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시대에 마지막답게 살자
마지막 시대에
마지막답게 살자
요한계시록 3:18-22
분명히 지금 시대는 마지막 시대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했습니다. 정신 차리라는 것입니다. 운전하는 기사가 정신 차리지 못하면 승객이 다 죽습니다. 가정주부나 가장이 정신 차리지 못하면 생활이 엉망이 됩니다.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남의 권유로, 또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합니다. ‘주일 됐으니 한번 슬슬 교회 나가봐야지.’ 합니다. 근신(謹愼)! 말과 행동을 삼가는 것입니다. 함부로 말 다 하고, 갈 곳 못 갈 곳 안 가리고 행동도 마음대로 하는 사람은 근신이 없는 것입니다. 주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끝날 성도에게 13가지 옷을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성도는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야 합니다. 옷을 입지 않고 여기 나와서 앉아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옷을 벗었다면 참 수치스럽고 창피하죠. 마지막 시대에는 마지막 시대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낙오자, 폐인이 됩니다. 아주 우습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입니다. 열차가 도착합니다. 표는 샀어요. 열차가 왔으면 올라타야죠. 올라타야 할 사람이 우물쭈물 세상 얘기하다가 열차를 놓치면 표 산 것이 무효입니다.
소돔, 고모라 성이 멸망당하고, 노아 시대에 많은 사람이 멸절당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사자(使者)를 통해서 ‘마지막 시대가 됐다. 끝날이 네 앞에 이르렀다.’ 하십니다. 끝날이 내 앞에 도착했다면 마지막 시대답게 마지막 말씀을 받고, 경성(警醒)하고, 각성하고, 뉘우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자신뿐 아니라 가족, 친척, 이웃을 깨우쳐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노아 시대나 소돔, 고모라 성의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노아는 마지막 시대에 누가 보든 말든, 누가 뭐라 하든 마지막 사람답게 살았습니다. 롯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마지막 시대에 마지막 말씀을 받고, 천사에게 손목을 이끌려 나왔는데도 마지막답게 살지 못하고 처참하게 소금 기둥이 돼서 죽는 것을 보세요. 4천 년이나 지났지만 그 소금 기둥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거짓말이 없구나.’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말씀드립니다. 오늘 새벽예배를 위해서 어제 초저녁에 잠깐 자고 밤 12시에 깨서 지금까지 기도하고 성경 읽고 나왔습니다. 지리산에서 기도한 이후 하루 3시간 반 자는 것이 습관이 됐기 때문에 목이 뻣뻣하지 않고 몸이 가뿐합니다. 이 집회 몇십 분을 위해서 밤 12시부터 4시까지 성경 읽고 준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시대의 사람입니까. 마지막 시대 사람입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지막 소원이 있습니다. 근신하면서 정신 차리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어야 할 옷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마지막 사람인데 마지막이 아닌 줄 알고 산다면 그런 정신병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악의 무리입니다. 마지막 때 입어야 할 13벌의 옷을 다 입어야 합니다. 내가 입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입혀 주십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 하와가 죄짓기 전에는 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창 2:25). 죄의식이 없었죠. 지금은 결혼한 부부 사이라도 벗으면 서로 볼썽사나워 환하게 불을 켜지 못합니다. 노아는 포도주에 취해 장막 안에서 벌거벗었습니다. 아들 함이 그 사실을 공개하고 아버지를 흉보는 바람에 셈이 아버지의 옷을 가지고 들어가서 뒷걸음질해서 옷을 덮었습니다. 그때 노아는 분명히 술에 취해 자고 있었지만,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의 행동을 다 알았습니다. 알고 난 뒤 큰아들을 축복하고 둘째 아들을 저주했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시대를 사는 여러분이 모든 사람을 속인다 해도 하나님이 마지막에 다 공개하십니다. 아담 때부터 이 땅에 왔다간 수많은 사람과 천군천사 앞에서 공개당합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러나 신기한 것은, 회개하면 그 죄를 다 덮어주십니다. 회개는 ‘잘못했습니다. 뉘우쳤습니다. 깨달았습니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면 열매가 나옵니다. 열매가 있어야 진짜 회개입니다. 