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민족적 아픔과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호국보훈의 달(신 32:7, 레 23:26-32)
6월은 민족적 아픔과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호국보훈의 달
신명기 32:7, 레위기 23:26-32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호국(護國)은 외부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뜻이고, 보훈(報勳)은 나라를 수호한 공훈에 보답한다는 뜻입니다. 휴전 협정이 맺어진 지 3년 뒤인, 1956년 4월 대통령 명령 제1145호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것을 제정하면서 목숨 바쳐 나라와 민족을 지킨 애국선열들과 군경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 충절을 추모하고 명복을 빌기 위해 매년 6월 6일을 기념일로 지정하였습니다. ‘현충일’이라는 명칭은 1975년 12월에 공식적으로 채택되어 현재까지 공휴일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 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오늘 본문 신명기 32장 7절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이에요. 기억해도 되도 안 해도 되는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를 빼앗기고 2,000년 동안 각 나라에 흩어져 살아도 유월절 제사 제도는 레위기 말씀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안식일 날이 춥다고 나무라도 패면 종교재판 없이 동네 한복판에 세워놓고 돌로 쳐 죽입니다. 안식일에는 2km 밖에는 나가지도 못합니다. 주전 1,500년, 모세 이후 오늘날까지 3,500년 동안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민족이에요. 무서운 민족입니다.
오늘 본문 레위기 23장 26-32절을 볼 때, 하나님께서 7월 10일을 속죄일로 정하시고 모세에게 백성들을 향해 공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레 23:24). ‘속죄일’는 히브리 말로 ‘욤키푸르(פיִכ םוֹיוּ)’입니다. 일 년간 지은 죄를 회개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우다가 죽은 애국 투사와 장병들의 명복을 비는 날이기 도 합니다. 이날은 노래를 부르거나 웃지 않습니다. 세속적인 말도 하지 않는 날입니다. 모든 것을 멈추고, 집에서 성경을 보면서 민족을 위해서 수고한 이들의 정신을 숭고하게 받아들입니다.
우리나라 현충일은 어떻습니까. 6월이면 화창한 여름날입니다. 부부 동반으로 자식들 데리고 외국까지 원정가서 골프를 칩니다. 바다로 낚시하러 가고 등산하러 가니까 여관방이나 호텔만원입니다. 영화관이나 백화점, 대공원에도 사람이 가득하죠. 술 취한 사람들이 많아서 사고도 많습니다. 참 부끄럽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가슴을 여미고 국가 민족의 안위를 염려하면서 깊이 생각해 보세요. ‘황성 옛터’라든지 ‘울 밑에선 봉선화’ 같은 곡들이 술 먹고 남자 주머니 노리는 기생이 부른 게 아닙니다. ‘눈물 젖은 두만강’의 가사를 보세요.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강물도 달밤이면 목메어 우는데…” 여기서 ‘내 님’은 독립투사를 말하는 거예요. 1년에 하루, 현충일만큼은 진정으로 나라 민족을 위해서 먹지 입지 못하고 암혈 토굴 속에서 헐벗고 굶고 싸우다간 선열들을 생각해 보세요.
마태복음 22장 36절을 보니까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향해“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하고 물었죠. 예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셨습니다(마 22:37, 39).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했습니까? 세계적인 철학자 산타아나는 “뼈아픈 과거를 기억할 줄 모르는 사람은 과거를 되풀이해야 된다. 슬기로운 사람은 경험 속에서 지혜를 배우고 지혜로운 민족은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과거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한 나라가 번영했다면 번영을 위해서 말없이 희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1945년 그 전부터 나라 민족을 위해서,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서 수많은 분들이 국내에서 견디다 못해 북간도 만주, 상해 등 외국 나가서 고생했습니다. 한 번쯤은 생각해 봐요. 기도해햐죠. 그 집안과 자식 위해서 자손만대에 하나님께서 기억해 달라고 그런 기도 못합니까. 하셔야죠. 여러분들에게 이 나라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참으로 귀합니다.
우리나라는 36년 동안 나라 없는 망국 백성의 설움을 체험했습니다. 우리는 일본 사람들이 독 사보다 지독하게 자행했던 야만적인 행위를 영원히 지울 수가 없습니다. 무수한 애국지사가 처형당하고 손가락과 혓바닥이 잘리고, 인두로 지지고, 산 사람을 이빨을 펜치(penchi)로 뽑아 팽개치는 그런 광경, 참 무섭습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라는 수탈 기관을 창설해서 토지를 수탈하고, 우리 성까지 일본어로 바꾸고 우리말을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때 당시 단군 조선 이래 역사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일본의 역사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일본 천황 이름들을 전부 다 외워 써야 했죠.
