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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사랑하시며 세상 끝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

2022.11.28 17:19

우리를 사랑하시며
세상 끝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
시편 48:14, 마태복음 28:20

시편 48:14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을 공동번역은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세상 떠날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라고 번역했고, 새 번역 성경에는 “이렇듯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영원히 우리를 인도하시리로다” 했습니다.
예수님이 3년의 공생애(公生涯) 가운데 사랑하는 제자들이 삐쭉빼쭉하고 잘 믿지 못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말씀하지 않고 있다가 세상 떠날 때 비로소 말씀했습니다. 사람은 자기한테 잘하면 좋아하고, 조금 소홀히 하면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상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요 13:1). 사랑은 구부러진 것이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은 일직선입니다. 제자들이 인간적으로 봐도 3년 동안 얼마나 예수님께 신세를 많이 졌습니까. 예수님은 당신에게 그렇게 욕지거리하고, 죽이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유사, 장로, 지도자들까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변치 않는 사랑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예수를 다 버렸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도 하나는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넘겼고, 죽더라도 주님을 배신하지 않고 어떤 자리라도 끝까지 따르겠다던 열한 제자는 다 도망갔습니다(마 26:56). 사람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은 홀로 한 분입니다. 고독하기 짝이 없죠. 그러나 예수님은 고독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다 버려도, 위에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요한복음 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사람은 고독하기 짝이 없죠. 외로울 고(孤), 홀로 독(獨)입니다. 외로움, 즉 주위에 마음을 함께 하는 사람이 없이 혼자 동떨어져 있음을 느끼는 상태입니다. “저분 불쌍해. 말년에 고독하게 지냈어. 자식 있으면 뭐 해. 부모를 헌신짝같이 알고, 있는 재산 빼먹은 뒤에는 몇 년 동안 찾아오지도 않고, 그러다 죽었어.” 이렇게들 말하죠. 하나님은 참 무던하신 분입니다. 인간은 늘 하나님을 배신하고, 배반하고, 몰인정하게 모른 척합니다.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내가 언제 사랑받았느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개개인을 통제하지 않고, 악한 마귀가 만지고 채 갈까 봐(요일 5:18)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지키십니다(시 121:4). 그 영원하고 무궁한 사랑을 이 땅의 인간 중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인자하심이 영원한 분입니다.

시편 125:3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업에 미치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으로 죄악에 손을 대지 않게 함이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의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걸머지시고 십자가에서 해결하신 뒤 “너 죄 없다.” 선언하시고 “내 의(義)를 선물로 준다. 너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친아들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이 우리의 영원한 기업(基業)을 빼앗지 못하게 지켜 준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이불 펴고 누웠다가도, 책상에 앉았다가도, 어디 가다가도 용기가 납니다. ‘하나님은 나한테 이렇게 하시는데 내 마음은 왜 이렇지?’ 하고 죄송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신앙생활에 집중이 없고, 마음과 힘을 다해서 정성을 쏟는 성실이 없습니다. 스스로 깨닫고 벌떡 일어서서 다윗 왕처럼 하나님 앞에 서원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51:9-10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 전에는 마지못해 눈치 보고했지만, 이제는 성령께서 나한테 자원하는 마음을 주사 오늘까지 은혜 주고 성령 주신 것을 거둬가지 마시고 내게 역사해 주시옵소서.” 하는 다윗 왕의 기도대로 들어주셨습니다. 다윗 왕이 우리야의 아내와 한 번 관계한 것 외에는 하나님 앞에 죄지은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왕상 15:5). 얼마나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는지 이불이 다 젖을 정도였습니다(시 6:6). 우리는 죄지어놓고 다윗 왕 같은 그런 회개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세상 떠날 때까지 우리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붙잡아주십니다. 천국 인도할 때 천사까지 불러 “이분 잘 모시고 가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마 1:21)이지만, 한술 더 떠서 ‘임마누엘’(마 1:23)이라는 이름도 가지셨습니다. ‘내가 너와 세상 끝까지 동행하고 같이 있겠다.’ 하는 뜻입니다.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너나없이 인도함을 받고 살아갑니다. 앞선 사람이 뒤에 오는 사람을 인도해 주는 것은 안타까워서 채우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누군가 함께 하지 않으면 한없이 외롭고 고독하고 답답합니다. 사람 ‘인’(人) 자를 봐도 받침이 있어 의지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에 ‘의지할 수 있는 근본(根本), 즉 본래(本來)를 알라.’고 명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모세는 이혼 증서를 줘서 이혼하게 했습니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 “본래는 그렇지 않다. 너희들의 마음이 완악하니 그걸 보시고 허락한 것이지, 본래 남녀는 이혼이 없는 것이다.” 라고 답하셨습니다(마 19:7-8). 그들은 세상살이의 죄악 된 말에 근거를 뒀지만, 하나님은 말씀에 근거를 두십니다. 말씀 세계에는 이혼이 없습니다. 말씀을 떠났기 때문에 이혼이 있는 것이죠.
사람은 인도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잘못 만나면 망신당하고 집안까지 망하는 거예요. 자식이 성공하지 못합니다. 사람을 잘못 만나면 실패하고, 잘 만난 사람은 성공하죠. 사람은 이 땅에 살 때 네 가지의 인도를 받습니다. 첫째, 길러 주신 부모로부터, 두 번째는 유치원부터 대학원, 박사 과정에 이르기까지 가르치는 선생으로부터, 세 번째는 훌륭한 선배나 친구들한테, 마지막 네 번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는 별 볼 일 없습니다. 성공 같지만 실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시종일관 인도받은 사람은 자손만대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내가 너를 왜 믿음의 조상으로 택한 줄 아느냐. 아들한테 율례와 법도, 공도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창 18:18-19) 라고 하셨습니다. 부지런히 자녀들을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신 6, 13장). 잠언서에는 자녀를 올바른 말씀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끝날에 눈에서 피눈물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만이 영원합니다.

