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위엄이 앞서가면 능히 당할 자 없다
하나님의 위엄이 앞서가면
능히 당할 자 없다
출 23:20-28, 롬 11:22
출 23:27 내가 내 위엄(威嚴)을 네 앞서 보내어 너의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파하고 너의 모든 원수로 너를 등지게 할 것이며
롬 11: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仁慈)와 엄위(嚴威)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어제와 그제 숨을 못 쉴 정도로 많이 아팠습니다. 만 석 달이 넘었죠. 병원에서 폐 사진을 찍어보니 3분의 1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합니다. 의사들이 조심스럽게 말하기에 “괜찮습니다. 오늘 죽는대도 후회가 없고, 마음에 떨리고 두려운 게 없습니다. 바로 천국으로 가는데 뭐가 걱정입니까.”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평강교회에 말씀을 다 못 전한 것, 너무 아파서 한 일주일 구속사 시리즈를 쓰지 못한 것입니다. 어제부터 식은땀이 좀 덜 나고, 기침이 안 나와서 오늘 단에 서게 돼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많이 아파보니 걸어 다니고, 식사하고, 친구끼리 농담하고, 부모 슬하에서 오순도순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아침에 계란 한 개와 죽 조금 먹고 단에 섰습니다. 오늘 설교는 구속사 시리즈 제13권에 나올 것을 평생에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설교’라는 각오로 준비했습니다. 제목은 ‘하나님의 위엄이 앞서가면 능히 당할 자가 없다. 하나님의 위엄이 함께하는 평강교회 구속사’입니다.
오늘 본문 중 출애굽기 23:27에 ‘하나님의 위엄’이 나옵니다. ‘위엄’,위엄 위(威), 엄할 엄(嚴)입니다. 위태로울 위(危), 험할 험(險)이 아닙니다. 뜻은 ‘의젓하고 엄숙함’, ‘감히 범할 수 없는 존엄성’,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위엄의 속성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없어요. 오늘부터 여러분이 생명 다할 때까지, 나라가 다할 때까지 아침저녁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위엄을 우리 가족에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조카에게 보내 주시고, 주님 재림할 때까지 평강교회에 함께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정과 직장, 사업에 하나님의 위엄이 함께 따라다니면 절대 실수하지 않고 중간에 죽지 않고 끝까지 간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저의 생애 마지막 설교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 하와의 타락 이후 지금까지 흘러 내려오는 역사(歷史)는 만세(萬歲) 전에 택하신 성도를 구원하기 위해, 최후의 목적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적 경륜 속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죄악 된 인간에게 말씀을 줘서 깨닫고 믿고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첫째 소원입니다.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마 18:14).
예수님이 여리고 성에 가셨죠. 키 작은 세무서장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한테 듣지도 않으셨는데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留)하여야 되겠다.”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여리고 사람들에게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는 악질 매국노 취급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삭개오가 “내가 남한테 토색(討索)한 것, 돈을 빼앗은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습니다.”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삭개오야, 너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구원이 네 집에 이르렀다”하셨죠(눅 19:1-10). 본문에 위엄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하나님의 위엄이 벌써 삭개오에게 가서 역사(役事)한 것입니다.
성경은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歷史)가 아닙니다. 창조라는 큰 역사적 사건을 시발점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창조 완성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구속사입니다. 세계사는 구속사예요. 그냥 제멋대로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몰라서 그렇지, 여러분을 향해 벌써 하나님의 마음이 흐르고 있는 거예요. 어떤 죄인에게도 흐르고 있습니다. 예수님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이름의 뜻이‘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한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많은 사람들한테 대접받으러 온 게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왔고 대속물(代贖物)로 내 몸을 바치러 왔다.”하셨죠(마 20:28, 막 10:45). 수천 년의 역사가 한강 물같이 도도히,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속사의 흐름입니다. 누구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습니다(요 3:16). 하나님이 역사의 근원이며, 모든 역사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대상 29:11,12, 욥 12:23, 시 103:19, 엡 1:11). 따라서 구속사는 세계사, 즉 일반 역사의 중심핵을 이끌고 있습니다.
