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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

한 생명도 잊지 않았다

2023.04.20 16:36

한 생명도 잊지 않았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시리즈」 이렇게 쓰여졌다.


휘선 박윤식 목사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현장을 본격적으로 찾은 것은 1997년부터였다. 3년 6개월 간 계속된 해외 선교를 마치고 귀국한 뒤였다. 시작은 박 목사가 6·25 전쟁 전후로 거듭된 격전을 벌일 때 도움의 손길을 줬던 분들을 찾아가 만나는 것부터였다. 그에게는 전투 현장이 기도의 현장이었고, 평생 잊지 않은 역사의 현장이었다. 박 목사와 동행했던 교직원, 성도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박성현 장로, 김원순 권사, 백연숙 권사, 백희숙 권사, 황정희 박사 등이 박 목사와 동행하며 사람 찾는 것을 도왔다. 박 목사는 목숨을 건 전투가 이어졌던 현장들의 산세(山勢) 하나까지 또렷이 기억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옛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현대화돼 있었다. 행정 관청에 찾아가 개발 전의 지적도(地籍圖)까지 뒤졌지만, 6·25 전쟁 이전의 행정자료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박 목사는 주일마다 예배가 끝나면 바로 차를 타고 지리산 일대로 내려갔다. 다음 날에는 종일 산길 곳곳을 헤매며 도움 받았던 집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마침내 당시의 은인을 만나면 어떤 집은 밭을 사드리고, 어떤 집은 금 열 돈 씩을 안겨드리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곤 했다. 박 목사는 현지로 내려갈 때면 언제나 밭을 살 돈이나 금 열 돈씩을 싸서 다녔다. 어떤 집은 몇 년을 찾아다녔는데도 도저히 찾지 못해 너무나 안타까와하기도 했다.

측정기와 금 한 돈을 싸들고…
박 목사는 가는 곳마다 당시의 치열한 전투 모습을 회고하며 전우들을 추억했다. 수풀만 무성한 산 속에서 직접 몸을 움직이면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바로 그 게릴라 전투할 때 소수의 전우들과 싸우던 자리야”라고 설명하면서 지도에 위치를 표시하고 메모를 남겼다. 한 차례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방문할 때마다 연거푸 확인하고 다시 거리를 측정했다. 이런 철저한 현장 답사가 그가 2012년 발간한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의 기초가 됐다. 동행한 교직원, 성도들은 수풀 우거진 곳의 풍경은 다 비슷하니 처음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 있었던 치열한 전투의 모습을 생생하게 설명해주시는 거예요. 여기선 이렇게 몸을 구겨서 숨기고 있었다고 하시면서 직접 몸을 웅크려 보이기도 하시면서. 또 어느 지점에선 여기서 스러져 간 전우들이 생각난다면서 한참을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어요.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차라리 잊혀졌으면 좋겠는데 점점 더 또렷해진다고 하셨습니다.”

박윤식 목사의 근현대사 현장 방문은 지리산에서 시작해, 여수, 포항, 영해, 영덕, 포항, 안덕, 태백산,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장안산 등으로 이어졌다. 모두 6·25 전쟁 전 남로당 빨치산 토벌전이 벌어졌거나, 6·25 전쟁 때 인민군과의 격전이 벌어졌던 현장이었다. “어느 곳에 가시면 그 전에 갔던 장소에서 그곳까지 군사적으로 이동할 때 쓰던 지름길이 있다면서 알려주시곤 하셨어요. 지도나 내비게이션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박윤식 목사가 근현대사 현장을 답사하고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를 집필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여러 사람이 당시 현장을 기록한 역사책들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박윤식 목사는 그 역사 기록들을 보고는 “이건 다 거짓말이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역사 현장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심지어는 정부의 공식 기록물에도 많은 오류가 있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역사 기록이 달라지고 왜곡되곤 했기 때문이다. 박 목사는 이런 오류들을 하나하나 날카롭게 찾아냈다. 누렇게 변색될 정도로 오래된 군사 문서들이 하나둘 씩 발굴되면서, 박윤식 목사의 증언이 옳다는 것이 계속 드러났다.

