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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믿음의 증거를 받은 에녹

2022.08.21 23:24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믿음의 증거를 받은 에녹

창세기 5:21-24, 유다서 1:14-15, 히브리서 11:5-6

에녹에 대해서는 신구약 성경에 단 세 군데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나 구속사적 입장에서 볼 때 에녹은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량(重量)으로 친다면 어마어마한 무게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창 5:22, 24).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창 6:9). 말라기 선지자는 종교 지도자와 제사장들의 삶에 대해 훈계하면서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말 2:5-6)라고 했고,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제일 바라시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가서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과 동행하는 비결

첫째,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히 11:6).
둘째는, 감사 생활로 동행하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으면 믿음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감사 없이 동행할 수 있습니까? 감사는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내가 너와 같이 갔으니 너 나한테 얼마 줄래?’ 하는 것이 없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십니다
(시 50:14, 23). 하나님은 예배드릴 때 감사 생활을 하는 사람을 제일 좋아하십니다. 감사로 예배드리는 사람을 책임져 주십니다.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늘 감사해야 합니다. 아침에 눈 뜨면 세상 만물이 잘 보이는 것, 머리 아프지 않고 몸 건강한 것, 오늘 교회 와서 목사, 전도사, 성도들 만나고 온 것, 어디 같이 가서 식사하는 것, 이 모두가 얼마나 감사합니까. 위가 아프든지 내장 어디가 고장 났다면 같이 식사도 못 할 것 아닙니까. 식사할 때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시 37:4, 욥 22:26). 하나님을 기뻐하려면 감사와 찬송과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주 안에서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권력이나 돈 때문에, 취직시켜 주셨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사 58:14, 빌 3:1, 4:4).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느 8:10).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건강하면 힘이 생기죠. 그러면 하나님께 보답하는 양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송과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사가 넘치면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가정과 개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늘 맴돕니다. 그러므로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습니다(신 28장, 시 121:8). 암에 걸려도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 기도해 보세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암이 달아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 죄를 없애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죄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온 아픔, 즉 질병을 몽땅 회수하러, 책임지러 오신 것입니다(마 8:16-17).

마태복음 8:16-17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우리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엡 5:20).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를 넘치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비결입니다(골 2:7). 기도에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골 4:2). 마지못해 하는 기도, 일이 잘 안된다고 간절한 마음도 없이 남이 하라니까 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원치 않으십니다. 감사가 있어야 자발적인 기도가 나옵니다. 사람이 주는 것 같지만, 뜻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은혜받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남을 도와주지도 못합니다 ‘내가 밤잠 못 자며 어떻게 번 돈인데’ 합니다. 그러나 밤잠 못 잔 것도 하나님 은혜고, 일하는 것도 하나님 은혜고,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 은혜입니다.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7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이렇게 사는 자는 질병이 없습니다.

에녹의 동행

에녹은 창세 후 1대인 아담의 7세손입니다
(유 1:14). 962세까지 산 야렛의 아들입니다(창 5:18). 에녹은 65세에 큰아들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 에녹의 행적은 65세 전까지는 성경에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지은 것을 회개하고 므두셀라를 낳자마자 주님의 재림과 노아 때 홍수 심판을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입니다(유 1:14-15). 에녹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의 난해절(難解節)이지만, 앞으로 구속사 시리즈에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미리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5:21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창세기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녹은 특별한 인물입니다. 1대 아담부터 10대 노아까지 “죽었더라”가 9번 기록돼 있습니다
(창 5:5, 8, 11, 14, 17, 20, 28, 31, 9:29). 그런데 에녹만은 죽지 않고 살아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창세기 5:24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더라.
히브리서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성경은 그 이유를 단 한 가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창 5:24). ‘현대인의 성경’은 이 구절을 “그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사는 중에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그가 사라지고 말았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동행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눈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암 3:3)라고 했습니다. 뜻 의(意), 합할 합(合)입니다. 뜻과 마음이 서로 맞아야 같이 걸어가고, 주고받고, 식사도 같이하고, 교제도 나누고, 사업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에녹은 늘 의합했습니다. 주고받은 비밀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 대해서도 “내가 다윗을 만나니 어쩌면 내 마음에 맞느냐.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윗에게 줘서 다 이룩하겠다”(행 13:22)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그 ‘뜻’은 무엇일까요. 미가서 6:8 말씀을 영원히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미가서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탁하시는 것은 첫째 겸손,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동행입니다.

