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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에 머물 동안(홍수 일정을 통해 본 달력)

2022.03.04 15:29

방주에 머물 동안
(홍수 일정을 통해 본 달력)

창세기 7:6-16, 8:6-19, 8:22, 시 104:6-9

역사(歷史)는 인간 사회가 걸어온 변천의 모습을 기록해서 남긴 흔적입니다. 성경은 역사의 기록입니다. 어떤 역사입니까. 타락한 인간들을 다시 불러 회개시키고, 영원히 죽지 않고 살게 하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은 구속사(救贖史)입니다. 세상의 모든 책은 없어지지만, 하나님께서 인류를 살리시기를 소원하시는 구속사, 이 말씀만은 세세 무궁토록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성경에는 타락의 역사, 회복의 역사, 전쟁의 역사, 성전과 교회의 역사가 다 기록돼 있습니다. 이 모두가 구속사의 한 맥으로 이어집니다. 성경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말씀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수단과 방법입니다. 이 구속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성경의 연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연대(年代)가 중요한 이유

“당신 나이가 몇입니까?” 물을 때, 답을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이를 안다는 것은 자신의 연대와 역사를 아는 것입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신 32:7). 우리 교회에서는 초등학생도 아는 말씀이죠. 이것이 빠지면 예수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연대를 기록하신 방법은, 사탄 마귀가 알까 봐 ‘여기 갔다 저기 갔다’ 하는 식으로 종잡을 수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사람 생각에는 동쪽이면 동쪽 얘기를 다 해준 뒤에 남쪽, 북쪽 순서로 가면 좋을 텐데, 동쪽 가다가 중단하고 남쪽 얘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니 헷갈리고 성경을 봐도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을 덮어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 구하는 자에게만 열립니다. 믿지 못하면 성경은 그냥 비밀로 남고 맙니다. 하나님께 구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비밀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예수님 잘 믿고, 예수님 붙잡고, 예수님이 내 마음속에 와 계시면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골 2:2-3). 예수님이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하셨으니(마 13:44) 호미나 곡괭이, 삽으로 캐야 보화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성경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기도로, 성경을 읽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고 의지함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연대를 기록하신 방법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복잡하고 어렵고 때로는 오류가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성경의 연대가 낱낱이 기록되지 않고, 주제별로 요약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앞뒤가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예 주석에 그렇게 써놓은 사람도 있습니다. 신학교 교수가 그렇게 가르치니 신학생도 그렇게 믿습니다. 그렇게 배운 뒤 목사가 돼서 교인들을 가르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쁜 사람들입니다.

이사야 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하나님은 성경의 연대에 구속(救贖)의 뜻을 담아 기록하셨습니다. 성경은 놀랍게도 구속사의 각 시대마다 정확한 연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제가 오래전 장안산에서 47일간, 그리고 지리산에서 3년 6개월 7일 동안 기도할 때, 지리산에 입산한 지 2년 6개월 만에 성령님의 강력한 조명으로 깨달은 말씀을 노트에 기록한 뒤 47년 만에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리의 종류가 많되 뜻 없는 소리가 없다고 하셨습니다(고전 14:10).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는데(시 19:2), 우리는 듣지 못합니다.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영이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룩하십니다. 제가 지리산에서 기도할 때 뼈만 남을 정도였습니다. 고기 등 단백질은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산속에서 어떻게 밥을 지어 먹겠습니까. 하루에 두 번 컵에 쌀을 담고 물을 부어놓으면 부풀어 오릅니다. 불린 쌀과 솔잎, 그리고 진달래 등 꽃잎을 먹었습니다. 차디찬 솔잎이 얼마나 뻣뻣합니까. 그렇지만 그때 오랜 기간 솔잎을 먹은 덕에 지금 86세지만 눈이 이렇게 좋습니다. 안경 한번 안 써 봤습니다. 낮에는 빛이 있으니 성경을 읽고 밤에는 성경을 못 읽으니 자동적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외롭다, 외롭다’ 해도 그런 고독은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이런 지경에 이르면 자살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제 고향은 이북이라 이남에는 친척도 없습니다. 의지할 데 하나 없죠.
‘기도하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각오로 기도한 것입니다. 한참 손을 들고 기도하다 보면 저리고 아픕니다. 그런데 손을 내리려고 해도 얼마나 추운지 팔이 얼어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제일 먹고 싶은 것이 뜨거운 물, 숭늉이었습니다. 1년에 8개월은 안개와 구름이 산봉우리를 다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리산에는 눈이 ‘오는’ 것이 아니라 구름이 와서 ‘쏟고’ 갑니다. 순간적으로 2, 3미터 쌓입니다. 굴 안에서 이틀 동안 나가지도 못합니다. 6월 17일-25일은 돼야 눈이 다 녹습니다. 5월에도 영하 3-5도까지 내려갑니다. 겨울에는 온통 얼음이 얼어 낭떠러지가 되니 내려오지도 못합니다. 제가 말해봐야 우쭐댄다고 할까 봐 잘 얘기도 안 합니다. 우리 목사님, 장로님들이 제 말을 안 믿다가 지난번에 5월 중순에 직접 가보고서야 비로소 무슨 말인지 알게 됐다고 합니다. 기도원 밖에 나가면 매점이 있고, 마을버스 왔다 갔다 하고, 가게에서 잔치국수 한 그릇 사 먹을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돈이 있어도 쓸 곳도, 갈 곳도 없습니다. 전기 들어오고 수돗물 나오는 데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아픕니다. 말도 못 하죠. 성령님이 강력하게 조명해 주셔야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성령의 조명으로 깨달은 말씀을 오늘 증거하는 것입니다. 귀담아들으세요.

