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풍년 추수감사절(영적 추수를 잘하자)
감사의 풍년 추수감사절(영적 추수를 잘하자)
하박국 3:17-18, 요한복음 4:3-38
고린도전서 13:13에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덕 목인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나오죠. 거기에 제가 ‘감사’ 하나를 더 포함시켜서 기독교 덕목에 대해 말씀을 가르치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살전 5:18). 감사에도 ‘차원 높은감사’가 있고 ‘차원 낮은 감사’가 있습니다. 낮은 차원의 감사는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남과 비교하는 감사’입니다. ‘나는 저분보다 못살기 때문에 조금만 해도 되겠지.’ ‘금년에 나는 사업을 망쳤다. 다른 때는 추수감사절 헌금을 많이 했지만 금년에는 망했으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 성경에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상황이 나빠졌다고 감사가 없으면 되겠습니까?
한 알의 씨가 땅에 떨어지면 그 속에 생명의 신비스러운 생동으로 말미암아, 움이 지축을 뚫고 올라와‘ 내가 여기 있노라’하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같은 원리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고 말씀합니다. 사기꾼은 사기를 심습니다. 도둑놈은 도둑을 심어요. 그대로 거두는 것이 하늘의 법칙입니다. 이러한 파종의 원리를 주님께서 직접 교훈하고 계십니다.(마 13장)
사마리아 여인의 봄에 파종하신 예수님
심령을 뚫어 보시는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과 우물가에서 대화하시면서 이 여인이 메시아를 사모하고 기다리는 것을 아셨습니다. 속담에 어느 구름장에 비 올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양반들, 지체 높은 분들만 하나님 믿고 교회 부흥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2000년 전의 봉건사회에 서 사람들이 외면하는 변두리 인생, 천대받는 여자였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의 봄에 파종하셨습니다. 여인이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믿음이 생기고 심령이 성장해서 수가성에서 메시아를 증거 하는 것을 보세요. 그때 예수님께서 “네가 말하는 메시아가 나다!” 하셨죠(요 4:26). 여인이 깜짝 놀라 물동이를 팽개치고 동네에 들어가서 “내가 메시아를 만났으니 와 보라!”고 증거하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믿었다고 성경에 기록돼 있잖아요? 여자가 예수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순간으로 믿음이 성장한 것입니다.
영적 추수의 기쁨
병에 걸려서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으면 차차 시간이 지나야 났습니다. 그러나 예수 앞에서는 그런 과정이 필요 없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렸을 때도 말씀 한마디에 순간적으로 나아서 주님 식사 대접을 하기 위해서 수종들었습니다(막 1:29-31). 순간이고 기적입니다. 물 뜨러 온 여인과 대화하는 사이에 순간적으로 여인 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을 예수님이 봤습니다. 그걸 보시고 영적 추수가 가능한 절호의 기회로 여기시면서 제자들을 향하여 격려와 더불어 희망 찬 영혼 추수! 희년(禧年)을 선포했습니다. 희년은 50년마다 한번 돌아옵니다. 희년이 되면 남에게 빚진 것도 다 탕감해 줍니다. 내가 10억을 빚졌어도 희년이면 있던 것을 없는 것으로 해줍니다. 종들마다 전부 다 자유를 줘요. 어두운 죄악에 갇혀 있던 만 인간들이 죄악과 어둠의 종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께서 희년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생의 가을, 영적 추수가 더 귀중하단 말입니다.
시편 126:6 말씀을 볼 때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게 하시고, 이방 왕 고레스를 통해서 해방시켰죠. 그리고 안식일, 주일에 처음으로 예배드렸습니다. 입에 웃음이 가득하고, 찬양과 감사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드리는 광경을, 농부가 고생해서 가을날에 황금물결을 이룬 곡식을 거두는 추수의 즐거움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즐거움을 추수하는 즐거움으로 비유한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평생 예수 믿으면서 교회 나와서 하나님 앞에 마음껏 찬송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종의 입에서 나오는 살아계신 말씀을 들을 때, 풍년에 알곡을 거둬 곳간에 들 이듯하는 기쁨의 감사가 차고 넘친 적이 있습니까? 이 짧은 세상에서 얼마나 정성을 다해서 주일마다 나와서 예배드렸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영적 희년을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즐거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 9:1- 3)이와 같이 신앙적 영적 추수도 즐거운 계절입니다. 마태복음 13장, 24장이나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21장 말씀 볼 때 지금은 종말의 시기입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 가을은 절망과 우수의 계절입니다. 그러나 믿는 성도의 가을은 마냥 기쁘고 즐겁습니다.
