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제일교회 ‘성도’라는 자리와 바꾸지 않겠습니다.
평강제일교회
‘성도’라는 자리와
바꾸지 않겠습니다.
이상국 성도
5월이라는 달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가정의 달’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었다. 꽃 중에 카네이션 꽃이 제일 싫었던 어린 시절.
겨울 동안 움츠리고 적막하여 다 죽은 것 같이 보였었던 산에도 봄기운이 돌고 생동하는 산이 되면, 구석까지 파란 하늘에서는 개나리처럼 환한 가족들의 온화한 기운들이 가득 내리는 ‘5월’. 시멘트 블록 틈새로 어떻게든 살아내려 꼬무락거리며 안간힘을 쓰는 나를 닮은 질경이 민들레꽃 한 송이. 한참을 우두커니 보다가 샘솟는 계절의 공기로 마음을 축이며 걷고 있는 20대의 ‘내가’ 있었다.
나는 갓난아기 때 보육원 현관 앞에 버려져 있었다고 했다. 만 19세가 되어서 세상에 내던져 버린 ‘내가’ 그렇게 걷고 있었다. 당시엔 ‘정착 보조금’ 같은 것도 없었다.
흰 도화지 가운데에 점 하나 찍혀 있는 것 같은 막막함. 마른 들판, 마른 광야… 그보다 더 바싹 메마르고 널브러져 있는 내 마음은 많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휘발되지 않고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당시 내게 친근했던 단어는 그저 낙심, 절망, 외로움, 분노… 나는 누구며 이 세상에는 왜 태어났지? 가룟 유다처럼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존재는 아니었던가.
‘은혜’라는 찬양을 그 당시 들었었더라면 심한 반감이 들었을 거로 생각했다.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은혜였다고?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도 은혜라고?? 이해하지 못할 가사들이라고 툴툴거렸을 ‘내가’ 그려졌다.
세월이 흘러 영산홍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5월의 평강제일교회 마당에 들어서는 54세의 ‘내가’ 서 있다. 다섯 살 때부터 보육원에서 강제로라도 새벽예배를 비롯해 복음을 들었었던 시절. 특히 나는 찬양을 좋아했다. 돌아보니 그것보다 큰 자산은 없었던 것 같아 감사했다. 20대라면 이해하지 못해 씩씩거렸을 ‘은혜’라는 가사 구절구절이 뒤돌아보니 내게 하나님을 소개해 주신 것만으로도 가슴으로 감사하는 나이가 되었다.
만물의 출처와 기원이 성부 하나님이심을(고전 8:6)…나를 모태에서부터 조성하시고(사 44:24) 약한 나를 붙들어 주시며 체휼하시고 위로해 주시는 분 아바 아버지.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는 참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알게해 주신 교회. 바로 구속사의 생수가 흘러나오는 평강제일교회로 나를 불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교통사고로 3도의 중화상을 입고 40번 넘게 수술을 한 분의 인터뷰 기사 중에, 만약 사고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물으니 사고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의아해 하는 기자에게 “정말 중요하고 영원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 괴로움으로 인해 정말 값진 것을 얻게 되었다. 충분히 행복하다.”라고 했다.
상상해본다. 내게 만약 부모님이 계셔서 남부럽지 않게 부족함 없이 누리는 가정에 태어났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과, 지금 내가 서 있는 평강제일교회 ‘성도’의 자리와 바꿀 수 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답할 것이다. 진동치 못할 나라를 유업을 선물로 받지 않았는가(히 12:28).
우주가 창조되기 전부터 나를 아셔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평강제일교회로 다시 한번 나를 부르신 아버지 하나님. 만국을 소성시키는 신령한 생명수의 강물이 흐르는(겔 47:9) 출처, 바로 평강제일교회 의 문지방이라고 확신하기에, 지금까지도 나를 길러 주신 하나님께 끝까지 남는 자의 반열에 서게 해 주시길 기도한다.
- 22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