요한복음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천당은 죽어서 혼(魂)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습니다. 육신까지 책임을 져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말년을 보세요. 175세까지 살 동안 하나님께서 형통의 복을 주시되 영육 간의 복을 주셨습니다(창 24:1). 근심 없는 복입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 살 때 ‘내 본적지는 말씀이다. 우리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40일 동안 시험받으신 뒤 결론이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사람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하셨습니다. 신명기 8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을 살 때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있는가. 하나님 말씀 속에서 장사하고, 말씀 속에서 친구를 만나고, 말씀 속에서 여행 가느냐?’ 생각해야 합니다. 늘 기억하세요.
사울 왕에게 10년 동안 쫓길 때 다윗 앞에는 말할 수 없는 환란, 핍박, 죽음이 늘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언제나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시편 23:1-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쫓기는 신세지만, 두고 보라’ 하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가나오나 먹는 것, 입는 것 걱정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이름이 아닌, 당신의 이름을 두고 그를 의의 길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실패와 고통의 과거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참 목자 되시는 여호와께 나의 삶을 맡겨야 합니다. ‘남들은 은행에 몇억씩 쌓아놓고 살지만,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다. 근심이 안 된다.’ 하는 고백이 있어야죠. 그렇게 철두철미한 신앙으로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왜 우리는 하나님을 인도자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그분 속에서 나왔습니다. 나를 낳아 주신 부모를 배신할 수 있습니까. 끝까지 효도해야죠. 마찬가지로, 나를 낳아 주신 하나님이 나의 영원한 아버지입니다.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없이는 하늘, 땅,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모든 세계가 지음 받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말씀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붙어야 살고, 말씀에서 떨어지면 죽는 것입니다(요 1:2-4).

하나님은 친히 우리를 인도하시되 끝까지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이 땅의 인도자는 죽음이 닥치면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면서 도망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참 목자 되시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릴 정도로 지키십니다. 우리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아는 만큼 믿을 수 있습니다.

“야, 저 사람과 언제부터 친하냐?”
“한 15년 돼.”
“잘 아니?”
“잘 알지. 목욕탕 같이 가고, 같이 먹고, 자고, 형제보다 친해.”
“근데 너 잘 모르는구나. 저 사람이 이북 공산당 간첩이래.”
잘 안다던 사람이 이 말 한마디에 소름 끼칠 정도로 놀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 사람을 잘 안다면 “무슨 소리 하고 있어? 내가 잘 알아. 그런 소리 하지 마” 했겠죠.

그러므로 영생은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요 17:3).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성령님을 알되 얼마나 알아야 하느냐?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신앙이 자라야 합니다(엡 3:13-14). 이 말씀을 모르면 다 넘어집니다. 누가 구원받습니까? 끝까지 말씀을 붙잡고 사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는 자, 듣는 자,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삽니다(계 1:3).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양을 위해 목숨 버린다던 목자(牧者)가 맹수 와 보세요. 자신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서 양을 헌신짝같이 버리고 도망갑니다.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생명을 버리고 십자가상에서 우리 죄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끝까지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잠시 하나님께 가 있을 동안 우리가 부모 없는 고아처럼 될까 봐 보혜사(保惠師) 성령을 대신 보내 주셔서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를 보호해 주고 역사하십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성령님이 우리 곁에서 감싸시고, 깨닫게 해주시고, 책임 주시고, 지혜와 명철과 총명을 주시고 붙잡아 주십니다. 참 고마운 분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출입을 지켜 주십니다. 나가나 들어오나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시 128:1-6, 31:2, 127:1, 97:10-11, 121:1-8). 하나님을 진짜 믿는 사람은 ‘아침에 나갈 때 편안한 마음으로 나가는 것, 일 보는 것, 들어오는 것 지켜 주시겠다니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사고가 없습니다.