“이 책은 내 목숨을 걸고 쓰는 것”
휘선 박윤식 목사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구속사(救贖史) 시리즈’ 집필을 중단하면서까지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를 썼던 2011년은 그가 대장암 진단을 받고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던 시기였다. 몇 해 동안 계속돼온 대상포진이 머리까지 뻗어가 극심한 고통을 겪던 때이기도 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책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주위에 “내가 근현대사시리즈를 쓰는 것은 내 목숨을 걸고 쓰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바른 역사를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침내 2011년 11월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가 출간됐다. 책이 나오자 굵직한 역사의 증인들이 속속 증언을 자청해 왔다. 6·25 전쟁 당시 전설적 종군기자로 활약하며 국군의 평양 탈환 기사를 전 세계에 처음 송고했던 이혜복 기자(이혜복 기자는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당시 33차에 걸친 공판에 전부 참석하여 보도하기도 했다), 1948년 여수 14연대 반란 당시 14연대 인사장교로 현장을 직접 목격한 김형운 예비역 대령, 당시 반란군에 의해 대퇴부 관통상을 입었던 박윤민 예비역 대령, 여수 14연대 반란의 주동자인 홍순석, 김지회와 육사 3기 동기였던 조혁환 예비역 장군, 6·25 전쟁 당시 보병 중대장으로 전선에서 활약했던 마지막 주월(駐越) 공사 이대용 장군 등이 그들이었다. 이들은 “왜곡된 역사에 대해서 옳은 소리를 책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은 많이 했지만, 그 작업의 방대함을 알기에 몸소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다. 이제라도 근현대사의 참상을 올바로 알릴 수 있음에 감사한다.”라고 인사를 전했다. 여수 순천 사건 당시 순천경찰서장으로 남로당원들에 의해 가장 참혹한 죽음을 당한 양계원 총경의 후손들은 “정확하고 자세하게 당시의 참상을 기록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박 목사는 사재를 털어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 30만 세트를 군 부대, 학교, 공공기관, 교도소 등에 보급했다. 대형서점에서도 많은 부수가 팔려나갔다. 지금까지 판매, 기증된 권수가 70만 권이 넘으니 국민 700명당 1권 꼴로 보급된 셈이다. 국군의 정신교육을 총괄하는 국방정신전력원과 합동군사대학교는 이 책을 교재로 채택했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에서도 부교재로 채택했다. 책을 읽고 감동한 많은 독자들이 편지를 보내왔고, 독후감을 통해 느낀 바를 나눴다. 박윤식 목사를 비롯한 목격자들의 증언은 이제 과거를 정확히 알고 현재를 직시하는 다음 세대에게 넘겨졌다. 이제는 이들이 역사의 새로운 증인이 된 것이다.
“과거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현재를 정확히 보게 하고 동시에 발전된 미래의 건설을 가능케 합니다. 세계를 선도해 나갈 대한민국의 찬란한 미래를 건설하고자 할 때,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과거의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공정을 기하는 것입니다.”(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 저자 서문 중)