‘구속(救贖)’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걸머지고 죄를 사해 주고 구원시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구속사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구속사의 최고 절정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지불하신 십자가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 그리고 위엄이 한강 물 같이 흐르고 있는데 여기에 누구든지 텀벙 빠져서 목욕하면 십자가 피로 죄를 씻는 것입니다. 구속사의 이면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위엄이 그 백성과 함께하시므로, 마지막에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말씀으로 승리하고, 세상 죄와 상관없이 천국에 입성하는 놀라운 역사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위엄은 하나님께만 있다
참된 위엄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족들이 다 자기 볼일 보러 직장 나가고 학교 갔습니다. 하나님의 위엄이 함께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하는 성도에게는 승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신명기 5:24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이시매 불 가운데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들었고 하나님이 사람과 말씀하시되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오늘날 우리가 보았나이다.
역대상 16:27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즐거움이 그 처소에 있도다
‘위엄’이 영어로 어떻게 돼 있는지 영어 성경을 찾아봤습니다. ‘테러’(terror)입니다. 테러, 얼마나 무섭습니까. ‘테러’는 국어사전에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폭력을 사용하여 상대를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는 행위. 테러리즘(terrorism)의 준말’이라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위엄’이 영어로 바로 ‘terror’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악한 세상, 당신의 테러로 가만두지 않습니다. 사람이 테러해도 겁나잖아요? 때려 부수고 쥐어패고 팔을 비틀고 몽둥이로 패보세요. 보는 사람이 얼마나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합니까. 마지막 심판할 때 하나님의 테러! 이 성경 구절들을 찾아 봤습니다.
출애굽기 23:27 내가 내 위엄(My terror)을 네 앞서 보내어 너의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파하고 너의 모든 원수로 너를 등지게 할 것이며
신명기 34:12에는 ‘엄청난 테러’(all the great terror, 모든 큰 위엄), 보통 테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테러는 누구도 말리지 못해요. 엄청난 테러! 욥기 13:21에는 주의 테러(your terrors), 이사야서 2:21 볼 때 하나님의 테러(the terror of the LORD)!
그러므로 하나님이 악의 세력한테 테러하실 때 당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성도는 지켜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시고 또 병풍같이 둘러 진쳐 준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의 위엄이 세상에 역사하시면
하나님의 위엄, 즉 테러가 역사하시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충격과, 죽음에 가까운 공포가 임합니다.
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害)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安慰)하시나이다
위엄이 역사하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과 떨림이 임합니다. 남자들은 모르죠. 옛날에는 여인들이 아이를 낳으러 들어갈 때 마루 밑에 있는 신발을 보고 들어갔습니다. ‘내가 이 신발을 다시 신을 수가 있을까.’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 혹은 떨림! 또, 마음의 병이 될 정도로 큰 걱정거리, 근심, 낙담이 임합니다.
출애굽기 15:15 에돔 방백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거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아무리 권세가 높은 자도 사기가 완전히 꺾여 마음이 돌같이 됩니다.
시편 76:12 저가 방백들의 심령을 꺾으시리니 저는 세상의 왕들에게 두려움이시로다
기운이 빠지고 몸이 돌같이 굳어집니다.
출애굽기 15:16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미치매 주의 팔이 큼을 인하여 그들이 돌 같이 고요하였사오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의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사무엘상 25:37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가 깬 후에 그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고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겁에 질려 기절하거나 놀라서 까무러칩니다. 맥이 팍 풀려 일어날 힘도 없고 뭐 할 생각도 못 합니다. 정신을 놓은 사람이 멀끔히 먼 산을 쳐다보듯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수 2:11,5:1, 사 13:7).
여호수아 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으로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인하여 근심하리라’(신 2:25)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을 위해서 많은 사람을 떨리고 두려워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감히 얼씬도 못 하고, 침범도 못 합니다. 꼭 믿으세요. 신명기 28:10에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한다! 하나님이 여러분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 두려워하고 떨고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33:26에는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하셨습니다.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초주검이 될 수밖에 없죠. 성령의 역사, 마지막 역사입니다.
