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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 요한복음 4:23-24, 로마서 12:1

2025.01.30 15:52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요한복음 4:23-24, 로마서 12:1

 

요한복음 4: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성도님들이 꼭 아셔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찾지도 않고 돌아보지도 않고 외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볼 때, 예배 잘못 드리면 평생 교회 나왔다 하고 몇십 년 믿었다 자랑해도 말짱헛것입니다. 개인이나 집안이나 사업이나 잘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구나’ 하며 인정하시는 예배로 만사형통의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오늘 참예배의 본질과 진정한 예배의 기본자세를 먼저 찾으셔야 하겠습니다. 전 성도에게 참예배는 어떤 것이냐, 이것을 증거해야 되겠다 하는 그러한 굳은 각오와 결심이 섰기 때문에 오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다 예배드리는 것 같지만, 마음을 다하지 못하고, 정성을 다하지 못하고, 뜻을 다하지 못하고, 힘을 다하지 못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무척 섭섭해 하십니다. 눈치 보는 형식적인 예배,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를 가증하다 하셨습니다. 오늘날 점점 참된 예배를 잊어버리고 예배의 뜻을 알지 못하고 교회 나오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영혼이 살아야 할 텐데 영혼은 이미 죽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는 들고, 교회 십수 년 다니면 이제 눈치가 뻔합니다. 스스로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예배의 기본자세가 흔들리면, 첫째 하나님께영광이 안 되고 둘째, 우리가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성도는 눈만 떴다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렸습니까, 자기 편리한 대로 드리지는 않았습니까.

창세기 2장 3절에 창조를 마치신 뒤 일곱째 날에 복 주고 거룩하게 했다 했습니다. 주일은 복 받은 날이고, 오늘 하나님의 거룩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해야 합니다.

주일은 예배드리러 내가 나오고 싶으면 나오고, 싫으면 안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 이하 말씀을 볼 때, 하나님께서 일찍이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1장 17절 말씀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 있다면 안식일, 주일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일을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에 거룩하지 못한 ‘나’는 주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면 거룩해집니다. 그러한 소망가운데 교회 나와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잘못된 예배의 자세

예배를 편리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서 예배드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주일은 꼭 지켜야 한다고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아왔지만 그 의식이 흔들린 지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교회 나오긴 나와야 할 텐데’라는 생각 자체가 벌써 죄악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에 한 두 번도 아니고, 누누이 42차례나 주일을 지키라고 말씀했어요. 하나님께서는 죄지은 인간들 위해서 6천 년 동안, 지금까지 노심초사 주무시지도 못하고 일하십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님들이 예배의 모범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것을 깨달아야 할 텐데, 이걸 모르고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는 분 많이 있습니다.

예배에 정성이 없습니다. 옷도 입던 거 입고옵니다. 높은 분이 초대했다면 그냥 가겠습니까? 목욕하고, 머리하고, 면도한다, 아끼던 옷 꺼내서 다림질해서 입고, 양치하고, 외모로 보기에도 경건한 자세로 가지 않습니까. 높은 분과 대화하다 마음대로 화장실 들락날락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예배 시간 중간에 나가서 전화 받으면서 희희낙락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생각과 마음은 여기저기 왔다갔다하고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5분이나 10분 늦습니다. 본 성전에 오기 뭐하니 별관에서 예배드리고 축도가 끝나자마자 쑥 빠져나갑니다.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주일에 볼 일이 있답니다. 사업이 바쁘답니다. 예배가 모든 인간 삶에 있어서 우선인데, 예배를 우습게 알고 내동댕이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배 잘 드리면 하나님께서 ‘네 생명이 길다, 네 날이 장구하다’ 하셨습니다. 운동한다고 오래 삽니까. 예배가 기본입니다. 주일날 예배 시간에 뭐가 그리 바쁩니까, 하나님보다 더 바쁘십니까? 

