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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관점에서 본 레위기 제사법_베드로전서 3장 18절

2024.12.09 19:44

구속사적 관점에서 본 레위기 제사법
베드로전서 3장 18절

 

구속사 시리즈 12권上 『은혜 언약의 표징 – 제사와 율법책』이 지난 10월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이 나오길 학수 고대하던 독자들은 지금쯤 모두 한권씩은 갖고 계실텐데, 12권上의 중심 주제인 레위기 제사법은 결코 접근하기 쉬운 주제가 아닙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안 읽히는 책을 꼽으라면 단연코 레위기입니다. 제사법이 너무나 복잡하게 쓰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 가장 먼저 읽는 책,
기독교인은 가장 나중에 읽는다는 책

그렇다고 레위기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레위기는 유대인들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읽는 성경책입니다.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 나갈 것인가 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읽을 때 가장 나중에 읽는 책이 바로 레위기라고 합니다. 제사법 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사를 완성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제사를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다가 족보 부분이 나오면 대충 넘어가는 것처럼 레위기를 만나면 대충 훑어보면서 지나가는 것이 그동안 우리들이 성경을 읽어왔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속사 시리즈 12권上이 출판되면서 이제 이런 태도는 바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이 제사를 보는 우리의 눈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보는 눈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책 

구속사 시리즈 12권上을 읽어보면 레위기의 복잡한 제사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누구나 쉽게 제사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제사 방식이 가지고 있는 의미도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제사에 관해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많은 난제들을 자연스럽게 해결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제사법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관련되어 있는지 신학적으로 정확하게 분석해 주고 있다는 점인데, 이 부분이 바로 12권上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먼저 읽고 난 다음 레위기를 보게되면 레위기의 제사법이 얼마나 쉽게 이해되는지 체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제사의 목적

이 책과 관련하여 특별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사의 목적’입니다. 12권上을 보면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한 것이 제사의 목적”이라고 여러 곳에서 반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책 85쪽에서 ‘제3장 5대 제사 규례’를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각종 제사들은 아담 타락 이후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된 인생들에게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하신 제도입니다.”

우리가 이 제사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책을 읽게 되면 책의 가치를 제대로 음미하면서 읽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제사법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 즉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시키는 데 꼭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담 타락 이후 죄악된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결하고 거룩한 상태, 즉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아벨도 제사를 드렸고 노아도 홍수 후 제사를 드렸으며 아브라함도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과 시내산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이전과는 달리 제사법을 매우 구체적으로 또 자세하게 지시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제사법을 조목조목 공부하기에 앞서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시내산에서 처음으로 맺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여 에덴동산에 두실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관계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물론 교회시대를 거쳐 예수님 재림에 관한 책인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집니다. 즉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계획은 창조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으며, 또 재림으로 완성되는 순간까지 이 계획은 조금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조 때부터 하나님은 인간과 어떠한 관계 맺기를 계획하셨을까요?


2. 생명의 주인이신 여호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먼저 구속사의 개념부터 다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기독교 복음 운동의 마지막 단계인 구속사 운동의 출발점은 하나님께서 성경 66권의 저자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즉 성경 66권은 각기 다른 주제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제1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일관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쓰셨다는 것이 바로 구속사 운동의 핵심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성경 전체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고려하면서 성경을 읽어 나가야 성경 전체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출판된 구속사 시리즈 12권上도 예외는 아닙니다. 제사의 목적이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한 것이지만,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허락된 길이 아닙니다. 즉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의 목적도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왜 하나님 앞으로 나가야 합니까?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우리의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최종 목적은 바로 하나님 창조 목적의 달성, 즉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면 우리에게 무슨 이점이 있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물론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축복 등 유익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레위기 26장을 보면 3-13절까지 제사에 관한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주실 상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고, 14-45절까지는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내릴 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될 때 받을 수 있는 여러가지 복 중에서도 가장 크고 귀한 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제사의 근본 목적도 바로 생명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바로 생명이 주는 기쁨을 영원히 함께 누릴 수 있는 존재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생명의 기쁨을 영원히 누리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 앞으로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라는 것은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모세가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갈 때 모세는 하나님께 “나를 보내신 자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말하리이까?”라고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만에 찾아오신 하나님에 대하여 전부 다 까마득히 잊고 지냈음을 보여 줍니다. 이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출 3:14)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가르쳐 주십니다. 

‘여호와’라는 이 이름은 하나님의 속성을 잘 보여 줍니다. 즉 여호와는 첫 번째 뜻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피조물과는 달리 자신의 존재를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 여호와는 두 번째 뜻으로 ‘생명의 주인’이라는 의미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 뜻으로 생명의 주인이라면 생명을 남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하므로 ‘생명을 나누어 주는 자’라는 의미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책’(사 34:16)인 성경에서 생명에 관한 이야기가 일관되게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3. 생명은 제사는 물론 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

1) 에덴동산에서 ‘생명으로 가는 길’을 발견할 수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일 뿐만 아니라 또 그 생명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에 아담을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런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즉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된다”는 뱀의 꾀임에 빠져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었고 결국 에덴동산에서 추방됩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과 화염검을 두어 타락한 아담과 그 후예들이 에덴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길을 막아 놓았던 것입니다(창 3:24).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여자의 후손 언약’을 통하여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구속 역사로 바뀌어 펼쳐지게 됩니다. 비록 하나님이 거하시는 에덴으로 가는 영원한 생명의 길은 막혀 있지만,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 즉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어갈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인간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이 길을 아벨, 에녹, 노아 등을 거쳐 아브라함까지 걷게 된 것입니다.

