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던 특별한 감사의 축제 (신16:9-12) (레23:9-21)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던 특별한 감사의 축제
(신16:9-12) (레23:9-21)
성경을 볼 때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감사를 잊어버리고 사는 인생입니다. 모든 생활에 하나님을 잊어버린 삶은, 사막의 떨기나무 같다고 예레미야 17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 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렘 17:6) 했습니다. 외롭죠! 고독하기 짝이 없습니다. 답답하고 말이죠. 감사 없는 마음은 사막과 같고, 떨기 나무 같으며 또 가시와 같습니다. 자기 기분 나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시같이 콕콕 찌르고 말할 때 마다 남의 감정을 뒤집어놓습니다. 오늘날 많은 분들이 감사를 모르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자기 중심입니다. 로마서 1장 21절에 하나님을 알되, 감사를 모른다고 했 습니다. 하나님 믿는다면서, 모든 생활에 감사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감사를 잊어버린 인생에게 참된 감사를 일깨워 주시는 하나님의 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20),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데살로니가전서 1장 2절, 데살로니가후서 1장 3절, 시편 34편 1절, 이사야 63장 7절, 골로새서 2장 7절, 4장 2절도 다같은 말씀입니다.
골로새서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1: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데살로니가후서 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 함이 풍성함이며
시편 34:1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이사야 63:7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 찬송을 말하며 그 긍휼을 따라, 그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 을 말하리라
골로새서 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로새서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요즘 시대는 암보다도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는데, 그것은 감사의 불감증이라 합니다. 누군가는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감사가 넘치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가지고 산다.”고 했습니다. 감옥과 수도원은 거친 식사, 험한 잠자리, 힘든 일등 환경은 비슷하지만, 감옥은 불평불만 투성이고 수도원은 감사가 찬송이 차고 넘치는 곳이죠. 연수원이나 기도처, 수도원에 불평불만이 있다면 그곳은 감옥과 다름이 없습니다. 초대 교회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사람에게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를 잊어버린 죄라 그랬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쉽게 늙는 부분이 있다면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은 감사가 늙어서 죽을 날이 가까웠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참 무서운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생들로 하여금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3대 절기를 주셨습니다. 유월절(신 16:1-8), 맥추감사절 (신 16:9-12), 장막절(신 16:13-17)이죠. 이 3대 절기는 “자손만대 대대로 지켜야 된다. 영원한 규례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켜도 되고 싫으면 관두고, 맘대로 해도 되는 게 아닙니다.
레위기 23:21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거 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세 절기에 하나님께서 공통으로 명하신 네 가지가 있습니다. 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하나님께 보이러 오라고 하셨죠. 신구약에 세 군데(출 23:17, 34:23-24, 신 16:16)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 좀 보자꾸나’ 하신 것이니, 이유를 대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시면서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않게 해주겠다고 하셨죠. ‘나 보러 올 때 사업이 망하든가, 적군이 쳐들어 오든가, 집안에 우환질고가 틈타지 못하도록 지켜 주겠다.’고 하신 겁니다.
‘가지 않고 집에서 예배하면 될거 아니냐.’하는 사람들 있을까 봐, 하나님께서 우리의 속성을 다 아시고 ‘내가 지정한 장소, 내 이름을 두려고 내 마음과내 눈이 머물러 있는 곳’ 교회까지 오너라 하신겁니다. 택하신 성전에서 모여 여호와 앞에 즐거워하며 축제를 하라 하셨습니다. 신명기 16장 10절, 11절, 15절 세 군데 기록돼 있습니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와 객들도 축제에 참석할 수 있다고 신명기 16장 11-14절에 나와 있죠.
‘절기’는 히브리 말로 하그입니다. 우선 ‘순례의 길을 떠나다’는 뜻입니다. 절기를 드리기 위해서 성전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는 겁니다. 다른데 가다가도 다시 교회를 향해서 오라는 겁니다. ② 춤을 춘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와의 구원과 은혜를 기뻐하는 축제의 성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월절이나 맥추감사절이나 장막절 지낼 때 마음에 근심하면서 ‘가진 게 없다’ ‘자녀들이 속썩인다’ ‘사업은 안되고 이자만 나간다’ 그런 이유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입에 들어가는 건 있지 않습니까. 남의 집에가서 얻어 먹든가, 솥에 누룽지를 먹든가. ‘저마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은 있을테니, 내게 올 때는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겁니다. 우선 마음가짐입니다. ‘감사절이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텐데’ 하면서 바칠 물질이 없는거 염려할 때 하나님이 그거 보십니다.