 

노아 때를 왜 기억해야 하나?

오늘 제목이 ‘노아가 방주에 머물 동안(홍수 일정을 통해 본 달력)’입니다. 달력은 정확합니다. 날짜를 잊어버렸다가도 달력을 보면 ‘오늘이 3월 며칠이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노아의 대홍수는 창조 이후 전무후무한 홍수입니다. ‘서울은 비 오고, 대전은 안 오고’ 하는 식으로 지역적인 홍수가 아닙니다. 전 우주를 감쌀 수 있는 엄청난 비가 내렸습니다. 노아 대홍수는 노아 당대에 발생한 역사적 사실로서 최후 심판을 예표(豫表)합니다. 인자의 임함도 노아 때와 같다는 마태복음 24:37-38 말씀을 잊지 마세요. 장사하고, 집 짓고, 등기하고, 놀러 가고, 아들딸 낳고 하다가 갑자기 찾아온 노아 홍수 때처럼 주님의 재림도 이뤄집니다. 저는 100% 믿습니다. 둘이 밭에서 일하다가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남는다고 하셨습니다(마 24:40-41). 성경은 일점일획도 거짓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예비하고 있으라 너희 주가 언제 임할는지 모른다”(눅 17:34-35)고 예수님이 누누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깨달으세요. 부인은 죽지 않고 살아서 변화하는데 남편은 변화 못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세상의 종말을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신즉’, ‘하나님 앞에’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끝날이 이르렀다면 누구도 연장시키지도, 말리지도 못합니다. 단연코, 결단코 틀림없는 것입니다. 노아는 악한 세대(世代)에 산 사람입니다. 강포(强暴)한 세상이었습니다. 썩을 대로 썩어 패괴(敗壞)함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죄악이 관영(貫盈)했습니다. ‘관영’은 물이 찰찰 차고 넘치는 것입니다. 99%가 아니라 100%가 넘어 넘친 것입니다. 죄악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어 세상 끝날이 하나님 앞에 도착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지음을 한탄하고 후회하셨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와, 땅의 모든 짐승, 사람까지 모두 쓸어버리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만 ‘말뚱말뚱’ 하고 있었지, 놀라서 준비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홍수가 나서 콧구멍으로 물이 들어가 죽을 때까지도 깨닫지 못했습니다(마 24:39). 오늘날에도 똑같습니다. ‘내 부모, 내 남편, 내 자식’ 만 찾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경고하실 때 귀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말씀이 주인입니다. 주인을 무시하고, 영접하지 않고, 개 짖는 소리처럼 들어서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교회는 예배 때 성경 구절을 읽은 뒤에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니라”라고 합니다. 사람의 소리, 짐승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노아는 말씀대로 사는 사람

