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지도 말고 스스로 속지도 말라
속이지도 말고
스스로 속지도 말라
고린도전서 10:12, 갈라디아서 6:1-3
2022.3.9 특별 새벽예배에서 상고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 남을 속입니다. 자신도 스스로 알게 모르게 속고 살아갑니다. 남을 속이는 일만 죄인 줄 알죠. 그런데 자기 자신이 스스로 속고 있어요. 그것도 남을 속이는 죄와 똑같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반신불수 되면 얼마나 사람이 불편합니까. 양심을 속이는 것은 반신불수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남도 속이지 않고 자신도 속지 않는 것,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죠. 그것을 성도들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남이 나를 속이는 일에만 신경을 썼지, 자신이 자신에게 속는 일을 경계한 적이 없습니다(고전 15:33, 약 1:16). 하나님 믿는 사람은 속여도 안 되고, 자신이 속아 넘어가도 안 됩니다(딤후 3:13, 계 22:11, 겔 3:27).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를 속인 옛뱀은 온 천하를 꼬시는 자, 미혹하는 자, 속이는 자입니다(창 3:13). 사도 바울은 “죄가 기회를 타서 나를 속인다”고 했습니다(롬 7:11). 우리 속담에도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 틈이 없어야 됩니다(엡 4:27).
남이 나를 속이는 것도 분하지만, 내가 나에게 속임을 당한 것은 영적으로 볼 때 멸망입니다. 더 분한 일입니다(갈 6:7). 인간의 지혜는 헛것이고 자기 지혜가 자기를 궤휼에 빠지게 합니다(롬 1:22-23). 예수 안에 의로움과 거룩함과 지혜와 구속이 들어있습니다(고전 1:24, 30). 그러니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얼마나 좋습니까?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또 남의 이야기 하지 않잖아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셨다고 했습니다(고전 1:20, 3:18).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역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너무 기뻐서 우리한테 지혜를 선물로 주십니다(시 111:10). 잠언 2:7 말씀을 영원히 잊지 마세요(단 12:10).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믿지 않습니다(잠 3:5-7).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 때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양심적으로 정직한 사람은 벌써 하나님이 와 계셔서, 아낌없이 도와준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때마다 명철과 총명, 지식과 은혜를 주셔서 하는 일마다 피곤치 않고, 감사합니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하면서 “야, 걱정하지 마. 내가 너한테 아낌없이 도와줄게!” 하십니다. 이 말씀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시 84:11). 우리 평강교회 교인은 한 사람도 실패하면 안 됩니다. 오늘부터 자기 자신과 자기 지혜, 자기 꾀 믿었던 것 다 예수께 맡기세요. 시편 23편 말씀 볼 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했습니다.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니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충직하게 살기보다 요령껏 살아서 남보다 앞서려 합니다. 거짓말을 자꾸 하다 보면 요령이 생겨요. 요령(要領), 구할 “요”, 옷깃 “령”입니다. 본래 의미는 일을 하는데 꼭 필요한 이치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적당히 넘기는 잔꾀를 말합니다. ‘내가 뭐 하겠다’ 하면 근심 걱정이 생기고, 염려되고 그때 인간의 잔꾀를 부리게 됩니다. 끝내는 자기 꾀에 넘어집니다(잠 28:26).
스스로 죄 없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는 죄가 있습니다.
크든 작든 죄는 죄입니다. 아담의 죄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롬 5:12).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다고 요한일서 1:8에 말씀합니다(롬 3:10-12). 말세에는 내가 스스로 회개할 수 없습니다. 왜 안됩니까? 거짓이 온통 나를 감싸고 있어요. 믿음이 생겨야 스스로 방어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예수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긴다고 했습니다(롬 10:17). 믿음 없으면 도둑이 마음대로 들어오고 사단이 마음대로 우리 마음에 들어옵니다.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는 간직해 두었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죄가 없다는 사람뿐이지 어지간해서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죄의식이 희박해졌습니다. ‘죄 없는 사람 어딨어? 그만한 죄야 다 있지. 어떻게 거짓말 조금도 안 하고 사냐?’ 합니다. 양심을 속이지 않고 어떻게 사느냐고 말합니다. 스스로 아무 이상 없는 것처럼 자신이 결백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에요(갈 6:3). 거짓된 마귀에게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위험한 사람이죠. 양심에 불도장, 화인을 받았어요(딤전 4:2).
