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의 새 성전 견문록1
에스겔의 새 성전
견문록1
에스겔 40:1-5
본 기사 시리즈는 에스겔 40-48장의 내용은 휘선 박윤식 목사의 구속사 시리즈 제11권上 「여호와 삼마 에스겔 성전」과 화첩을 참고하여 에스겔의 시점으로 풀어낸 가상 여행기입니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바벨론 그발 강가에 포로로 끌려온 지 벌써 25년이 되었다.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된 지 14년이기도 하다. 오늘, 곧 정월(니산월) 10일은 본래 집마다 유월절 예물로 드릴 어린 양을 취하기 위해 분주해지는 날이었다(출 12:3). 그러나 몸도 멀어지고 성전마저 파괴된 지금은, 하나님의 소망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쓰린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본래 제사장인 아버지 부시의 아들인 나는, 30살이 되면 제사장으로 부름받을 터였다. 나는 규례대로 20살부터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규례에 대해 엄격히 훈련받아왔으나, 26세가 되던 해에 바벨론의 두 번째 침공 시 포로로 사로잡혀가며 제사장의 꿈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30세가 되던 해 4월 5일, 나를 선지자로 세우시며 오늘날까지 20년간 사역을 해오게 하셨다(겔 1:1-3). 만약 포로도 없었고 성전 파괴도 없었다면 올해는 나의 제사장 사역이 마치는 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내게 사역을 마치는 날이 아니라, 새 사명이 주어지는 대전환의 날이 되었다.
하나님의 권능의 손이 내게 순간으로 임했다. 그리고 그발 강가에 있던 나는 순식간에 하나님의 권능에 붙들려 이스라엘 땅으로 옮겨졌다.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 그 땅을 보니 극히 높은 산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하나님의 권능이 나를 그 정상의 북쪽 지역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남쪽에 있는 엄청난 건물들을 보았다. 얼마나 그 위용이 찬란하고 규모가 거대한지, 나는 어떤 대단한 성읍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데리고 거기 이르시자, 나는 비로소 이 성읍이 하나의 단일한 건물임을 깨달았다. 아아, 내가 어찌 이 건물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그토록 사모했던 옛 성전의 시온의 돌들이요, 티끌들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시 102:14) 파괴된 줄 알았던 옛 성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성전의 참모습이자 원형이 지극히 높은 곳에 비교도 안 되는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다(참고-히 8:5).
솔로몬 왕궁을 본 스바 여왕의 마음이 그러했을까? 정신이 현황 하여 아찔한 가운데, 나는 그 건물로 들어가는 문간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음을 깨달았다. 그 사람은 온몸이 놋과 같이 번쩍거리며 빛나고 있었고, 손에는 삼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들고 서 있었다. 내가 그를 보자, 그는 나에게 말했다.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찌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찌어다.”
그제야 나는 이분이 단순한 안내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놋같이 빛난 분은 자신을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온 자’라고 소개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벨론 델아빕에서 이스라엘 땅까지 데리고 오신 분이 바로 이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보고,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여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할 내용들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정확무오한 모습으로 보이시고, 척량하시며, 그것을 깨닫게 하셔서 전하게 명령하신 사명의 외침이라고 하겠다.
1. 성전의 사면 담(겔 40:5)
놋같이 빛난 분은 먼저 건물을 두르고 있는 사면의 담을 소개하셨다. 얼마나 길고 견고한 담이 성전을 빈틈없이 두르고 있는지! 놋같이 빛난 분이 척량하는 장대로 담의 두께를 재자 한 장대였고, 높이 또한 한 장대로 일치했다. 이 장대는 6척 규격이었다. 여기 ‘척’은 일반적으로 쓰는 규빗(팔꿈치에서 손가락까지, 약 45.6cm)에 손바닥 너비(7.6cm)를 더한 ‘긴 규빗'(이하 척으로 표기)이었다. 일반적으로 담은 너비보다 높이가 길기 마련인데, 이 네모반듯한 담은 그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갖춰야 할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렇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창조주와 피조물의 수직적 관계라면, 나와 다른 성도의 관계는 이웃 간의 수평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 담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글을 요약한 대강령,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에 있어서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장대 길이와 일치한 온전한 신앙의 형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후애 알았지만, 이 담의 동서 길이와 남북 길이는 모두 500척(266m)이었다. 담 자체의 모습도 네모반듯하지만, 담 전체의 구조도 네모반듯하였다.
이 담은 성전의 안과 밖을 구분했다. 그리고 성전 밖에서는 담에 가려 성전 안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저 담 위로 솟아오른 기둥들과 여러 건물만 보일 뿐이었다. 누구든지 성전 밖에 있는 자는 성전 안의 찬란한 위용만을 느낄 뿐, 그 안의 구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다. 아아 나의 동족 온 이스라엘 자손이 이 모습을 보고, 깨달아야 할 텐데! 혹자는 하나님 사랑에 치우쳐서 이웃에게 상처 주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았던가. 혹자는 이웃 사랑에 치우쳐져 하나님 말씀을 경홀히 여기지 않았던가. 성전의 위용만을 보고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얼마나 비참한 모습이 되겠는가! 네모반듯한 담 너머에 있는 아름다운 성전으로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들어갈 수 있도록 사명을 다해 전할 것을 다짐하는 가운데, 놋같이 빛나는 분은 나를 인도하여 성전의 바깥뜰 동향한 문간으로 인도하여 갔다. 2편에서 계속
글_정정원 목사
- 23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