모두가 하나님을 등지고 곁길로 가는 시대에 노아는 유일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창 6:8).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한 것입니다. 평강교회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말씀 받는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더라” 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노아는 당세에 의인이고, 완전한 자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눈만 뜨면 기도였습니다. 일을 진행할 때도, 점심 먹을 때도, 저녁때도,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잠자리에 들 때도 기도였습니다. 찬송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읽지 않는 사람은 천치(天痴) 바보이고 어리석은 자입니다. 목사, 장로, 집사라고 50년 믿었다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음을 다해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위해 살며,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음 받았으니 나의 주인은 말씀이다’ 하는 믿음으로 어디 가든 말씀을 놓칠까봐, 말씀에 해가 될까봐,말씀이 더럽힘을 받을까봐 조심해서 사는 것, 그것이 의인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편, 아내, 자식 걱정, 사업 걱정에 노심초사하다 받은 말씀 다 빼앗깁니다. 그러니 무슨 기도를 하겠습니까. 신앙생활은 ‘집중’입니다. 찬송할 때, 말씀 받을 때 집중해야 합니다. 군인의 기본자세가 ‘차렷’이듯, 말씀 받는 것도 그래야 합니다. 마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 세상 염려 때문에 말씀을 따르지 못하고 시간 다 빼앗긴 뒤 망하는 모습을 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계 1:3).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깁니다(롬 10:17). 사람의 말이 아닌 오직 예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는 대로, 말씀의 명령에 의해서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마음이 맞아야 동행할 수 있죠. 마음이 맞으면 깨가 쏟아질 정도로 주고받아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너 따로, 나 따로’면 동행이 안 되고 더 피곤할 뿐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으로 노아(창 7:1,겔 14:14, 20, 히 11:7, 벧후 2:5), 에녹(창 5:22-24), 욥(욥 1:1-8), 시므온과 안나(눅 2:28-38)가 기록돼 있습니다. 참 복 받은 사람이죠. 안나는 시집간 지 7년 만에 과부가 됐고, 과부된 지 84년이었으니 예수님이 오셨을 때 100세가 넘었습니다. 시므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역대 선지자가 예언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는 성령님의 말씀이 그대로 임했으니 얼마나 복 받은 사람입니까.

1. 방주에 머무는 동안 성별된 생활을 명하신 하나님

방주에 머무는 동안 부정한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방주에 머무는 동안 남녀 간에 관계해서는 안 됩니다. 노아는 그 명령을 지켰습니다. 세상은 어디 그렇습니까. 방주는 남녀 간에 관계하는 곳이 아니라 생명을 보존하는 곳입니다. 평생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 이 사실을 알았습니까. 저도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서 깨닫고, 전율하고 기절할 정도로 놀란 것입니다. ‘그런 말씀이 성경에 어디 있습니까’ 하고 의문을 품는 남녀 성도들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갈 때의 순서와 방주에서 나올 때의 순서가 명백하게 다릅니다.

창세기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남자와 여자가 구별돼 있습니다. 노아는 이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노아 입장에서 보면 자기 부인이 있고, 세 아들에게도 아내가 있으니 부부끼리 방주로 들어갈 수도 있겠죠.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7:7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子婦)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창세기 7:13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방주 안에서 각종 짐승 수십만 마리에게 양식을 주고, 물주고, 오줌똥 싸면 치워야 했습니다. 아이 낳고 키워서야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방주는 자기 생명을 보존하는 곳입니다. 방주 안에서 성별된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아이가 생겨 노아의 손자, 손녀가 나왔겠죠. 방주를 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신 뒤부터 노아의 세 아들은 자녀를 낳지 않았고, 홍수 후 2년이 지나서야 맏아들 셈이 아들을 낳았습니다(창 11:10). 이스라엘의 출애굽 후 광야 40년 노정에서도 하나님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남녀 간에 관계하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여자들의 단장품을 제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맞고 있습니다. 사순절에는 평생 성경 읽지 못하고, 찬송하지 못하고, 전도 못 하고, 헌금 제대로 못 한 것을 회개하며 부활의 생명의 주를 맞이하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방주에 들어가는 순서를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세요. 하나님이 사탄이 알고 이용할까 봐 이처럼 노아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나님이 아담, 하와와 대화하신 것은 알지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와에게 가서 “동산 나무의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더냐?” 하며 떠본 것입니다. 하와가 “네가 알아서 뭐 하느냐? 하나님과 나와의 언약이다. 알고 싶으면 하나님께 물어봐라” 했으면 다 끝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와가 뱀에게 힌트를 줬죠. 그 결과 뱀이 선악과를 이용한 것입니다. “따먹어도 죽지 않고 하나님같이 눈이 밝아진다”는 뱀의 말을 듣고 나니 하와에게 욕심이 생겼습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입니다(약 1:15).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골 3:5). ‘뭐 먹고 싶다’는 생각만 밤낮 하고 있으면 하나님은 떠나시고, 그것이 그 사람의 신이 됩니다. 그래서 ‘배로 자기 신(神)을 삼는다“(빌 3:19)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반면 하나님은 방주에서 나올 때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8: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과 달리 처음 방주에 들어갈 때처럼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나왔습니다.

