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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평안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2022.06.25 19:38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마태복음 14:22-32

2004년 정월 초하루가 어제 같더니 벌써 4월 25일입니다. 노량진에서 오류동 성전으로 옮긴지 어느새 12년 됐습니다. 이곳에 심은 나무 값만 4억 원이 넘습니다. 전라도 여수, 순천에서 사 온 것입니다. 이곳은 원래 군부대여서 포플러 나무가 많았습니다. 벌레가 많고 봄이면 꽃가루가 날립니다. 지금은 진달래, 철쭉, 무궁화, 목련화, 단풍나무들이 심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공기 속에 산천초목이 방긋 웃는 봄 동산에서 예배드린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시내에 있다 여기 오면 벌써 콧구멍이 시원하고 공기가 맑습니다.

무척이나 살기 힘든 시대입니다. 있는 사람들이야 펑펑 쓰지만, 많은 이들이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며 눈만 뜨면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낼 일이 걱정입니다. 그러다 불의의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집니다. 오늘 무슨 말씀을 선포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가시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4:22-32과 마가복음 6:45-51, 요한복음 6:15-21 모두 같은 말씀입니다. 오늘 제목은 본문 그대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입니다. 원어에는 “나다! 안심하라! 겁낼 것 없다!”로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고해(苦海) 바다 들이 미치는 가운데 험난한 항해를 하는 일엽편주(一葉片舟)와 같습니다. 성도는 천국을 상징하는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해 가는 존재들입니다(갈 4:28 이하, 계 21,22, 사 65,66). 그 안전한 포구에 가기까지는 험난한 폭풍이 수시로 닥쳐오죠. 잔잔한 물결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에는 일월성신(日月星辰)에 징조가 있겠고,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로 세상이 곤고해진다고 하셨습니다. 문자 그대로 동해, 서해의 파도가 철썩철썩해서 대한민국 국민들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가짐과 생각과 입이 바로 ‘파도의 우는 소리’입니다. 말을 잘못해서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들죠. 여러분 모두 새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신령한 배입니다. 정박하기까지 편안한 날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면 모두 끝입니다. 그러나 교회 생활 수십 년 한다면서도 예수님을 정확하게 믿고 깨닫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안전한 포구에 무사히 정박하려면 놀라운 노력이 필요하고, 두터운 신앙이 필요합니다. 베드로가 “주님, 나를 명해서 바다 위로 걸어오게 하십시오.” 할 때 예수님이 “내가 주다. 걸어오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갈 때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폭풍과 파도를 보니 덜컥 겁이 나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건져 달라 애원할 때 예수님이 손 내밀어 붙잡으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느냐?” 하셨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모습입니다. 목사, 장로라고 잘 믿습니까. 수십 년 교회 나온다고 잘 믿습니까?

우리가 안전한 생활을 하려면 한 가지 비결이 있습니다. 주님께 배의 키(helm)를 맡기면 됩니다. 못 맡길 때 제자들이 돌발적 광풍을 만나 요동했던 것처럼 요동하게 됩니다. 광풍을 만난 제자들은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공포심에 잠겨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믿고 맡기면 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교회 나와서 기도할 때는 맡깁니다. 그런데 나갈 때는 다시 찾아갑니다. 기도할 때는 마음이 편하지만, 나갈 때는 ‘나 같은 것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받겠나?’ 하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 쉽니다. 이것은 불신자(不信者)입니다. 믿음은 주삿바늘의 끄트머리도 놓일 틈이 없는 것입니다. 주삿바늘이 얼마나 뾰족합니까. 그것이 놓일 자리가 있다면 믿음이 아닙니다. 틈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틈 없는 믿음입니다(엡 4:27). 속담에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 들어온다’고 했죠. 틈이 있는 믿음은 파선(破船), 깨진 배입니다. 예수님께 키를 맡기세요. 예수님만이 잔잔한 물가에서나, 미친 바람이 불어 배가 요동할 때나 사람들을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시는 선장이십니다. 여러분 개인과 직장이 모두 예수님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까? 그러지 않기 때문에 엉뚱한 풍랑을 만납니다. 근심하다 못해 마지막에는 남편, 아내를 원망하고, 선물로 주신 아들딸 낳은 것을 후회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도전적인 죄입니다.