이스라엘이 강한 대적들과 싸울 때, 대적들은 죽음을 당하는 것 같은 공포, 고통에 사로잡히고 간담이 서늘해져 벌벌 떱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앞서 보내시는 하나님의 위엄의 역사입니다(출 23:27).
위엄을 보내주신다는 약속을 성취하려면
하나님께 늘 가까이해야 합니다. ‘늘 하나님’입니다. 길 갈 때도, 어디 갈 때도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친근히! 친근히! 그러면 반드시 위엄의 역사가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친근히 하는 자, 히브리어 말로 ‘다바크’, 즉 ‘바싹 달라붙는 자’를 대신해서 싸우십니다. 하나님께 바싹 달라붙으면 고통, 근심, 걱정, 누가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을 대신 다 해결해 주십니다. 제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성경도 믿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믿어야죠.
여호수아 23:8-10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기를 오늘날까지 행한 것같이 하라. 대저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날까지 너희를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여러분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습니다. 하나님의 위엄이 우리 대신 싸워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가 뭐라고 할 때 ‘내가 가서 혼내주겠다.’ 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벌써 가셔서 위엄으로 그 마음을 돌같이, 사지(四肢) 백체(百體)가 힘이 없을 정도로 만들어 놓으십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북한 김정은이 핵폭탄을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위엄을 먼저 보내면 그까짓 것 다 먼지입니다. 쓰레기통입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신명기 11:22-23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부종하면 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얻을 것인즉
여기서 부종은 ‘붙을 부(附)’, ‘따를 종(從)’입니다. 히브리 원어나 국어사전에 ‘바싹 따라붙어서 따른다.’고 돼 있죠. 부종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1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1년에 세 번, 유월절과 맥추감사절, 장막절을 지켰습니다. 몇천 리, 몇백 리를 걸어서 예루살렘에 다 가야 해요. 집에 아무도 남지 않습니다. 걱정이 되죠. 그래서 ‘작년에 내가 갔다 왔으니, 올해는 당신만 다녀오라.’고 합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 위엄이 너희 집에 있겠으니 다 가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위엄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돌아올 때까지 그 집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막힌 약속입니다.
출애굽기 34:24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 하리라
자물쇠 잠글 필요도 없습니다. 문 다 열어놓아도 괜찮습니다. 얼씬도 못 하게 하십니다. 얼씬거렸다가는 온몸이 돌처럼 굳어져 죽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평생 예수님 믿으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 ‘위엄’을 보내달라고 한 적 있습니까? 내 가정, 남편, 아내, 외국에 유학 간 자식에게 하나님의 위엄이 함께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죠. 오늘 나와서 이 말씀 들으신 분들에게 자손만대에 축복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리라.’(시 25:14)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하고, 예배드릴 때 건드리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의 원수를 내쫓을 때 보내신 세 가지
이스라엘의 원수인 가나안 일곱 족속을 내쫓을 때 하나님이 세 가지를 보내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자(使者)를 보내셨습니다(출 23:20-28).
하나님의 사자가 우리가 예비한 곳에 이르기까지 보호, 인도해 주십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의심하거나 우습게 대하면 죄 사함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이름이 사자에게 있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멸시, 천대하면 죄 사함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잘 대접하고 순종하면 여호와의 사자가 내 원수의 원수가 되고, 내 대적의 대적이 됩니다. 믿는 우리 평강교회 성도는 하나님의 위엄의 역사로 대적들이 아예 엿보지도 않고 건드릴 생각도 안 합니다. 모든 생활에 형통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몰랐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하나님, 우리 가정에 복을 주시고 형통하게 해주세요.’ 기도했죠. 이제는 ‘하나님의 위엄의 역사가 우리 가정에 머물게 해주세요.’ 하고 꼭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가나안 여섯 족속, 아모리, 헷, 브리스, 가나안, 히위, 여부스를 다 때려 부순 것을 보세요(출 23:23).