본문에도 있지만 맥추절을 하나님께 바치기 전에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생쌀이든, 볶은 것이든, 맥추감사절을 드린 뒤에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명령입니다.
레위기 23:14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 오는 그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 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거하는 각 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맥추 감사절이고, 남이 내니 나도 낸다. 쓰다 남은 찌꺼기, 정성도 없이.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중심을 아시는 분인데 그래서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도 마지못해 주면 ”안 받아도 괜찮으니 자네 살림에 보태쓰게“ 그럴거 아닙니까? 말라기 1장에 있습니다. 세상 총독에게 갖다 준들, 그들이 받겠느냐? 안 받을거 아니냐. 말라기 1장에 있어요. 영원히 잊지 마세요. 정성 다해 마음 다하지 않고 대충 ‘남들이 하니, 체면때문에 바친다.’ 그러면 큰일 납니다. 대대에, 세상 끝날 때까지 하나님의 규례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맥추감사절 잘 드리면 자식 위해 기도 안해도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주십니다. 제가 지리산에서 3년 6개월 7일 동안 깨달은 것이 바로 그겁니다. 레위기 23장 14절이 총알 박히듯, 화살 박히듯 박혔습니다. 진정한 감사 없이 맹물도 마시지 않았어요. 과거에 모르고 교인들 가르친 거, 회개하고 말이죠. 자식들에게도 “맥추감사절을 형식으로 드리지 말아라. 마음 다하고 정성 다해야 한다”고 강조해왔습니다. 자식에겐 이것 저것 사주면서 맥추감사절 위해서는 뭐 준비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영원한, 대대의 규례입니다.
맥추감사절은 ‘집에서’가 아니라 성전에서 입니다. 예배당에 모여서 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것을 가리켜 ‘너희들이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신다’ 그랬습니다. 성전이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신명기 14장 26절, 역대상 29장 22절에 여호와 앞에서 먹고 마신다 했죠. 출애굽기 24장 6-11절, 창 세기 31장 5절, 신명기 12장 7절에도 있습니다.
출애굽기 24:10-11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신명기12:7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 할지니라
말씀 자체가 하나님 아닙니까, 교회가 하나님의 전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눈과 귀가 머물러 있어요.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솔로몬이 7년 6개월동안 성전 지은 다음에, 헌당 예배드리는데 1주일로는 모자라요. 기도했더니 일주일 더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헌당예배 드릴 때 2-3시간 설교가 왜이리 길까 시계를 보곤하죠. 헌당예배를 7일에 7일 더. 그때 잡은 소가 2만 2천 마리, 양이 12만 마리입니다.
열왕기상 8:16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낸날부터내이름을둘만한집을건축 하기 위하여
열왕기상 8:29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열왕기상 9:3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내 마음과 내 귀, 눈이 머물러 있겠다, 너희 기도소리, 여기 들어오는 자마다 내가 마음을 다보겠다 그랬어요. 그러니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어영부영 하지 마세요. 오고도 저주받습니다. 정성에 정성을! 군대의 기본동작이 차렷! 열중쉬엇!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말씀 들을 때 집중해야 합니다. 찬송도 집중, 기도도 집중, 말씀들을 때 집중하면 사단이 틈타지 못하는 겁니다. 에배소서 4장 27절에 마귀가 우리 마음 가운데 틈 타지 못하도록 잘 지키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③ 결코 공수(빈 손)로 보이지 말라(출 23:15, 34:20, 신16:16) ④ 각 사람에게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리라(신 16:17)
여호와가 풍성하게 주신 복을 가지고 너희 집 곳간만 채우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곳간, 하나님의 집을 좀 채워달라는 겁니다.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 아까워하고 벌벌 떨면서 바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라는 거죠. ‘네 힘을 헤아린다’는 것은, 어느 정도껏이 아니라 능력 범위에서 최대한 힘껏 예물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인색한 마음이 아닌 자원하는 마음(고후 9:7)으로. 고린도후서 8장 3절 마게도냐 교인들이 가난하지만 힘에 지나도록 자원했죠.
우리가 우리 것을 드린다면 인색하게 되죠. 그러나 우리 것은 없어요. 우리 몸도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 겁니다. 다윗 왕이 은혜 받은 다음에 ‘이거다 내것인 줄 알았더니 하나님으로부터 나한테 온 겁니다. 뒤늦게 깨닫고 감사합니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감사한 마음으로 드렸을 뿐, 내가 한 거 없습니다.’ 하니, 하나님께서 그거 보시고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다윗의 위에서 영원히 홀이 떠나지 않겠다 하셨습니다. 왕권이 떠나지 않겠다 하나님께서 맹세하셨습니다.
