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 참여다 –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기도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 참여다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골로새서 1장은 사도 바울의 옥중 서신입니다. 감옥에서 눈치를 봐 가면서 어렵게 쓴 편지입니다.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골로새서 1장에서 바울이 보여 주는 기도는 그칠 줄 모르는 기도요, 쉴 줄 모르는 기도이며, 멈출 줄 모르는 기도입니다. 전도자에게는 이처럼 계속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줄이 계속 이어져야 하며, 그것이 끊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왜 기도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영의 은사를 얻기 위해서입니다(골 1:9). 하나님의 뜻에 합당히 행하기 위해서입니다(골 1:10-11). 더 세부적으로는 첫째, 각자의 부름에 합당하게 하기 위해서이며(엡 4:1), 둘째, 복음에 합당하게 하기 위해서이고(빌 1:27), 셋째 하나님께 합당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살전 2:12).
기도의 목적은 무엇이고 결과는 무엇입니까. 기도의 목적은 결코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기도는 현실 참여여야 합니다. 기도는 현실에 대처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결코 명상, 상상, 추상이 아닙니다. 기도의 결과는 바로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이율배반입니다. 기도의 결과는 생활입니다. 기도의 결과는 힘입니다. 기도하면 자신만만해집니다. 기도의 결과는 생산입니다. 기도의 결과는 창조요 진보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현실 자체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변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것이며, 완전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기도는 계획적이고 목적적인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꼭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영적 세계에서도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삽니다. 영적 양식인 기도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도 기도의 결과입니다. 기도 없이 갑자기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활 자체가 기도의 생활이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기에 십상입니다. 돈 때문에 시험 들고, 배우자 때문에 시험 들고, 자녀 때문에 시험 듭니다. 이성 문제 때문에 시험에 빠집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시험에 빠지는 것입니다. 시험은 내가 지느냐 이기느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시험에서 이기셨습니다. 무엇으로 이기셨습니까. 바로 기도로 이기셨습니다. 기도 없으면 시험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현실 대처입니다. 기도의 날개를 펼쳐보십시오. 폭풍이 올 때 독수리는 그 바람을 이용해서 날아오릅니다. 바람을 이용해서 날개를 조종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기도할 때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창조입니다(출 14:21). 기도하자 “하나님의 지팡이를 내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기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지팡이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야곱도 지팡이를 가졌습니다. 예수님을 지팡이 삼아서 기도할 때 우리 앞에도 홍해가 갈라집니다. 그것이 창조입니다. 지팡이는 의지자입니다. 인도자입니다. 불의를 치는 자입니다. 내가 피곤할 때 의지가 되고, 나보다 앞서가면서 장애물을 치우고 인도해 줍니다. 내가 스스로 인도하려고 해 보십시오. 절대 제대로 안 됩니다. 예수님의 지팡이를 의지해서 기도하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습니다. 야곱도 침상에서 지팡이를 의지해 기도하고 숨을 거뒀습니다(히 11:20-21, 시 23장). 지팡이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낭떠러지에 매달린 자에게 지팡이를 내주면 지팡이를 붙잡고 올라옵니다. 이삭도 침상에서 지팡이를 의지했습니다.
기도할 때 인격적으로 새로워집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사람도 없고, 미워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기도하기 전에 그런 것을 다 정리하고 와서 기도드리고, 예배드리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밉고 싫은 사람이 있으면 기도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영력(靈力)과 권세를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2004년 4월 18일 경건 예배 중
- 22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