본문의 사건은 4월 중순경에 일어난 일입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시기였습니다. 유대인들의 하루는 오후 6시에 시작됩니다. 창세기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고 했죠. 그래서 일경(一更)이 오후 6시-밤 9시, 이경(二更)은 밤 9시-12시, 삼경(三更)은 밤 12시-새벽 3시, 그리고 제자들이 풍랑을 만난 사경
(四更)은 새벽 3시-아침 6시입니다(막 6:48, 마 14:25). 제자들이 보통 사람입니까. 바다에서 뼈가 굵은 어부들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무서운 폭풍이었는지 새파랗게 질려 혼비백산했습니다. 바람은 미친 듯 불고, 이미 육지에서 수십 리 떨어진 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흔들렸습니다. 제자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가운데 그 모습을 보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짐승도 자기 새끼는 예뻐합니다. 남들이 볼 때는 못난 자식도 부모는 눈물을 흘리며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입니다(요 13:1下). 산에서 기도하다 그 모습을 보셨을 때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배에서 고통당하는 제자들보다 더 아프셨을 겁니다. 기도를 중단하고 일어서서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세요.

지금 왜 제가 이 설교를 하느냐? 남에게 빚지고, 대출받고, 친척에게 땅이다 뭐다 보증서서 암만 애써야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차라리 자살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친척과 동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입방아 찧는 소리가 들릴 때 집에 누워도 잠이 옵니까? 구석구석을 살펴봐도 편하게 지내는 가정이 많지는 않습니다. 부모님이 입원하고, 자식이 속을 썩이고,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일이 되지 않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세상을 원망하고 좌절하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너무 고통당하면 침이 마르는 것이 아니라 피가 마릅니다. 가장 해결하기 힘들 때, 피가 마를 때, 주님께서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는 이 말씀만 개인과 가정과 사업체 위에, 우리 교회 위에 함께해 주시면 ‘임마누엘’ 은총의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마 1:23)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탄생하실 때 천사가 어머니에게 “그분이 하나님이시고 생명의 근원이다. 그분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하셨습니다. 괴로움 당할 때 한 번만 주께서 여러분 집에 오셔서 “나다! 안심하라, 겁낼 것 없다.” 하시면 다 끝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역풍을 만나 죽음의 위기를 맞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 그들 생각에 예수님은 거기 계시지 않고 산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구세주, 창조주인 줄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듣기는 많이 들었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다에서 그렇게 고난당할 때 열두 제자 중 단 하나라도 “야, 왜들 그래? 그분이 하나님이야. 하나님의 친아들이야!” 이렇게 말했다면 마음을 푹 놓았을 것 아닙니까. 자기들과 똑같은 사람인 줄만 알고 있기 때문에 새파랗게 질려 공포감에 빠져 있었던 것 아닙니까. 우리는 많이 배워야 합니다. “주여! 믿습니다.” 해놓고, 막상 어려움을 당할 때 믿습니까?
거센 풍랑을 만나 보세요. 동업자가 돈 다 빼서 도망갔다, 거센 풍랑 만난 것입니다. 진급할 차례인데 모략받아 엉뚱한 사람이 진급한다, 거센 풍랑 만난 것입니다. 남편, 아내가 말썽을 피운다, 자식이 공부 안 한다, 거센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큰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요 6:18), “바람이 거스리므로”(막 6:48)라 했습니다. 세찬 바람이 개인과 가정, 직장과 사업, 교회와 나라, 민족에 닥쳐옵니다. 캄캄한 밤중에 일어나는 폭풍은 바다의 물결을 더 성나게 합니다. 걷잡을 수 없습니다.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누구인지 똑똑히 알아라. 나는 하나님의 친아들이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내가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요 1:1-4)고 분명히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자기와 똑같은 사람인 줄만 알았습니다. ‘저 산에 계신 주님이 우리가 이런 일 당하는 것 알기나 할까?’ 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이 산에 계시지만 우리 다 보고 계셔. 왜들 이래? 산에 계신 주님 향해서 기도하자!’ 했다면 이런 풍랑을 만났겠습니까? 교회에 수만 명 모인다지만 다 일합니까? 몇 사람이 일하는 겁니다. 몇 사람의 믿음으로 좌지우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사건의 바로 직전에 있었던 일이 바로 오병이어의 사건입니다. 들에 수만 명이 모였는데 며칠째 밥을 못 먹었습니다. 기진해 쓰러져 죽을까 봐 예수님께서 어린아이가 바친 말라 꼬드러진 생선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놓고 하나님 앞에 감사 기도했습니다. 감사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하나님이다.’ 하며 요술쟁이처럼 하신 것이 아닙니다. 남자만 5천 명, 여자와 아이들까지 2만 명 이상을 먹이시고, 큰 광주리로 남은 음식 열두 광주리를 거둬들인 그 기적이 불과 몇십 분 전의 일입니다. 그런 뒤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먼저 배 태워서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을 제자들이 기억했다면 ‘야,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시는 것 봤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아니냐? 지금 우리를 다 보고 계셔. 쓸데없는 잡생각 하지 말고 기도하자.’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가 있었습니까? 가정과 교회가 어려움 당할 때 한 사람이 “왜들 이래? 하나님이 안 계셔? 마태복음 14:22부터 하신 말씀이 누구에게 하신 말씀이야? 왜 옛날 제자들 일로만 생각해? 우리 가정에 밤 사경에 이런 폭풍이 불어오고 있잖아. 우리 주의 음성 듣자. 주님이 지금 우리 보고 계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내는 입방아 찧고, 자식은 문 쾅 닫고 나가고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것을 제가 많이 봤기에 모두 일소(一掃)하기 위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평강제일교회만큼은 어려움을 당할 때“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음성을 듣고, 만사형통의 은총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곳을 보시고”(막 6:48) 했습니다. 어디서? 산에서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가짐을 다 보고 계십니다. 말씀으로 지금 와 계십니다.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 줄 압니까? 천지에 충만한 분입니다. 믿는 대로 됩니다.