역대기상 29:16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시편 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하나님의 것로다
돈도 버는 능력을 주셔서 번것이지 내가 밤잠 못자고 수단 좋아서 번게 아닙니다.“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다.”고 신명기 8장 18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성전을 짓자 하니 ‘지금 불경기인데 교회를 짓자고 해?’ 합니다. 그걸 하나님이 들으시고는 ‘너희 집은 좋은 장식으로 번듯하게 짓고는 교회를 짓자 하니 때가 아니라고 하느냐?’고 하셨죠. 학개서 1장 꼭 읽어보세요. 학개서 2장 8절에서는 “은도 내것이요 금도 내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게 네 것 인줄 알고 인색한 마음으로 지금 교회 지을 때가 아니라고 하느냐’고 하신 거죠. 하나님께서 ‘내가 훅 불어 버리겠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의 몸이라든가 집안 식구들을, 사업을 한번 불어 버리시면 다 날아갑니다. 맥추절이 제일 무서운 겁니다. 교회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하기 전에는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맥추절의 기원은, 출애굽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약 400년 노예로 살다 위대한 영도자 모세를 통해 탈출했죠. 시내산에서 십계명 받는 가운데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맥추절 시행 40년 전입니다. 광야 40년 끝난 다음 가나안 땅에 들어가 씨를 뿌려서 첫 수확 한 뒤 할 일을, 40년 뒤를 내다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역대하 8장 13절, 여호수아 5장 10-12절에 나와 있습니다. 광야에서 지키라는 것이 아니었죠. 광야에서는 만나밖에 없는데 무슨 맥추가 있겠습니까. 광야에 언제 씨를 뿌렸습니까?(출 16:35-36, 신 8:2-4)
만나의 역사를 일으키신 것은, 사람이 육신의 양식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입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 시험 당할 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신 거 아닙니까. 요한복음 6장에서는 ‘모세가 준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하늘로서 온 산떡을 먹으면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 하셨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마태복음 26장에 마가 요한 다락방에서 떡과 포도주를 주시며 ‘내 살이라’ ‘내 피라’ 하시며 영원한 언약의 떡, 언약의 피라 말씀하셨습니다.
느헤미야 9장 20-21절에, “주의 만나로 저희 입에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사십년 동안을 들에서 기르시되 결핍함이 없게 하시므로”라고 하셨습니다. 40년 동안 광야를 지나면서 배고픔도 없고, 영양실조도 없었습니다. 만나가 종합영양제입니다. 40년 동안 감사를 몰랐어요. 농사 짓고나니 그때 알았겠죠. 밭을 갈고, 고랑을 파서 씨를 뿌리고, 덮고. 또 추수해 거두어서 곳간에 들이고. 그러니 ‘만나 먹을 때가 제일 좋았구나’ 뒤늦게 감사하지 않겠겠어요? 자는 동안 이슬과 함께 만나가 내리잖아요. 사방 백리에 20cm가 쌓입니다. 바가 지로 식구대로 긁어다가 불에 굽기도 하고 볶기도 하고 삶아먹기도 하고, 성경 볼 때 그 맛이 꿀 섞인 과자맛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족을 모른거 아닙니까. 애굽에 있을 때 종살이를 해도 주인이 먹던 찌꺼기 고기가 있었고, 파 마늘 부추가 있었는데 광야에는 만나뿐이다. 수박도 참외도 없다고 원망했습니다. 모세를 때려 죽이려 할 때 동풍이 불게 하셔서 메추라기를 몰아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200만명이 넘습니다. 1마리 씩만 먹어도 200만 마리인데, 한 마리만 먹겠습니까? 그래도 감사가 없습니다. 불평 불만입니다. 가나안 땅 들어가 농사지어보니 힘들죠.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았겠죠. 여러분들, 말씀 듣는 순간이 제일 행복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맥추절의 여러 가지 명명들.