창세기 8:18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2. 노아 방주의 달력과 홍수의 일정

창세기 1-6장은 사람의 출생과 사망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5장 족보에 자세히 기록돼 있죠. 그런데 사건의 날짜와 시간의 흐름에 대한 기록은 홍수 일정에서 처음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달력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홍수 일정과 관련한 날짜와 시간의 흐름에 대한 성경의 상세한 기록을 토대로, 노아의 달력을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600세 되던 해 2월 10일에 “지금부터 7일 후” 즉, 2월 17일에 홍수가 시작된다고 말씀하셨고 그대로 됐습니다(창 7:1-11). 이 기록은 당시 이미 달력이 존재했음을 보여줍니다. 2월 17일에 온 세상을 뒤흔드는 뇌성, 벼락, 폭풍, 노도가 시작돼 40일간 지속됐습니다. 땅이 입을 벌려 물이 땅에서 솟아났고, 하늘의 창이 열려 물이 쏟아졌습니다. 온 땅이 샌드위치처럼 사이에 끼어 제일 높은 아라랏산까지 차고 넘쳤습니다.

1) “지금부터 7일이면 40주야 동안 땅에 비를 내리겠다”(창 7:4) 하셨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노아 600세 2월 17일은 일요일입니다. 안식일을 지킨 뒤 첫 날입니다. 세계적인 신학자들이 많은데 제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사람이 각자 자기 태어난 날짜와 시간까지 알죠. 저는 아침 7시 즉, 묘시(卯時)입니다. 자기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알 듯, 성경에 기록된 사건의 날짜와 시간도 정확하게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뒤 노아가 방주 문을 닫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닫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닫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대로 노아 600세 2월 17일(일요일)부터 40주야 비가 쏟아져(창 7:4) 3월 27일(금)에 비가 그쳤습니다. 150일 동안 물이 땅에 창일(漲溢)했으며(창 7:24), 150일 후에 물이 감해 7월 17일(수요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습니다(창 8:4). 2월 17일부터 7월 17일까지를 ‘150일’이라 하셨으니 당시의 한 달은 30일인 것이 분명합니다. 방주에 아라랏산에 도착해, 홍수가 시작된 뒤 처음으로 휴식이 시작됐죠.

창세기 8:4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넷째 날에 해, 달, 별의 광명을 만드셨습니다. 해, 달, 별을 기준으로 날짜가 정해지니, 그때 ‘날짜’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창조 넷째 날에 달력이 생겨서 연한(年限)과 사계절이 시작된 것이죠. 그전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년(年)도 달[月]도 없습니다. 무한한 세계입니다.

창세기 1:14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四時)와 일자(日字)와 연한(年限)이 이루라

성경에서 새로운 시작은 수요일입니다. 수요일은 새 창조입니다. 유대의 제사장과 장로들이 모두 부패했을 때, 경건한 자들이 광야로 나가 만든 ‘에세네’파가 희년 달력을 만들 때 이런 정신을 담아 정월 초하루 즉, 티쉬리월 1일을 항상 수요일이 되도록 맞췄다고 합니다.

3) 아라랏산에 도착한 지 74일 후, 물이 감해 산들의 봉우리가 보인 노아 600세 10월 1일이 일요일입니다.

창세기 8:5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 달 일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어느 성경 주석을 봐도 없는 내용입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지도, 기도도 하지 않고 뭘 깨닫겠습니까.

4) 산들의 봉우리가 보인 것이 90일 후인 노아 601세 1월 초하루, 토요일입니다.

창세기 8:13 육백 일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5) 그때부터 57일 후에 노아가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노아 601세 2월 27일입니다. 그날이 토요일입니다.

3. 노아 달력의 특징

가. 해를 셈하는 기준이 노아의 나이입니다.