지금 개인과 가정, 직장, 교회, 나라, 민족에게 말할 수 없는 역풍, 폭풍이 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천만에서 천 2백만 명 된다는 예수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라와 민족, 사업체, 가정, 교회를 걸머지고 기도 몇 번이나 했습니까? 제자들은 숨이 까딱까딱 넘어가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배가 바로 섰다 옆으로 기울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사방이 다 캄캄하고 무서운 바람과 파도 소리가 배를 들었다 놓았다 합니다. 그런 지경에 누구에게 도움을 청합니까. 어떻게 노를 젓습니까. 끝날에 세상이 이런 역경의 밤이 된다고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경의 밤은 한편으로는 임마누엘의 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큰바람과 큰 역경 앞에 큰 임마누엘을 체험하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주님이 산에서 기도를 중단하시고 바다로 걸어오십니다. 베드로가 먼저 봤죠. 그런데 제자들이 보더니 “야! 귀신, 도깨비가 온다. 유령이다”(마 14:26) 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니 얼마나 허무맹랑합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가버나움의 환자를 보라고 먼저 보내신 제자들입니다. 그 기적은 다 잊어버리고 예수님 보고 유령이라니요.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위해서 오시는구나!’ 하고 임마누엘의 은총의 축복인 줄 알아야 할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유령’이 원어에는 ‘허상, 도깨비’로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이 도깨비입니까? 옛날 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의 믿음을 검토해 보세요. ‘내가 도깨비같이 믿고 있지 않은가?’ 다 회개해야 합니다. 기분 좋을 때만 “주여! 주여!” 해선 안 됩니다.