맥추절은 이름이 여러가지입니다. 보리 수확부터 밀 수확 마칠 때까지, 유월절 지키고난 뒤 50일째여서 ‘오순절’입니다.(신 16:10, 민 28:26) 7일을 7번 지났다고 해서 ‘칠칠절’입니다. 첫 것 이니 ‘초실절’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마가 요한 다락방에서 예수 승천한 다음 열흘을 간절히 기도했죠.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을 받은 뒤 권세와 능력과 힘이 생겨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만인간의 구세주다’ 외 치며 목숨 내놓고 일하게 한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교회를 탄생시키고, 성령이 우리를 거듭나게 했어요. 성령 받고 보니 백리를 걸어도 피곤치 않고, 못할게 없습니다. 언제나 기운이 왕성했습니다. 성령 받아야 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있죠. 평강의 성도들 모두 성령 충만히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월절 이후 50일을 계수(레 23:15-16)하는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아름다운 표시입니다. 추수하는 기간을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하늘 달력으로 정해줬기 때문에 이 맥추절은 귀한 것입니다. ‘맥추’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죠. 요한복음 12장 24절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로 오셔서 당신이 십자가에 희생하므로 예수 믿는분이 많잖아요? 많은 열매 맺는 것을 예수께서 구약에 있는 말씀을 이용해서 미리 예언해주신 걸 생각해볼 때 예수 믿는게 얼마나 복입니까.
첫 열매! 예수님이 첫 열매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21절 볼 때,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사망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첫 열매가 예수님입니다. 그 다음 열매가 우리입니다. 이걸 깨우치게 하는 겁니다. 구약 예언의 성취, 이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첫 열매. 사망 권세를 깨트리시고 첫 부활을 하신 그 맛을 보고, 그 축복과 은혜를 받는 겁니다. 주님의 죽음이 내 죽음이고 주님의 부활이 내 부활이다. 그러니 자신이 생깁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내가 진실로 말하노니 내 말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여러분들 맥추절을 통해서 주님의 죽음 이내 죽음, 주님의 부활이내 부활이다 생각할 때 자신있잖아요.사람 운명할 때 보면 압니다. 공포감이 있으면 잘못된 겁니다. 죽지 않겠다고 덜 덜떠는 모습 많이 봤습니다. 수십 년 예수 믿으면서 마지막 모습이 그 모습이어서 되겠습니까. 주님의 죽음이 내 죽음입니다. 우리 죄를 예수님에게 전가시켰고, 그 죄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사망의 권세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죠.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아닙니까.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분이죠. 편안한 마음으로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 내가 눈 감는 순간, 즉시 하나님 계시는 영원한 나라, 슬픔과 아픔과 걱정 없는 요한계시록에 있는 그 나라 가겠습니다.’ 아들 딸, 가족 모아 놓고 ‘나 위해 찬송해달라’ 부른 다음에 ‘너희들 나 만나려거든 예수 잘 믿어야한다’ 이쯤 유언해 놓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주밖에 있기 때문에 근심하죠. 얼마 안가면 우리 눈앞에 당도할 일입니다. 지금부터 그 나라 갈거 준비하세요.‘ 믿음 없는거 믿음 주시옵소서. 성경 믿을 수 있는 은혜를달라’ 고 말이죠. 성경 말씀그대로 믿게 해달라고. 얼마나 좋습니까? 갈 날 얼마 남지 않은거 스스로가 압니다.‘ 하나님 내 아내와 내 자식 하나님 손 맡깁니다. 예수 잘 믿는 복이 우리 가정에 머물게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아들딸 지혜와 명철, 말씀과 은혜 충만케 하시고, 그 나라 갈때까지죄 짓지 않고 하나님이 일할 수 있는 큰 인물 만들어달라고’. 세상 떠날 때 그 정도는 기도하고 가야 합니다. 아주 죽습니까. 죽어도 살겠고! 틀림없잖습니까?
그 다음에 이 썩을 것이, 마지막엔 다 죽지 않습니다. 마지막 감추었던 만나로 변화 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합니다.
고린도전서 15:50-51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마지막 나팔 소리는 말씀이죠, 순식간에 홀연히 영육이 변화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지요. 시간 공간에 제한받지 않습니다. 에스겔 1장, 10장이 거짓말입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100살 노인도 어린애와 같다 했어요. 고린도전서 15장 말씀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혈과 육은 그 나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변화되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언제 문열고 들어오셨습니까? 제자들이 덜덜 떨고 있는 데 들어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영은 뼈와 살이 없거니와 나는 있다. 영육 아울러 부활입니다. 신령한 부활입니다.
고린도전서 15:52-55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
“사망아! 너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마지막에 생명이 사망을 삼키는 겁니다. 바로 그날이, 그것이 공중이나 하늘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빌립보서 3장 20-21절이 그 내용입니다.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6번이나 말씀하신 겁니다. 내말이 너희 속에 있으면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한다. 요한복음 8장 51절 말씀입니다.