남자들은 징병과 노역으로 끌려가서 사람이 할 수 없는 무서운 노동을 했습니다. 청년들은 전쟁터에서 일본군 대신 총알받이로 많이 죽었습니다. 여자들은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좋은 데 취직시켜 주고 성공해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속여서 섬에다 ‘정신대’로 배치시켰습니다. 복종하지 않으면 만주에 731부대로 보내서 생체 실험체로 실험을 당하다가 죽습니다. 한국인과 중국인 3,000명 이상이 희생당했습니다. 여러분 친누이 동생이 그런 꼴을 당 해보세요. 남같이 생각하면 안 돼요. 한 형제, 한 민족입니다.
일본인들의 야만적 행위 중에서 가장 비열한 행위는 ‘신사 참배’였습니다. 얼마나 강요하면서 한국교회를 뒤흔들어 놓고, 얼마나 많은 순교자를 만들었습니까?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가 7년 동안 평양감옥소에서 숱하게 고문당했습니다. 끝내 굴복하지 않다가 해방 1년 전에 순교했습니다. 여수에 손양원 목사님은 나병환자들만 모인 애양원 교회에서 희생한 성자입니다. 1902년에 경남 함안에서 출생해서 1935년 평양신학교 입학했습니다. 1940년에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가 여수 경찰서에 검속됐습니다. 일본 검사가 손양원 목사님에게 “천황 폐하가 높으냐, 너희 믿는 하나님이 높으냐?!”라고 묻자 서슴지 않고 손양원 목사가 “ 천황은 신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내가 믿는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은 신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 한마디로 종신형을 받고 청주 형무소에서 복역을 하다가, 광복을 맞아서 1945년 8월 17일 석방되었습니다. 목사님은 다시 애양원으로 돌아가서 1946년 3월 경남노회에서 목사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14연대 반란 사건으로 얼마나 혼란했습니까. 말도 못 합니다. 그때 남로당 당수가 박헌영이었고 당원만 5천 명이 조직돼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미래가 없었습니다. 남로당이 여수경찰서에서 반란을 일으켜서 여순경 세 명을 옷을 벗기고 가슴을 잘랐습니다. 경찰관 가정의 7살 먹은 아이를 작두로 머리를 잘라서 대문 앞에 매달아 놓습니다. 경찰관 142명을 다 죽이고, 7일 동안 인민공화국 깃발 달고 말이죠.
10월 21에는 남로당이 애양원까지 쳐들어 왔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두 아들, 동신(당시 22세) 이는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하고, 동생 동인(당시 19세)은 세 발이나 맞고 죽었습니다. 사흘 만에 손양원 목사가 있던 동네로 두 아들이 피투성이 시체가 돼서 왔습니다. 애양원 나병 환자들이 나무판자로 두 아들의 관을 만들어 줍니다. 보통 사람이면 그게 위로가 되겠습니까? 손양원 목사님이 얼마나 강직하고 신앙이 좋은지 눈물 한 방울 교인들 앞에서 흘리지 않았답니다. 그 다음날이 주일이었는데, 그날 ‘죽도록 충성하라’(계 2:10)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가야 될 것이냐. 일편단심으로 주를 사랑하는 굳은 마음으로 하늘과 땅에 추호도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 된다. 오늘 하루가 나의 날이요 지금 이 시간이 나의 시간인 줄 아는 사람 이 국가 민족을 위해서 충성할 수 있고 죽을 수가 있다. 그러니 시간 분초마다 순교의 기회가 왔을 때 도망가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감사의 마음으로 순교의 제물이 돼라. 부모도 중요하고 자기 자식도 중요하지만, 먼저 나라를 위해서 큰 공을 세우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애양원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를 때, 동인이의 동료 고3 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동인이가 죽을 때, 친구들에게 찬송가 545장 “하늘 가는 밝은 길 이”(새 찬송가 493장)를 같이 불러 달라 해서 같이 찬송을 부르고 순교했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갈 때, 손 목사님이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두 아들의 순교를 두고 하나님 앞에 감사할 조건이 열 가지를 말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어찌 긴 말로 답사를 드리겠습니까. 내가 아들들의 순교를 전하고 느낀 몇 가지 은혜 가운데 하나님 앞에 감사할 조건을 잠깐 말씀으로 답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했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두 번째는,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내게만 주셨습니까, 감사합니다.
세 번째, 3남 3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됐으니 하나님 분에 넘치는 감사를 드립니다.
네 번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든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 번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복 이라 하였거늘, 하물며 전도하다가 총살 순교 두 아들 당했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 번째, 미국 유학 보내려고 준비했는데 내 큰아들 둘째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이제 내 마음에 안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 번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회 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덟 번째, 내 두 아들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감사합니다.