창세기 7:6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세라
창세기 7:11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창세기 8:13 육백 일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나. 7일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노아의 달력은 ‘1주일=7일’을 기준으로 한 달력입니다. ‘7일’ 주기는 연, 월, 일과는 달리 유일하게 해, 달, 별의 자연규칙과 전혀 상관없는 주기입니다. 그렇지만 태양력도, 태음력도 모두 1주일을 기준으로 할 때 비로소 규칙적으로 달력이 형성됩니다. 하나님은 홍수 전부터 7일을 기준으로 삼고 계셨습니다.

창세기 7:4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창세기 7:10-11 칠일 후에 홍수가 덮이니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홍수 후에도 하나님은 7일의 기준을 사용하셨습니다(창 8:10, 12).
아라랏산 산봉우리가 드러난 노아 600세 10월 1일(일요일)로부터 40일 지난 11월 11일(금요일)에 노아는 방주의 창문을 열고 까마귀를 내보냈습니다(창 8:6-7). 어떤 사람들은 ‘까마귀가 세상적이고 위선적이며, 자기 사명을 다하지 않고 시체를 뜯어먹기 바빴다’고 해석합니다. 성경대로가 아닙니다. 왜 성경에 없는 얘기를 합니까. 절대 성경에 없는 얘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계 22:18-19, 신 4:2, 12:32, 잠 30:6).

요한계시록 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신명기 4:2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加減)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까마귀는 끝까지 주인에게 충성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효자입니다. 까마귀는 물이 마르기까지 날아 방주를 왕래했습니다(창 8:7). 노아가 방주 창문에서 까마귀가 오고 가는 것을 보며 ‘아직도 물이 마르지 않았구나’ 하고 알았던 것입니다. 썩은 세상에서 썩은 것을 먹더라도 중심은 달라야 합니다. 까마귀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다했습니다. 사람은 한두 시간만 걸어도 목덜미가 뻣뻣하고 다리가 후들거려 만사가 귀찮죠. 그러나 까마귀는 쉼 없이 왕래했습니다. 비둘기는 하루만 나갔다 와도 맥이 없지만, 까마귀는 날개가 보통이 아닙니다.