두 번째, 하나님의 위엄을 이스라엘 앞서 보내셨습니다.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너의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파하고 너의 모든 원수로 너를 등지게 할 것이며’(출 23:27)를 ‘현대인의 성경’에는 ‘너희가 만나는 백성들을 내가 두려움과 혼란 가운데 빠뜨려 너희를 등지고 달아나게 할 것이며’로 번역했습니다. 우리를 보지도 못한 채 소문만 듣고 다 도망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엄이 이런 축복입니다. 우리가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위엄을 기도로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기도하면 역사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아마 바쁘실 것입니다. 평강교회가 지금까지 ‘복을 주십사, 형통을 주십사, 악한 마귀에 시험 들지 않게 해 주십사’ 이런 기도만 했죠. 하나님의 위엄 속에 그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눈뜨자마자 ‘하나님의 위엄’, 길 가도 ‘하나님의 위엄’이 함께해 달라고 기도하세요. 버스 타고 가다 소매치기당하면 어떻게 합니까. 사고 나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위엄이 있으면 절대 사고 나지 않고, 도둑맞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늘 감사, 찬송하고, 자비와 긍휼을 체험하며 저절로 찬송이 나오게 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왕벌을 보내셨습니다(출 23:28, 신 7:20, 수 24:12).
신명기 7:2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또 왕벌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의 남은 자와 너를 피하여 숨은 자를 멸하시리니
누가 ‘너 가만두지 않는다. 죽여 버리겠다.’ 하죠? 왕벌이 그 마음 먹은 사람을 먼저 죽입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누가 나 죽인다는데 나 죽이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위엄이 늘 함께해 달라.’ 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위엄이 여러분을 지켜줄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강대한 가나안 족속과 큰 성읍들과 하늘에 닿을 듯한 성벽과 장대한 아낙 자손을 보게 될지라도 오늘날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너희 앞에 가나안 족속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을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신 9:1-3) 하셨습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하십니다. 우리 보고 “몽둥이 준비해라. 뭐 준비해라.” 하시지 않습니다. 말씀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엄이 가나안 7족속을 쫓아낸 것은 그들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도 죄는 있습니다. 사악하고 거짓말도 하죠.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그러나 성도는 말씀을 받고 양심이 있어서 회개할 줄 압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보고 기뻐하십니다. 회개하면 죄가 나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하지만, 가나안 백성보다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죄지은 것 들통날까 봐 벌벌 떨고 있죠. 가나안 백성들이 악하기 때문에 죽이셨다는 말씀이 성경에 두 군데 기록돼 있습니다. 결단코 이스라엘이 의롭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은혜와 자비와 긍휼과 구원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성도는 디도서 3:5-8을 영원히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말씀입니다.
디도서 3:5-8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8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얻게 하셨다 하지 말라. 실상은 이 민족들이 악함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신 9:4-5)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너희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한 말씀을 내가 이루기 위해서 너희 죄를 용서해 주겠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왕들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하나님의 위엄이 함께하면 내쫓아 주십니다. 북한이 핵폭탄을 월등하게 많이 갖고 있다 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위엄이 가서 하루아침에 전부 날려버립니다. 제 말이 맞나 안 맞나 보세요. 믿으면 됩니다. 하나님 말씀 믿어야죠.
신명기 4:38 너보다 강대한 열국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너를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네게 기업으로 주려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가나안 족속들은 잡힌 포로를 세워 놓고 껍질을 벗기는 악한 민족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보자마자 질리죠. 그러나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발하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너희는 하나님께 능력을 돌릴지어다. 그 위엄이 이스라엘 위에 있고 그 능력이 하늘에 있도다.’(시 68:33-35) 하신 그 위엄이 평강교회 성도 여러분 위에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속사에서 실제 성취된 위엄의 역사
출애굽 때 나타난 위엄
출애굽 할 때 열 가지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위엄이 함께 했습니다(출 15:14-16). 모세도 뒤늦게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 내용은 ‘큰 두려움’이라고 했습니다(렘 32:21).
예레미야 32:21 주께서 징조와 기사와 강한 손과 드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신명기 4:34에는 ‘그 힘이 크게 두려움’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 원어로는 ‘큰 공포적인 것들’입니다. 신명기 11:2에는 ‘여호와의 징계와 그 위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신명기 26:8-9에는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로 그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출애굽 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으며’라고 하셨고, 신명기 34:11-12에는 ‘애굽에서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것도 하나님의 위엄입니다. 바다가 육지같이 순간적으로 말랐습니다. 몇 날 며칠이 걸린 것이 아닙니다. 홍해가 갈라지자마자 ‘하나님의 위엄의 역사’로 보송보송하게 물기가 하나도 없고 먼지가 일어날 정도로 말랐습니다(신 4:34-36, 6:22-23, 7:19, 29:2-3, 34:11-12, 수 24:17).