회개했는데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기만(欺滿)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기(詐欺)하는 것입니다. 속일 ‘사’, 거짓말 ‘기’ 자죠.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에 악당들에게 붙잡히실 때, 옷을 담요같이 둘둘 말아 입고 있던 청년이 벗은 몸으로 도망갔다고 마가복음 14장에 기록돼 있죠. 얼마나 수치스럽습니까. 누가복음 8장에는 가이사랴 지방에 귀신과 도깨비의 군대에 들린 사람이 나옵니다. 한두 명을 군대라고 합니까. 악신(惡神)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수천이나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가 무덤 사이에서 옷을 늘 벗는다.’고 했습니다. 옷을 입지 못하면 술에 취한 사람 같고, 군대 악신같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옷을 지어 주셔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지은 뒤 눈이 밝아져 자기 몸이 벗은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영이 떠났기 때문에 알몸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창피해서 무화과 잎으로 임시변통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뜨면 바싹 말라 꼬드라지죠. 부스러져 가루가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사람이 만든 옷은 무화과 잎 같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성도가 예수님을 맞이하고 천국에 가려면 13가지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옷을 입고 천국에 입성하는 귀한 백성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창세기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지를 미리 예표(豫表) 하신 것입니다. 양의 가죽옷입니다. 양을 잡아야겠죠.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피가 흐르겠죠. 고기를 먹어야겠죠. 예수님은 유월절 양입니다(출 12장, 고전 5:7). 인류의 죄를 위해 희생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 때문에 잡힌 바 되고 처참하게 난도질당해 죽으셨습니다. 사망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당신의 피로써 죽음의 값을 치르고 사신 것입니다. 사단의 입에 있던 우리를 끄집어내신 것입니다. 마지막 잡히시기 직전에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떡을 주면서 “내 살이라.” 하시고, 포도주를 주면서 “내 언약의 피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과 피로 인류가 죄 사함을 받는 것을 예표로 주신 말씀 아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마태복음 22:1-14에는 혼인 잔치의 비유가 나옵니다. 자리가 차지 않았습니다. “주인 양반,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오지들 않습니다.” 하자 “사거리에 나가 강제로 다 데려오너라.” 했습니다. 주인이 손님을 보러 왔죠. 예복을 입지 않은 자가 있었습니다. “끄집어내!” 하고 “어째서 예복을 입지 아니하느냐?” 물었습니다. 유구무언이었죠. 그러자 “수족을 묶어! 그리고 어두운 바깥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자가 마지막에 얼마나 망신을 당하고 무서운 심판의 자리에 처하는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야 할 백성이 하나님이 지어주신 옷을 입지 않고, 자기가 만든 옷을 입고 있다가 경을 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어주신 옷 13벌은 입어도 되고, 안 입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이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만 입지 못해도 불합격입니다. 13가지 옷을 모두 입는 평강제일교회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평상시에 입어야 할 옷과, 악한 마귀와 싸울 때 입어야 할 전투복, 그리고 하나님께서 ‘너 이 옷을 입고 내 보좌 옆에 앉으라.’ 하시는 세마포, 예복까지 모두 13벌의 옷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여기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택하신 자, 거룩한 자, 사랑을 받는 자. 세 가지를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레 19:2, 11:44-45, 20:7, 26, 21:8, 출 19:6, 벧전 1:15-16, 살전 4:7, 요일 3:3, 고후 7:1, 히 12:14).
성도가 입어야 할 옷 중 첫째는 긍휼(矜恤)입니다(마 5:7, 골 3:12).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죠. 가엾이 여길 ‘긍’, 구제할 ‘휼’입니다. 비참한 사람을 가엾게 여기고 불쌍히 여겨 도와주는 것,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의 원칙입니다.