사도 바울의 추수
사도 바울의 생의 낙조를 보세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그런 걱정 했습니까? 의로운 재판장 하나님께서 바울이 의의 면류관을 가지고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참으로 소망이 있고 기쁨과 은혜가 충만한 계절 아닙니까? 캄캄한 로마 감옥 속에서, 빛도 없는 가운데 한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의 인생의 가을에 얼마나 믿음의 열매가 알찹니까? 사도바울이 파종해서 열매 맺은 빌립보교회의 가을은 기쁨과 감사가 충만했습니다. 그가 말씀을 가르칠 때 교인들이 그 말씀을 얼마나 잘 믿고, 얼마나 그 말씀대로 생활했습니까. 바울은 추상적으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돼있는것, 믿음의 열매가 곳간에 들어가는 것을 직접 보고, ‘너희 이름들이 생명책에 기록돼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 4:1-3) 사도 바울은 인생의 가을, 영혼의 추수를 잘했습니다. 자신에게는 낙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고후4:16) 몸은 늙고, 죄인이 아닌 죄인의 몸이 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도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신앙은 이사야 40:31 말씀처럼 독수리 같은 청춘입니다. 강한 폭풍이 몰려온다 해도 날개를 쫙 뻗고 올라갑니다(시 103:1-5). 생의 낙조에 로마 감옥에서 이러한 기쁨과 소망으로 이 말씀을 증거했다는 걸 생각할 때 머리가 숙여집니다.
성도의 영적 가을
인류 역사의 가을은 죄악으로 물들어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반면 성도들의 영적 가을은 생명의 추수기입니다. 식물은 물렁물렁하던 열매가 때가 되면 알차고 단단한 열매로 변합니다. 자연계에서 찬 이슬과 서북풍이 부는 것처럼 우리는 예배 시간마다 은혜의 바람이 불어서 우리 영혼을 알차게 영글게 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환란과 얘기치 못한 비바람의 물결이 들이닥칠 때 믿음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다 쓰러집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성장한 신령한 영적 나무는 꿋꿋합니다. 부러지지도 않아요.
영적 결실의 결과는 뭡니까? 하나님 말씀에 자립(自立)하는 신앙이 있어야 됩니다. 인생의 가을을 맞이해서는 우리 영혼의 추수할 것도 생각해 봐야죠. 교회 나올 때 추수하는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 나오면 추수에서 빠지는 시간이 됩니다.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생각하세요. 위엣것을 찾으라 했습니다(골 3:1).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움직입니다. 성경 말씀 중에 맞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예언이 맞았습니다. 재림에 대한 예언도 분명히 맞게 돼 있습니다. 세상은 끝이 있습니다. 말씀 앞에서 정말 하나님을 두렵게 믿고 ‘참 말씀대로 내가 믿고 살아야 되겠다. 내 자식들에게 물질은 전해 주지 못했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 그대로 인수인계 해줘야 되겠다. 그것을 내 유산, 내 기업으로 줘야되겠다.’하는 마음을 먹을 때 우리 심령이 누렇게 익은 가을 열매가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자연계에도 이른비가 있고 늦은비가 있다고 했죠?(렘 5:24, 신 11:14, 욜 2:23) 마지막 예언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우리 마음에 파종하시고 그 말씀이 거룩하게 했습니다. 또 성령께서 가만히 있습니까? 감화, 감동을 주고, 깨닫게 하고, 믿게하고, 알게 해주고, 모든 생애에 보람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희망찬 소망을 가지고 살 수있게 합니다. 이래도 1년 내내 감사가 없습니까? 성경 말씀은 미완성이 아니라 완성된 계시입니다. 마지막 영적 추수의 재료가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입니다.
무게 있는 겸손의 가을
가을은 무게있는 겸손의 미덕을 알려주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에게 축복해 줍니다(벧전 5:5-6).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는 은혜 주십니다(약 4:6). 곡식은 알차게 영글면 고개를 숙입니다. 그런데 같은 시간, 같은 때, 같은 이슬, 같은 비 맞고 같은 태양 빛을 받았는데 열매가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열매 있는 것들은 머리 다 숙이는데, 열매 없는 것은 빳빳해서 이리 흔들, 저리 흔들합니다. 무게 있는 믿음, 부동(不動)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을 은혜로 가득 채우세요. 세상 것 때문에 쉬 이동하지 마세요, 이제는 곡식의 내용이 충실해야 됩니다. 그것이 신앙의 겸손입니다.