욥의 신앙을 보세요. 열두 자녀가 하루아침에 죽었지만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찬송 받을 분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욥 1:21).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독한 악창(惡瘡)이 나서 기왓장으로 긁어야 할 정도였지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아내에게 “왜 미련한 여인처럼 말하시오? 하나님께 좋은 것을 받았는데 나쁜 것이라고 거절할 수 있소?”라고 답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섭리 가운데 무엇인가 뜻이 있을 것이니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욥의 신앙입니다. 이것도 모르고 그저 “주여, 욥의 신앙 같은 은혜를 주시옵소서” 기도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제가 황해도 사리원에서 중학교 3학년에 다닐 때 일입니다. 가난하게 살던 교회 영수(領袖: 한국 초대교회 당시 교회 지도자 격인 직분)의 자식이 죽었습니다. 토요일에 그 일을 당했는데 그분이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참으로 무언의 설교이고, 열매였습니다. 그런 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내 자식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하셨는데 내가 교회 영수가 돼서 교회 안 나오고 슬퍼한다면 되겠습니까. 내 자식은 이제 하나님의 권내(圈內)에 들어갔으니 내가 왜 세상에서 슬퍼하겠습니까. 예수님 믿다 갔으니 분명히 천국에 갔을 것이고,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킵니다.’라는 것이 그분의 말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신앙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상황인데 교회 나오라고 하면 대번 항의할 것입니다. 제자들과 똑같은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구나, 이제는 살았다!’ 이러한 믿음! 예수님은 기도하시면서도 제자들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아들딸이 외국에 유학 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부모의 마음은 자식이 지구 어느 구석에 가 있든 거기에 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신앙심을 좀 두텁게 가지세요. 편안한 마음을 가지세요. 믿을 바에는 확실하게 믿어야죠. 인간의 생각을 제발 버리세요. 인간의 생각은 죽음과 멸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롬 8:5-7). 지금 살기가 얼마나 어렵고 힘듭니까? 불평하고, 눈물 흘리고, 두문불출하고, 먹지도 않고, 얼굴에는 주근깨가 생겨 거무죽죽해질 정도입니다. 만사가 귀찮습니다. ‘왜 교회 나오지 않느냐?’ 하면 ‘그런 소리 마세요. 이런 처지에 교회 나가게 생겼습니까?’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 교회도, 나라도, 집안도 잘 안 됩니다. 오늘부로 모두 버리시고, 풍랑 가운데 걸어오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근심해서 해결된다면 근심하세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워 보내시고 산으로 올라가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막 6:46). 역경, 고난, 폭풍을 통해 사랑하는 제자들의 믿음을 두텁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훈련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몰랐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식 모르게 돈을 저축합니다. 장가보내고, 시집보내고, 집도 사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최고, 최대의 행복이 그 안에 들어있습니다. 폭풍 속에 괴로이 노 젓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는 예수님! 마침내 기도를 중단하시고 옷을 가다듬고 바다를 향해서 내려오시는 모습을 보세요. 제자들은 까맣게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초능력을 행해 바다를 걸어오십니다. 예수님은 문이 없어도 들어가시는 분입니다. 벽이 다 열립니다.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다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만물이 머리 숙이고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파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파도를 밟고 제자들이 있는 배 위에 오르시니 그 무섭던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보세요. 틀림없이 이렇게 안정된 마음과 생활을 주셔서 삶에 승리가 있을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백성들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지키십니다(시 121:3-6). 지금도 예수님은 기도 중에 우리 삶의 현장을 지켜보십니다(롬 8:34, 히 7:25-26). 10년 동안 소식이 없던 아버지가 돈을 많이 벌어 집에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아내와 자식들이 잠이 오겠습니까? 집을 청소하고, 새 옷을 입고 그날을 기다릴 것 아닙니까? 10년간 피눈물 나게 고생했어도 만나는 순간 그 기쁨에 10년의 고생이 휙 날아가 버립니다. 아버지가 오자마자 보따리 하나 내놓고 “여보, 집 사고 당신 마음대로 해. 이제 평생 고생 안 할 거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그 말보다도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이 세 가지 말씀만 주신다면 그 이상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평강교회 성도들은 그렇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낙심할 필요 없습니다.

밤 사경에 바다 위로 걸어 제자들에게 오시는 예수님! 목적이 뚜렷합니다. 제자들을 만나러 오신 것입니다. 부모가 군대 간 아들을 면회 갈 때 수많은 부대원이 있지만 목적은 아들 하나 아닙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이 곤경에 빠진 것을 직시하셨습니다. 그리고 행동의 시간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바다 위로 가셨습니다. 그분의 마음에는 고통당하는 제자들뿐이었습니다. 노기 띤 바다를 밟고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 주님은 자연을 지배하시는 왕자로서의 권세[王子權], 하나님 아들로서의 권세권(權勢權), 창조권(創造權)을 가진 분입니다. 초자연적 왕권입니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예수 자신의 본성이요 본질입니다. 죄인을 구원하러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구세주적 본성이 지금 물 위로 걸어가고 계십니다. 지금 바로 저와 여러분을 향해 오고 계신다는 것을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요한일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아들을 화목 제물로 죽이기까지 하면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롬 5:8).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예수는 파도를 밟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넘치는 모든 혼란을 발아래 밟아 치시고 우리를 향해 걸어오시니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편안한 형통의 복을 가지고 여러분의 가정과 아들딸, 남편, 아내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이제부터 잘 모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결론 맺겠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안고 풍랑 위로 늠름하게 걸어오셨지만(막 6:50), 제자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유령, 허상, 악령, 도깨비로 여겼습니다(막 6:49-50, 마 14:26). 어처구니없는 불신앙이요, 미신적 소행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불신앙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멋있는 분입니다. 사람 같으면 ‘나를 도깨비 귀신으로 알아? 너희끼리 해 봐라’ 할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담아 두지도, 마음에 두지도 않으셨습니다. 오셔서 첫째, “안심하라!” 하셨습니다. ‘담대하라.’, ‘절대 겁낼 것 없다.’는 것이죠. “너희 앞에 내가 있으니 용기 좀 내, 용기!” 하신 것입니다. 참 멋있는 위로의 말씀이요, 생명적 은혜입니다. 둘째, “나다!” 하셨습니다. ‘유령이 아니라 나다. 하나님의 아들, 너희 선생, 너희 주가 아니냐. 그간 기사이적을 행한 것 다 알지 않냐.’ 하신 것입니다. 다시 기억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제자들이 엎드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고백했죠. 당신이 스스로 계시는 자존자(自存者), 여호와임을 제자들에게 심어주신 것입니다. 셋째,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생쥐처럼 두려움이 있던 디모데에게도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딤후 1:7).