다음에 자비(慈悲)의 옷입니다(출 22:27). 사랑 ‘자’, 슬플 ‘비’입니다.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 손을 뻗치는 것, 즉 도와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겸손(謙遜)입니다. 겸손할 ‘겸’, 겸손할 ‘손’입니다. 겸손 없으면 망합니다. 하나님이 물리치십니다.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겸손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 나를 항상 낮추고 남을 섬기는 마음입니다. 나보다 가진 것도 없고, 공부도 못 했고, 인물도 못 났고, 집도 형편없는 것 같지만 그분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 꼭 입으시기를 바랍니다. 남을 섬기는 자세입니다. 모든 생활에 양보하는 마음, 그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약 4:6, 마 18:4, 욥 22:29, 시 10:17, 골 2:18, 23, 벧전 5:5).
그다음에 온유(溫柔)한 마음입니다. 온유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따뜻할 ‘온’, 부드러울 ‘유’입니다. 뻣뻣하지 않고 부드러운 것입니다.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었죠(민 12:3). 온유한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는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신구약 말씀을 통해서 엄하게 다스립니다. 그러나 타인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마음, 이해하는 자세를 갖습니다(엡 4:2, 행 20:19, 빌 2:4, 골 3:12, 벧전 3:8).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은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입니다(갈 5:22).
그다음에 오래 참음의 옷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돌아가시기까지 참으셨습니다. 인내(롬 5:3-5)는 굳은 마음으로 어려운 고비를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단 12:12, 합 2:3). 하나님께서 베냐민 지파의 일천한 자 사울을 왕으로 삼으셨죠.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에게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시오. 그러면 내가 와서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겠습니다.” 했습니다. 첫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신 일입니다.
사무엘상 10:8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7일을 기다리라.
우주 만물 창조가 엿새 동안 끝나고, 제7일에 하나님께서 ‘내가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셨죠? 우연이 아닙니다. 노아도 600세 2월 10일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지금부터 7일을 기다리라.’ 하시니 방주에 들어갔습니다(창 7:4-13, 살전 1:10, 딛 2:13, 약 5:7, 유 1:21, 벧전 3:20).
그런데 하나님 하시는 일 보세요. 평화로운 상태였다면 사울이 끝까지 기다릴 수 있겠죠. 블레셋 군대를 동원해 쳐들어온다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약속된 7일 동안 길갈에서 기다렸지만, 사무엘 선지자가 오지 않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이 하나님 명령 없이 제물을 잡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끝나자마자 사무엘 선지자가 딱 나타났습니다. 사울 왕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었겠죠. “나와 약속이 7일 아닙니까? 7일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바람에 내가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렸습니다.” 하자 사무엘 선지자가 “왕은 망령되이 행했습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히브리 원어에는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자! 잘 들으세요. 사울은 7일을 기다렸다고 하지만 온전한 7일이 아니었습니다. 24시간이 하루인데 만 7일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기다리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넌 틀렸다.’ 하셨습니다. 끝까지 참는 것, 기다리는 것을 보신 뒤 하나님은 사울 왕에게 중대한 일을 맡기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랬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합니다. 왕은 죽어야 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선택하기로 하나님께서 작정하셨습니다.” 통고한 뒤 자기 집으로 갔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참고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의의 나라가, 주의 영광의 영이 머리에 머문다고 신구약에 한두 번 말씀하셨습니까. 성도 여러분, 인내하지 못하면 망합니다. 받을 복을 받지 못합니다. 받을 말씀을 받지 못합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라야 은혜받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10, 디도서 2:13, 야고보서 5:7, 유다서 1:21, 베드로전서 3:20, 창세기 7:4-13, 마가복음 15:43을 적으시기 바랍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기 때문에 당돌하게 빌라도한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게 주시오!”라고 요구했습니다. 빌라도가 “국회의원인 당신이 왜 예수의 시체를 요구하오?” 하자 “나 예수님의 제자요!”라고 밝혔습니다. 예수님 이름만 불러도 죽이는 판이었습니다.