주일에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하루를 손해 보는 거 같습니까. 그래서 집에 TV, 컴퓨터 갖다 놓고, 들으면서 차 마셔 가면서 예배드립니다. 예배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내동댕이치지 마세요. 예배는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성경 말씀을 볼 때 ‘나 만나기 위해서 내가 지정한 장소, 내 피로 값주고 산 교회 와서 예배드려라.’ 하셨습니다. 성경 구절 읽어보지 못했습니까? 출애굽기 25장 22절을 봐도 ‘너는 성전에 나와서 나를 만나야 된다. 하나님 만나는 시간이다.’ 하신 겁니다. 그걸 모르니 집에서 그냥 설교만 듣는 겁니다. TV로.

신명기 12:18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신명기 16: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앞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예배드리라고 하셨죠. 왜 그렇습니까? 주일에 복을 주셨고 주일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거룩하지 못한 내가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7일째 교회 나가 예배드리면 거룩해진다.’ 그러한 소망 가운데 교회 나와 예배드려야죠. 어떻게 컴퓨터 앞에서, 헌금도 하기 싫어서 집에서 예배를 드립니까. 큰일 납니다.

창세기 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신명기 5:12-14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출애굽기 31장 17절에 ‘나와 이스라엘 자손사이에 영원한 표징이 있다면 안식일이다. 주일이다.’ 그러셨습니다. 신명기 6장 5절을 볼 때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예배 안 드릴 수가 없습니다. 부모를 사랑한다면 아무리 수억, 수만리 있어도 고향길이 열흘 걸린다면 열흘 전에 갑니다.

명절에는 정성 다해서 마음을 모아 부모님께 집중하는 겁니다. 마음을 모아서 큰 절을 드려야죠. 그간 노심초사한 것, 눈물 흘리고 땀 흘린 것, 40년, 50년 기른 그 고생, 아픔, 어려움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거, 그것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출애굽기 20장 8~11절을 볼 때, 주일은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우리 지혜로운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잔꾀 부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여러분 교회 나오지 않고, 돌아다니는 거 다 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천지에 충만한 분입니다. 예배 잘 드리세요. 자식이 왜 말을 듣지 않습니까. 왜 부부간 갈등이 있고, 사업이 안 됩니까? 군인의 기본 동작이 차렷이죠. 기독교의 기본 동작이 예배입니다. 예배 잘못 드리면, 우리 삶 자체가 다 흔들리고 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두려운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교회 나올 때 미리 준비합니까. 십일조를 제 것인 양 하고 안 드리고 예배드려 보세요. 하나님께서 ‘너 도둑이야. 왜 나의 것을 가져가느냐?’ 하시면서 안 받습니다. 예배 잘못 드린 거 큰 죄인 줄 모릅니다. 예배 잘못 드린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그걸 아셔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좁니다. 마가복음 4장 14절을 보면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뿌리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조는 순간 우리 원수, 마귀 사탄이 들어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줍습니다. 악령이 점령하고 있는 겁니다. 졸 때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도록 합니다(마 13:25). 얼마나 무섭습니까?


예배를 잘못 드린 자의 최후

1) 대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다른 불로 예배드리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 30:8-9). 아론의 두 아들이 다른 불로 제사를 드리다가 저주받아 죽고 말았습니다. 불이 제물을 태워야 할텐데, 아론의 큰 아들, 작은 아들을 태웠습니다(레 10:1).

2)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은 ‘불량자’, 원어적으로 ‘망나니’라고 했습니다(삼상 2:12). 그들은 예배를 우습게 알았습니다(삼상 2:17). 하나님이 얼마나 섭섭하게 여기셨습니까. 참다못해 엘리 제사장에게 나타나서 ‘내가 두 아들을 한 날 한 시에 죽이기로 작정했다. 네 아들은 소중히 여기고, 나는 헌신짝같이 여기느냐? 아들들이 죄짓는데 왜 때리지 않고 말만 하느냐? 네 집안에는 앞으로 노인이 하나도없을 것이다.’라고 저주하셨습니다(삼상 2:31-33).

