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사건과 바벨론 포로 귀환 上
에스더 사건과
바벨론 포로 귀환 上
구약 성경의 다양한 책들에는 각자의 ‘장르’가 있다. 그중 우리에게 친숙한 ‘드라마’ 장르로 분류할 만한 두 책이 ‘룻기’와 ‘에스더’이다. 두 책에는 하나님이 등장인물로 나오시지 않으며, 여러 인물의 서사를 통해 하나님의 구속 경륜이 드러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지어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에스더서는 열방과 유다인을 통한 신묘한 구원 사역을 극적으로 드러내면서 그 속에 보이지 않는 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가장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에스더 드라마의 등장인물
에스더(하닷사) : 부모를 잃고 삼촌 모르드개에게 양육된 아리따운 유대인 여성. 본명(유대 이름)은 ‘도금양 나무’라는 뜻의 ‘하닷사’이며, 바사(페르시아) 식(式) 이름 ‘에스더’는 ‘별’이라는 뜻이다.
모르드개 : 바벨론 포로로 잡혀온 베냐민 지파의 인물이자 에스더의 사촌. 우상 숭배하는 죄를 범치 않기 위해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으며, 유대의 환난 가운데 에스더의 소명을 일깨워 주었다.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 당시 바사 127개 도를 다스리는 왕. 세계사에는
‘크세르크세스’(Xerxes)로 기록되어 있다. 훗날 제2, 3차 바벨론 포로 귀환을 허락하는 아닥사스다 1세의 아버지.
와스디(아메스트리스) : 세계사에는 바사 장군 오타니스의 딸 ‘아메스트리스’로 기록되어 있다. 아하수에로와 결혼하여 아닥사스다 1세를 낳았지만, 왕의 부름을 거절했다가 폐위당했다.
하만 :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전 바사를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지만,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무릎 꿇고 절하지 않자 그 민족 유다인들을 통째로 진멸하려는 음모를 세운다.
와스디의 폐위와 에스더의 간택
아하수에로 왕은 통치 3년(주전 483년)에 전국 127도의 귀족과 방백들을 모두 모아 180일 동안 이어지는 대축제로 나라의 부강함을 과시하고, 바로 이어 수도인 수산 시민들을 위한 축제를 7일간 진행하였다. 마지막 날 아하수에로 왕은 왕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자 와스디를 잔치 자리에 초청하였으나 와스디는 왕명을 거절하고 잔치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헬라의 역사가 헤도로토스에 의하면 아하수에로 왕의 아내 아메스트리스는 ‘철의 여인’이라는 이름 뜻과 같이 잔혹한 일을 많이 저질렀다. 아하수에로가 사랑하는 다른 여자를 죽여 개에게 던지고, 자신을 대신하여 14명의 소년을 죽여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 이 아메스트리스와 동일 인물이 와스디로 여겨진다. 아메스트리스는 조로아스터교 신자로서 아하수에로 왕을 이방 신을 섬기는 길로 인도하는 여자였을 것이다.
와스디의 왕명 불복에 크게 망신을 당한 아하수에로 왕은 온 바사에 본보기를 삼기 위해 그녀를 왕후의 자리에서 폐위시켰다. 그리고 바사 전국의 아름다운 여자들을 모아 살핀 뒤 통치 7년(주전 479년) 에스더를 간택하여 궁으로 들였다.
