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하면, 안에서 문을 닫았어요” – 44년째 미스바 성가대, 유옥희 대원
“지각하면, 안에서 문을 닫았어요”
44년째 미스바 성가대, 유옥희 대원
‘44년째 줄곧 미스바 성가대원.’ 어린이 성경학교 시절부터 따지면 그의 성가대 경력은 55년째다. 유옥희(63세) 권사를 만나 ‘미스바 성가대원’의 지난 40여 년을 들어봤다.
성가대 하신지 오래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올해로 44년 됐어요. 응암동에 있는 교회를 다닐 때였는데, 학교 선생님이셨던 고재분 전도사님으로부터 성경공부를 하고나서 평강제일교회(노량진 대성교회)로 옮겼죠. 윤종권 장로님과 안성억 목사님을 처음 교회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오자마자 저를 성가대에 넣으신 거예요. 1980년이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오랜 기간 찬양의 자리를 지킬수 있었을까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린이 성가대 이후 줄곧 해오던 거라 예배시간에 성가대에 서지 않는다는 게 상상이 안됐죠. 주일날 교회 가면 성가대 서고 연습하는 게 평생 몸에 밴 것 같아요. 뭔가 이끌림이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거겠죠.
슬럼프 같은건 없었나요? 불화라던지.
출산으로 2년 쉬었어요. 내가 아버지 앞에 찬양하는 거지 사람 보고 오는 건 아니잖아요. 직장 때문에 시간이 안 맞고 그런 걸 이겨내는 게 힘들었지, 사람과 부딪치고 시험 들어 그만둬야 겠다는 건 없었어요.
‘아, 너무 피곤하니 오늘은 서지 말까? 연습도 쉴까?’ 이런 적은요?
가야 되는데 갈 수 없고, 그런 게 마음대로 안 될 때 힘들었죠. 갈 수 있는 상황인데 안 가는 건 없었어요. 몸이 피곤해도 이겨내야 되니까, 졸더라도 가서 졸자 이런 마음이었어요.
솔리스트 보면 혹시 나도 저 자리에 서보고 싶다,이런 마음은 없었나요?
그런 건 없었어요. 제가 노래를 못하니까(웃음). ‘나는 내 자리를 채워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야지.’ 이런 마음이었죠. 보조,허드렛일 같은 거 하면서요(웃음)
어떤 허드렛일을 하셨나요?(웃음)
도서부(현 악보실장) 일이 많았어요. 성가곡 책이 세 권 있었는데 종로 인쇄소 가서 악보 받아오면 접어서 펀치로 구멍을 뚫었죠. 엄청 두껍고 무거웠어요. 본찬양과 헌금송이 다른 책에 있으면 두 권을 들고 들어가야 했죠. 악보에 오타라도 나면 종이를 오려서 일일히 풀로 붙였죠. 지금은 각자 세탁해서 입지만 그때는 의상부(현 성의관리부)가 교회 수돗가에서 80벌을 한꺼번에 빨았어요. 연 2회 봄 가을로. 빨래하는 날이면 대원들이 나와서 큰 통에 넣고 같이 밟고… 세탁기나 짤순이 같은 것도 없으니 물 질질 흐르는거 거 엎어놓고 물 빠지면 들고 옥상에 올라가 널고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데, 성의를 밖에서 밤을 새우게 할 수는 없으니 나중에는 다리미로 다려야 하죠. 봉사부는 청소부터 온갖 허드렛일은 다 하는 부서죠. 옛날에는 뭐 하는 것도 참 많았던 것 같아요. 교회에 거의 와서 살다시피 했으니까요.
연습시간은 어땠나요?
지금은 토요일만 하지만 그때는 주 2회 연습하러 모였어요. 목요일날 저녁에 오는 인원이 지금 토요 연습 나오는 인원만큼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토요일 연습때는 아예 중간에다 의자 놓고 해야 할 정도로 연습실이 미어 터졌었죠. 연습시간도 엄격했어요. 지각하면 안에서 문을 닫아버렸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하나요?
(교회 맞은편) 노량진 전화국 왼쪽으로 돌면 공원이 있거든요. 지각한 사람들끼리 줄 서서 한 바퀴 뛰면서 돌고 왔어요 벌 받는 거죠. 숙제도 안 해 오면 손바닥 맞고.
무슨 숙제였나요?
그때는 악보도 못읽고 실력들이 하도 없으니까 *‘코르위붕겐’이란 걸 배웠어요. ‘시창과 청음’이라고 하는데,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불러보고 음정을 듣고 악보에 적는 거예요. 집에 가서 연습하고 노트에 써오라고 숙제를 주셨는데 안 해오면 손바닥을 맞아요. 90년대까지도 피아노를 치던 사람들 아니면 악보를 잘 읽지 못했어요.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알아도 조가 바뀌거나 하면 빨리빨리 적응을 못했어요. 발성에 대해서도 지휘자 선생님의 배 위에 손을 얹어보고 복식 호흡을 배웠죠. ‘스타카토 하면 아랫배가 움직여야 한다’, ‘입으로만 하면 안 된다’ 등등… 그때는 너나 할 것 없이, 위아래 없이, 교회에 온 순서에 상관없이 완전 기초부터 그렇게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셨어요.
