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위대한 조상 아브라함을 본받자
믿음의 위대한 조상
아브라함을 본받자
로마서 4:16-22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브라함이 너희 아버지라면 아브라함 같은 행사를 해라. 아브라함은 내가 이 땅에 올 것을 보고 기뻐했다. 내가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나를 보내셔서 왔다. 아버지와 나와 하나다.”라고 하셨습니다(요 8:39-56).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은 모든 민족의 조상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마음대로 말한 게 아니라, 성경에 미리 예언돼 있습니다(창 17:5). 모든 민족이 그들의 언어, 풍속, 종교, 문화 그리고 외모까지 그들의 조상의 것을 이어오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이 말씀을 믿으면 다윗이나 솔로몬과 똑같이 아브라함을 아버지로 모실 수 있는 특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세 가지로 간추려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
아브라함 75세 때 하나님께서 아이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되고, 모든 나라 족속이 너를 인해서 복을 받는다. 너는 복의 기관이다. 또 네 이름을 창대케 해주겠다.’(창 12:1-2)는 엄청난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떠나라 하실 때 목적지를 알려줬습니까? 성경에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다’ 했습니다(히 11:8).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가면 축복 주겠다.’ 하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냥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 목적지가 분명치 않았습니다. ‘지시한 땅’으로 가라고 하셨는데 그 지시한 땅을 대주지 않았어요. 순종하고, 믿고 감사한 마음이 충만할 때, 그때야 말씀해 주시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둘째, 축복의 내용이 너무나 거창했습니다. 실현성이 희박했다는 것입니다. 아내 사래는 이미 경수가 끊어졌습니다. 75살에 아직 아이도 없는 혈혈단신 아브라함에게 ‘네 이름이 창대케 되고 거부가 되게 하고 너 때문에 만민이 복을 받는다.’ 하시니 믿기 힘들죠. 그러자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를 보여주시면서 ‘네 몸에서 낳은 자식이 이와 같이 많아질 것이다.’ 하셨습니다. 너무 찬란한 약속이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서 4:18에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그것을 믿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의로 인정하셨습니다(창 15:5-6). 우리 평강교회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말씀을 좇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과 똑같은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 가운데는, 부름을 받은 이후로 감사가 떠나지 않았어요. 늘 감사했습니다. 조카 롯과 결별할 때도 감사가 있었기 때문에 거칠고 모진 광야 같은 가나안 땅을 택했습니다. 소돔이 유황불로 멸망하기 전에는 에덴동산과 똑같다고 했습니다(창 13:10). 롯은 하나님께 감사가 없었기 때문에 소돔 땅을 선택했습니다. 감사가 없는 조카는 생활이 점점 줄어들고, 감사가 있는 아브라함한테는 모든 생활에 여유가 있고 더 큰 거부가 된 거 아닙니까? 사람이 풍부해야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 할 때 바로 행복한 순간이고, 그 감사가 가난을 물리쳐 주고 또한 축복된 세계를 준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어요. 성도 여러분, 병들 때 감사하세요. 건강하면 감사 모릅니다(시 119:71, 75). 우리가 영광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 감사입니다. 감사가 있을 때 은혜를 기억하게 되고 은혜를 기억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되고, 말씀을 사모하게 되니깐 하나님이 역사해서 말씀대로 믿는 대로 되니까 이루어지는 거예요.
2. 아브라함은 믿을 수 없는 중에 믿었다 (롬 4:19-20).
아브라함 99세, 그 아내 89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창 18:11-14, 롬 4:19-21, 히 11:11-12). 그리고 ‘1년 후에 아내 사라에게서 아들을 낳으리라.’(창 17:21)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사라가 장막에서 다 듣고서 웃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사라야, 왜 웃느냐?’ 묻자, 사라가 ‘웃지 않았습니다.’ 했습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아니다! 네가 웃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죠. 거짓이 없는 분입니다(히 6:18). 믿을 수 있는 것만큼 믿는다면 누가 믿지 못하겠습니까. 나다나엘은 자기 친구 빌립이 예수의 제자였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병자를 고치시고, 소경이 눈을 뜨고, 죽은 자를 살리는 것도 다 봤습니다. 직접 본 것을 얘기해도 믿지 못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다른 제자보다 8일이나 늦게 믿었습니다. 도마나 나다나엘을 볼 때, 아브라함은 얼마나 위대한 신앙입니까? 오늘날 많은 신학자나 신학생들이 성경을 부인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린도전서 1:18을 공동 번역으로 보면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나님의 힘”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믿게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까지 받은 바 은혜를 기억하세요. 그리고 마음 가운데 감사가 충만하세요. 감사가 있으면 불평불만 다 달아납니다. 감사가 보약입니다.
