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한 뜻을 품고 기도하는 달
6월은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한 뜻을 품고 기도하는 달
여호수아 23:9-10, 다니엘 12:10, 신명기 32:7
6월은 민족을 살리는 뜻을 품은 전 성도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호국은 보호할 호(護)에 나라 국(國)입니다. 보훈은 갚을 보(報), 공 훈(勳)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돌아보면 많은 분이 나라가 위태롭고 어려운 지경에 있을 때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래서 6월 6일 현충일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순국선열들, 충성한 사람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나라 민족을 위해서 목숨 바치신 순국선열들이야말로 민족의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그 숭고한 뜻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선전 포고도 없이 북한이 불법 남침했습니다. 그날 이후 3년 1개월 2일 17시간, 6・25 전쟁은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만들었습니다. 국토 85%가 초토화되었습니다. 우리 민족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18만 명이 넘는 국군과 UN군이 전사했습니다. 1953년 7월에 총성이 멈춘 지도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피 흘리고 싸웠던 그 격전지 위에 크고 작은 도로가 개발되고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피맺힌 함성도 더 이상 들리지 않고 고요합니다. 전쟁의 상처는 아물어서 젊은 세대는 이 전쟁이 언제 발발한지도, 수많은 격전지가 어디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고 소리치며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때의 생생한 역사를 저를 비롯한 많은 분이 다 증언하고 있습니다.
UN군이 40,670명. 한국군은 그 3배가 넘는 13만 7,899명이 전사했는데, 그중에 13만 4천 명은 시신을 찾지도 못했습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군번도 없이 모자만 쓰고 나가서 전사했습니다. 군번이 없으면 국립묘지에 가지도 못하고, 연금도 타지 못합니다. 그러한 가정이 13만 명이나 됩니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힘겹게 싸우다가 부모와 가족 품에 안기지 못한 채 우리 대한민국 조국 강산의 흙과 강물 속 어딘가에 묻혀 있는 겁니다.
철학자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국가는 국가 전체의 안전을 위해 개인에게 생명을 요구할 수 있는 계약 관계이다. 개인은 그 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고, 국가는 희생하는 그들과 그 가족에 대하여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기억하고, 그 나라에 대한 뚜렷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망국 백성의 서러움을 체험한 식민지 시대에 살아본 사람은 나라가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다. 36년 동안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 백성들에게 야만적인 행위를 했습니다. 동양척식회사를 조직해 대한민국 금수강산에 가치 있는 것은 다 약탈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관동군은 조선의 남자들을 데려가 일본군을 대신해 총알받이로 썼습니다. 여자들은 정신대로 차출돼 하루에 600명, 800명씩 일본군을 받았습니다. 성병에 걸려 걷지도 못하게 되면 만주 731부대로 데려가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됐습니다.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사람을 포함해 3천 명을 생체실험에 사용했습니다. ‘껍질을 벗긴 통나무’라는 뜻의 ‘마루타’라고 부르며 몸에 탄저균, 콜레라균을 집어넣기도 하고, 독가스를 폐 속에 집어넣고 얼마 동안 숨을 쉬고 살아 있는지, 알몸으로 냉동실에서 몇 분 만에 죽는지,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서 몇 시간 만에 죽는지를 실험했습니다. 