시편 121:3-8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우리를 어떻게 지키시느냐? 친구끼리 말하다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친구의 눈을 찌르려고 해보세요. 놀라서 눈을 깜빡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켜 주십니다(시 17:8).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 시간에 복 받는 자리에 와있습니다. 믿으면 믿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왜 믿지 못합니까.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인장(印章)같이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통해 방초(芳草) 동산에서 편히 쉬고, 생수가 넘치는 시냇가에서 건강하고 마음 편안한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래도 우리가 믿지 못할까 봐 ‘내가 지팡이가 돼 줄게’ 하셨습니다. 뱀이나 벌레나 악한 짐승이 올 때 지팡이는 무기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팡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너무 황송하죠.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害)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했습니다. 지팡이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대적을 물리치는 것이고, 하나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기대는 것입니다. 지팡이는 불의를 칩니다. 풀밭에 뱀이 나올까 봐 지팡이로 치죠. 길가에 난 풀을 밟으면 옷과 신발이 젖으니 지팡이로 쳐서 물을 털어버립니다. 지팡이는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하는 버팀돌입니다. 막대기는 양들의 그릇된 길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방향 제시입니다.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는 영원하신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의 안전 보장이 되십니다. 그러니 걱정, 우수사려(憂愁思慮)를 다 맡기라는 것입니다(시 55:22, 잠 13:3, 벧전 5:7). 복된 자리에 있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근심, 걱정, 염려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궁상맞게 한숨 쉬지 말고, 그 시간에 엎드려 기도하세요. 복 받게 돼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인도자 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떠나실까 봐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데, 거꾸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 못 믿고 떨어질까 봐 늘 노심초사하시고 마음 편한 날이 없습니다. 늘 우리를 생각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엇으로 인도하시나?

과거 역사를 볼 때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막막했죠. 그런데 에담에서 불기둥, 구름 기둥이 처음 나타나서 그들을 인도했습니다(출 13:21-22). 우리 교인들이 잊어버릴까 봐 교회 식당 이름을 에담으로 지었습니다. 더운 사막 지대를 구름 우산으로 덮어, 장정만 60만 3,550명, 부녀자와 아이까지 하면 200만 명의 군중을 시원하게 다 덮으셨습니다. 바람 불어 구름이 날아갈까 봐 바람을 통제하시면서 200만 명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사막은 밤에는 춥습니다. 불기둥이 난방 장치가 돼서 찬바람을 훈훈하게 하고, 감기, 기침 나지 않게 인도하셨습니다. 이렇게 40년입니다. 바위를 쪼개서 시내가 되고 강이 되게 하셨죠. 2천 명이 먹고, 빨래하고, 목욕하려 해도 엄청난 물이 필요한데 200만 명이 쓸 물이 수돗물처럼 쫄쫄쫄 나오면 되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바위 입을 벌려 소방차보다 더 많이 쏟아내셨습니다. 다 쓰지 못해서 시내를 이루고 강물을 이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이 동그래지고 입이 딱 벌어졌죠. 하나님께서 이렇게 안 해 보세요. 반대하는 사람들이 성경이 거짓말이라고 할 것 아닙니까.
40년간 행군하면서 언제 농사를 짓습니까? 언제 씨 뿌리고 물주고 비료 주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걱정하지 마라. 내가 가나안에 인도할 때까지 40년 동안 배부르게 해 줄게.” 하셨습니다. 피곤해서 자다가 아침에 눈 뜨면 만나가 내려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하루 한 호멜씩 거둬 절구에 찧기도 하고, 맷돌에 갈기도 하고, 물에 삶기도 하고, 불에 굽기도 했습니다. 꿀 섞인 과자 맛이었습니다. 종합영양제입니다. 그런데도 감사를 몰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욕심을 부려 하루 먹을 것 이상을 거둬서 독에 부어놓았습니다. 밤새 구더기가 나고 썩어서 냄새가 났죠. 하나님께서 “그러지 말아라, 내가 매일 줄게.” 하고 다시 교육하셨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문 할 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합니다. 매일 주십니다.