하만의 등장과 구속사의 단절 위기
아하수에로 왕은 에돔 지방에서 포로로 잡혀 왔던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을 중용하여 전 바사를 다스리는 총리로 삼았다. 바사의 모든 대신들이 하만에게 무릎 꿇고 절하였지만 모르드개만큼은 하만에게 무릎 꿇지도, 절하지도 않았다. 대신들이 이유를 묻자 모르드개는 자신이 유다인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하나님의 율법대로 하나님 이외에 누구에게도 우상 숭배할 수 없다는 말이며, 또한 하만은 에돔 족속 아말렉의 후손으로서 하나님께서 진멸을 명령하신, 유다인들의 철천지원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만은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이라고 기록돼 있다(에 3:1). ‘아각’은 아말렉 왕의 호칭이다(삼상 15:20). 아말렉은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가 첩 딤나를 통해 낳은 아들로, 아말렉은 에서 족속에게서 비롯됐다. 야곱과 에서는 형제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태중에서부터 야곱은 사랑하는 자로, 에서는 미워하는 자로 구별하셨다(롬 9:10-13). 둘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기는 하지만 야곱은 이삭의 장자권을 계승하는 약속의 아들이요, 에서는 약속이 없는 육신의 자녀인 것이다(롬 9:6-9). 이 말씀처럼 에서의 후손 아말렉 자손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잔인하게 공격함으로써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없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내려진다(출 17:8-16, 신 25:17-19).
하만은 모르드개에게 분노해 그 민족까지 몰살시킬 계획을 세우고 아하수에로 통치 12년(주전 474년)에 아하수에로 왕을 속여 바사 전국의 유다인을 12월 13일에 진멸하라는 조서를 작성한다(에 3:7-15).
역사적으로 하만의 등장은 이스라엘의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아말렉의 영토 전체를 점령하고 아말렉을 진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눈에 좋은 것들은 남겨두었다(삼상 15:7-9). 사울의 불순종으로 아말렉 진멸에 실패함으로, 훗날 이스라엘은 아말렉 후손 하만에게 진멸의 위기를 겪게 된 것이다. 하만의 음모는 모르드개에 대한 분노 때문에 세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마치 아달랴가 다윗의 씨를 진멸하려고 했던 것처럼(왕하 11:1, 대하 22:10),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언약 백성의 길을 진멸하여 구속사를 단절시키려는 사탄 마귀의 사악한 계획이었다. 에서 족속을 통한 구속사 단절의 시도는 훗날 에돔 족속의 헤롯 대왕이 유다의 하스몬 왕가를 완전히 진멸하고, 베들레헴 인근 2살 이하 영아를 학살하면서 정점에 이른다(마 2:16-18).
위기 극복을 위해 부름을 받은 에스더
하만이 아하수에로의 인장 반지로 유다인 진멸의 조서에 인을 친 것은 이 명령이 절대로 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참고-스 6:11-12, 단 6:12, 15). 조서의 내용을 들은 모르드개는 대성통곡하며 식음을 전폐하였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사람을 보내어 연고를 묻자, 모르드개는 조서의 초본을 보내며 ‘아닥사스다 왕에게 나아가 유다인을 위해서 간절히 구하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당시 에스더는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 지가 이미 30일이었다. 바사에서는 왕의 부름 없이 안뜰에 들어가 왕에게 나아가면 사형에 처했기에 에스더는 쉽게 왕에게 나아갈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바사의 왕들은 암살의 위협에 노출돼 있었고, 아하수에로 왕도 내시 빅단과 데레스로 인해 암살의 위기를 겪었던 전례가 있었기에(에 2:21-23), 왕 앞에 부름 없이 나가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에스더의 대답을 듣고 모르드개는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2-14)라고 일갈했다. 모르드개는 유다인이 구속사를 이루어 나가야 하는 사명을 가진 언약 백성이기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에스더의 간택은 바로 이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미리 준비하신 것임을 확신하였다(참고-창 45:5, 시 105:17). 만약 에스더가 순종치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길을 통해 유다인을 구원하실 것이지만, 시대적 사명을 저버린 에스더의 집은 멸망받게 될 것임을 깨닫게 한 것이다.
모르드개의 일갈에 에스더는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모든 유다인과 함께 3일간의 금식을 통해 구원을 위하여 죽음의 자리로 담대히 나아갈 것을 결심하게 된다. 교회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모르드개의 일갈과 같이, 성도가 망각한 사명을 깨닫고 기도하며 사명지로 나아가게 한다.
10월호에 하편(下篇)이 계속됩니다.
글_정정원 목사, 삽화_박희영
- 22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