는 뜻이다. 충성된 마음은 거짓이 없으며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다(약 1:6-8).
마음이 청결한 아브라함은 ‘메시아’의 허락을 받았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7가지 언약 속에 모두 약속되어 있다(갈 3:16).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마 1:1),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요 8:56). 하나님께서는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셨다”(갈 3:8). 아브라함은 ‘메시아’의 허락을 받아 하나님을 보는 축복을 누렸다. 하나님을 보는 축복이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허락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자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청결은 ‘하나님만을 향하는 단 하나의 눈’이다. 충성된 종이 주인만을 바라보며 그 눈과 입에 주목하는 것처럼, 충성된 마음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후 5:9, 살전 4:1). 하나님께만 뜻을 두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보이신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시편 24:3-4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4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7. 화평케 하는 자가 된다는 것은
마태복음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헬라어로 ‘에이레노포이오스(είρηνοποιός)’로, ‘중재자, 평화를 이루는 자’라는 뜻이다. 화평케 하는 자는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며 다른 사람들과 화평한 자다. 아브라함은 화평케 하는 자였다. 첫째, 하나님과 자신을 화평케 했다. 아브라함은 그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었다(창 12:7-8, 13:18). 둘째, 롯과 자신을 화평케 했다. 롯의 가축의 목자와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가 다투어서 한곳에 있을 수 없게 되자, 아브라함은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라고 하며 롯에게 선택권을 양보했다(창 13:9). 화평케 하는 사람은 먼저 희생하고 양보한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화평케 하는 아브라함에게 큰 자손의 허락을 주셨다.
창세기 13:14-16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15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큰 자손에 대한 허락은 ‘땅의 티끌’(창 13:16), ‘바다의 모래’(창 22:17, 32:12), ‘하늘의 별’(창 15:5, 22:17)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영적, 육적 자손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이중적 허락이다. 궁극적으로 ‘큰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창 22:17, 갈 3:16). ‘큰 자손’의 허락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축복과 연결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천만만의 사람들이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되어 ‘큰 자손’을 이루게 되는데,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기 때문이다.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십자가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3장 26절을 볼 때,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믿음은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는데(약 2:22), 이 행함이 바로 화평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그를 따라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받았다(고후 5:18).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고후 5:19)을 주시며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히 12:14)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 주시는 복된 허락을 받기 위하여,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어야겠다(욥 22:21).
고린도후서 5:18-19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19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누가복음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가 된다는 것은
마태복음 5:10-12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핍박’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디오코(διώκω)’로, ‘쫓겨나다, 추적하다’라는 뜻으로서 ‘집요하게 쫓아오면서 괴롭히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에게 천국이라는 큰 상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핍박을 받음이 곧 예수님 자신을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궁극적으로 ‘의’는 예수 그리스도이다(롬 3:21). 상은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생각해 볼 때, 핍박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믿음으로 이겨야 할 내적(영적), 외적(육적) 싸움이다. 인생의 모든 크고 작은 싸움들의 이면에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 있다(엡 6:12).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마귀로 인한 싸움들인 것이다(벧전 5:8). 마태복음 5장 11절 말씀처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하는 이유는 그 믿음에서 떠나게 하기 위함이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이며(요 11:27, 갈 2:20, 요 20:31),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 ‘의’는 히브리어 ‘체다카(צְדָקָה)’로, ‘생각이나 행동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인간의 상태’를 의미한다(창 15:6).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키는 자다.
창세기 18장 19절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의와 공도”를 위하여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는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 15:6). 그리고 아브라함의 신앙노정 가운데 그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셨다(롬 4:20). 아브라함은 아비 데라, 조카 롯, 아들 이스마엘, 그리고 약속의 아들 이삭과 분리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뜻을 일치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믿음을 약하게 하는 모든 내적 싸움과 외적 싸움을 이겨내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큰 승리’와 ‘큰 상급’을 허락하셨다.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아 패배하게 되어 아브라함은 승리한다는 약속을 주셨고(창 12:3),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라고 말씀하시어 모든 싸움에서 아브라함을 지켜 주시므로 승리케 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은 아비 데라를 떠나는 결단의 승리, 조카 롯에게 양보하는 승리, 물질의 유혹에 대한 승리, 아들 이삭을 바치는 순종에 대한 승리를 얻었다. 그 모든 승리의 상급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셨다(창 15:1). 그 어떤 상도 하나님보다 클 수 없다.
아브라함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이다. 그가 아비 데라와 본토 친척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외국인과 나그네’(히 11:13)로 불리운 삶을 산 것도 오직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기 때문이었다”(히 11:10). 그 성은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다.
히브리서 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천국은 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의 것이 될까? 그 어떤 재물보다 의이신 그리스도를 자기의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히 11:26).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때 그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며(요일 4:15),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신다(빌 1:29).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과 핍박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그 고난 후에 약속된 영광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마 5:12, 롬 8:18, 고후 12:10). 그러므로 의이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핍박을 이 세상의 그 어떤 보화보다 더 큰 상급으로 여기며 상 주심을 바라보자(히 11:24-26).
히브리서 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글_박이삭 전도사
- 25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