구름 기둥, 불기둥이 사탄의 세력을 막는 것을 보십시오. 적이 쳐들어오면 구름 기둥이 땅으로 내려와 벽을 만듭니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이 돼 적이 한 치 앞을 못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 피난 간 뒤 구름을 거둬 가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 ‘여기가 쉬기 좋습니다.’ 하고 진 칠 곳을 찾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벌써 그들의 소가지를 다 아십니다. ‘여기가 쉬기 좋다’ 하시면서 천막 칠 장소를 다 찾아 주셨습니다(민 10:33, 신 1:33, 느 9장). 느헤미야 9장만 봐도 춤을 추죠. 그러니 걱정이 없는 것입니다. 걱정도 팔자입니다. 왜 걱정을 합니까.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38년 동안 말씀을 가르치고, 만나를 주고, 고기를 주고, 모든 것을 채워 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불평, 불만이었습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나를 괴롭혔다. 근심시켰다.”(시 95:10)고 하셨겠습니까. 인간의 표현으로 하면 하나님도 불쌍한 분이죠. 그렇게 다 해줘도 고맙다는 얘기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감사치 아니하고”(롬 1:21) 했죠. 감사 없으면 끝입니다. 사람은 감사의 동물입니다. 감사 없으면 집안 망합니다. 아무리 일류대학 나오고 고대광실(高臺廣室)에서 진수 반찬을 먹고 아들딸들이 있어도 감사 없으면 2대도 못 가서 다 망합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와 찬송이 하나님 앞에 차고 넘치는 복된 자리에 계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이 자리를 복된 자리로 믿는 사람입니다. 왜 근심하고 걱정합니까?

우리 평강교회를 통해서 인도해 줍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계시를 주어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왜 짓습니까?” “내가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야 하겠다.” 교회는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 하나님의 명령으로 지은 것입니다. 교회 올 때 믿음으로 하나님 만나는 신앙을 가지고 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출 25:22, 29:42,43, 30:6,36, 레 16:2, 민 17:4). 솔로몬도 성전을 지었죠(왕상 6:1-37). 그 장소가 어디입니까? 모리아 산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던 장소입니다. 몇천 년이 지나 사람은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여기에 지어라.” 하셨습니다. “왜 여기에 짓습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거룩한 제단이다”
평강교회 모리아 성전에서 하나님이 여러분 만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과 만나 무엇을 해야 합니까? 대화입니다. 어떻게 대화를 합니까? 기도로써, 찬송으로써, 성경공부 함으로써 대화하는 것입니다. 세 가지밖에 없습니다. 성전에 와서 하나님과 대화도 안 하고 그냥 간다면 얼마나 바보입니까. “하나님! 나 하나님과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해 보세요. 응답받는 기도는 ‘내가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마음이 편안하고, 흐뭇하고,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살아야죠.
하나님은 당신이 임재하신 교회에 나오면 놀랍게도 만나 주시고, 모든 사정을 아시고, 친히 들어주시고, 형통케 역사해 주시는 분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땀 흘려 기도드리고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고 눈 뜬 다음에 ‘될까?’ 한다면 되겠습니까.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내가 실행하겠다.”(요 14:13-14) 하셨으니 믿고 기도해야죠. 믿고 기도하면 응답 주겠다고 하셨으니(마 21:22, 막 11:24, 요 15:7) 성경을 믿어야죠.

나를 인도하시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성경 말씀을 증거하실 때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는 순간이구나.’하고 깨달으면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말씀이 증거될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받았다고 했어요(살전 2:13). 그래서 교회가 잘 됐습니다. 목사님 설교를 통해 ‘나를 은혜 가운데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구나.’ 생각하세요. 성경 공부하고, 찬송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기도할 줄 모르면 찬송가를 읽으세요. 얼마나 좋습니까. 신이 나면 무릎을 치고 몸을 들썩거리며 찬송을 부르게 되죠. ‘교회 오면 웃으며 찬양 잘 하는 사람이 집에만 가면 사자같이 얼굴이 부어 있다’는 말을 배우자에게 들으면 안 됩니다. 신앙인은 길을 가나, 집에 있으나, 친구 만나나, 여행 가나 늘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하세요.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 예언자들이 십자가 하나만을 증거했습니다. 십자가가 우리를 구속(救贖)하십니다. 원죄, 유전죄, 자범죄를 다 사해서 의인 만들어 주십니다. 그 나라 가서도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道)가 멸망 받을 사람에게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구원 얻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지혜, 명철, 능력입니다(고전 1:27).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겠다. 평생 십자가만 자랑하겠다.”(고전 2:1-2, 갈 6:14) 했죠. 성도 여러분, 복 받는 자리에 앉아 주님의 십자가를 끝까지 자랑하고, 십자가의 능력과 권세로 모든 악의 세력을 무찌르는 위대한 신앙의 장군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의 사람입니다. 찬송가 214장(변찮는 주님의 사랑과)을 손뼉 치면서 부릅시다.

