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과 송이꿀
꿀과 송이꿀
동서양을 막론하고 꿀은 가장 좋은 것을 비유할 때 흔히 사용된다. 꿀은 영양학적으로 탁월한 식품으로 소화력이 약한 사람이 먹는다고 해도 탈이 나지 않으며, 모든 음식물 중 가장 많은 비타민C를 포함 하고 있고 이 외에도 다양한 영양소가 가득하다. 이에 꿀은 오랜 기간 동안 위급한 사람을 살리는 영약으로 취급받기도 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벌이 꿀을 되새김질하는 동안 분비되는 글루코스 산화효소(Glucose Oxidase)로 인한 살균 작용 때문에 부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꿀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썩지 않는 음식으로서,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발굴된 3,000년 된 꿀이 전혀 부패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성경의 꿀
이스라엘은 낮은 강우량과 건조한 날씨로 인하여 나무가 많지 않다. 흔히 벌집을 나무에서 채취하는 한국과 달리, 이스라엘의 꿀은 대부분 돌틈에 있는 돌꿀이다. 그래서 성경은 꿀의 출처를 ‘반석’으로 말씀하고 있다.
신명기 32:13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시 81:16 “내가 또 밀의 아름다운 것으로 저희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케 하리라 하셨도다” 참고로 이 반석은 고린도전서 10장 4절을 볼 때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꿀로 말미암아 인생을 풍성하고 윤택하게 하는 영혼의 지혜를 얻는 것이다.
시편 19장 10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정금보다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달다’라고 말씀 하고 있다. 잠언 24장 13-14절에서도 지혜가 주는 유익을 꿀과 송이꿀에 비유하고 있다.
여기 ‘꿀’은 히브리어 ‘데바쉬’(ַשְּׁבד )로 벌꿀이나 대추야자 열매 진액 등을 통칭하는 단어이다. 반석 사이에서 나오는 꿀 뿐 아니라 모든 당도 있는 것들을 통치하는 단어로, 그중 종려나무의 대추야자 열매의 경우 나무가 꺾어질 정도로 엄청 난 양의 열매가 열린다(완전히 자란 20~25m 가량의 나무 당 100kg 이상의 열매가 열린다). 그 열매의 맛은 설탕 이상 으로 단 시럽과도 같고, 날이 뜨거우면 열매 틈으로 즙이 뚝 뚝 떨어지기도 한다. 성경 시대에 대추야자 열매는 물을 구하기 힘든 광야에서 상하지 않는 식품으로 중요한 영양공급원 이 되었다. 물론 ‘데바쉬’는 벌꿀 자체도 가리키는데, 대추야자보다 훨씬 구하기 어려운 점이나 맛에 있어서 훨씬 뛰어나 더욱 귀한 식재료로 취급되었다.
반면 ‘송이꿀’은 히브리어 ‘노페쉬’(ֶת ֹפנ )로, ‘벌집에서 흐르는 꿀’을 가리킨다. ‘데바쉬’가 벌집에서 채취한 꿀을 가리킨다면, ‘노페쉬’는 벌통 채로 채취하여 그 속에 든 꿀을 가리킨다. 시편 19장 10절에서는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정금과 대비하여 세상의 공기를 만나지 않은 순수한 꿀로 표현하고 있다.
꿀의 효능
시편 19장 7-8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꿀의 유사성에 대해서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하고,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한 마 디로 삶의 활력소라고 할 수 있다.
사울은 블레셋과 싸우던 당시, 잘못된 종교적 열의로 전쟁 중인 백성에게 섣부르게 금식을 선포하였다(삼상 14:24). 이에 사울을 따르는 온 백성이 기진맥진한 상황에서 수풀에 들어가 땅에 꿀을 발견하였다. 사울의 금 식령을 듣지 못했던 요나단은 극한 전투로 지친 가운데 지팡이로 꿀을 두 번 찍어먹고 기력을 회복하였다(삼상 14:25-27). 꿀을 먹는 순간 원기가 소생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꿀과 같이 달콤한 말씀이요(시 119:103).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된다(잠 4:22, 16:24). 또한 마음에 즐거움과 기쁨이 넘치게 한다(렘 15:16).
사자의 주검에서 나온 꿀
사사기 14장 5-9절에서는 꿀에 대한 가장 독특한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삼손은 딤나로 가던 길에 어린사자, 곧 젊고 힘이 있어 사나운 사자를 만났다. 삼손에게 여호와의 신이 크게 감동되자, 삼손은 순식간에 그 사자를 종이처럼 찢어버렸다 (삿14:6). 그런데 얼마 후, 삼손은 그 죽은 사자 속에 벌떼와 꿀이 있는 것을목격하고 꿀을 취하여 먹고 부모에게 드렸다(삿 14:8-9). 사자 속에서 벌떼와 꿀이 나오는 이 기묘한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할까?
먼저 어린 사자는 우리를 공격하는 악의 세력을 상징한다(히 11:33). 베드로전서 5장 8절-9 절에서 우리 대적마귀를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아무리 강력한 사자라 할지라도 여호와의 신에 감동을 입을 때, 능히 그를 찢고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벌떼는 성도를 상징한다. 본래 동물의 시신에는 파리떼가 꼬이기 쉽다. 그러나 사자 속에 벌떼가 있었던 것은 하나님 계시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벌’ 은 히브리어 ‘데보라’(ָהרוֹ ְּבד )로, ‘말하다, 명령을 내리다’라는 의미의 ‘다바르’(ַר ָּבד )에서 유래하였다. ‘데보라’(ָםִירוֹ ְּבד)는 여사사 드보라의 이름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벌떼’를 가리킬 때에는 ‘데보라’의 복수형 ‘데보림’을 쓰는 반면, 여기서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모인 무리, 성도의 회중’을 가리키는 ‘에다’(ָה ֵדע )가 함께 사용 되었다. 마치 명령이 떨어지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벌과 같이 성도는 믿음의 싸움을 싸우는 가운데 사자가 죽은 시체 속에서 승리의 기쁨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요일 5:4).
마지막으로 꿀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꿀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으로(시 19:9-10, 119:103, 잠 24:13-14), 사자 같은 이 세상 죄악을 성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할 때 느끼는 그 맛이 바로 꿀과 같은 단맛이다(벧전 5:8-9).
삼손은 이 사건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않고 다만 꿀을 부모에게 드렸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사자를 맨손으로 찢어버리고,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벌떼와 꿀의 역사는 하나님과 삼손 사이의 비밀이다. 오늘날 성도가 세상을 이기는 능력과 그 승리의 단맛도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 주신 비밀이다.
꿀과 송이꿀의 수집
꿀1kg을 만들기 위해서는 벌이 560만송이의 꽃을 찾아야 한다. 꿀을 얻기 위해 분주히 날고 있는 벌들은 오늘날 꿀보다 더욱 달콤한 영생의 복음을 받은 성도에게 꽃들을 찾아 다니라고 교훈을 던지고 있다(참고-잠 6:6). 우리는 성경에 있는 구약 929장, 신약 260장, 총 1,189장의 꽃들을 찾아다니며 송이꿀을 마음에 담아야 할 것이다.
글_정디모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