아홉 번째, 이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8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마음 주신 것 감사합니다.
끝으로,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일들은 내 부모들이 새벽기도마다 부르짖으며 수십 년간 눈물 흘려 기도한 결실이요. 나의 사랑하는 나병 환자 형제가 23년 동안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 준 열매임을 의심치 않으며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면서 두 아들의 상여 뒤를 따라가면서 “동인아 동신아,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린 영광일세”하고 찬송가 289장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새 찬송가 610장)를 부릅니다.
1.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 광명한 천국에 편히 쉴 때
주님을 모시고 나 살리니 영원히 빛나는 영광일세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은혜로 주 얼굴 뵈옵나니 지극한 영광 내 영광일세
2. 주님의 한 없는 은혜로써 예비한 그 집에 나 이르러
거기서 주님을 뵈옵는 것 영원히 빛나는 영광일세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은혜로 주 얼굴 뵈옵나니 지극한 영광 내 영광일세
3. 앞서 간 친구를 만나볼 때 기쁨이 내 맘에 차려니와
주께서 날 맞아 주시리니 영원히 빛나는 영광일세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은혜로 주 얼굴 뵈옵나니 지극한 영광 내 영광일세
두 아들 죽인 사람은 동인이와 같은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이름 잊지 마세요. 안재선. 그런데 손양원 목사님이 군 사령관한테 가서 무릎 꿇고 말하길 ‘내 두 아들이 죽었으니, 안재선이를 죽은 아들같이 삼겠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얼마나 반대를 했겠습니까. 반대하는 가족들에게 목사님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지 않았느냐. 동인이, 동신이를 죽인 원수지만 내가 하나님을 믿고 보니 믿음 안에는 원수가 없더라. 사랑하지 못하면 6년 6개월 동안 갖은 고문과 매를 맞고 유치장에서 지켜 온 나의 신앙 정절이다 무효가 된다.’ 했습니다. 그 말을 가족들이 마음이 숙연해지면서 아버지 생각대로 하자고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안재선씨를 회개시키고 신앙을 갖게 했죠. 손양원 목사님이 살아계실 때는 전도도 하고 신앙생활 잘했습니다. 하지만 손양원 목사님이 순교 당한 다음에는 친척들과 이웃들의 눈총이 따가워서 같이 있지 못하고 어두운 그늘만 찾아다니다가 여전히 피 묻은 손을 가지고 또 무서운 죄를 지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1977년 손양원 목사님 사모님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때 사모님 뵈러 방문했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아파트 경비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말년에 자기 장남에게 목사가 되어서 신앙생활 잘하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안재선 씨 아들 이 지금 원주에서 큰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안재선 씨는 1979년 12월에 48세로 편도선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디도서 2장 14절에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엡2:10).
천 번 만 번 죽어도 마땅한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쏟아 사랑해 주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여러분의 집안을 망하게 하고, 진급도 못 하게 하고 앞길을 가로막는 원수라고 할지라도 용서해 주는 사람 되세요. 그런 분은 자손만대에 하나님의 축복이 끊어지지 않고 형통의 축복을 받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6월 6일은 한일합방 이후로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을 위해서 싸우던 수많은 열사들, 순국선열을 봐서라도 술을 삼가하고, 노래도 좀 삼가세요.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보지도 못했지만 여하튼 순국한 그 공로 위해서 하루만이라도 경건한 자세로 영특하고 복덕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함을 드리겠습니다.
어디 가든지 나라 헐뜯지 마세요. 나라 사랑하세요. 나라 위해 기도하세요. 기도하는 백성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원수라도 현충일 맞이해서 얼음 녹듯이 다 사랑해 주고, 다 용서해 주고 다시 한 형제로서 민족의 앞날을 근심 걱정 없이 잘 사는 나라 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다시 한번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기도 올리겠습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 나라 민족을 위해서 충성스럽게 봉사하고 헌신하다가 순국한 그 영혼들 그 자식들 가족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현충일 하루만큼은 일상적으로 세상적으로 먹고 마시고 취하고 큰 소리로 노래 부르는 것들을 삼가고,다시 한번 그분들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저희가 저희들이 기도할 수 있는 은혜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대한민국이 잘 되기를 소원합니다. 모든 정치인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서로 도와 의견이 상통되고 싸우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잘 설득해서 나라 민족을 위해서 같이 손잡고 일하는 아름답고 귀한 정치가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우리 대한민국에서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한번 저희들이 나라 있다는 것을 감사하고 깨닫고 나라에 대해서 고마움을 느끼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에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감사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10년 6월 6일 주일 2부 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