3. 아브라함은 할 수 없는 일을 한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꿈에 나타나서 “아브라함아,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를 드리라.”는 계시를 주셨습니다. 마음에 갈등이 오지만, 난리가 날까 봐 아내한테 얘기도 못 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종 둘을 시켜서 장작과 불, 3일 동안 먹을 양식을 준비하는데 이삭이 ‘아버지 나도 가요?’ 하고 묻습니다. 인간은 작심삼일입니다. 이틀, 사흘 가다가도 ‘이건 아니지, 야. 도로 가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삼일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느닷없이 ‘나무하고 불은 여기 있는데 제물은 어디 있습니까?’ 물을 때, 아버지 마음은 비수로 찌르는 듯 아픕니다. 그때 아버지가 ‘하나님이 준비해 두었겠지.’ 하고 이삭을 잡아서 끈으로 묶어 팔을 뒤로 하고, 장작불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백 살 나서 얻은 아들, 얼마나 귀합니까? 더구나 아버지가 자식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은 인륜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언약, 약속으로 받은 아들입니다. 근데 왜 아들 죽입니까? 다른 동물 잡지 못합니까?’ 항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도 살리겠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살리신다!’ 하고 믿었어요(히 11:19). 진짜로 그 아들의 목을 치려고 할 때 하나님이 마음을 보시고 놀라셔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들 손대지 말라. 내가 이제야 네가 나를 믿는 줄 알겠다!’ 하셨습니다(창 22:18). 그리고 가시덤불에 걸리게 하신 수양을 이삭 대신 불태워서 제사 지내고 이삭을 끌고 내려온 것 아닙니까? 이런 것을 사람이 할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만대(萬代), 즉 몇 대의 조상 아니라 만대의 조상이며, 만민(萬民)이 다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신앙입니다. 보통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고 배워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6-9 읽겠습니다.
갈라디아서 3:6-9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8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여러분은 신령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고 아브라함과 똑같은 복의 근원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렇게 보고 믿고 설교했습니다. (창 15:1-7, 22:17, 26:4, 출 32:13, 신 1:10, 10:22, 대상 27:23, 히 11:12, 롬 4:18, 눅 19:9, 갈 3:7-9).
하나님은 언약을 어김없이 실행하시는 분입니다(딤후 2:13).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이 적음을 한 두 번 책망하셨습니까?(마 6:30, 8:26, 14:3, 16:8, 17:20) 물질이 많고 권력, 명예가 많으면 하나님을 적게 봅니다. 하나님을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더 적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잊지 마세요. 요한복음 10:29에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다.’ 했습니다. 욥도 아브라함과 똑같은 신앙입니다. 욥기 1:21 봐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감사가 있어 보세요. 죽는 것 두렵지 않습니다. 로마서 11:36 볼 때 “만물이 주께로부터 나와서 주께로 돌아간다.” 했습니다. 감사가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서 주신 말씀이 속에 다 차 있으니까 세상 떠나자마자 바로 천국으로 가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기쁨과 즐거움과 찬송하면서 가족을 모아 놓고 ‘울지 말고, 찬송 불러라. 죽는 게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 입성하는 순간이다.’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평강교회 모든 성도가 살리심을 받아서 아브라함 같은 신앙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롬 4:17).
골로새서 3:15-17을 볼 때 우리는 평강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돼라.’ 전부 다 화목해야 합니다. 감사하세요. 감사 있으면 닫혔던 가정에 햇빛이 들어오도록, 환히 서광이 비치도록 문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늘 감사하세요. 그 나라 갈 때까지 제가 백 마디 했다면, 백 마디 전체가 ‘감사를 잊어버리지 말라.’입니다. 감사! 감사! 할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07년 5월 23일 수요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 23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