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는 내가 살기 위해서
전도는 내가 살기 위해서
사도행전 1:5-8, 에스겔 3:17-21
4월은 전도의 달입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 자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믿지 않는 사람은 죄 가운데 죽지만, 그 사람의 피 값은 우리에게 찾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겔 3:17-21, 33:1-6).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너희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유다를 다시 점령하라, 땅끝까지 모든 인간에게 다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전도는 사람의 지식과 잔꾀, 경험으로는 안 됩니다. 오직 성령의 권능! 그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발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 받으면 내가 생각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중을 전달하게 해 주십니다. 산 것이 제물 되는 것 봤습니까? 내가 살아 있어서는 헌신(獻身)이 안 됩니다.
전도는 내가 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부활 후 유다를 뺀 열한 제자 중 도마만 빠지고 10명이 모였습니다. 그때 부활 체가 된 예수님께서 문도 열지 않고 들어오셨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인 줄 알고 놀라자 “놀라지 말라” 하시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습니다.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자, 만져 봐라! 영혼과 귀신은 뼈와 살이 없거니와 나는 있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육 간 완전 부활입니다. 40일 동안 11번이나 나타나셨습니다. 500명 이상 모인 데서 마지막으로 “성령 받을 때까지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축도하면서 올라가셨습니다(행 1:8-11, 눅 24:50-53).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120명의 사도가 모여 있을 때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함께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 같이 성령이 임했습니다. 제자들이 동시에 각국의 말을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전도됐습니다(행 2:1-41). 그때나 지금이나 성령 받은 사람은 자기 몸 아끼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진실하게 전도합니다. 눈물로 기도합니다. 믿지 않는 부모님 왜 전도 못 합니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있습니까? 교회 나간다고 야단하고, 발길질하고, 오만 욕을 하다가도 ‘나를 살리겠다고 저렇게까지 기도하는구나’ 하며 부모, 형제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전도해야 내가 살고 각자가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 승천 후 세워진 교회의 우선 과제는 무엇입니까? 전 성도가 하나 되어 주님의 마지막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자 교회의 마지막 일, 시대와 상황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교회의 존재 이유는 전도입니다(마 28:18-20). 전도하지 않는 사람은 송장입니다. 전도는 자는 것이 아니라 꿈틀꿈틀 활동하는 것입니다. 전도 안 한다면 교회를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전도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간, 공간에 제한받지 않기 때문에 성도들은 환경 변화와 관계없이 어느 때, 어느 시, 어느 곳에서든 틈만 있으면 나가서 외쳐야 합니다. 자유 민주주의 세계나 공산주의 세계나 사상을 초월해 어느 나라든 복음이 다 들어가게 돼 있습니다. 전도는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성령을 받아야 전도가 됩니다.
전도는 내가 받은 사랑의 체험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교회가 적극적, 능동적으로 참여해 “정말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분들을 구원하겠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 매일 뜨겁게, 간절히 몸부림치며 기도했습니까? 내 자식 대학 시험 칠 때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지혜와 명철, 총명, 성령도 하나님이 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다시는 내게서 성령을 거둬가지 말아 달라고, 성령께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눈물로 간구했습니다(시 51:10). 편안한 마음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오셨는데 성령을 믿지 못하면 ‘네가 날 믿지 않는데 내가 왜 여기 와 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라고 했습니다(엡 4:30).
전도하기 위해서는 말씀에 전념해야 합니다.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에 돈이 붙어 있다면 매일 찾아보겠죠.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 1:16) 얼마나 감사한 말입니까? 성경은 많은 이방 민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의 지혜와 권능과 총명과 지식을 전달하는 구원의 책입니다. 여러분은 주일에 설교 들은 것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고 있습니까? 전도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물질도 들어갑니다. 전도한 다음에 밥이라도 사드리고 교통비라도 드려야 할 것 아닙니까? 함께 목욕이라도 가서 등 밀어주면 얼마나 가까워집니까? 이렇게 노력한다면 왜 전도가 안 되겠습니까?
기도하면 하나님이 가까이 가신다고 했습니다(신 4:7). 기도하고 전도하면 집안일이 잘 됩니다. 집안일 할 시간 떼어서 전도하는 데 써 보세요. 그래도 집안이 안 된다면 하나님한테 대들 것입니다. 그것까지도 아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할 때 세상일도 그 배 이상 잘 되게 해주는 것입니다. 전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관과 참 전도의 뜻을 알 때 본때 있고, 삶의 가치를 피부로 느껴가며 능동적, 효과적으로 멋있게 일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죄로 인해 죽을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생명을 주셨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 자비로운 은혜를 믿지 않는 분들에게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 전도할 때 하나님이 책임진다고 하셨습니다. 내 집안이 편안해집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아무 염려하지 말라. 미물까지도 관심 갖고 먹이고 입히고 살리는데 하물며 너희일까보냐”(마 6:25-34) 하시는 예수님의 사상을 전해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인도하면 얼마나 보람이 있겠습니까? 기쁨이 충만해 감사가 터져 나오죠. 감사 없는 생활은 죽은 송장입니다(롬 1:21). 전도는 교회가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지글지글 끓으면서 익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미움이 없어지고 전부 화목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맛을 못 보기 때문에 전도 안 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일하면 월급이 나와 온 가족이 먹고 마실 수 있듯이. 전도도 각자 개인과 가족, 그리고 교회에 부요(富饒)의 축복을 실어 오는 것입니다. 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물질이 들어오고, 많은 친구가 생기고,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많은 사람이 의아해할 정도로 쳐다봅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전도 안 하면 많은 영혼을
잃어버린 죄입니다.