가나안 땅 점령에 나타난 위엄
가나안 땅을 점령한 것도 하나님의 위엄입니다. 이스라엘이 정복 전쟁 초기 6년 중 가나안 왕 38명을 목 베서 죽였습니다. 가장 강했던 왕이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입니다. 다른 가나안 왕들도 이들에게는 벌벌 떨었죠. ‘옥’의 뜻은 ‘긴 목을 가진’, ‘둥근 목’입니다. 르바임 족속으로, 신장이 9규빗, 4m 10cm였습니다. 그가 자는 쇠 침대의 폭이 2m 82cm였습니다. 다른 나라들을 천둥, 벼락 치듯 무섭게 위협하니 모두가 복속해 60개 성을 다스렸습니다. 또 ‘시혼’은 ‘청소하다’라는 뜻입니다. 역시 악질적인 왕입니다. 오죽하면 시편 135 ,136편에 시혼에 대해 노래한 것이 나옵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 두 왕을 먼저 죽였습니다(수 12:1-6, 민 21:21, 35, 신 2:24-37, 신 3:1-11). 가나안 왕과 백성들이 그 소식을 듣고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었습니다(수 2:9-11). 기절할 지경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때 이름과 족보를 바꾸고 이스라엘 백성이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모세가 또 미디안 왕 5명, 에위, 레겜, 수르, 후르, 레바를 처참하게 죽였고(민 31:8), 여호수아는 정복한 31명의 왕을 백성들 보는 앞에서 죽였습니다(수 12:7-24). 이것이 ‘하나님의 위엄의 역사’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북한 김정은이 남한에 대해 오만 욕설을 다 하고 있지만 큰일납니다. 대한민국에는 하나님의 교회가 있고, 구속사를 가르치는 평강교회가 있습니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설교’라고 말씀드렸죠. 이제 기도 좀 바꾸세요. ‘우리 가정에 어두움을 물리쳐 주시고, 남편과 자식에게 은혜 주시고 축복 주시고 근심 없는 복을 달라.’고 기도했지만, ‘위엄의 역사’ 한 가지면 그 속에 다 들어 있는 거예요. 얼마나 좋습니까.
성도 여러분.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수 5:1) 하신 말씀이 거짓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적에 보내실 때, 위엄을 미리 보내셨습니다. 모세는 알았죠. 여호와의 구원은 무기가 많고, 전략이 좋고, 사람이 많고, 이런 것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삼상 14:6). 이사야 60:22에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하셨죠. 그러면서 믿는 성도를 향해 “너희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서 대신 싸워 주겠다.” 하십니다(수 23:10). 너희는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하라는 것입니다(출 14:14).
그러니까 오늘부터 마음 푹 놓고, 정말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서, 정성을 다해서, 어영부영하지 말고, 말씀을 집중적으로 듣고, 교회 생활에 집중적으로 하세요. 무슨 일 해도 하나님 앞에 하는 것같이 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위엄이 여러분들 보호해 줄 줄로 믿습니다.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믿는 성도 하나에게 위엄이 있습니다. 그러니 한 명이 천 명을 쫓을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한 명이 말하는데 상대에게는 천둥이 진동하는 것처럼 들립니다(수 23:10, 사 30:17).
이사야서 30:17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영위의 기호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두 사람이 만 명을 쫓습니다(신 32:30). 만 명이면 1개 사단입니다. 그들이 다 도망가는 것입니다. 다섯이 백을, 백이 만을 쫓죠(레 26:8). 하나님께서 없는 말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위엄의 역사입니다. 그 나라 갈 때까지 기도할 때마다 잊지 말고 꼭 위엄의 역사를 기도하세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마음에 들어야죠. 위엄이 나 대신 기도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딱 들게 됩니다. ‘나, 나, 나’하고 내가 주인 되어 기도하면 내 욕심만 부립니다.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의 앞에 쫓아내고 오늘날까지 너를 당할 자 없다.”(수 23:9) 하셨으니 악한 원수 마귀, 북한군 수천만 명이 온다 해도 평강교회 성도 하나를 당할 자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으면 내 것이 되고, 믿지 못하면 남의 것이 됩니다.