창세기 8:7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날아 왕래했다’는 히브리어로 ‘바예쩨 야쪼 바쇼브’입니다. ‘떠나다, 나가다, 퇴장하다, 출발하다’는 뜻의 ‘야짜’와 ‘선회하다, 돌아가다, 대답하다, 회복하다’는 뜻의 ‘슈브’가 들어 있습니다. 지속해서 나갔다가 돌아온 것입니다. 마침내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 까마귀는 더 왕래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죠. 까마귀는 주인의 마음이 시원하도록 얼음냉수 같이 충성한 것입니다. 잠언 25:13, 15:31, 25:25, 시편 42:8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잠언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노아는 601세 정월 초하루에 물이 그친 뒤 방주 뚜껑을 열고 지면에 물이 걷힌 것을 봤지만(창 8:13), 하나님은 방주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일까요? 까마귀가 물이 마르기까지 아직 왕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노아 601세 2월 27일, 땅이 완전히 말랐을 때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창 8:14-19). 그러므로 까마귀는 총 107일간 날아 방주까지 왕래한 것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노아가 까마귀를 내보낸 11월 11일은 금요일입니다. 노아는 7일 후인 11월 18일(금요일)에 이번에는 비둘기를 내보냈습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접족(接足:발붙임)할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창 8:8-9). 노아는 다시 7일 후인 11월 25일(금요일)에 비둘기를 또 내보냈습니다(창 8:10). 이번에는 비둘기가 저녁에 감람 새 잎사귀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감람나무는 높은데서 못 자랍니다. 산 아래, 제일 낮은 곳에 살죠. 그러므로 노아는 감람나무 잎을 보고, 물이 찼던 것이 내려가고 산 밑 육지에 감람나무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을 안 것입니다(창 8:11). 노아는 7일을 또 기다려 12월 2일(금요일)에 세 번째 비둘기를 내보냈습니다. 이번에는 비둘기가 노아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물이 감했으므로 돌아와서 방주 신세를 질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곳을 찾아 완전히 정착한 것입니다(창 8:12).
처음 비둘기를 내보낸 날(11월 18일)이 까마귀를 내보낸 날(11월 11일)로부터 7일 후라는 것이 성경에 명시돼 있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 비둘기를 내보낼 때 ‘또 칠일을 기다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창 8:10, 12). 이는 ‘전과 동일하게 반복된 행동’을 나타낸 말이므로 처음 비둘기를 내보낼 때도 7일을 기다린 후 내보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8:10 또 칠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놓으매
창세기 8:12 또 칠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 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여기서 10절과 12절의 ‘기다려’는 히브리어로 서로 다른 단어가 쓰였습니다. 10절의 ‘기다려’는 ‘훌’입니다. 괴로워한다는 뜻입니다. 비둘기를 내보낸 뒤 마음이 심히 괴로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12절의 ‘기다려’는 ‘야할’입니다. ‘희망하다, 기대하다’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7일’이라는 기록이 홍수 전에 두 번, 홍수 후에 두 번 나옵니다. 이 말씀을 잘 경청하셔야 합니다. 홍수 전이나 홍수 후나 동일하게 1주일(7일) 단위로 된 달력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 시대에도 안식일을 철두철미하게 지킨 것입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창조하신 후 제7일에 안식하시며, 안식일을 존중하고 기억하고 지키게 하셨고(창 2:1-3)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 안식일을 잘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안식일을 공경하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공경의 대상은 인격체이죠. 인격체처럼 안식일을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노아도 홍수 전부터 방주 생활에 이르기까지 제 7일인 안식일을 준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 600세 2월 17일부터 비는 40일 동안 쏟아졌습니다. 방주는 5개월(150일) 동안 둥둥 떠다녔고,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이 불게 하시니 물이 감했습니다. ‘권념’은 돌아볼 권(眷), 생각 념(念)으로 마음에 두고 보살피고 깊이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입니다. 물이 점점 감하여 10월 1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고(창 8:5), 그로부터 40일이 지나서 노아가 방주의 창 열었습니다(창 8:6). 성경에 기록된 40일은 ‘훈련받는 기간’입니다. 첫째 연단, 둘째 고난, 셋째 심판을 뜻합니다. 40일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의 기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벌로 사람을 때려도 39대에서 멈췄습니다(신 25:3). 그래서 사도 바울도 40에서 하나 감한 매를 5번 맞았던 것입니다(고후 11:24).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연단 받은 것도 40년입니다(민 14:33, 14:34, 32:13). 40년간 그들은 하나님의 근심거리였습니다.

시편 95:10 내가 사십년을 그 세대로 인하여 근심하여 이르기를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노아 시대 이후 왜 달력이 달라졌나?

대홍수로 150일 동안 물이 땅에 차 있었습니다. 물도 열 바가지면 견디는데 열다섯 바가지면 점점 기울기 시작합니다.

창세기 7:24 물이 일백 오십일을 땅에 창일(漲溢)하였더라
창세기 8: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일 후에 감(減)하고

이때 자전축이 심하게 기울어졌습니다. 그래서 지구가 23.5도 기울어진 것입니다. 2004년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가 일어났을 때 지구 축이 약간 기울어졌을 것이라고 학자들이 말합니다1). 노아 당시 150일간 온 땅이 물에 잠겨 있을 때 지구에 변동이 생기고, 일기(日氣)가 변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재림하시면 제자리를 찾습니다. 겨울도 없고,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일기로 상하지 않는다는 요한계시록 7장 말씀이 거짓말이겠습니까.

요한계시록 7: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홍수 심판 전에는 씨 뿌리면 달마다 추수했습니다. 지금도 동남아시아에서는 1년에 2모작, 3모작을 합니다. 매달 추수할 수 있으니 노아가 하나님 명령대로 식구들과 짐승들이 1년 넘게 방주에서 먹을 엄청난 식량을 방주에 비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창 6:21-22). 코끼리, 하마 같은 거대한 짐승이 얼마나 많이 먹겠습니까. 각종 날짐승의 양식까지 모두 준비했습니다. 1년에 한 번 추수해서는 되지도 않는 일입니다. 홍수 전에는 지구 자전축이 거의 수직에 가까웠습니다. 1년이 360일이고, 춘하추동의 기후변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영하로 내려가는 추위가 없고 아주 좋은 날씨였습니다. 모든 것이 회복된 세계인 에스겔 47장 12절과 요한계시록 22장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에스겔 47: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요한계시록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蘇醒)하기 위하여 있더라