가을은 즐거운 수확의 계절입니다. 다가오는 엄동설한(嚴冬雪寒) 어떻게 살려고 합니까? 엄동 설한 같은 심판이 다가오기 전에 가을에 수확해서 저장을 잘 하세요. 타작마당에 타작하면 알곡만 남습니다. (마 3:12) 알곡은 모아 곳간에, 쭉정이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던집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의 알곡이 되어야 천국 가죠. 쭉정이는 못갑니다. 같은 과일나무인데도 먼저 익는 것이 있습니다. 그 열매에 주인의 손이 먼저 갑니다. 설은 것은 일단 주인이 보긴 하지만 주인의 손이 안 갑니다. 시골 가보세요. 따다, 따다 가지 꼭대기에 몇 개가 남습니다. 쭉정이죠. 따지 않습니다. 말 못하는 식물이지만 엄동설한에 얼마나 춥겠습니까?. 그때마다 사람으로 비유해 봅니다. ‘아휴, 내가 저기에 있으면 큰일 나지.’ 합니다.
지금은 심판의 때입니다(렘 51:33). 심판 전까지는 악인 중에서 의인을 골라내요. 다 교회에 데려옵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는 의인 중에서 악인을 골라냅니다. 교인 가운데 믿지 못하는 것을 마지막에 다 골라냅니다. 마태복음 13:49-50에 기록돼 있습니다. 꼭 잊지 마세요(호 6:11). 지금은 타작마당에 도리깨로 쥐어팰 때입니다. 영적으로 생활을 정리하세요. 지금은 아버지의 집을 채우는 수확과 저장을 하는 시기입니다. 주인이 잔치를 베풀고 초청했는데 초청한 자들이 오지 않았죠?(눅 14:16-23) 종을 시켜서 길에 나가 소경, 절뚝발이 다 데리고 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잎과 꽃이 떨어지면 열매만이 남습니다.
생명을 계승하는 계절 가을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계는 질서정연합니다. 창조의 영광을 반사하는 존재입니다. 이 가을이 우리한테 교훈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아!’ ‘예.’ ‘열매가 보이느냐?’ ‘예 보입니다.’ ‘네가 이렇게 되어야 될 것 아니냐?’ 영적 음성을 들어보세요.
야곱이 열두 아들 축복할 때 요셉한테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에 무성한 가지”라고 했습니다(창 49:22-26). 그 가지가 담을 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방 사람도 먹을 수 있잖아요. 젖을 먹이는 복이 있다고 하셨죠. 아이를 낳는 복 아닙니까? 감사해야죠. 금년에 성도 여러분 아들딸이 대학 수능시험을 잘 못 봐서 속상한 사람 있습니까? 그것보다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아들과 딸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세요. 금년에 사업이 부진하다고 시험 들고 교회 안 나오는 사람 있습니까? 그것보다 금년에 물질적으로 좀 손해 봤으나 돈 꾸러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던 건강 주신 것에 감사하세요. 그래도 가정이 망하지 않고 함께 있는 것에 감사하세요.
주전 600년경 하박국 선지자 때 바벨론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와서 온 땅이 쑥밭 되고 폐허가 됐습니다. 무화과, 포도나무, 감람나무, 밭에 심어 놓은 식물까지 철저하게 약탈당하고 유린당했습니다. 애들은 배고프다고 울고 남자들은 매 맞기 바쁘죠. 또 나가기만 하면 끌려갑니다. 얼마나 무서운 시련입니까? 이러한 때에 하박국 선지자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정말 눈물겨운 감사! 눈 뜨고 볼 수 없는 감사입니다.
욥을 보세요. 10남매 전부와 종들까지 다 죽 고, 재산 다 뺏겼죠. 아내까지 ‘여보! 이래도 하나님이 살아 있단 말이야?”하며 저주합니다. 그때 욥의 대답 보세요. “여보, 주신 자도 하나님이고 가져가신 분도 하나님이야.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 받을 분이지. 왜 그래.”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몸에 옴 같은 악창이 나서 기왓장 깨진 걸로 긁을 정도로 가렵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는 거 보세요. 우리가 그 정도까지 되지 않았잖아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 한 가지만 생각해도 감사해야죠.
신앙이 어릴 때는 달라고 하죠. 울죠. 여러분, 이제는 종말이 됐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 속을 시원하게 냉수같이 드릴 수가 있을까?’ 이런 것을 찾으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원하는 소원을 기도하지 않아도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절대 ‘낮은 감사’하지 말고, 놀라운 하나님 축복 속에서 풍년의 감사, ‘감사 위에 감사’ 그러한 감사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확실히 믿음이 있는 자, 언제나 영혼의 풍년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 언제나 가난뱅이고, 언제나 흉년입니다. 여러분 가정과 직장과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는 ‘삼남(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이 풍년이면 삼천리금수강산이 굶어 죽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 평강제일교회가 풍년 가운데 풍년이면 절대 대한민국 백성이 영적 세계에서 가난과 굶어 죽음이 없다는 것을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언제나 말씀 충만, 은혜 충만, 성령 충만, 기도 충만, 감사 충만해서 그 나라 갈 때까지 확실하게 알찬, 토실토실하게 영근 열매가 돼서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산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2003.11.16. 추수감사주일 2부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