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아랍은 왜 자꾸 싸울까? (2)
이스라엘과 아랍은 왜 자꾸 싸울까? (2)
아랍(이슬람교)권과 이스라엘 간의 대립의 역사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그 후손들의 땅으로 허용하셨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후손 중 이스마엘과 야곱의 아들 에서의 후손들은 이삭이나 야곱의 후손들에 맞서 열두 방백을 이루어 현재의 중동 지역의 광범위한 땅에 정착하여 살았다. 이들 사이에 본격적인 대립과 갈등이 시작된 것은 마호메트의 탄생과 그에 의한 이슬람교의 창시였다.
무함마드의 등장과 이슬람교의 창시
서기 7세기 마호메트에 의해 이슬람교가 창시되고 아랍 형제 국가들이 이슬람 아래 뭉치면서(마호메트가 메카를 정복하고 서거한 630-632년경) 아라비아 반도의 변방에 있던 아랍민족이 고대 근동의 주역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AD 638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무함마드가 꿈에 예루살렘을 여행하고 그곳 성전산에서 하늘에 올라 알라신을 만나고 왔다고 전해진 내용을 이루기 위해 AD 691년에 바위사원을 짓고 이후 알 아크사 사원까지 건설하며 이슬람 성지를 구축하였다. 이곳은 잘 알다시피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곳으로 훗날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했던 곳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지가 아랍 이슬람 세력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래도 당시에는 아랍 민족과 유대인들간의 충돌이나 갈등이 크게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국가와의 충돌
AD 1077년 이슬람 세력 중 셀주크 튀르크가 다시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후부터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종교활동을 억압함으로써 본격적인 갈등 이 빚어지게 된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후 시작된 기독교는 AD 313년 밀라노 칙령에 의해 공식 종교로 인정받게 되고, 392년 로마의 국교로 채택되며 지금의 유럽 전 지역을 아우르는 세계 종교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들 기독교인들 의 성지는 당연히 예루살렘이었고 중세 시대 기독교 신도들의 최고의 버킷 리스트는 성지 순례였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는 셀주크 튀르크인들이 성지 순례객들을 핍박하고 방해하자 분노한 서방 세계는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신이 명하셨다”는 유명한 연설로 제1차 십자군 원정을 시작하여 200여 년 간 8차례에 걸쳐 예루살렘의 탈환을 두고 유럽 기독교 세력과 아랍 이슬람 세력들이 끊임없는 전쟁을 벌여왔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며 그 대척점에서 아랍 국가들과 대립하는 구도가 이때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유대인에 대한 서방사회의 핍박
AD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유대인들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게 된다. 이후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한 이후에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지게 되었다. 그래서 중세시대 유대인들은 유럽사회에서 ‘왕따’ 를 당하였을 뿐아니라 토지 소유의 금지, 직업 선택의 제한을 받게 되었다. 당시 기독교사회에 서 금지된 금융업, 고리대금업 등에 진출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는 더욱 큰 지탄의 원인이 되었다. 12세기 후반부터는 기독교인들이 유대인과 동거하거나 고용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16세기 후반에는 이탈리아, 독일 등을 중심으로 유대인들을 격리하는 ‘게토’(Ghetto)가 확대되었다. 이러한 유대인 차별의 연장선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에 의해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되는 ‘인종청소’의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한편,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을 점령한 아랍세력도 이슬람교 창시 이후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과 추방, 개종 강요 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야말로 유대인들은 그들의 땅에서뿐 아니라 유럽등 전세계에서 ‘공공의적’이 되고 말았다.
이스라엘의 건국과 미국과의 동맹
1, 2차 세계대전은 세계 질서의 재편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운명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영국에 의해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하게 된 것이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포하자 11분 만에 미 국은전세계에서가장 먼저 이스라엘을 정상국가로 인정하였고 중동 정책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 1960년대부터 이스라엘의 절대적인 우방국가가 되었다. 이는 미국의 대중동 정책에서 사우디와 카타르등 친미 아랍국가와 더불어 이란, 이라크 등 반미 아랍국을 제어하는 데 있어 이스라엘이 가장 중요한 국가로 부상하였다.
한편 전 세계의 ‘왕따’가 되어 핍박받던 유대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종사한 금융업에서 성공하여 미국의 월가를 점령하게 되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650만 명 정도의 유대인들은 미국 인구의 2%밖에 되지 않지만, 그들은 세계적인 기업(페이스북, 구글, GE, 엑손모빌, 씨티그룹, 골드만 삭스, 스타벅스 등)을 설립했고, 미 상원의 10%(100명 중 10명), 하원의 8%(435명 중 30 여 명)가 유대인이다. 세계 4대 통신사와 뉴욕타임스, NBC, CBS 등의 방송사, 할리우드의 5대 메이저 영화사 등이 거의 유대인 소유이거나 유 대계 자본에 의해 세워졌다. 거기다 유대계 지원을 받는 AIPAC(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는 10만 명의 회원을 거느리며 막강한 자금력으로 미국 정치판을 좌우하며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많은 정치 후원금을 제공한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미국은 자국내여론과 정치, 재정 등 모든 분야에서 유대계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여기에 미국 공화당의 주축인 복음주의 개신교 세력은 이스라엘을 통해 예수가 재림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전폭적인 이스라엘 지원 세력을 자처하고 있다.
최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등 무리한 가자지구 점령에 세계의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어도 미국은 이스라엘 편에서 무기 제공과 지지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제공한 군사 원조는 지금까지 2,600억 달러(약 350조)에 달하고, 지금도 매년 38억 달러 (약 5조원)의 군사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원수의 친구는 철천지원수
오늘날 아랍과 이스라엘의 대립은 양자간의 문제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차방정식이 되어있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십자군 전쟁에서 예루살렘을 사이에 두고 아랍과 서방 기독교 국가 간의 대립으로 갈등의 본격화된 것이, 지금은 그 서방세력의 정점에 미국이있다. 원수의 적은 나의 친구가 되지만 원수의 친구는 철천지 원수가 된다. 냉전체제에서 미국은 중동국가의 친미화를 진행하여 사우디, 카타르, 이집트, 요르단 등을 우방 세력으로 재편한 반면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 탄등과는 등지게 됐다.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사담후세인 제거, 이슬람 세력의 9.11 테러보복 등으로 그 갈등은 점증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아랍권이 서로 처절하게 싸울 수 밖에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계속)
글_홍봉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