맥추절, 맥추가 예수님이라는 거, 한 알의 밀로.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지 않으면 많은 열매 맺을 수 없고,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 12:24). 예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수천만만 만인간들이 살아나는 거 보세요. 맥추감사절에, 맥추가 되시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시면서, 나를 위해 그 밀이 빻아져 가루가 되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는 과정들을 생각하시면서 맥추감사절을 지키시는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햇곡식을 바치는 추수절, 처음 익은 곡식을 예물로 나에게 바치는 날이 오면 너희는 모든 일손을 멈추고 거룩한 모임을 열어야 한다(민 28:26 공동 번역).” 그랬습니다. 그러면 자손만대 복을 주겠다고 하셨어요. 가난한 자 없다고 했습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복을 받고, 땅을 밟고 걸어가는대로 출입의 복을 받습니다. 맥추절 때 드리는 제물보세요. 비록 맥추절이 자연만물의 수확에 대한 추수 명절이지만 소제, 번제, 화목제, 속죄제를 하나님께 드렸죠. 하나님과의 관계 유지와 헌신(번제), 하나님께 충성과 감사의 성결(소제), 하나님과의 화목과 친교(화목제), 하나님과 친교하면 비밀을 다 대주신다고 했죠? 그게 화목제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얼마나 친밀히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는 비밀을 아브라함한테 다 대 주셨지요. 그게 화목제입니다. 초실절(레 23:10- 14) 곡식의 첫 단을 바칠 때, 우리 마음을 뜨겁게 감화 감동할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막힌 것이 형통으로 바뀌어진다고 생각할 때 이 맥추감사절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맥추감사절? 당신이나 다녀오쇼, 나는 오늘 어디 다녀와야 하는데’ 했다간 큰일납니다. 살아봤자 70-80년이고, 1년 내내 교회 나와야 몇 번 나옵니까. 주일 52번이고, 수요일 나오면 백 몇 번입니다. 목요일까지 나오면 150번 정도입니다.
하나님 앞에 인색하고 아까워하는 사람은 12명 가운데 열 정탐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악평하는 자입니다. 그게 죄가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진심으로 맥추감사절에 감사하고, 정말 하나님 앞에 고맙게 생각해야지 여호수아 갈렙같은 믿는신앙 편에 설지언정 아까워하고 인색하고, ‘그 맥추절이 뭐야’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 열 정탐꾼은 그 날 처참하게 죽였습니다.남믿지못하게,깨닫지못하게하고불평 불만하게 하고 말이죠, 12명이 다녀와서 여호수아와 갈렙은“능히믿음으로이길수있다.올라 가면 된다.”고 했는데, 나머지 열 사람이 반대한 거 아닙니까. “안된다, 다 죽는다.” 그 얘기를 듣고 온 이스라엘 백성이 200만명이 밤새도록통 곡했습니다.
민수기 14: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그 10명을 처참하게 죽 였습니다. 죽고 나니 200만명이 덜덜 떨었겠죠. “여호수아 갈렙 말이 맞구나. 불신의 편에 서면 큰일나겠구나.” 했을 겁니다. 성경 외경을 보면 많은 사람 앞에서 그냥 갑자기 쓰러졌는데 몸이 썩어 거품이 나고 눈이 터져가면서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그 열 사람만.
맥추감사절을 잘 생각하세요. 그 뜻을 깨달아야 됩니다. 정성 다해 감사하면서 깨닫지 못한 채 수십년 지나온 것과 오늘 깨닫는 것 생각할 때 감사하면서 아낌없이 하나님 앞에 맥추감사절 드리는 거룩한 모임이 돼야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는, 하나님 앞에서 바른 말씀듣는 우리들이 복된 자리 있다는거 믿으시고, 모두가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거룩한 맥추절 지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기도 올립시다.
하나님, 가데스바네아에서 모세가 12지파 두령들을 하나씩 뽑아서 가나안 땅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40일 동안 마치고 돌아와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능히 우리가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있고 취할 수 있다고 했지만, 열 사람은 불신의 말을 하는 바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하고 땅을 치고 애굽에서 나온 것을 원망하고, 후회하면서 모세와 제대로 보고한 두 정탐군까지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불을 떨어뜨려서 진압하시는 가운데 잘못 보고한 열 사람을 처참하게 죽이셨습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이해서 주시는 말 씀, 여호수아와 갈렙같이 믿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시고 열 정탐군같이 믿지 못하는 그러한 반열에 서지 않도록 주님 역사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깨닫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맥추감사절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귀하게 하나님의 성전에서 모여서 지킬 때 추호도 마음 가운데 억지로나 인색함이 없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종일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지언정 하나님 마음을 섭섭하게 하는 자 하나도 없도록 도와주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감사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07년 7월1일 맥추 감사 주일 3부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