그 말씀대로 사무엘상 4장 볼 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빼앗기고 군대가 삼만 명이 죽었습니다(삼상 4:10).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도 한 날 한 시에 죽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사사로서 의자에 앉아서 연락병을 기다리는데 그 소식을 듣자마자, 의자가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은 거 아닙니까. 엘리 제사장의 며느리는 애 낳다가 그 소식을 듣자마자 기절해서 죽었습니다. 아비 없고 어미 없는 고아같이 된 그 아들을 낳고 죽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 떠났다’라고 해서 히브리말로 ‘이가봇’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예배드릴 때 정성을 다하세요. 마음을 쏟으세요. 주일날 아무리 바빠도 예배가 우선입니다. 손주, 며느리, 사위, 내 아들딸 데리고 두 사람 밖에 안 되지만, 예수께서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 모인 곳에 반드시 내가 있겠다’ 하신 그 말씀을 꼭 믿고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예배 잘 드린 가정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어머니 우리 둘밖에 없어요?’, ‘천 명 만 명 모인다고 해도 하나님이 안 계시면 말짱 헛것이다. 너와 나 둘 사이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했어.’ 구절대주고, 주의 이름으로 찬송 부르고 기도하면서 예배드릴 때 은혜가 폭포수같이 쏟아질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때부터 여러분 가정에 형통, 만사 마음에 소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배는 하나님 만나는 것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세요. 하나님을 어떻게 만납니까? 기도하면서 만납니다. 또 찬송할 때 하나님이 너무 기뻐서 춤을 추십니다. 하나님은 찬송 가운데 계신분입니다(시 22:3).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로 찬송을 부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사 43:21).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찬송을 부를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또 하나님 앞에 기도 제목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찬양을 부를 때 너무 기뻐서 어찌할 줄 모르십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 자의 복

예배 잘 드리면 하나님께서 네 생명이 길고, 네 날이 장구하다고 하셨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텐데, 이것을 모르고 우습게 압니다. 한심하게 무슨 구멍을 메우듯이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신명기 5:16 …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신명기 12:25 …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누리리라

신명기 11:9 …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예배 잘 드리세요. 자식이 말을 듣지 않는 것도 부모님이 예배를 우습게 아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식 앞에 무릎 꿇고 경건하게 기도할 때 자식이 봅니다. 철들기 시작하면 벌써 마음 자세가 달라져 자식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예배를 잘못 드리면 그것이 악입니다. 예배 잘못 드리면 하나님 앞에 죄인 됩니다. 예배로 우리 영혼이 삽니다. 우리 삶의 자체가 예배일 때, 삶의 모든 터전이 흔들림이 없습니다. 손으로 하는 것마다, 발로 걸어가는 곳마다, 마음을 먹은 대로, 생각나는 대로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잘 드리는 분은,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습니다.


예배의 본질을 나타내는 말

첫째, 히브리어 ‘샤하’는 ‘땅에 엎드리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온전히 순종, 복종하는 태도를 말씀합니다(대하 20:18). 둘째, 히브리어 ‘아바드’는 ‘섬기다’라는 뜻입니다. 건성으로 가증스럽게 가짜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셋째, 헬라어 ‘라트레이아’는 ‘섬기다, 사용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저를 사용해 주십시오. 보내 주시면 가겠습니다.’하는 자세입니다. 넷째, 헬라어 ‘프로스퀴네오’는 ‘무릎을 꿇고 엎드리다’라는 뜻입니다.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 발에 입 맞춘 여자처럼 완전히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상대방의 손에 입을 맞추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배를 드리는 자의 자세

요한복음 4장 23절부터 24절과 로마서 12장 1절에서는 예배의 기본자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에 신령과 진정이 빠지게 되면 말짱 헛것입니다. 군대의 기본자세가 차렷이듯이, 우리 기독교의 기본 동작, 기본자세는 예배입니다. 예배의 기본자세가 흔들리면, 첫째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되고, 둘째 우리가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렸습니까?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성경 말씀을 볼 때 하나님께서 당신을 만나기 위해 ‘내가 지정한 장소에서, 내 피로 값 주고 산 교회 와서 예배드려라.’라고 하신 성경 구절을 읽어보지 못했습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하나님 앞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신 12:18, 16:15). 그래서 신명기 6장 5절을 볼 때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예배 안 드릴 수가 없습니다. 예배의 본뜻은 하나님 앞에 마음 다해서 정말 정성껏 섬기고 받들고, 엎드려 절하고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배의 본질을 가르치고 하나님 아버지를 가르치기 위해서 사마리아로 가셨습니다.