참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참으심으로 우리에게 의로움과 새 생명이 되셨습니다. 오래 참아야 합니다. 성깔 한번 내면 오늘날까지 쌓아 놓은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집니다(약 1:20). 하나님의 뜻이 무너집니다. 인내하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끝까지 참으시기를 바랍니다.
새 사람의 옷을 입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엡 4:17-24).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 사람은 썩어져가는 구습(舊習)을 좇는 성질이죠. 죄로 인해서 모든 것이 굳어져 갑니다. 직장도, 학업도, 가정도, 신앙생활도 석고처럼,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갑니다. 모든 생활이 마비됩니다. 피가 통하지 않습니다. 덜덜덜 떠는 생활입니다. 조급해집니다. 죄로 인해 마비된 세계, 순결을 잃어버린 세계입니다. 믿음을 빼앗기고 소망과 사랑을 빼앗겼습니다. 마음이 강퍅해지고, 강포(强暴)가 땅에 충만합니다. 인정사정없고, 양심이 없습니다. 남을 죽이는 삶을 살면서도 마음이 편안합니다. 바로 왕같이, 사울 왕같이 강퍅해지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의 남편 나발이 온몸이 굳어져 죽지 않았습니까(삼상 25:3-38). 옛 사람은 부끄러운 줄을 모릅니다. 아무 데서나 벗고 입습니다. 자기 말하고 행동한 것에 부끄러운 줄을 모르니 정신병자입니다. 그 결과는 방탕한 생활입니다(엡 4:19). 플라톤은 방탕이 몰염치한 행동이라고 했죠. 모든 쾌락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안락을 위해 체면도, 염치도 없어집니다. 파괴의 생각뿐입니다. 먹고 팽개치는 일회용품과 마찬가지입니다. 욕심밖에 안 생깁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이죠(약 1:15). 큰일 납니다. 욕심이 충만하면 거짓이 나오게 됩니다. 거짓은 진실의 반대입니다. 눈만 뜨면,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거짓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을 사탄이 거짓말로 타락시켰죠. 얽매이기 쉬운 모든 죄를 벗어버리지 않으면 사탄이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과 중상모략, 두려움을 줍니다(히 12:1, 엡 4:31). 신앙생활에 자신이 없게 만들죠. ‘내가 이렇게 믿어서 되겠나?’ 생각은 하지만 고칠 생각을 안 합니다.
여러분이 옛 사람 그대로 있으면 제가 지금 말한 그대로 됩니다. 빨리! 빨리! 버려야 합니다.
마지막에는 불 심판입니다. 지금 전 세계에 핵폭탄이 5억 톤 있다고 합니다. 전 세계 인구가 1인당 수류탄 3만 6천 개를 가지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군사 전문가들이 말합니다. 언젠가는 터집니다. 성경에는 ‘불화살’이 나오죠. 지금의 말로 하면 유도탄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저는 간밤에 평강제일교회 성도님들이 하나님 주신 13가지 옷을 입게 해 달라고, 피곤해서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꿈에라도 공포심을 주셔서 벌떡 일어나 교회로 나오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근신하며 기도할 때입니다. 이 말씀이 믿는 자에게 허락한 말씀인 줄 알고 여러분은 새 사람의 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가 2003.8.26(화) 새벽예배에서 선포한 설교입니다. 이 가운데 ‘성도가 입어야 할 13가지 옷’ 부분은 같은 해 8.27(수) 새벽예배 설교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자’(계 19:1-8), 8.28(목) 새벽예배 설교 ‘끝까지 기다리는 자에게’(단 12:5-13), 8.29(금) 새벽예배 설교 ‘주여 어디오니이까‘(눅 17:26-37)에서 보충 설명하신 내용을 추가로 정리해 요약한 것입니다. 위 말씀을 모두 상고(詳考)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 23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