성도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전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닙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만방 족속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해 달라(마 28:19-20).”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전하지 않으면 화를 당한다고 하셨습니다(고전 9:16, 렘 20:9, 겔 33:7-11, 행 4:20, 행 9:6, 롬 1:14-16, 시 40:9-11, 막 8:38).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면 성령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고 태양같이 밝은 빛을 여러분 가정에 비추십니다. 소자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마 18:14). “어느 여자가 10드라크마 가운데 하나 잃어버리면 불을 켜고 온 방을 찾지 않겠느냐”(눅 15:8-9), “목자가 양 100마리 가운데 하나를 잃어버리면 99마리는 들에 두고 하나를 찾기 위해서 이 골짝 저 골짝을 헤매지 않겠느냐, 회개할 것이 없는 99보다 회개하는 하나를 더 기뻐한다. 양 100마리 가운데 잃어버린 한 마리 찾았을 때 온 동네 사람 먹고 마시고 잔치하지 않겠느냐” 했습니다(눅 15:4-7). 잔치한다고 소, 돼지를 잡으면 한 마리 양 값보다 더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에게 축복을 주셔서 그 이상 대접하는 부요의 축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전도의 원동력은 성령 충만,
기도 충만, 말씀 충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면 천하에 부러운 것이 없고, 자랑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못 갈 데가 없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좋은 옷 못 입고, 제대로 치장하지 못했어도 은 금 보화로 치장한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했어도 성령 충만이 없는 자보다 우리가 더욱 의젓하고 당당합니다. 기도 충만, 은혜 충만, 말씀 충만으로 살 때, 하나님이 사업의 길도 열어 주십니다. 눈 뜨게 해 주시고 능력 주십니다. 내가 애쓰고 잔꾀 부리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히 받은 사람은 겁이 없어지고 영안(靈眼)이 밝아집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이 세상 끝 날까지 같이 있겠다는 말씀이 믿어지는 것입니다(마 28:20). 마음에 두려움이 있으면 가다가 자기 발소리에 괜히 뒤돌아봅니다. ‘주 안에 있는 자에게 딴 근심 있으랴’ 했죠. 주 밖에 있기 때문에 겁먹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겁니다.
조상을 보나 가문을 보나 나 자신을 보나 천만번 죽어도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십자가 사랑으로 내 죄를 사해 주시는 그 은혜를 생각할 때 기운이 뻗칩니다. 못할 것이 뭐 있습니까? 사도 바울 보세요. 괴나리봇짐에 바늘, 실, 가위밖에 없습니다. 남의 천막 구멍 난 것이나 때워 주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부자로 살았습니다. 전도의 사명은 아주 즐겁고 기뻐야 합니다. 가치와 기쁨, 감사를 깨닫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강하게 역사하셔서 기적과 능력과 권세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감독자입니다.
성령이 교회를 치리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행 20:28). 우리 교회가 32개 교구인데 1개 교구에서 한 사람씩만 전도해도 32명입니다. 근데 매주 네 사람, 다섯 사람. 많아야 열 사람입니다. 그게 전도하는 것입니까? 목사, 전도사들이 살아 있으면 교인들이 왜 그 모양입니까? 성령 받지 못하면 생활도 가정도 사업도 모두 기름칠 안 한 기계처럼 삐그덕거립니다. 성령 받으면 모든 것이 기름을 잘 친 듯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삭삭 잘 돌아가죠. 성령이 얼마나 고마운 분입니까?(롬 8:26) 내가 빌 바를 알지 못하면 성령이 기도해 주고 끝까지 인도하고 함께해주십니다(눅 11:13). 성령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 전도는 이방인뿐만 아니라 동족까지도, 또 믿다가 낙심한 분들도, 다시 한번 말씀을 전해서 다 데리고 나오는 것입니다. 유다서 1:20-21 영원히 잊지 마세요. 교회의 한 공동체 일원으로서, 믿음의 형제가 되어 같이 먹고, 마시고, 살고, 어려움을 당할 때 기도해 주고, 위로해 주고, 붙잡아 주고, 이끌어 주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히 받아야 됩니다(엡 6:21).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성령 받지 않고선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영혼을 맡기셨습니다.
사랑의 공동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들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전도는 가진 자 못 가진 자 상관없습니다. 다 전하세요. 거지면 어떻습니까? 사람은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전도를 통해서만 ‘내가 죽은 교회가 아니라 산 교회에 왔구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체험해야 집에 돌아가서도 가족들에게, 공장, 회사. 직장에서도 자신 있게 증거할 수 있습니다. 같은 교인 만나면 “자녀 공부 잘하냐? 집안 편안하냐?” 그 얘기보다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할 텐데 나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해 보세요. 그러면 벌써 그 집안에 편안하고 튼튼히 서 갑니다. 이제부터 지혜롭게 믿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주님 재림으로 맞이하는 그 영광의 세계는 행한 대로 갚아주는 곳입니다. 전도 안 한 사람과 한 사람과 똑같습니까? 하늘땅 차이입니다. 어떠한 사람은 별의 영광, 어떤 사람은 달의 영광. 또 어떤 사람은 해의 영광이라는 고린도전서 15장 말씀이 거짓말입니까? 여러분, 눈 떴다 하면 성령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 안 하면 교회에 소망이 없습니다. 구세주 되시는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쉴 새 없이 하나의 영혼을 구원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애쓰는데 우리가 어찌 전도 안 하고 안락하게 살려고 합니까? 전도가 바로 편안하게 사는 지름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낸 것은 대접받고 쉬기 위해서 보낸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도하기 위해서 보냈다고 하셨습니다(눅 4:42-44). 전도할 때 하나님께서 보시고 여러분들의 모든 원하는 소원 이상의 축복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004년 6월 9일 수요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 22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