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의 음식, 쥐엄나무 열매
빈자의 음식, 쥐엄나무 열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는 모습을 보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원망하며 질책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비유를 통해서 말씀의 뜻을 가르치셨는데, 그중 하나가 유명한 ‘돌아온 탕자의 비유’이다(눅 15:11-32).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는 그야말로 비참한 음식의 끝을 보여준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부정한 짐승인 돼지와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같은 수준으로 처참하게 몰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쥐엄나무’라는 명칭은 한국의 ‘주엽나무’와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에 붙은 번역이다. 실제 이 나무는 콩과의 상록수로서 주엽나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별도의 종이다. 쥐엄나무는 생존력이 뛰어나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자랄 수 있다. 보통 쥐엄나무 열매는 여름이 되면서 콩깍지 모양으로 주렁주렁 열린다. 한여름을 지나면서 갈색으로 딱딱하게 굳어가며 열매가 익게 되는데, 껍데기 안에는 10~15개 정도의 까만 씨앗이 들어 있다. 껍데기가 딱딱하긴 하지만 오래 씹으면 씁쓸한 맛과 함께 단맛이 느껴지며, 비타민과 단백질, 무기질, 섬유질 등 영양학적 밸런스가 좋은 편이라고 한다. 주로곱게 갈아서 차로 끓여 마시거나 조미료, 짐승의 사료로 사용한다. 재미있는 것은, 현지 선교사들은 성지 순례 온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씨앗을 보여 주며 그중 가장 맛있는 씨앗을 골라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쥐엄나무 씨앗을 고른다고 한다.
쥐엄나무 열매
사실 쥐엄나무 열매가 돼지 사료로 쓰이는 것은 한꺼번에 많이 열리기 때문이다. 한 그루에 보통 150~200kg정도의 열매를 얻을 수 있다. 희소성이 없기 때문에 가치도 낮게 보는 것이다. 다른 이유가 더 있다면, 쥐엄나무 꽃은 향기가 아니라 개똥 같은 악취를 발한다는 점도 있다. 쥐엄나무 열매는 극빈자를 위한 먹을 거리이기도 했다. 마태복음 3:4에서는 세례 요한의 음식을 ‘메뚜기와 석청’이라고 하고 있는데, 여기 ‘메뚜기’는 히브리어 ‘하가빔’(חָגָבִים)으로, ‘쥐엄열매’를 가리키는 ‘하루빔’(חָרוּבִים)과 매우 유사하다(참고로 히브리어 성경에서 비슷한 자음인 ג와 ר의 교호적 사용은 상당히 자주 발견된다). 쥐엄나무는 근동 지방에서 ‘메뚜기 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으며, 초대교회 전승들에서는 쥐엄열매를 ‘세례요한의 빵’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세례 요한이 거하던 유대 광야에는 메뚜기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고려할 때, 세례 요한이 극빈자를 위한 쥐엄 열매를 먹은 것을 그 나무의 이름과 영적 의미를 고려하여 메뚜기를 먹었다고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저울추로 사용되는 쥐엄나무
쥐엄나무는 영어로 ‘케롭’(carob)이라고 한다.쥐엄나무 열매 씨는 1개당 0.2g 정도로 균일하여 고대에서부터 무게를 재는 기준으로 사용했다. 오늘날 이 ‘케롭’은 다이아몬드 무게를 재는 ‘캐럿’(Carat)으로 발전해서 사용되고 있다. 극빈자의 먹을 것이 가장 귀한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결정하는 데 사용된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오래 기다리는 쥐엄나무
쥐엄나무가 엄청난 수확량을 가진 반면, 열매를 맺기까지 자라는 데 약 70년이 걸린다. 탈무드에서는 바벨론 포로 귀환에 걸리는 70년이라는 기간을 인내할 것을 교훈하기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쥐엄나무를 땅에 심는 의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성도는 쥐엄나무를 낮고 천한 멸시의 대상으로 보는 자가 아니라, 쥐엄나무로부터도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쥐엄나무는 비록 귀히 여김 받는 나무가 아니고, 그 열매도 돼지와 극빈자의 열매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쥐엄 열매가 오늘날 가장 귀한 보석의 단위를 제공하고 있듯이, 쥐엄 열매를 먹던 탕자는 결국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회복하였다. 또한 세례 요한이 메뚜기나무 열매로서 쥐엄 열매를 먹으며 회개를 종용하는 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사망 권세를 무너뜨리셨다면, 오늘날 우리도 인내하며 끝까지 맡겨진 사명을 다할 때 마침내 마지막 나팔소리의 날을 여는 가장 귀한 열매로 쓰임 받게 될 것이다.
글_정디모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