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召命)에는 목적이 있다
소명에는 목적이 있다
창세기 12:1-3
소명은 부를 소(召). 목숨 명(命)을 써서 그 부르심을 자기 목숨같이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가 자신을 부르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2:50). 그래서 죽음의 자리까지도 사양치 않고 가신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시키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이 소명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은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 나이가 75세였고 아내 사라가 65세로 월경이 끊어져 아이가 없습니다(창 12:1-4). 자기가 낙이 없다고 했습니다(창 18:11-12). 이런 상황에“네 몸에서 난 씨가 큰 민족을 이루고 너와 너 민족 때문에 전 세계만방이 복을 받는다.” 하실 때 믿어지겠습니까? 그러나 로마서 4:17-18 말씀 볼 때 아브라함은 의심 안 하고 믿었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4:17-18 17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18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믿지 못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의로 인정하시고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창세기 15:6).
먼저 복을 받아야 합니다.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아브람)의 이름이 12번 나옵니다. ‘아브라함아’하고 부르신 다음에 ‘너’라고 정확히 가리키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너’라는 말이 일곱 번 나옵니다. 그다음 ‘내가 네게’ 라는 말은 세 번 나옵니다. 그리고 ‘복’이라는 단어는 4번, ‘축복’이라는 단어는 1번, 총 다섯 번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듣기 싫을 정도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갈라디아서 3:9에 아브라함 같은 믿음 있으면 아브라함과 똑같은 복을 받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 아닙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니, 우리 각자의 이름을 넣어서 ‘OOO의 하나님’이죠. 하나님께서 우리도 아브라함과 똑같이 열두 번 이름 부르고 다섯 번 복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자꾸 강조하는 것은 여러분이 복을 받아야 집안이 잘되기 때문입니다. 내 자식 잘생기고 일류 대학 나오면 뭐 합니까? 복 받지 못하면 몸 약해지고, 지혜도 없죠? 복 받지 못하면 지식도 없고 월등하지 못합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것보다 말씀을 깨닫고 아브라함 같은 복을 꼭 받아야겠다는 각오와 결심, 의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잊지 마세요. 여러분 개개인의 가정에 아브라함과 똑같은 축복이 반드시 임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마태복음 13:31-32을 보면 예수님의 천국 비유 가운데 겨자씨의 비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겨자씨 같은 한 사람에게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을 이루고, 그 민족을 당신이 거하시는 나라를 삼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60:22에서는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은 겨자씨처럼 작고, 혈혈단신이었습니다(사 51:2). 혈혈단신, 즉 외톨이로 있을 때 부르시고 복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민족을 이루신 것입니다(겔 33:24, 행 7:5-6, 창 46:3-8, 창 50:20, 시 105:16-19).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름이 창대케 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 축복은 첫 번째, 그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개명하면서 그 뜻이 ‘많은 무리의 아버지’가 되어 성취되었습니다(창 17:5). 두 번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방패가 되어 주셨습니다(창 15:1). 세 번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20:7). 네 번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친구로 인정하셨습니다(약 2:23, 사 41:8). 이러한 엄청난 이름을 받게 되는 것보다 으뜸 되는 축복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줄만 알았지만, 예수님 오신 다음에는 전 민족의 조상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마 1:1). 인성과 신성을 겸비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 요셉과 마리아 몸을 빌려 난 분이 바로 예수님이 아닙니까? 그분이 나심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이름이 더 커지고 더 높아진 것입니다. 시편 115:1에는 찬송과 영예는 오직 하나님께만 합당하고 사람에게 돌려선 안 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고 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한테는 주신 것입니다(사 42:8, 48:11, 겔 36:22, 단 9:18-19, 신 9:5). 대통령에게 비서실장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브라함을 통해서 약속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세계 3대 종교의 조상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는 아브라함을 우리 믿음의 조상으로, 아버지로 고백합니다. 유대교도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고백합니다. 이슬람교도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합니다. 3대 종교가 전파되는 곳마다 자기 조상 아브라함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이었던 것 같이 겨자씨 같은 우리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 그 이름이 얼마나 창대합니까? 그러나 우리 믿는 성도는 일국의 대통령보다도 더 창대케 빛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약속하셨는데 여러분들의 혈통이 끊어지면 되겠습니까? 세상 끝날 때까지 만만세(萬萬歲)로 여러분의 혈통이 가운데 나라를 통치하는 위대한 인물이 탄생할 수 있도록 주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리겠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될 지라.’는 히브리 원어로는 ‘너는 복이 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해가 있어!’ 하시면 해가 됐고 ‘달이 돼!’ 하시면 달이 됐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너는 복이 되라.’ 하신 것입니다. 남한테 복 받는 게 아니라 ‘너를 복덩어리 만들 테니 너 복 주고 싶으면 주고, 안 주려면 안 주고 하여튼 네 맘대로 하되 너는 복 자체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명령한대로 창조가 이뤄질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복이 될 때 여러분 가족이 마음에 원하는 대로, 소원대로 그들이 복을 받는 아브라함과 똑같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됐으면 나도 그렇게 꼭 되겠습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복이 되라.’ 명령하시니 하나님 명하신 대로 될 수밖에 더 있습니까? 근심할 필요 없는 거예요. 갈라디아서 3:7-9 읽어 보게 되면 의심할 필요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3:7-9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복을 창조하신 장본인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받았지만, 복을 창조하신 장본인, 예수님을 모셔야 됩니다. 요한복음 3:16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복이 되라 할 때 메시아적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시편 133:3을 보면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명하셨으니 영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세상에 누가 제일 큰 복 받았느냐? 간단합니다. 예수 믿는 자.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복을 창조해 줬다면 여러분 자신이 복덩어리입니다. 그러니깐 여러분들이 가정마다 또 직장마다 어려운 문제가 많이 있죠? 그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 내가 받았습니다. 내가 복 자체가 돼야겠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 같은 믿음만 있으면 그 복이 그대로 쌓이면서 이루어지고 이 복이 나갑니다. 그 복이 나가서 또 복을 물어 오는 거예요. 알았어요?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가장 큰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 없습니다.
창세기 12:3을 볼 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 지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복을 내리고, 너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한다.’고 그랬죠? 그러니까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날 욕했다고 해서 내가 인간의 생각으로 상대방을 욕할 필요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상대가 욕할 때 우리에게는 축복으로 임하고, 하나님께서 상대방이 저주한 거 듣습니다. 하나님이 그분한테 저주하는 거예요.
아브라함을 축복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듣고 있다가 하나님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분을 축복해 주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저주하고 거짓말로 말을 만들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놓아두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자가 복 중의 복이라는 것을 오늘부터 철두철미하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끝까지 순종해서 어떠한 괴로움과 슬픔과 답답함과 어려움을 당해도 예수님 때문에 복의 창조를 받아서 절대 근심이 없는 복덩이 같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4년 3월 17일 수요예배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설교
23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