이사야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 나라 갈 때까지 여러분 가정과 개인과 교회, 국가, 민족에게 반드시 이 말씀이 지워지지 않고, 마음속 깊이 파서 새겨지는 산 역사로 말미암아 자손만대에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이 떠나지 않는 가정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이사야 41: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이 세 말씀은 우리를 공포에서 자유케 하는 위로의 음성, 생명적 약속입니다. 그분은 유령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인격적인 주 하나님, 창조주이십니다. 임마누엘이신 그분은 우리를 절대 고아 같이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역경 속에도 계신 하나님, 사랑과 위로의 하나님께서 풍랑 속에 괴로이 노 젓는 죽음의 현장에 오시고 위로와 소망의 음성을 제자들에게 마음 뜨겁게 심어 주셔서 한숨과 두려움은 다 달아나고, 편안하게 안심하면서 기쁨이 충만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 그 배 안의 장면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제자가 ‘주님 어떻게 아셨습니까?’ 물으니 ‘내가 기도하다가 봤다’ 하시는 그 고마우신 분! 역경 중에 만나는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막 6:51) 하셨으니 집안에 풍랑이 일어날 때 그저 주님이 우리 집 문을 여시고 방문만 밟으시면 됩니다. 직장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의 실수를 보세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물 위를 걷다가 풍랑을 보니까 겁이 나서 가라앉은 것 아닙니까? 예수님의 그의 손을 붙잡고 “믿음이 왜 적으냐? 왜 의심이 일어나느냐?”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습니다. 늘 편안합니다. 추위도, 더위도, 상함도 없고 마음에 원하는 대로 이뤄집니다. 내가 하나님 아버지를 찾기 전에 내 마음을 다 아십니다(계 7:16-17). 우리 머리카락까지 다 세시는 분입니다. 즉각적 기도 응답의 체험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믿지 못합니다. 주님 계시면 ‘이상 무!’입니다. 군대에서 지휘관이 내무실에 들어갔을 때 ‘이상 무!’ 보고하면 지휘관의 마음이 얼마나 편합니까.

시편 107:28-30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29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30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이런 역사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겪는 역경도 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가만히 볼 때 시작도, 진행도, 마침도 구원 섭리 가운데 우리를 깨우치시기 위해서 만들어 가시는 과정임을 배우게 됩니다. 그분이 우리 교회 중에 말씀으로 와 계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우리 중에 계실 때 폭풍은 잔잔해지고 끝내는 다 그칩니다. 풍랑이 평화로 변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십니다. 견디기 어려운 일이 견디기 쉬운 일로 바뀝니다. 얼마나 기쁩니까?
그동안 한국 교회의 성도들이 풍요를 남용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 생활을 안 했습니다. 자기가 밤잠 못 자고 못 입고 못 먹으며 벌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뜻으로 볼 때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하신 일입니다. 잘못된 생각을 모두 회개하고, 다시 우리 경제를 회복시켜 주실 때 주의 것으로 알고 선한 사업, 복음 사업에 선용(善用)하겠다는 다짐이 먼저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택한 자를 구원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통치 수단으로 지금 온갖 종류의 역사의 파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밤 사경의 역경도 그런 것입니다. 인생이 만나는 어떤 폭풍도 주로부터 나오고 주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롬 11:36). 분명히 오늘 우리가 만난 밤 사경은 역경 중에 은총의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한 확실한 표적 중의 하나가 무엇입니까? 바로 평강의 축복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지금 찾아오셔서 “대한민국이여! 각 가정이여! 우리 평강교회여, 각 직장이여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는 말씀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우리 평강교회 성도들, 대한민국의 잘 믿는 성도들 때문에 천국 문이 열릴 줄로 믿습니다. 주 안에서 선택받은 성도의 천국이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004년 4월 25일 주일 2부예배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설교

 

  • 2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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