군인들을 특별히 사랑한 박윤식 목사
휘선 박윤식 목사는 교회가 나라의 병거와 마병(왕하 13:14)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 초기부터 평강제일교회는 목요 구국(救國)예배를 드리며 애국가와 통일의 노래를 제창해 왔다. 박 목사는 목숨을 내걸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을 깊이 사랑하고 존중했다. 평강제일교회는 1970년대부터 많은 부대를 찾아가 장병들을 위로했다. 1997년 이후의 부대 위문행사에는 평강제일교회 성도인 금방울 자매가 동행했다. “박 목사님은 직접 근현대사의 시기에 맞는 곡들을 골라주시고, 그 시대의 역사 상황들을 알려주셨어요. 가령 “우리 국민들이 일제 강점기에 나라와 고향을 잃은 슬픔을 달랬던 노래, ‘황성 옛터’와 ‘타향살이’를 불러 보겠습니다.”라고 소개하고 노래를 부르고 나면, 박 목사님이 직접 단상에 나와 마이크를 들고 그 시대를 생생히 설명해주셨죠. 그 내용이 근현대사 시리즈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금방울 자매)
나라와 민족이 고통 받던 시절의 노래와, 박 목사의 생생한 증언에 애국심으로 무장된 군인들의 마음이 열리곤 했다. 마냥 강해 보이는 군인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같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고 동행했던 성도들은 증언한다. 평강제일교회에는 지금도 박 목사의 올곧은 국가관과 감동적인 설교, 그리고 군인들의 헌신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존중하는 모습에 감동 받은 많은 군인들이 출석하고 있다. 평강제일교회에서 성장한 많은 청년들은 장교로 입대해 국방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박 목사는 육군 부사관학교에 장병들의 체력 증진을 위한 피트니스센터를 설립했고, 부사관학교는 이를 ‘휘선 피트니스센터’로 명명하고 박 목사의 애국, 애족 정신을 장병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흘러간 가요’가 가장 정직한 역사다
박윤식 목사는 군 부대 위문 때만이 아니라, 애국, 애족과 관련한 교회 행사와 중요한 절기 기념예배 때도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가요들을 성도들에게 알려주고 함께 불렀다. 그는 “그 시대의 가요야말로 당시 서민들의 삶과 감정을 거짓 없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안 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기록이나 문서는 사람에 따라 왜곡될 수도 있고, 시대에 따라 변색될 수도 있지만, 그 당시 국민들이 즐겨 부른 ‘가요’는 국민들의 정서와 시대상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가장 정직하고 살아있는 역사’라는 것이다. 예컨대 ‘굳세어라 금순아’(현인 노래)는 젓가락 두드리며 부르기 좋은 가락 같지만, 실상 6·25 전쟁 때 압록강까지 북진했던 국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후퇴하면서 벌어진 흥남철수작전 때의 비극을 그린 노래다. 남으로 내려가려는 피난민들이 미군 군함인 빅토리아호에 타려고 인산인해를 이뤘는데, 그때 동생을 잃어버린 언니의 애타는 심정을 그린 노래인 것이다. 박 목사는 말했다. “그 때(흥남철수 당시) 기온이 영하 30도여서 미군들도 많이 죽었습니다. 그때 금순이가 7살이고 화순이가 15살인가? 언니 화순이가 동생 금순이를 잃어버려서 찾아다니는 걸 동아일보 기자가 알게 된 이후 ‘굳세어라 금순아’ 라는 노래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자신의 진액(津液)과도 같은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를 남긴 이유
역사의 기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가(史家)의 역사관이다. 박윤식 목사는 “국가의 역사 위에 성경이 기록되었다”(1998년 9월 4일 새벽예배)라는 설교를 통해 “예언(계시)에는 역사가 있어야 하며, 역사는 국가가 있어야 하고, 국가는 국토와 백성, 주권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진실한 예언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진실한 역사와 참된 국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가들이 연구실에서 다른 사료(史料)들을 연구하고 비교해 역사서를 쓰지만, 휘선 박윤식 목사는 자신이 역사의 목격자임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많은 역사 현장을 답사하고 생존자들의 증언을 수집한 끝에 자신의 진액과도 같은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를 발표했다.
기독교사의 3대 명저인 어거스틴의 ‘신국론(神國論)’은 교회의 수호자인 로마 제국이 왜 이교도인 이방인들에게 처참하게 유린되고 있는지에 대한 답으로, 저자가 생을 마감하기 4년 전 완성됐다. 이 책은 신학적인 명작일 뿐 아니라, 역사학자들에게는 향후 서양 역사철학 1,000년을 결정지은 찬란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박윤식 목사의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는 그의 목회 사역 마지막 시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심각한 이념 대립과 정치적 혼란에 대한 올바른 역사의 대답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의 독자들에게 이념의 대립을 종결하고, 오직 사실에 근거한 바른 역사관의 토대에 서서 찬란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

 

참평안 휘선특별호 제3권 _ 제3부 | 구속사(救贖史)와 세속사(世俗史)가 하나로 만나 p.78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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