오늘 본문의 초점은 에녹이 언제부터 하나님과 동행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65세까지 그가 어떻게 지냈는지는 성경에 한 줄도 기록이 없습니다. 그는 므두셀라를 낳은 뒤 65세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비밀이 엄청납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노아 홍수 심판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기 전까지는 함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므두셀라를 낳은 뒤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그 전에 65년간 살며 죄지은 것을 철두철미하게 회개하지 않았겠습니까? 제가 지리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이 뜻을 안 뒤 소름이 끼치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에녹은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다시 아들딸을 낳았습니다. 에녹 시대에 아들딸을 낳은 사람이 수천만만이죠. 그러나 에녹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명, 언약, 말씀을 자식에게 가르쳐 자식들이 믿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에녹과 동행하셨겠습니까. “300년간 동행하며 아들딸읗 낳았다”는 말씀을 볼 때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소름이 끼칩니다. 다른 사람들도 아들딸 낳았죠. 그러나 하나님이 관심도 없었습니다. 에녹은 솜털같이 지은 죄도 철두철미하게 다 회개하고, 하나님과 마음이 맞았습니다. 아들딸을 낳은 뒤 부모의 신앙을 전수했습니다. 절대 순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300년간 동행하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할 때 그 아들딸들이 전부 에녹같이 하나님의 관심 속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에녹도 65세 전에는 육의 생각이었습니다. 영적인 세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므두셀라를 낳자마자 달라진 것입니다. 그는 아담과 308년간 같은 시대를 살았습니다. 창세 전의 세계, 창세 후의 세계, 타락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을 아담이 다 얘기해 줬습니다. 그것을 듣고 에녹이 하나님 앞에 서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모르셨습니다. 세상을 보면 송장이 썩는 듯한 악취가 났습니다. 그러나 에녹과 그의 가정을 보면 향취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주님의 재림과 그때 천군 천사가 어떻게 움직이시는지를 다 보여주신 것입니다.
동행의 결정적 계기가 65세에 낳은 므두셀라입니다. 그의 출생으로 에녹의 삶은 일대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다 뒤집어졌습니다. 이전의 생활, 마음가짐, 신앙은 다 버렸습니다. 자기 눈으로 보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는 자의 자격

성경은 동행의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신명기 29:29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느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이 말씀처럼 연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묘한 일’은 하나님만 아시고, 인류에게, 선지자 누구에게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말씀하시지 않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속 오(奧), 묘할 묘(妙), 즉 ‘오묘’는 심오하고 미묘한 것입니다. ‘이상야릇하다’, ‘알 것 같은데 모른다’는 뜻입니다. 미묘(微妙)는 규정지을 수 없게 뚜렷하지 않고 야릇하다는 뜻이죠. 사랑과 미움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이 겉으로는 친한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친하지 않은 것 같아’. 이런 것을 가리켜 미묘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타난 일’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영구히, 즉 세세 무궁토록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비밀을 누가 깨닫습니까.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두렵게 믿는 사람입니다.

시편 25:14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아모스서 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진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비밀이 있습니다. 경외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비밀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딱 달라붙어서 요지부동입니다. 자나 깨나, 먹든지 마시든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친밀함이 거기에 있습니다(창 18:17, 민 22:38). 경외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우정이 떠나지 않습니다. 부부간이든 친구 간이든 우정이 있어 보세요.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욥 29:4).

둘째,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하나님의 속사정을 알 수가 없습니다(욥 15:8, 렘 23:18, 롬 11:34, 고전 2:11).

셋째, 하나님께 소속된 자라야 생명의 말씀,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목사, 장로, 전도사라도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곁다리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요 8:47).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예배에 참석 안 하고 도망갑니다. 진리에 속한 자는 다 하나님 말씀을 듣습니다.

요한복음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말씀을 들어도 서로 다른 길로 간다고 말했습니다.

고린도후서 2: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누가복음 2:34도 마찬가지입니다. 참 무섭게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넷째, 정직한 자가 하나님의 비밀, 오묘한 섭리를 깨닫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교통하심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정직한 자를 아낌없이 도와준다고 하셨습니다(시 84:11). 정직하면 하나님의 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깨닫습니다(시 107:42-43). 악한 자는 깨닫지 못합니다. 오직 지혜 있는 사람만 깨닫습니다(단 12:10, 잠 10:29). 호세아 선지자는 종말에 관해 말씀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세아 14:9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재림의 비밀을 본 에녹의 경고

유다서 1:14-15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성도 여러분, 말조심하세요. 간음, 강간, 도적질, 사기는 둘째 문제입니다. 경건치 않은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정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아담의 칠 대 손 에녹은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수많은 성도들을 거느리고 오셔서 심판하실 때에 경건치 않은 사람들이 제멋대로 행한 모든 불경스러운 행동과 경건치 않은 죄인들이 주님께 대하여 함부로 지껄인 말을 낱낱이 들추어내실 것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마치 배설하듯 여기저기 지껄인 말을 하나님이 먼저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면 혀를 금하라고 하셨습니다(벧전 3:10).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말을 아껴야 합니다(마 12:36-37). 입술의 열매로 선악간에 심판을 받습니다(잠 12:14, 13:2, 17:27, 28, 18:21, 전 12:14, 롬 14:12, 벧전 4:5, 마 5:22, 약 3:2-12). 입술을 조심해야 합니다(벧전 3:8-12, 잠 13:3, 21:23, 12:13, 18:20, 21, 4:23).