약물을 분석하면 몇 가지 성분으로 나오듯, 하나님 앞에 서면 수억만 명이 서서 말한다 해도 하나님은 개인의 말로 다 분리하십니다. 이 세상에서는 ‘너 이런 일 했냐, 안 했냐?’ 묻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그렇게 묻지 않습니다.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한다고 했습니다(롬 14:12). 땅, 마루, 문, 바람벽, 대들보가 보고 다 증거합니다. 그러니까 속일 수 없어요. 벌거벗은 몸같이 드러납니다(히 4:13). 생명책에는 죄가 없습니다. 아무리 추악한 죄를 저질렀어도 죄를 회개하면 나타나지 않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회개하는 데 돈이 듭니까? 믿음으로 회개하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 부족함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하고 뒷전에 있는 사람을 부르십니다(잠 6:18, 잠 11:5, 약 4:6).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할 때 ‘신랑을 맞이하는 데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겠죠. 모세는 40세 때, 40년간 배운 것 가지고 이만하면 자기 민족을 구원하리라 생각했다가 실패했습니다. 베드로도 절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자신했지만(마 26:31-33), 조그만 계집아이가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예수와 같이 있었다고 하니까 예수님 모른다고 저주까지 하며 맹세했습니다. ‘내가 교회 생활 이만큼 잘하고 신학도 했는데, 이 교회에 나만큼 믿는 사람 있으면 나오라고 그래’하면 그 사람이 바로 넘어질 사람입니다(고전 10:12). 잠언 21:4에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이 다 죄라고 했습니다(약 1:26).
구약 시대에는 목자의 말을 생명같이 믿었습니다. 지도자 말을 잘 믿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잘됐지만 믿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라 자손같이 처참하게 멸망한 것을 보세요. 교인들은 교회를 잘 택하고 하나님의 종을 잘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자손만대에 가족이 번성하고 복을 받고 살아갈 수 있죠. 또 목자는 교인을 자기 자식같이 믿으라고 했어요. 지금 믿을 수가 있습니까? 믿지 못하잖아요. 성경에 말세에는 네 마음 따로, 내 마음 따로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마음은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빌 2:5).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권능으로 늘 디모데전서 3장 말씀처럼 성실과 정직으로 승리할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지만 믿지 못하는 자는 속이는 자입니다(약 1:22).
말씀 들으면 믿음의 생활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할 때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권세가 나타나고 역사가 일어납니다(롬 1:17). 말씀 듣고 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사람입니다. 거울을 보고 가서 씻지 않는 사람입니다. 남을 속이는 것만 죄로 여기지 말고, 성경 믿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 기도 안 하는 것이 죄인 줄 알아야 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나는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았다”고 하면서 “의로운 도를 너희에게 가르치겠다”고 했습니다(삼상 12:23). 사무엘의 일생은 기도하는 생활. 말씀을 가르치는 생활이었습니다.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뢰합니다.
정직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지혜를 마련하셨습니다(잠 2:7). 그 지혜는 우주 만물을 통찰합니다. 자기 일생, 과거, 현재, 미래를 다 꿰뚫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사람을 창조할 때 아주 정직하게 창조하셨습니다(전 7:29). 아무리 세상에서 권력이 있고, 명예와 지위가 있어도 하나님 앞에는 다 죄인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사람을 믿지 않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사람한테 묻지 않아도 다 안다’고 하셨습니다(요 2:24-25).
성경을 믿고 행해야 복을 받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이고 성도의 의무죠. 하나님 것이기 때문에, 생활이 어렵다 해서 떼어서 쓰면 안 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다음에 돈 생기면 몇 달 못 낸 거 내면 되지’ 하지 마세요. 즉시 드려야 합니다. 또, 기도 안 하고 복 받으려고 하지 마세요. 저는 장거리 이동할 때 꼭 기도합니다. ‘운전기사에게 은혜 주시되 주님, 함께 해주시고 또 자동차에 아무 결함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달라’고 출발 직전에 기도하고, 도착해서 기도합니다. 안 한 적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주일은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천지의 만물을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제7일은 안식했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들은 내게 와서 감사하고 기도하고 나만 믿고 의지할 때 일주일의 모든 생활을 책임지겠다’ 하시고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주일날 장사하면 몇백만원, 몇십만원 더 벌 텐데’ 하는 생각하지 마세요. 주일에 못 판 것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다 사람을 보내서 채워주십니다.
말씀을 품고 모든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게으른 자, 일하기 싫어하고 남의 돈 꾸기 좋아하는 자,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기웃기웃해서 밥이나 얻어먹고 사는 사람들의 인생은 가시 울타리입니다. 평생 살아봐야 여기 나가도 찔리고 저기 나가도 찔립니다. 게을러서 기도 안 하고 잘 될 줄 아십니까? 그것은 요행을 바라보는 것이죠. 그런 자는 천하의 바보요, 스스로 속고 있는 자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실체를 붙잡고 믿고, 믿음의 손으로 하나님의 발을 붙잡는 것입니다. 믿지 않고 건성으로 기도해 보세요. 백번 아니라 만 번 기도해도 모두 헛것입니다. 그러나 정직한 사람의 인생은 대로(大路), 큰 신작로입니다(잠 15:19).
게으르지 말고, 예수님을 마음에 품고 일하면 행하는 일에 복 받습니다(롬 12:11). 평강교회 당회장 이하 배 속의 아이까지도 하나님 말씀 듣는 그 어머니를 통해서 자손만대에 신구약에 기록된 37,500가지의 축복이 모두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2012.12.12. 수요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 22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