기드온 300용사에게 나타난 위엄
기드온이 3만 2천 군대 가운데 2만 2천을 돌려보내고, 다시 만 명 가운데 9,700명을 돌려보내고 300명을 남겼습니다. 300명이 미디안 군 13만 5천명을 이겼습니다. 1인당 450명을 이긴 것입니다. ‘위엄의 역사’입니다. 그렇게 무섭고 강하던 미디안 군대인데, 무기는커녕 지팡이, 작대기도 없던 300명이 다 쳐부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대신 싸우시는데 그것도 못 합니까. 위엄의 역사를 믿지 못하고 정신이 다른데 왔다 갔다 하면 여러분이 아들, 딸 가족들의 고기를 먹게 됩니다. 이 말씀이 성경에 분명히 기록돼 있습니다(레 26:19, 신 28:53, 겔 5:10, 왕하 6:29, 애 4:10). 장로, 목사, 권사라도 그 앞날이 험악합니다. 믿음으로 말씀할 때 귀담아들어야죠. 절대로 우습게 알면 안 됩니다.
사울 왕과 사무엘 시대에 임했던 여호와의 위엄
암몬 족속이 쳐들어왔을 때 모든 백성이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그때 사울에게 하나님의 신이 크게 일어나고, 여호와의 두려움과 위엄이 백성에게 임했습니다. 천둥이 진동하듯 한번 말씀하실 때 전 백성이 ‘한사람 같이’ 모였습니다. 슬슬 온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30만 명이 딱 모였습니다(삼상 11:7).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집합한 것입니다. 이튿날 사울이 이스라엘 자손 30만 명, 유다 사람 3만 명을 이끌고 나아가 3대로 나누고 새벽에 진 쳐 암몬과 싸우니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승리했습니다(삼상 11:11). 하나님의 위엄이 있는 사람과는 싸워 봐야 다 지는 것입니다.
욥에게 임한 하나님의 위엄
‘욥에게 엄습한 하나님의 두려움’입니다(욥 6:4, 7:14, 23:16). 주님께서 꿈으로 놀라게 하고, 이상으로 두렵게 하셨습니다. 불치병에 걸려도 위엄이 임하면 모든 병이 달아날 줄로 믿습니다.
바벨론 포로 1, 2, 3차 귀환에 함께 하신 하나님의 위엄
제1차 바벨론 포로 귀환 때인 주전 537년, 고레스 왕에게 하나님의 위엄이 나타났습니다(스 1:2-3). 주전 458년 2차 귀환에도 하나님의 위엄이 따랐습니다. 바벨론에 끌려갔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해야 할 텐데 오히려 본토 사람들이 ‘포로민들이 돌아온다.’며 두려워했습니다. ‘나 이제부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유대인이 되겠습니다.’ 하며 개종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스 8:17). 하나님께서 먼저 위엄을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BC 444년 3차 귀환도 아닥사스다 왕에게 하나님의 위엄의 역사가 임하니 느헤미야가 왕에게 요청할 때 바로 이뤄졌습니다(느 2:1-10).
초대교회 부흥도 하나님의 위엄의 역사
사도들이 기사와 이적을 나타내자, 모든 사람이 두려워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 앞에 거짓말을 하다가 즉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위엄의 역사입니다. 하나님 앞에 거짓말하면 죽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살아가기만 하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믿지 않는 자에게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 위엄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백성들에게는 위엄을 보내어 공포에 떨게 하셨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담대함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보니 대적을 두려워하고 있었죠. 그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인자와 담대함을 주시고,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신 20:3, 수 1:6, 7, 9, 수 8:1, 수 10:8, 수 11:6). 오늘 본문 로마서 11:22을 보세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仁慈)와 엄위
(嚴威)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두려워하는 마음, 비겁한 마음, 소심한 마음, 주저하는 마음, 불안한 마음, 근심, 걱정하는 마음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으면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위엄의 역사로 떨리고 두렵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큰 여리고 성도 점령해 놓고, 조그만 아이 성을 치다가 36명이 전사했습니다. 원인이 무엇입니까. 아간이 하나님의 물건을 도적질해 시날산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 50세겔중(重)의 금덩어리 하나를 집에 숨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내와 자식들까지 데려다가 돌로 죽이라.” 하셨습니다. 말씀대로 하니 하나님의 노가 풀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아골 골짜기입니다. 하나님의 물건을 도둑질하고 사기 쳤다는 것입니다.