1)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유대인들과 헬라인들 모두 신령과 진정이 없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의 예배는 신령이 빠진 형식적인 예배였습니다. ‘진정’은 ‘참된 말씀의 본질, 진리’를 뜻합니다. 참된 예배는, 결코 사람들의 추측이나 깨달음에 근거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영접하여 깨닫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참된 예배가 시작됩니다. 진리는 그림자가 아닌 실체입니다. 그 실체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 ‘참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라고 하실 때 사마리아 여인이 눈을 뜨고 신령과 진정으로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깨달은 여자가 물동이를 내동댕이치고 사마리아 성에 나가서 오신다는 그분을 만났다고 하니 사람들이 다 나온 거 아닙니까. 예수께서 예배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동네 사람들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네가 나오라 해서 나왔지만 너 때문이 아니라, 저 분의 말씀이 진실하기 때문에 믿는다.’라고 했습니다.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깨닫게 되고, 알게 되고, 믿게 되기 위해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2)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예배

교회에 제물 바칠 때 소리를 지르는 산 짐승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배드리는 자가 산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죽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처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믿음으로 못박아 죽습니다. 예배드릴 때 내 고집, 내 정욕, 내 완고한 것 주와 함께 십자가에죽어야 합니다. 예배드릴 때에는 아멘, 할렐루야만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 이하에 여러분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되면 산 제물이 되고, 이것이 영적 예배가 된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온전히 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습니까? 죽었으면 왜 고집이 많고 자기 마음대로 합니까. ‘너희 몸은 너희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죽여 가면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 예배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고전 6:19).

(1) 산 제물이 되어 드리는 인격적인 예배

몸과 마음과 영을 합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영적 예배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위하여 종이 되는 태도, 주님을 위하여 내려가는 태도, 주님을 위하여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는 태도, 교회와 주님을 위해서 나의 ‘똑똑함’을 죽이는 태도, 주님을 위해서 성깔 부리지 않고 그저 참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2) 행위와 외모가 경건한 예배

화가 나서 분이 차오른 채 예배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기 전에 원수가 있다면 먼저 가서 풀고 그 다음에 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야 참된 예배가 됩니다. 마태복음 5장 23~24절, 마태복음 18장 15~19절을 볼 때, 예배에서 잘못된 습관 거룩하게 고쳐야 됩니다. 친구지간, 교인지간 맺힌 거 다 푸세요. 그래야만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예배를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안 드리는 건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예배가 1번, 최우선 순위입니다. 예배를 1번으로 올려놓으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소멸됩니다. 예배를 안 드리고 세상일에 분요하기 때문에 예배를 안 드립니다. 시편에 ‘바쁘게 잠 못 자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데, 네가 재물 버는 거 누가 취할지 아느냐? 왜 그리 분주하게 돌아다니느냐?’라고 묻고 있습니다(시 39:6, 눅 12:16-17, 21).

구약 때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남자가 열 명이상 모여야 한다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안 그러면 유대인 사회에서는 예배로 인정 안 해줍니다. 심지어 여자들은 수에 칠 가치도 없어서 백 명이 모여도 하나가 안 됩니다. 발길로 차고 내쫓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걸 깨트려 팽개쳤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을 볼 때 ‘두세 사람이 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너희 중에 있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간편해졌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고, 성전은 본래 자신이 있어야 할 아버지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서부터 봐도 성전을, 교회를 ‘아버지 집’이라고 한 건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눅 2:49-50). 그 부모는 무슨 말인지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보통 여호와, 엘로힘, 주님(아도나이)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라고 부르지를 못했습니다. 구약 성경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지칭한 것이 14차례 나옵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선지자들 통해서 뜨문뜨문 ‘아버지’라고 하신 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12살 먹은 소년에게 누가 이것을 가르쳐 주
었습니까. ‘아버지 집’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중에 ‘아버지가 보내셨다’ 하고 ‘아버지와 나와 하나다’ 하시니 돌을 들어서 때려 죽이려 했죠. 요한복음 8장을 볼 때.

