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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자유민주주의는 성경적 개념이다

2022.06.25 19:15

특별기고
자유민주주의는
성경적 개념이다.
정정원 목사

구속사는 세속사의 중심이다. 세속사는 여러 위인이나 열강의 이해, 우연에 따라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직 하나님의 구속사를 성취하기 위해 정확한 때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구속사의 중심이 성경이라면, 세속사의 중심 역시 성경이다.

두 명 이상의 사람이 있을 때 ‘질서’와 ‘혼돈’이 시작되며, ‘사회’가 형성된다. 사회를 질서 있게 구성하기 위하여 정치와 사상을 발전시켜왔고, 오늘날 그 역사적 결론은 크게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대립하고 있다. 세속사적으로 볼 때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상으로 보이지만, 성경에 빛을 들어 구속사적인 관점으로 볼 때 이 사상은 아담 이후 범죄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두 역사적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 기초한 교회는 필연적으로 세상에 대해서 자유를 외쳐야 하며, 성도의 사상은 교회 내와 종교적 가치에만 국한되지 않고 삶의 전 영역에 적용되어야 한다.

자유는 성경적 개념이다.

자유는 역설적이게도 법과 함께 한다. 자유는 단순히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며, 법은 단순히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을 제어함으로 자유를 완성한다. 죽은 자에게는 자유가 없지만, 생명은 그 속성이 자유 자체이다.

자유의 탄생은 하나님의 창조에서 시작된다. 하나님께서는 6일간의 창조 가운데 마지막 최정점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제외하고 모든 창조된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도록 하셨다(창 2:15-17). 여기서 법과 자유의 개념이 시작된다. ‘법’이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먹는다면 정녕 죽는다는 말씀이며, ‘자유’란 법에 순종하는 가운데 피조세계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은 죄에게 자유를 빼앗기고 사망의 아래 종이 되고 말았다(눅 4:6, 롬 6:23, 벧후 2:19). 자유를 완전히 상실하여 전적 무능력에 떨어진 인간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인간에게 은혜 언약을 허락하심으로 다시 한번 참 자유의 가능성이 주어졌다. 범죄한 인간에게 자유를 자유 되게 하기 위한 말씀이 바로 ‘율법’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 역사에서 여전히 죄의 방종을 해결하지 못하고 율법을 무거운 짐으로 여기며 순종하지 못했다.

느헤미야 9:29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경계하셨으나 저희가 교만히 행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진리로서 참 하나님, 참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시고 완성하시고 성령의 법을 세워 자기 백성을 자유케 하심으로써 자유케 하는 언약을 성취하셨다(요 8:32-36).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자유는 사회적 개념의 자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정의하는 법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소위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에덴동산 이후 완전한 자유를 보여 주는 유일한 공동체는 초대교회밖에 없다. 타락 이후 인류 역사에서 완전한 자유의 개념을 보여 준 유일한 공동체라고도 할 수 있다. 혹자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시민민주주의에서 자유의 개념을 찾지만, 인구의 90%가 노예로서 노동에 종사하여 그 산물을 착취하는 10%의 자유는 참된 자유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초대교회 공동체는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으면서 법과 소유 개념을 초월하여 모두가 자유롭게 헌신하고 자유로이 만물 가운데 소유를 사용하는 공동체였다(롬 8:21). 성령의 충만한 가운데 이루어졌던 초대교회 공동체는 훗날 구속사의 완성과 함께 성도가 누리게 될 완전한 자유의 세상의 모형이다(행 2:44-47, 4:32).

사도행전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성경적 노동 원리에 입각한 시장경제원리

창조 본연의 인간에게는 결핍과 부족이 없었지만, 아담의 범죄 이후 전 인류가 결핍과 부족 아래 놓였다. 범죄한 사람은 수고하여 이마에 땀이 흘러야만 그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어 사람이 수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창 3:17, 19). 그러나 이것은 죄로 인한 저주에서만 그치지 않고, 수고와 노동을 통해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기 위한 소망의 방법이기도 하다.

자유민주주의는 시장경제라는 구체적 작동원리를 가진다. 시장경제는 인간 수고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며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최대의 선을 이루고자 한다. 반면 공산/사회주의의 계획경제는 인간 수고와 노동을 당에 의해 계획하고 조직하여 평등 분배를 이루려고 한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의 죄성과 한계를 인정하여 시장경제의 흐름을 ‘보이지 않는 손’에게 의탁한다.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진행되는 역사를 무지한 사람이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계획경제에서 인간은 역사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주체로 등장한다. 하나님이나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인간의 당이 만국 경영을 이루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등장하는 최초의 계획경제는 니므롯을 중심으로 당을 조직하여 한곳으로 모여 하나님께 도전하는 바벨탑 운동이었다(창 11:1-9). 바벨탑이 처참하게 무너졌듯이,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들의 처참한 결말은 죄악된 인간에게는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전무함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시장경제가 가장 성경적인 체계인 것은 아니다. 참 자유로 말미암은 완전히 회복된 세계의 모형이 되는 초대교회의 모습은 시장경제를 아득히 초월하고 있다. 그러나 보혈의 공로로 구속함을 입었지만, 여전히 연약한 육신으로 인해 영적 싸움을 지속하고 있는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최선의 결론임이 분명하다.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과 함께 명령하신 노동의 가치를 최대로 존중하는 체제이자, 인간의 한계성을 분명히 인지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자유를 위협하는 반지성

‘반지성주의’,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화두가 되었던 단어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의 발언과 같이, ‘반지성’은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이 단어는 미국의 역사가 리처드 호프스태더가 사용한 단어로, 지성이 가지는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비판의 기능을 묵살하고 비이성적인 방향으로 대중을 선동하여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지성을 주는 은혜의 통로이다. 그러나 사단은 교묘하게 말씀에 대한 지성이 주는 영적 거울을 가리고 회개를 마비시키며 비이성적인 방향으로 성도를 선동해 나간다. 모세가 시내산에 오른 사이 이스라엘 백성의 반지성은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음란하게 섬기는 타락의 길로 이끌었고(출 32:1-8), 그 후에도 ‘애굽으로 돌아가자’라는 반지성주의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죽게 만들고 말았다(민 14:4).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안식일의 참 의미를 아시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일하셨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반지성주의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비난하였고(마 12:1-8), 사도들의 복음을 듣고 율법의 종에서 해방된 초대교회 성도 중 일부는 반지성주의에 사로잡혀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갈 4:9). 이후에도 반지성주의는 계속하여 구속사를 가로막는 방해물이자, 세속사에서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사회체계를 파괴하는 대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반지성주의를 깨뜨리는 최고의 대응책은 참 지성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지성을 주신 것은 하나님 말씀을 바로 알고 그 말씀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바로 알아 지상에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게 하기 위함이다. 휘선 박윤식 목사가 성도들에게 가르친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은 이와 일맥상통한다. ‘나라 사랑’은 결코 개인의 정치적 사상이나 주변 환경, 사회경제적 유익에 따른 것이 아니라, 나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인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 가르침을 잘 숙지하여 참 지성의 빛을 밝혀 자유민주주의의 성경적 가치를 올바로 이해하고 마침내 법과 자유가 완성되는 구원 완성의 날을 완성해 가야 할 것이다.

  • 2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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