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힘을 주는 이야기 : 십자가에 달려서(베드로전서 2:21-22)
삶에 힘을 주는 이야기
십자가에 달려서(베드로전서 2:21-22)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기록한 때는 예수 믿는 사람이 둘, 셋 모이면 다 잡아 죽이든지, 옥에 가두는 때였습니다. 이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고 흩어져 나그네가 된(벧전 1:1)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고, 하나님 말씀으로 영력을 얻어서 자신 있게 예수를 믿으라는 의도에서 베드로전서가 기록됐습니다(벧전 4:16). 온갖 욕설과 수난(受難)과 환난과 고통 가운데 뼈에 사무치는 전율(戰慄)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예수를 믿었던 제자들을 사순절에 우리는 깊이 생각하고 깨달아야 됩니다. 말로만 주님의 제자라고 하지 마세요. 우린 그 자리 구경도 못했고 가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합니다.
베드로전서 2:21처럼 주님의 거룩한 믿음의 발자취는 성경을 통해서야 발견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24을 볼 때 ‘그 십자가에 달렸다’는 말씀의 중심 뜻은 ‘예수의 수난’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진해서 받은 수난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 거죠.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했습니다(마 16:16). 그때, 예수님께서 ‘그 사실을 알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다.’ 말씀하시고,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마 16:17-19). 그리고 예수께서 앞으로 많은 제사장들에게 고난 받을 것과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고, 삼일 만에 살아난다는 것을 가르치셨을 때, 베드로가 신앙고백 한 지 얼마 안되어 ‘그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느냐’라며 말렸죠. 이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하셨잖아요(마 16:21-23). 누가 시킨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담당하고 인류의 죄를 걸머져야 되기 때문에 스스로!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걸은 겁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24에 “친히”라고 했어요. 우리 말로 ‘몸소’입니다. ‘강력한 자원(自願)’입니다. 우리를 구원시키는 것도 ‘믿으려면 믿고, 아니면 관두어라’가 아니라, 그냥 믿게끔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하나님과 동질이며 동등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 때문에 깡통모양으로 다 텅텅 비웠습니다(빌 2:6-7). 그러니까 세상 욕심이 없고,내 마음 가운데 아버지 명령만 담으신 거예요(요 12:50). 말씀 한마디로 다 창조가 되는 분이 나 때문에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는데 우리가 얼마나 부자입니까.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가난하게 됐습니다. 그 말씀이 고린도후서 8:9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난해도 예수보다 부자입니다. 우리는 그래도 집에 가면 베개와 이불은 있잖아요? 예수는 집도 없고,이불도 없고, 배게도 없어요. 하나님의 외아들 독생자라고 했죠? 그러나 인간들이 예수가 오시는 과정을 모를까 봐 설명하는 과정에서 외아들이라고 한 것이지, 뜻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외아들 자격도 포기했어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와야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 보좌까지 다 내동댕이 쳤어요(요 1:14). 그러니까 고난주간 전에 사순절에 모든 생활 절제하고 올바른 사순절을 지내시기 바랍니다. 죄 없는 예수님이 친히, 자진해서 모든 죄를 맡으시고 우리에게 죄가 없다 선언 하셨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믿기만 하면 죄 없다 하시는 거예요. 믿기만 하면 되는데, 믿지 못하면 죄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질 사람이 아닙니다. 히브리 4:15이나, 고린도후서 5:21에 예수는 죄를 알지 못한다고 했어요.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자진해서 취하신 유일한 수난, 무죄하신 자의 고통이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자기를 넘겨줬습니다(벧전 2:23). 예수님께서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이지만 인류의 죄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자격을 포기하고, 독생자의 자격을 포기하고,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와서 인류의 죄를 걸머지고 담당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보배로운 피를 흘렸습니다. 이 피가 인류의 죄를 사하는 권세,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인류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 하실 때, 하나님께서 “암! 네 말대로 하지!” 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4:25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마귀, 귀신, 도깨비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죽임으로 승리한 줄 알았지만, 십자가를 통해 새 생명으로 부활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십자가는 절대 실패가 아니라 승리의 승리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벧전 2:24-25).
인류의 죄를 친히 담당했다는 것은 예수의 무죄하신 육체를 제단 위에 친히 올려놓는 것입니다. 구약 때 짐승을 제물로 잡아서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을 붙여 번제를 드리는 것처럼, 예수가 그 지옥의 고통, 유황불을 체험한 것입니다. 계시록 20:15에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유황불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예수가 인류의 죄를 담당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생명책에 없는 인간들의 죄, 그걸 담당하기 위해 몸소 그 뜨거운 유황불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저 간단하게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주님의 고통은 전 인격적입니다. 겉사람부터 속사람까지 고통을 받았습니다. 마음이 갈래갈래 찢어지고 머무를 곳이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못박히고 매맞는 고통보다 더한 유황불의 뜨거운 고통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사순절에 십자가에 대해 세밀히 증거할 때, 이것을 깨닫는다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 안 하는것도 죄 짓는거죠. 성경보지 않는 것,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고 교회봉사 안 하는것 전부 죄 짓는 겁니다. 이 사랑을 깨닫는다면 스스로 감동 감화 받고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져 온몸에 전율이 말도 못합니다. 마음에 진동이 오고 결심하게 됩니다. 과거에 지은 죄를 기억 안 할정도로 완전히 새롭게 되는거죠(고후 5:17).