아무 힘이 없는 식민지의 나약한 백성들은 껍질이 벗겨지고 눈알이 파지고 목이 베이고 사지가 잘리는 생체실험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섭리로 연합군이 승리하면서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해방됐습니다. 그 후로 6・25 전쟁이 나기 전까지 5년 동안 우리나라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대립으로 아주 어지러웠습니다. 1945년 10월부터 1946년 4월까지 남로당이 엄청난 양의 위조지폐를 발행해 나라의 경제가 무너졌습니다. 이를 주도한 박헌영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1946년 9월 6일 북한으로 도주했습니다. 그 후 1948년 5월 10일 남한은 단독으로 총선거를 치렀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박헌영은 1948년 2월 7일 첫 번째 폭동을 일으켰지만 진압당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제주도에서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1948년 4월 3일 일요일 새벽 2시. 한라산 정상에서 봉화가 떠오르자, 89개 오름에서 봉화를 올려 김일성을 찬양하는 350명의 공산당원이 폭동을 시작했습니다. 제주도에 있는 파출소 24개 가운데 12개의 지서장을 잡아다 일부는 목을 자르고, 부인과 아들의 배를 갈랐습니다. 심지어 8개월 된 임산부의 배를 낫으로 갈라서 태아를 꺼내 처참히 살해했습니다. 4월 3일부터 7월 20일까지 대한민국 편에서 일하는 56명의 우익 인사를 처참하게 죽였습니다. 공산당은 이 모든 일을 이승만 정부에서 조작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1998년 11월 23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미국 CNN 인터뷰에서 “제주도 4·3사건은 공산당원들이 일으킨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태는 경찰의 힘으로는 수습할 수 없었습니다. 육군본부 작전과는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14연대 연대장 박승훈 중령에게 우체국을 통해 전보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여수 우체국에 근무하던 남로당원 8명이 먼저 보고 여수 인민위원장 이용기에게 전달했습니다. 이용기는 다시 전라남도 도당 책임자 김백동에게, 김백동은 남로당 군사부 총책 이재복에게 연락했습니다. 이제복은 남로당 중앙조직부 총책 이중업에게 연락했습니다. 이중업은 14연대에 침투해 있는 프락치들로 하여금 폭동을 일으킨 후, 이용 가치가 없는 장교는 모두 사살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제주 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출발하기 직전인 1948년 10월 19일, 출동할 대대를 위한 회식 자리에서 김지회와 지창수를 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났고, 이들은 무기고와 탄약고를 점령한 후 비상 나팔을 불었습니다. 출동 대대의 사병들이 연병장으로 모이자 “이승만은 우리를 버리고 하와이로 도망갔다. 인민해방을 위해 지금 북에서 보낸 평양 특수부대가 남진하고 있다. 우리는 인민해방군으로서 그들과 만나 조국을 통일할 것이다.”라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반란을 선동했습니다. 하사 2명과 사병 1명이 “우리가 왜 인민군이냐, 우리는 국군이다.”라고 말하자 바로 사살하고 장교 23명을 색출해 연병장에서 권총으로 모두 죽였습니다. 공포에 사로잡혀 나머지 병사들은 얼떨결에 반란군이 되었습니다. 다음날인 1948년 10월 20일 새벽 3시 30분에 여수 경찰서 점령. 새벽 5시에는 여수 시내 관공서 및 은행(조흥은행 여수지점에서 3,550만 원 강탈)과 신문사 점령. 오전 9시에는 여수 시내가 완전히 반란군의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1대대는 여수에 남고 약 2천 명의 반란군이 순천으로 이동합니다. 반란군은 순천경찰서장 양계원을 처형하고 우익인사 140명을 죽였습니다. 여수에서 피해 양민이 1,200명, 민간인 부상자 1,150명, 불타버린 집이 1,538동, 행방불명 3,500명, 이재민 9,800명이나 되었고, 순천에서는 1,134명의 민간인이 학살되고, 818명이 행방불명, 1,512명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제정했습니다. 12월 1일 국회에서 법률 제10호로 통과시키고, 대통령의 공포(公布)로 1948년 12월 20일 남로당은 불법단체가 되었습니다. 군 내부에 거미줄같이 깔린 남로당원 4,749명을 잡아서 사형, 무기징역, 불명예 제대시키기 시작하자, 놀라서 나머지 5,568명의 남로당 장교와 간부들이 도망갔습니다. 당시 육군 병력이 9만 8천명인데 10%가 넘는 10,317명이 공산당원이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 6・25전쟁이 났다면 싸워보지도 못하고 대한민국은 끝장났을 것입니다.