에베소서 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씨알머리 없고 내용도 없이 말하는 것에 열매가 없습니다(엡 5:11, 벧후 1:8).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내리치십니다. 그러면 납작하게 낮아지고 맙니다(잠 29:23, 17:19, 삼하 22:28, 마 23:12, 약 4:6, 잠 11:2, 14:14, 16:18).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도 교만하다가 가장 낮은 자가 됐습니다(단 4:29-31).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는 구속사적으로 아주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훗날 므두셀라의 아들 라멕은 첫아들을 낳고 기도하는 가운데 이름을 노아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시리라”하며, 아들 이름을 ‘안식’이라는 뜻의 노아로 지은 것입니다(창 5:28-29). 에녹도 첫아들을 낳은 후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그 이름이 므두셀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므두셀라를 통해 장차 있을 대환란을 인류에게 깨우치도록 하신 것입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 속에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그 이름에는 전 인류가 죽고 사는 비밀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므두셀라는 당시에 널리 알려진 이름입니다. 당시 구두로 전승돼 오던 설화에서 ‘창을 들고 동네를 보호해 주는 자’, 즉 수호신을 므두셀라라고 불렀습니다. 그 시대에는 동네마다 모두 수호신이 있었습니다. 자기 동네를 지키는 존재이니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 수호신이 죽으면 그 동네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에녹에게 아들의 이름을 그 ‘수호신’으로 짓게 하신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므두셀라의 이름에는 그의 사역을 밝혀주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죽음이라는 뜻의 ‘무트’입니다. 두 번째는 보내진다는 뜻의 ‘셀라’입니다. 다시 말하면 “므두셀라가 죽으면 내가 보내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즉 “그가 죽은 후에 그 일이 발생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969년 만에 성취됐습니다. 참으로 놀랍죠.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뒤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때부터 669년 만에 말씀이 이뤄졌습니다. 성경은 맞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1년의 오차도 없습니다. 므두셀라는 노아 600세 2월 10일에 죽었습니다. 그날 노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짐승과 함께 7일 동안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2월 17일에 홍수가 일어났습니다.

창세기 7:10-11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세상은 므두셀라가 살아 있는 동안은 심판에서 보호받았습니다. 므두셀라는 ‘수호신’이라는 이름 뜻대로 동네를 지켰고, 그가 죽자 인류는 수호신조차 없어진 것입니다. 므두셀라가 죽자마자 노아에게 정확하게 심판의 계시가 왔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참으로 오묘합니다.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습니다(창 5:25).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습니다(창 5:28). 홍수가 일어난 것은 노아 600세입니다. 즉 그해에 므두셀라는 969세였습니다(창 5:27). 에녹은 홍수 심판 969년 전에 심판을 예고받은 것입니다(참고- 유 1:14-15, 히 11:7)
창세기 6:5-7은 노아 때 인류의 상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녹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아들딸을 낳았지만, 에녹 시대나 노아 시대나 가인 계통의 자손들은 자기 욕심대로 살았습니다. 에녹은 므두셀라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늘 깨어 있었습니다.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깨어 있었습니다(창 6:8-9). 예수님은 종말에 관해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임함은 노아 때와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깨어 있으라”(마 24:37-42) 에녹처럼 깨어 있는 처녀는 신랑이 온다고 할 때 바로 등을 들고 나갈 수 있지만, 깨어 있지 못한 처녀는 그제야 기름을 빌리러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 새고 마는 것이죠.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린 것이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살기 위해서는 고집부리지 말고 늘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불초한 종에게 베풀어 주사 말씀을 대할 때마다 깨닫는 명철과 지혜와 총명과 지식의 신을 보내 주셔서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마음가짐을 늘 가지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아 내가 너와 언약을 통해 메시아를 보낼 길을 열어야 할 텐데 네가 죽으면 말씀이 없어질 것 아니냐. 그러니까 너에게 자식을 낳게 하겠다. 너에게 약속한 축복은 다 이뤄질 것이다. 그 대신에 내가 소원이 있다.” 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이 창세기 18:18-19입니다.

창세기 18:18-19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아들, 손자에게 너와 똑같이 의와 공도를 가르치라, 그러면 내가 말씀을 통해서 언약을 이루겠다.”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끊어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신 4:9, 6:7, 11:18-19, 32:46, 시 78:4-6).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의 줄기가 오늘날까지 끊어지지 않고 지금 평강교회에 와서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병들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6). 평강교회 성도들은 인류의 시조 아담에게 주신 행위언약과 아브라함에게 주신 믿음의 언약, 변치 않는 소금언약의 말씀을 증거하는 교회가 산 교회고, 하나님 뜻을 마지막에 이룩하게 되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011년 1월 30일 주일 3부 예배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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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9 “구속사 말씀으로 구약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더 분명히 보게 됐습니다.” 2026.09.01
2948 구속사 시리즈 9권,「신묘한 영광의 비밀, 성막과 언약궤」서평 마크 마이어, 마르첼-발렌틴 머첼라루 박사 2026.08.31
2947 셀 수 없을 만큼 널려 있는 은혜의 이모저모 2026.08.31
2946 날마다 주님을 만나는 생활 – 이사야 55:6-11 2026.08.31
2945 포토뉴스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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