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사건과 바벨론 포로 귀환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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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사건과
바벨론 포로 귀환 下
구약 성경의 다양한 책들에는 각자의 ‘장르’가 있다. 그중 우리에게 친숙한 ‘드라마’ 장르로 분류할 만한 두 책이 ‘룻기’와 ‘에스더’이다. 두 책에는 하나님이 등장인물로 나오시지 않으며, 여러 인물의 서사를 통해 하나님의 구속 경륜이 드러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지어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에스더서는 열방과 유다인을 통한 신묘한 구원 사역을 극적으로 드러내면서 그 속에 보이지 않는 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가장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악을 진멸하는 대역전의 잔치
삼 일 간의 금식이 끝나고 에스더는 안뜰에 나아갔다. 만약 에스더가 그냥 왕에게 나아갔다면 즉결 처형을 당할 상황이었지만, 아하수에로 왕은 순간적으로 에스더가 심히 사랑스러워 보여서 손에 잡은 금홀을 에스더에게 내밀며 자신 앞으로 불렀다. 에스더는 왕에게 하만과 함께 잔치에 참석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왕은 급히 하만을 불러 에스더의 잔치에 나아갔다. 에스더는 이 첫째 날 잔치에서 하만에 대한 일언반구 없이, 그저 다음날 잔치에서 요구를 말하겠노라 이야기했다.
에스더의 드라마는 이제 클라이막스의 긴박한 장면들을 향해 달려간다. 첫째 날 잔치가 끝난 후, 첫 번째 장면은 하만을 비춘다. 하만은 잔치가 끝나고 자신의 위상에 도취되어 심히 즐거워했지만,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를 보는 순간 그 즐거움이 모두 사라지고 분노가 가득해졌다. 이에 하만은 자신의 아내와 친구들을 불러 자신의 부귀영화를 자랑하며 에스더의 잔치에 왕과 함께 참석함을 크게 자랑한 뒤, 그 자랑에도 불구하고 모르드개가 있는 이상 만족함이 없으리라 하며 고민을 말한다. 이에 아내와 친구들은 높이 50규빗이되는 나무를 준비하고 내일 잔치에서 왕에게 요청하여 모르드개를 처형하자고 이야기한다.
장면이 바뀌어, 같은 밤에 아하수에로 왕은 잠이 오지 않아 역대 일기를 읽고 있었다.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자신을 암살하려고 하다가 모르드개의 고발로 실패한 대목을 읽은 뒤, 아하수에로 왕은 모르드개에게 아무런 상도 베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마침 하만은 다음날 잔치를 기다리지 못하고 왕에게 모르드개를 처형시킬 것을 구하기 위해 왕궁에 나오고 있었다. 이에 왕은 하만에게 왕이 존귀하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에게 어찌해야 할 지를 묻고, 하만은 그것이 자신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왕의 옷과 말을 내주어 왕과 같은 모습으로 수산 시내를 다니며 높여 줄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에게 명령하여 모르드개에게 이 일을 빠짐없이 행하라고 하였고, 하만은 모르드개를 처형하자는 이야기는커녕 원수를 성중 거리에서 높이며 굴욕을 당했다(에 6:1-11).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하만은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아내와 친구들과 상의한다. 이들은 언약 백성을 향한 자신들의 음모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도리어 진멸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 일을 깨닫는 순간, ‘말이 그치지도 않은’ 상황에서 왕의 내시들이 하만의 집에 들어와 하만을 에스더의 잔치로 데리고 나갔다(에 6:12-14). 악은 그 비참한 종말을 깨닫고도 신속한 말씀의 성취에 도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둘째 날 잔치에서 에스더는 유다인의 위기를 호소하며 그 모든 악한 일을 꾸민 것이 하만임을 고했다. 하만은 에스더를 붙잡아가며 생명을 구걸하였지만, 왕은 그 모습을 보고 에스더의 말에 분노한 하만이 에스더를 강간하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순식간에 얼굴이 싸여서 포박당한 하만에게는 변명의 기회도 없었다. 그는 결국 모르드개를 달려고 했던 나무에 달려 비참히 생을 마감하였다.
추가 조서의 발표와 역전승의 날
하만의 비참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하만이 작성한 조서에는 아하수에로의 인장이 찍혀 있다. 즉, 그 조서를 취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에스더가 유대인 진멸의 조서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하자, 아하수에로는 대신 에스더와 모르드개에게 왕의 명의로 조서를 쓰고 반지로 인을 치라고 허락하였다. 이에 모르드개는 유다인에게 자기방어의 권리를 허락하는 조서를 작성하여 왕의 반지로 인을 쳤다. 이 조서에 따르면, 유다인들은 하만의 조서가 실행되는 12월 13일에 함께 모여서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유다인을 치려는 자들을 공격하여 진멸하고 재산을 탈취할 수 있게 허락을 받았다. 당시 피지배 백성에게 함께 모이는 것을 허락하는 것은 반란의 위험성 때문에 결코 허락받지 못할 일이었지만, 유다인들은 서로 힘을 합쳐서 하만의 계략에 대응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것이다.
이 조서가 새로 작성된 날은 3월 23일이다(에 8:9). 이 날은 하만의 조서가 작성되었던 1월 13일으로부터 70일째가 되는 날이다! 구속사의 길을 중단시키려는 하만의 음모는 에스더와 모르드개로 인한 추가 조서로 인하여 도리어 언약 백성을 진멸하려는 모든 대적들을 찾아내서 진멸하는 승리의 기회가 되었다. 구속사를 가로막으려는 사단의 세력은 12월 13일을 구속사 멸망의 날로 준비해 왔지만, 도리어 12월 13일은 언약 백성의 대적을 진멸하는 놀라운 대역전 승리의 날이 된 것이다.
에스더 사건이 제2차 바벨론 포로 귀환에 미친 영향
박윤식 목사는 구속사 시리즈 제5권 <영원한 언약의 약속>에서 ‘에스더 사건은 이후 제2차 바벨론 포로 귀환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라고 설명하였다(386-394p). 에스더의 결말과 헤도로토스의 역사 기록 등을 비교하면서 그 정확한 스토리를 파악할 수 있다.
폐위된 왕후 와스디(아메스트리스)는 훗날 아하수에로 사후 왕이 되는 아닥사스다 1세의 어머니이다. 그리고 유대 문헌들은 에스더가 아하수에로를 통해 ‘다마스피아’라는 딸을 낳았고, 다마스피아는 후에 아닥사스다 1세와 결혼하였다고 전한다. 이러한 역사 기록에 따르면, 에스더 사건은 바사 127도에 유다인의 위상을 떨치는 사건이 되었으며 바사의 총리가 된 모르드개를 통해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을 가지게 했을 것이다. 또한 아닥사스다 1세가 왕이 된 후에도 아내 다마스피아를 통해 유다인들을 선대하게 되었을 것이다. 느헤미야가 제3차 바벨론 포로 귀환을 허락 받기 위해 아닥스사다에게 나아갈 때, 느헤미야 2:6에서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를 특별히 기록한 것은 아닥사스다가 제3차 귀환을 허락한 것에도 다마스피아의 영향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느헤미야 2:6 “그 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결국 에스더 드라마는 겉으로 ‘하나님’이라는 단어 없이 인간 군상들의 정치극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개인과 열왕, 열방 단위로 세밀하게 섭리하시며 구속사의 뜻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들어있다. 이 드라마는 구약 시대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마지막 때 성도를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가 완성되는 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글_정정원 목사
삽화_박희영
- 22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