예수님께서 12살에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부모가 자신을 찾았을 때 누가복음 2장 49절에서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셨는데, 어느 유명한 신학자가 여기에 나오는 헬라어 ‘데이’를 주목해야 한다고 했죠. 여기 ‘데이’는 ‘꼭 필요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우선순위’를 말합니다. 원어적으로 하자면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꼭 필요한 우선순위라는 것을 왜 모르고 계십니까?’하신 겁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다시 돌아와서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을 겁니다.

아버지 집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남편, 아내, 사업, 직장, 어떠한 무엇보다도 우선순위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서 내가 너와 만나겠다.’라고 하셨고(출 25:22, 29:42-43, 30:6, 36) 피값으로 사신 교회에서 여러분을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말씀하듯 하나님께 보고하고 의논 드려야 합니다(신 12:11, 왕상 8:28-29, 9:3, 대하 6:19, 7:15-16, 느 1:6).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 와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했습니다(사 55:6). 교회에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만나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렘 29:13-14).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 만나기 위해서 예비, 기도하고 왔습니까? 아모스 4장 12절에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예비하라고 했습니다. 그냥 세상일에 분주하다가 기도도 하지 않고 덜렁덜렁 ‘주일이네, 교회 가야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복음 2장 13~22절에는 예수님 공생애 초기, 마태복음 21장 12~13절에는 예수님 공생애 말기에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만나서 의논하려고 두 차례 성전에 올라가셨는데 난장판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가서 채찍 만들고, 발길로 차면서, 돈 바꾸는 자 상 뒤집어엎고, 다 쫓아 내팽개치신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내 아버지 만나고 아버지께 기도하는 장소를 갖다가 왜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느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강도의 굴혈, 도둑들의 집합소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각자의 마음이 강도의 굴혈이 되지는 않았는지, 마음 가운데 응큼한 마음, 도적질하는 마음은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예배 성공의 열쇠는 집중

청와대 들어가 대통령을 만나기까지 얼마나 과정이 복잡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기는 쉽습니다. 정성을 다해서 마음을 다하고 하나님께만 집중하면 합격이고 통과입니다. 이렇게 좋은데 예배를 안 드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집중은 ‘모일 집(集)’ ‘가운데 중(中)’, 한곳에 마음이 모이는 것입니다. 집중해서 예배드리지 않으면 아무리 애써도 말짱 헛것입니다. 예배를 정성을 다해서 드리는지를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면 그 사람을 찾겠다고 하셨습니다. 집중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집중하여 찬송을 부르고, 집중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를 중언부언하지 않고 기도가 강력해지고 응답이 빠릅니다. 이렇게 예배를 마음 집중해서 드릴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꼭 찾으실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땅에 엎드려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엎드려서 ‘예, 순종하겠습니다.’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중심에 가득 차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주신다는 소망으로 여러분의 마음 부푼 가운데 드리는 참된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오신 여러분 모두 하나님을 만나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기도 올리겠습니다.
성경 말씀 볼 때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 외에 어떠한 다른 것이 우리 예배 대상을 대치하고 바꿀 수 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오늘 평강제일교회에 임재하셔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는다고 했사오니 저희를 찾아 주시옵소서. 예배는 인생만의 특권이자, 인생된 본연의 위치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저희가 입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배를 인생 최대의 축복으로 생각하는 놀라우신 은혜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배가 우리 모든 삶의 최우선 순위, 가장 중요한 습관이 될 수 있도록 주님 저희에게 은혜 주시고 깨닫게 해주시고 축복해 주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까지 실패하고, 오늘날까지 모든 것이 불통일지언정 예배 우선순위로 살 때 만사형통의 복을 받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감사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07년 2월 25일 주일 2부 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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