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광복, ‘나’로부터의 개혁이 있어야
참된 광복,
‘나’로부터의 개혁이 있어야
신명기 16:1-17
1993년 8월 참평안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패의 골이 너무 깊고 넓습니다.
우리는 지금,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난 감격을 ‘빛을 되찾았다’하여 광복절로 정해 놓고 기념하여 온 지 48년째를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라고 하는 외부적 어둠보다 우리의 역사, 우리의 사회를 더욱 멍들게 한 것은 우리 자신 속에 도사리고 있던 어둠들이었음을 생각해 보게 하는 지난 반세기였습니다.
개혁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정부 차원의 개혁이나 제도적인 개혁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무엇보다 시민 개개인의 의식개혁이 선행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고 모든 개혁이 각자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각성이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온 세계 모든 나라의 역사와 사회를 뒤덮고 있는 극한 어둠과 엄청난 혼란들이 실상은 인간 자신의 문제이고, 사람의 영혼이 솟구쳐내는 악의 소용돌이인 것을, 많은 사람이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각성과 인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문제, 인간 영혼의 문제를 담당한 교육계, 종교계가 먼저 각성하고 거듭나야만 국민 의식의 개혁이 가능하게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지만, 문제는 이미 부패해 버린 교육계, 종교계를 누가 각성케 하고 거듭나게 해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교육계니, 종교계니 할 것 없이,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구성원이 바로 ‘나’ 자신인 까닭에 모든 역사와 사회의 개혁은 누가 뭐래도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맞는 말입니다. 내 자신 속에 온갖 어둠과 악이 도사리고 있는데, 남에게만 개혁하라고 외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창조 본연의 삶을 나 자신 속에 회복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의 양심은 깨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온 국민의 마음속에, ‘나’를 먼저 개혁시켜야겠다 하는 각오와 결심이 일어나면,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사회 개혁의 진정한 시작이 될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은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개혁하여 온전한 인간으로 완성되어 가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살고,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밝아지고 나 자신과 우리의 가정과 이웃이 참으로 행복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나의 영혼 속에 깃들인 악의 정체를 발견하고 이 악을 뿌리 뽑는 일에 마음을 다하고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인간과 역사의 관계를 생각하고 인간과 사회와 자연 만물과의 상관관계를 깊이 돌아보면서, 우주 만물의 주인으로서의 인간의 모습, 참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창조 본연의 삶을 먼저 나 자신 속에 회복해 가려는 노력만으로도 우리의 의식, 우리의 양심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참으로 다행하고 감사한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역사를 절대 주권적인 섭리대로, 그의 지극히 거룩하고 선하고 참되신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고,
‘나’는 지금 여기에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이 한 가지 사실입니다. 바로 이 사실 속에,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기만 하면, 우리에겐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선이 가득한 삶을 한번 살아보겠다는 다짐과 용기가 넘칠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선만 가득해야 할 인간의 영혼은 선악의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는 선악의 갈등에 시달리는 인간 영혼의 진열장이 되었고, 역사를 근본에서 구원하는 것은 인간의 영혼 속에 도사린 선악의 영을 뿌리 뽑는 일입니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빛을 먹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한 가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빛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진리입니다. 문명의 이기(文明-利器) 속에 길들여진 현대인은, 모든 것을 사들일 수 있는 돈이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부여받은 생명, 건강 그리고 태양이 쏟아붓는 햇살, 바람과 이슬, 산과 바다와 들, 그 속에 무진장으로 주어진 온갖 초목과 물고기, 사람은 이 모든 것들을 선물로 받아 살고 있는 것이고, 특별히 모든 생명체를 생존케 하는 근원적인 힘은 값없이 쏟아지는 빛입니다. 한 포기의 풀, 한 그루의 나무도 그 한 살이를 보면, 씨 자체가 빛의 결정체이고, 땅에 묻힌 후에 제 속에 깃들인 생명으로 대지를 뚫고 나와 다시 태양이 주는 빛을 받아먹고는 각양각색으로 자유롭게 제 모습을 피워낸 후에 새로운 열매로 영글어 갑니다. 초목이 이렇게 빛으로 열매를 맺어 제 생명을 끝없이 이어가는 걸 보면, 생명은 빛 안에서 영원한 것임을 깨닫게 되고, 병과 죽음은 빛과의 단절에서 오는 비본래적인 현상인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영혼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외면한 현대인들, 독한 사상과 이념으로 황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사람도 오곡백과 짐승의 고기를 먹고 육신의 생명을 보존해 갑니다. 결국 빛을 먹고 산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겐 영혼이 있고 우리 영혼 또한 빛을 먹어야 살아 있는 영혼으로 존재할 수 있고, 인간 영혼의 본래 모습인 하나님의 형상(창 1:26-28)으로 영글어 갑니다. 현대인들은 고도의 학력을 자랑하며 온갖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도 마치 영혼이 없는 존재인 양 제 영혼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외면한 채 살아갑니다. 사람이 상한 음식이나 독이 든 것을 잘못 먹으면 식중독에 걸려 인사불성이 되듯 사람의 영혼도 욕심과 거짓, 미움과 교만 등 어둠을 먹고 마시면 메마르고 황폐해져서 귀신 같아지거나 짐승의 지경이 되고 마는 법인데, 사람들은 마구 악하고 독한 사상과 이념을 먹어댑니다. 일찍이 지혜의 사람 솔로몬은,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시공간에 매이지 않는 불멸성, 무한성을 지닌 것이어서 ‘영원’을 먹고 마셔야 참 만족하고 평안케 되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사람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전 3:11)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영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어서,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 속에서만 사람은 이 ‘영원’을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감추인 영과 생명, 이것만이 우리 영혼을 영원히 살게 하는 참된 빛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인간 속에서 선악 간의 전쟁을 끝장냅니다.
인간의 영혼이 아직 미숙했을 때, 간교한 들짐승 뱀의 말을 듣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사건이 인간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선만이 가득해야 할 인간의 영혼 속에 선과 악이 공존하게 되었고, 인간의 영혼은 선과 악의 전쟁터가 되고 만 것입니다. 결국 인류 역사는 선악의 갈등에 시달리는 인간 영혼의 진열장이 되었고, 역사를 근본에서 구원하는 것은 인간의 영혼 속에 도사린 선악의 영을 뿌리 뽑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 인간 속에 도사린 모든 악을 뿌리 뽑아 처분해 주신 사건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능히 생명 나무 앞으로 달려갈 수 있도록 인간의 영혼을 다시 살려주신 사건입니다.
스스로 정결케 하는 삶으로, 이웃과 사회를 밝히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한국 교회 안에, 녹슬어 버린 무딘 칼처럼 쓸모없는 인본주의적인 도덕 강의 대신에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히 4:12)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의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능력으로 체험케 하는, 살아 역사하는 복음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능히 자신의 영혼을 밝혀 스스로 자신을 개혁게 하는 원동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마지막 때를 가리켜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 달으리라”(단 12:10)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정치 경제니, 종교와 교육이니 할 것이 아니고, 사람마다 스스로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속죄 은총을 힘입고, 날마다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의 빛으로 자신의 영혼을 밝혀 나라와 민족, 이웃과 사회를 살리는 일에 내가 한번 앞장서기만 하면, 비로소 이 나라 안에 참된 광복의 역사가 능히 창조될 줄로 믿습니다.
휘선 박윤식 목사
- 22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