바스훌이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옥에 가뒀습니다. 그의 본래 이름 ‘바스훌’은 ‘비옥하다’라는 뜻이었지만 하나님의 종을 때리고 오만 모략을 하는 바람에 하나님이 저주 받은 이름 ‘마골밋사빕’으로 바꾸셨습니다(렘 20:1-6). 미골빗사빕은 ‘사방의 두려움, 공포’라는 뜻이죠. ‘사비브’(사빕)가 ‘주위’입니다. 하나님의 위엄의 역사로 사방에 두려움이 임한 것입니다. 고치지 못합니다. 밤낮으로 떨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하나님이 그 이름을 바꾸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다가 사방의 환난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의 위엄의 능력이 함께해 주셔서 위로하셨습니다(고후 7:5-6). 야곱의 딸 디나가 강간당했을 때 레위와 시므온이 세겜 성의 모든 남자를 죽여 복수했습니다. 주변 족속들이 죽이려고 쳐들어오려 할 때(창 34:25-30) 하나님께서 위엄을 보내셔서 야곱 가족들에게 빨리 도망가라고 하신 뒤, 사면(四面) 고을들을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잡으러 가자고 하다가 하나님의 위엄이 임하니 잡으러 가겠다던 마음속에 겁이 생기고 맥이 풀렸습니다. 그래서 칼과 몽둥이를 다 내려놓았죠. 야곱의 가족들이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창 35:5). 하나님의 위엄의 역사입니다. 마지막 때도 북한이 핵폭탄 미처 쏘기도 전에 하나님의 위엄이 가셔서 다 망가뜨리십니다. 대한민국이 선제공격이고 뭐고 하지 않아도 세세 무궁토록 자유 대한민국,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하신 애국가 가사와 같이 될 줄로 믿습니다.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아무리 열국, 강대국이 떠든다 해도 하나님의 위엄이 함께하는 작은 교회와 성도를 당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위엄이 함께하는 평강교회, 작은 교회죠. 그러나 우습게 봤다가는 큰일 납니다. 우리 평강교회는 편안하게 안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마음 놓고 신앙생활에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이름, 위엄이 평강교회에서 한순간도 떠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 나와도 이 교회는 하나님의 위엄이 지키고 있습니다. 걱정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하나님의 위엄이 있는 교회에서 신앙생활 해보세요. 부모가 백번 걱정하는 것 보다 하나님이 한 번만 돌보시면 다 끝입니다. 걱정 없는 것입니다. 구속사 시리즈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위엄이 함께하십니다. 2만 몇천 원짜리 책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위엄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엄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이 사서 전해 줄 때 하나님의 위엄이 함께 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위엄이 말씀을 지켜 주는 것입니다.
유다서 1:25에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 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하셨습니다. 디모데전서 1:17에는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하셨습니다. 로마서 11:36에는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 평강교회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을 믿으면 그 하나님의 위력이 나와 함께 합니다. 이 말씀을 전하면 하나님의 위력이 함께 같이 가십니다. 여러분 자식들과 가족 중에 믿지 않는 사람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의 사랑으로 잘 권면해서 부모도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믿게 해서 온 가족이 하나님의 위엄이 함께 하는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어떤 환난과 핍박으로 세계가 열두 번 뒤집어진다 해도 절대 하나님께서 안전 보장하시고, “내가 책임진다, 대신 싸운다.” 하신 말씀을 믿고 감사하고 늘 보람을 느끼고 사는 맛을 아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2014. 3. 16. 주일 2부 예배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설교
- 23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