* 코르위붕겐 Chorübungen 음정 연습을 하기 위한 성악 교본의 하나. 독일의 피아니스트ㆍ지휘자ㆍ작곡가인 뷜너(Wüllner, F.)가 지은 세 권의 합창 교본<표준국어대사전>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100곡을 만들자’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걸 위해 매일 나와서 연습을 한 시기도 있어요. 지휘자가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매를 맞아가면서도 했어요. 그 후 실력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제가 80년에 와서 3~4년 사이에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2층에서 연습하는 걸 밖에서 들은 적이 있었는데 진짜 천사의 소리같이 들리더라고요. 얼마나 잘했는지 몰라요. 연습실 오면 일단 소리부터 질러요. 한 10분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나면 소리가 트인다고 하죠. 그렇게 발성 연습을 하고 나서 노래를 하면 진짜 소리가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그렇게 100곡을 했어요. 퇴근하고 저녁때 모였으니 얼마나 피곤했겠어요. 지금처럼 교통 좋았던 것도 아니고. 환승도 안 되던 시절이고 통금도 있었고.
퇴근하고 저녁도 굶고 그랬겠네요?
그때는 직장 다니기 전이었는데, 거의 교회가 전부였던 시절이죠. 아침에 눈 떠서 교회 가는 게 일이죠. 행복했어요. 25세 넘어 직장을 다니고 난 뒤부터는 그걸 못하니 마음이 힘들어지더라구요. 밤에 근무할 때는 성가 연습 못 가게되서 막 울었던 기억이 나요. 예배 못 드리게 되면 어떡하나 . 마음에 채워지는 게 없으니까요. 힘든 일이 있으면 무조건 교회에 왔고 그렇게 나오면 은혜로 채워 주시고. ‘그래 잘 나왔다!’라는 마음이 항상 들었으니까요. 찬양하면 마음이 편안하기도 하고 가사 하나하나가 기도잖아요.
마음 상해서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은 안들었나요?
전혀 안 했어요. 처음엔 설마 했는데 진짜 때리더라고(웃음). 그런데 “숙제 안 해오면 손바닥 맞습니다” 하고 약속을 한 거잖아요. 억울할 것도 없고 고민할 것도 없었어요. 지각해서 문 닫혀 있으면 거기 모여 있는 사람들끼리 자동으로 (벌칙 달리기 하러) 뛰어갔다 오는 거예요. 아무도 불평 안했어요. 다음엔 숙제해 오면 되는 거고 지각 안 하면 되는 거니까요. 가만 생각해 보니 지금은 자유 율법이고, 그때는 성문 율법이라고 해야할까요. 사실 자유 율법이 훨씬 무서운 거 잖아요. 단발령도 세 번 있었어요. 다 커트를 치라고 하셨거든요.처음에는 진짜 당황했어요. 울면서 자르고 했죠. 한 명인가. 자신은 절대 못자르겠다고 해서 허락받고 왔는데 언제부턴가 그녀를 본 적이 없어요. 그후 300용사, 700용사 이렇게 성가대원들이 많아지면서 우리 스스로 머리 단속을 했어요. ‘못 자르겠으면 단정히 묶어라’ 했어요. 모르고 왔던 사람들도 교회의 전통이니 성가대를 하겠다고 왔으면 잘 따라주었어요.
지휘자나 가르치는 사람이, 동료들이 맘에 안들어서 그만둔다? 그런게 어딨어요. 아버지가 불러온 사람인데. 그 사람의 인성이 안 좋아서? 나한테는 그런 성분이 없나요. 나도 있잖아요. 서로 부족한데 우리가 함께. 그렇게 가야 하는 거지. 누구를 판단하겠어요. 사회는 그걸 비난해도. 교회에서는 아니잖아요. 너는? 그러면 할 말 없어요. 그러니 돌을 던질 수 없는 거죠.
옛날보다 시설이나 환경은 많이 좋아진거죠?
아이고 말해 뭐해요. 선풍기도 없었어요. 땀 뻘뻘 흘리면서도 했고. 겨울엔 난로 갖다 놓고도 손이 시려워 악보 넘길 때만 손을 빼가지고 얼른 넘기고 다시 주머니에 넣고 그랬었던 게 기억 나요. 여기 오류동 와서도 그랬던 것 같고. 가장 미안했던 게 피아노 치는 대원. 똑같이 추울 텐데 그 차가운 건반을 쳐야 하니까.
박아브라함 목사님과의 추억은 어떤 게 있나요?
미스바 성가대를 많이 아껴 주시고 이뻐하셨잖아요. 연습 중에도 많이 오셨어요. 뒷문으로 스윽 들어오시면 갑자기 멈추는 거죠. 그러면 ‘괜찮아 나 신경 쓰지 마’ 이러셔요. 그래도 일제히 뒤돌아보는 거죠. 그 다음부턴 목사님과 ‘노는 시간’이에요(웃음) 말씀을 주실 때도 있지만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실 때도 많았어요. 목사님 말씀은 쏙쏙 들어오잖아요. 너무 재미 있었어요. 저녁에 교회는 비어 있고, 당신 혼자 계시는데 미스바가 나와 연습하고 있으니 그 마음에 위로가 되셨던 거 같아요. 아시겠지만 목사님이 한마디 하시면 또 얼마나 웃기고 실감나요. 1994년도 목사님이 미국 가셨을 때 그런 시간들이 없어서 제일 아쉬웠더랬죠. 오셔서 우리 막 웃겨주고 그랬던 게.
교회 역사에 중요한 날에 성가대를 서면 더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예전에는 밖에서 키 순서대로 미리 줄을 서가지고 성전에 일렬로 들어갔어요. 오르간이 먼저 연주를 하면 총무가 먼저 들어가 서고 대원들은 양쪽 문으로 들어가 자리에 서 있다가 총무가 손짓하면 착석했죠.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고들 해요. 매주 매 예배가 아버지가 기억하시는 역사적인 순간 아닐까 해요.
취재, 정리_권오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