찬송만 불러도 이렇게 흐뭇하고 좋은데, 천국에 들어가면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첫째, 먹지 않아서 좋고, 냄새가 안 나니 목욕도 안 합니다. 화장실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는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너무 많이 먹어도 탈 나고 피곤합니다. 그 나라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모두 발광체(發光體)입니다. 햇빛같이 빛을 발합니다. 죽음이 영원히 없습니다. 천사가 우리의 심부름꾼입니다. 우리의 시중을 듭니다. 여기서 미국 가려면 14시간 걸리지만, 거기서는 그룹 천사를 타고 순간 이동합니다(겔 1,10장). “김 권사님! 장로님! 목사님!” 부르면 상대방이 즉시 응답합니다. ‘바나나 먹고 싶다.’ 생각하면 이미 입에 들어와 있습니다. 세상은 그렇습니까? ‘이거 합시다.’ 하면 모여서 의견이 분분하죠. ‘너는 얼마 내라. 나는 얼마 낼게.’ 돈 잘못 쓸까 봐 눈독 들이고, 말질하죠. 그 세계는 그런 게 없습니다. 말을 마치기 전에 내 마음대로 돼 있습니다(사 65장). 세세 무궁토록 하나님과 같이 살기 때문에 피곤도 모르고 잠도 자지 않고, 늘 감사가 넘치는 찬송만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꽃을 보고 ‘아름답다.’ 하지만 1분만 보면 지겨워집니다. 천국에서는 세세 무궁토록 순간순간 바뀝니다. 거기는 늙은이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100세면 모든 것이 성치 않죠. 보이는 것은 다 그림의 떡이고, 먹어도 소화가 안 되죠. 이 땅에서 100세 된 노인이 죽으면 천국에서는 어린애와 같습니다(사 65장). 우리가 하도 천국을 모르니 비유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늙음도 죽음도 아픔도 병도 없습니다(계 21장). 고통이 없고 눈물이 없습니다. 이별도, 속상한 일도, 배신도 없는데 왜 울겠습니까. 이런 곳에 가자고 해도 믿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곳은 두려움도 없습니다. 죄가 있어야 두렵죠. 죄 지은 뒤 누가 알까 봐 두려워하죠.
“한턱 안 낼래? 안 내면 폭로한다!” 하면 죄가 폭로될까 봐 순간적으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듣는 것, 보통 일이 아닙니다. 영원한 근심이 없는 복된 자리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은 사람이 복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았고 양자(養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갈 때, 기도한 뒤 선장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항해하다가 배는 물론이고 사람 생명까지 위험해집니다.”
“여보쇼, 내가 바다에서 뼈가 굵은 사람이야. 날씨 좋은데 왜 그래?”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이런…”

결국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났습니다. 배 안의 물건을 다 집어 던지고 사투를 벌일 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바울아, 걱정하지 말라. 배가 다 깨져도 너는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는다. 그리고 276명의 생명을 너한테 맡기겠다.” 했습니다(행 27장). 모두 쓰러질 때 사도 바울만이 딱 서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생명을 다 나에게 맡기셨습니다.” 했습니다. 사도 바울을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도 인도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 평강교회의 가정마다 고해(苦海)바다 들이 미치듯 험난한 사건이 닥칠지라도, 맡기고 기도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를 형통으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끝까지 우리의 안내자, 인도자 되셔서 책임져 주시고 간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가정마다, 사업마다, 직장마다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엎드려서 모든 문제를 맡기고 “하나님 해결시켜 주세요.” 기도하십시오. ‘그래도 집안이 어지간해야 내가 부탁하지, 당장 망하게 생겼습니다.’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시 50:15) 하셨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안 된다고 하지 마세요. 제자들이 배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뱃고물을 베고 주무셨죠. 제자들이 “선생님, 우리가 죽게 생겼습니다.” 하자 “바다야! 바람아! 조용히 하라!” 하셨습니다. 노도(怒濤)가 순간 조용해졌죠. 제자들이 “아니, 이분이 누구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했습니다. 그 예수님이 오늘 이 자리에 계시면서 복된 자리를 만드시고 계십니다. 이 자리는 진짜 복된 자리입니다. 걱정하지 말고, 세상 끝날까지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의 지팡이 삼아 놓치지 말고 사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2009.6.28. 주일 2부 예배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설교

  • 2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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