2) 이스라엘에서 ‘생명으로 가는 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횃불 언약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큰 민족을 이루어 430년 만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가는 도중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겠다는 언약을 맺습니다. 이 언약의 특징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함께 거하셨던 것처럼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에는 조건이 따릅니다. 즉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법과 제사법이 제시됩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거룩한 땅에서 거룩한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법으로 구속사 시리즈 제7권에 그 근본정신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과 더불어 필요했던 것이 바로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거나 정결함을 유지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그 부정한 곳을 떠나거나 아니면 범법자를 처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죄가 용서 없이 다 처벌된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법을 주셨던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게 되었을 때 제사를 통해 그 죄를 용서받고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마치 율법이 하나님 백성으로 사는 방법을 알려 주는 ‘은혜의 선물’인 것처럼 제사법도 하나님과의 단절을 막아 주는 ‘은혜의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스라엘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제사가 단 한 번도 드려져 본 적이 없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도 ‘생명으로 가는 길’이 발견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도 인간에게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길’을 열어 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기 위하여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보답으로 하나님은 물론 이웃(즉 원수까지도 포함하여)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근본정신임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어떻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하나님과 화목하는 참된 제사인지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인류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흠이 없는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던 것입니다(히 9:11-12, 10:11-12). 그 결과로 성전 지성소의 휘장이 둘로 찢어졌으며(마 27:51), 이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제사장이 되어 직접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4) 요한계시록에는 ‘생명으로 가는 길’의 종착점이 있습니다.

계시록 21장 3절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장막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즉 새 예루살렘이라는 하나님의 장막 안에서 하나님과 구원받은 성도들이 함께 거하는 이 모습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담 창조 때 계획하셨던 그 모습으로, 하나님의 계획이 마침내 성취되는 것을 우리는 읽을 수 있습니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며 오직 천국의 영원한 생명의 기쁨만이 넘치는 구속의 역사가 마침내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 타락 이후에도 인간에게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길’을 열어 두어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구속사 시리즈 12권上은 세상의 타락과 함께 점점 사라져가는 이 생명의 소망을 다시 한번 깨닫도록 우리의 잠자고 있는 영혼에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인 제사법은 그 복잡함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고 또 학자들 사이에서도 제각기 다양한 학설들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12권上은 레위기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는 제사의 내용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의 실체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제사법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사로 연결되고 있는지 웅변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면 관계상 이 책을 읽을 때 유의해야 할 점을 몇 가지만 말씀드리면서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흠이 없는 제물’을 요구하시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흠이 없는 제물이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가축은 약간씩 다 흠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흠이 없는 제물”이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축 중에서 가장 좋은 제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가축 중에서 가장 흠이 없는 것을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제사인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큰 손실을 초래하는 일입니다. 가장 흠이 없는 제물은 튼튼하기 때문에 힘도 세고 또 새끼도 쑥쑥 잘 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흠이 없는 제물을 요구하시는 것은 비록 재산상으로는 큰 손실을 입을 수 있겠지만, 이렇게 할 때 진정한 회개의 마음이 생기게 되어 다시는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도록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라기 1장 8절 말씀을 볼 때 이 규례도 다른 규례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둘째, ‘향기로운 냄새’의 의미를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레위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제물의 ‘향기로운 냄새’를 흠향 하셨다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물론 이런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이런 번역은 하나님을 가학적인 성격을 가진 분으로 오해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비록 가축이지만 한 생명체를 죽여서 드리는 제사에서 하나님께서 그 제물의 기름이 불에 타면서 내는 냄새를 향기롭게 즐기신다는 해석은 하나님의 속성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향기로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달래는, 진정시키는, 부드러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룩한 땅에서 거룩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수시로 죄짓는 것을 지켜 보셔야 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마침내 하나님의 인내가 한계에 이르러 한번 그 진노를 폭발시키게 되면 전염병, 기근, 전쟁, 지진, 바벨론 포로 같은 엄청난 사건들이 이스라엘을 휩쓸고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정성스러운 제물의 냄새가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또 하나님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를 나타내어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척 또 못 보신 척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시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완전한 제사를 드리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항상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성전도 참 성전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하는 것처럼 제사법도 그리스도의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오셨음을 이미 구속사 시리즈 곳곳에서 배웠지만, 12권上에서도 구약의 제사법에 따라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제물로서, 제사인으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제사를 드리신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구약의 제사법을 올바로 알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제사가 얼마나 완전하고 또 귀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제사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구약의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게 되었지만 우리는 그런 것만을 기뻐하는 젖먹이 신앙의 소유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레위기의 제사법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면 제자들과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구속사 시리즈 12권上을 읽는 모든 성도님들이 자신의 몸을 제물로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를 영원히 기억하고 또 본받는 장성한 신앙의 소유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글_류아모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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