1949년에는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다시 한번 큰 위기를 겪습니다. 북한의 특수공작원 이삼혁은 남한의 국회의원 노일환과 이문원을 남로당에 가입시키고, 김일성의 지령을 받은 김약수는 선거에서 국회 부의장이 됩니다. 그의 본명은 ‘김두전’으로 일본의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뒤 조선공산당을 조직하고 1923년에 국제공산당의 승인까지 받은 사람입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여성 공작원 정재한이 돈으로 국회의원 62명을 포섭해 남로당원에 가입시킨 후 미군 철수 촉구안에 서명하도록 합니다. 마침내 1949년 6월 30일 4만 5천 명의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하자 1년 뒤인 1950년 6월 북한은 남침을 감행했습니다. 당시 공산당은 국회 프락치사건은 이승만 정권이 조작한 것이라고 왜곡했지만, 1997년 5월 26일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자기들이 한 짓이 맞다고 시인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무슨 종교든 믿으면 사람이 선해집니다. 그러나 북한에는 종교가 없습니다. 점령하고 때려 부수고 죽이는 공산당이 바로 종교입니다. 공산당 간부 중에도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없습니다. 국회부의장 김약수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월북했지만, 함경북도에서 김일성에게 처참히 죽었습니다. 14연대 반란을 일으켰던 김지회, 홍순석도 반란 일으킨 지 5개월 20일 만에 죽었습니다. 6·25 전쟁 당시 지리산 유격 투쟁을 지휘하던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은 김일성의 눈엣가시가 되어서 남파 공작원에 의해 1953년 9월 17일 지리산 쌍계사 의신리 빗점골에서 목에 8발의 총탄을 맞고 죽었습니다. 말로가 비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은 과거의 비참한 역사를 늘 기억하라고 후손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나라 없는 개인은 존재하지 않으며 역사 없는 나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나간 역사는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철학자 산타아나의 말처럼 기억하면 노예가 되지 않지만 망각하면 포로 된 백성이 됩니다. 기억은 자유케 하나 망각은 포로로 만듭니다. 일제 강점기 36년, 그리고 6・25 전쟁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후손에게 또다시 그렇게 몸서리쳐지고 치가 떨리는 무서운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나라가 있어야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가까이 십니다(신 4:7). 대한민국을 하나님의 대능(大能)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믿음의 나라. 신뢰할 수 있는 나라. 복된 나라, 자식들도 큰일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는 위대한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애굽의 병거는 막강한 무기였지만 하나님께서 병거 바퀴의 핀을 다 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지 못하게 만드셨습니다(출 14:14-25). 히위 족속과 가나안 헷 족속은 당시에 가장 무서운 나라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울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왕벌을 보내서 다 죽이셨습니다(출 23:28, 신 7:20).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신 3:22) 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이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싸워주실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대신해 싸우신다면 전 세계가 달라붙어도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기게 돼 있습니다. 막강한 나라입니다. 참 편안하고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될 줄로 믿습니다. 믿는 자가 복입니다(신 1:30, 20:4, 수 10:42). 대한민국에 아무리 악이 가득 찬 것 같아도 하나님 믿는 성도가 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대한민국을 맡깁니다. 약하지만 어질고 착한 이 민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안기게 해 주시고, 선한 나라. 복된 나라. 착한 나라, 많은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나는 애국가를 믿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하나님은 연대가 다 함이 없고(히 1:12), 오늘이나 내일이나 하나님의 영은 동일합니다(히 13:8).
이 설교는 2013년 6월 16일 주일 2부 예배에서 평강제일교회 설립자인 휘선 박윤식 목사님이 2014년 12월 17일 천국 입성하기 전 이 땅에서 ‘나라 사랑’과 ‘역사’에 대한 주제로는 마지막으로 성도들에게 가르친 설교입니다.
- 22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