우리가 밥먹고 설거지하는 그릇도 세제로 닦고 물로 여러 번 닦아야 합니다. 빨래를 할 때도 비누칠해서 비비고 방망이로 두드리고 삶아야죠. 또 세탁기에 집어넣어서 돌려야 하얗게 되죠.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은 것은 구질구질하게 씻고 또 씻고 한 것이 아닙니다. 단번에! 단번에 사하신 것입니다(롬 6:10, 히 9:28, 10:10). 인류 시조 아담이 지은 원죄(原罪), 우리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유전죄, 우리가 태어나서 알게 모르게 마음으로 지은 죄, 눈으로 귀로 지은 자범죄, 이 모든 죄를 단번에 십자가상에서 사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좋아요?
이사야 53:7을 볼 때,양은 털깎는자 앞에서 잠잠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릴 때, 주변에서 욕하고 별 이야기 다해도 대답도 안했습니다. 이시야는 고난 당하는 예수를 향해서 사람들이 “죄가 있어 저런 일을 당한다”(사 53:4)고 말한다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8:16-17에는 예수님이 얻어터지고 매맞음으로 우리의 모든 병이 다 낫는다고 기록돼있습니다. 우린 목자없는 양과 같습니다.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그런 우리와 뱃속의 아이들의 죄까지 담당한 거예요. 그것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사도행전 5:30에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게 설교할 때도“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라고 표현 했습니다(행 10:39). 왜 그랬습니까. 신명기 21:23을 보면, 구약 때 저주받은 사람은 나무에 달아 죽이게 돼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담의 죄부터 재림할 때까지의 모든 인류의 죄를 다 걸머지신 것입니다. 식품이나 약을 사면 유효 기한이 써 있어요. 그러나 예수 십자가는 세세무궁토록 공효가 기한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결과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 죄를 멀리 날려 버리셨습니다. ‘동에서 서가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옮기셨다’ 했습니다(시 103:12). 둘째, 예수의 등 뒤로 던져버렸습니다. 사람의 등 뒤로 던 지면 죄가 또 찾아옵니다. 그래서 다시 못찾아가도록 예수님의 등 뒤로 싹 던져 버리셨습니다(사 38:17). 달라고 해도 주지 않습니다. 셋째, 도말하고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안개는 바람이 불던가 해가 뜨면 사라집니다. 은혜를 받으면, 예수를 가까이 하면 죄가 이처럼 다 사라질줄 믿으시기 바랍니다(사 44:22). 넷째, 절대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사람은 조금만 수가 틀리면 또 그 사람의 죄를 끄집어 냅니다. “너 나한테 짜장 몇 그릇 얻어 먹었냐? 내가 너한테 10번 이상 샀다! 어떻게 짜장 한그릇을 안사냐?!” 이게 인간입니다.하나님은 그 죄를 절대 기억하지 않으십니다(렘 31:34). 다섯째, 죄를 덮어버리셨습니다. 자꾸만 죄를 들춰내니까 하나님께서 남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죄를 ‘탁!’ 덮어 버리셨습니다(시 85:2). “믿는대로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마음 가운데 ‘나 죄지었는 데…’하지 마시고! 죄 없다고 말씀하면 ‘아멘’ 해야 됩니다. 여섯째, 그래서 죄를 발견치 못하도록 해 주셨습니다(시 32:1, 롬 4:7). 일곱째, 죄를 죄로 인정하지도 않으십니다(롬 4:8). 사람들이 ‘누가 죄졌다!’라고 하도 고발하니까, 하나님께서 마지막 결론으로 “나 그거 죄로 인정 안해!” 하신 거죠. 고발하러 온 사람이 창피해지는 거죠. 끝입니다. 끝! 돈주고 버스타고 전철타고 교회 올 만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업에는 돈 계산하지 마 세요. 교회는 하나님 것입니다. 금도 은도 하늘 땅도 공기도 우주도 다 하나님 것입니다(학 2:8). 말씀 받는 순간이 제일 좋습니다. 하나님도 기뻐하고 우리도 기쁩니다. 은혜가 안 되면 지루하기만 하죠. 기도 안하면 죄가 됩니다. 시험 든 사람입니다. 자기 연륜, 자기 경험과 지식으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2:13에“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했습니다. 첫번째, 말씀을 읽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는 것이 바로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는 순간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을 제쳐놓고 내가 노력해서 성공하겠다?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판 웅덩이는 터진 웅덩이입니다. 하나님께 맡기세요. ‘하나님 내가 이 웅덩이를 팔려고 합니다. 이 사업으로 돈을 벌고 저축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는 길, 가난한 자, 불쌍한 자를 도와주고, 앞으로 큰 기업이 돼서 대대에 끊어지지 않고 자식들이 죄 짓지 않고 이 기업을 맡아 유지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세요.’ 이런 우물을 파야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 다시 한번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깨달아, 빼앗기지 않고, 그 나라 갈 때까지 구원의 십자가를 기억하고, 사랑하고, 아끼면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2008년 3월 7일(금) 사순절 특별집회 휘선 박윤식 원로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