홍수 후에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홍수 후에 하나님이 노아에게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창세기 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추위는 히브리어 ‘코르’, 더위는 ‘홈’입니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추위와 무더운 더위가 생긴 것은 지구의 축이 기울어졌기 때문입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이 사람을 상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냉장고가 없으면 음식이 다 상해버리죠. 홍수 전에는 냉장고가 없어도 상하지 않는 세계였습니다. 제가 해발 4,500m에 있는 볼리비아에 선교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냉장고가 없습니다. 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아 홍수 때 물이 온 땅을 덮었다가 빠지는 과정은 시편 104:6-8에 자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시편 104:6-8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7 주의 견책(譴責)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레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8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9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창세기 8:1에 하나님의 권념하심으로 물이 감했다고 기록돼 있는데, 시편 104:7에는 하나님의 견책(꾸짖음)으로 물이 빠졌다는 것입니다. 지구의 지형이 자기 자리를 찾아 움직이는 과정이 8절에 기록돼 있고, 물의 경계를 정하시는 과정이 9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성경 주석에도 이 구절을 노아의 홍수와 연결한 곳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묻습니다. “노아 601세 정월 초하루에 물이 걷히고 방주 뚜껑을 열었는데 왜 방주에서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로부터 57일간 지각 변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땅이 제자리를 잡기 위해 올라갔다 꺼졌다 하고 있는데 사람이 나오면 살겠습니까. 그 기간 동안 방주에서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으면 천인이, 만인이 쓰러져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은 다 붙잡고 계십니다. ‘이것을 네가 목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시 91:7-8). 23.5도가 한꺼번에 기울면 모두 죽습니다. 57일 동안 서서히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그리고 땅이 다 제자리를 잡은 뒤 2월 27일에 노아를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죠. 쓰나미가 일본 열도로 밀려오고 나갈 때 지각 변동이 일어났습니다2). 야산이 높은 산이 되기도 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홍수 후에 특히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인간의 수명입니다. 지구의 자전축이 기우는 바람에 사람의 수명이 갑자기 달라졌습니다. 홍수 전인 창세기 5장의 족보는 아담부터 10대(代)까지가 거의 900세가 넘습니다(창 5:3-32). 아담 930세, 셋 912세, 에노스 905세, 게난 910세, 마할랄렐 895세, 야렛 962세, 에녹은 365세(죽지 않고 변화해서 승천), 므두셀라 969세, 라멕 777세, 노아 950세입니다.
그러나 대홍수 심판을 겪고 난 뒤 창세기 10장 족보에서는 수명이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창 10:1-26). 노아의 아들 셈 600세, 아르박삿 438세, 셀라 433세, 에벨 464세, 벨렉 239세, 르우 239세, 스룩 230세, 나홀 148세, 데라 205세, 아브라함 175세입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연 것이 601세 정월 초하루, 토요일입니다. 안식일은 금요일 오후 6시부터 토요일 오후 6시까지죠. 창세기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창 1:5)라고 하셨습니다. 노아는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방주 뚜껑을 연 것입니다. 그는 안식일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물이 다 걷히고 방주에서 나온 것도 2월 27일 토요일입니다.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나온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머무른 기간은 노아 600세 2월 17일부터 371일입니다.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7월 17일)한 뒤 방주에서 나올 때(2월 27일)까지의 기간은 221일입니다.
오늘 들은 말씀을 자손만대에 마음에 새겨서, 천국에 입성할 때까지 하나님의 축복이 평강교회를 비롯한 전국, 전 세계의 교회와 여러분 개인, 가정, 사업, 직장에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흉년이 든 블레셋에서 다른 사람은 다 망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하나님이 관심을 갖는 삶을 산 이삭은 백배 수확해서 거부(巨富)가 된 것처럼(창 26:12) 여러분도 똑같은 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이 발생한 뒤 지구 축이 다소 변화했고 지구 운동의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고 밝혔다. 지구 자 전축의 기울기는 약 23.5도. 장기간의 얘기이긴 하지만 이론적으로 이 기울기가 줄어들면 여름에 덜 덥고 겨울은 덜 춥게 된다. (동아일 보 2004.12.19. 보도)

2)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지구 자전축 10cm가 이동하고, 하루의 길이가 짧아졌다”는 이탈리아 국립지구물리학·화산학연구소 (INGV)의 연구 결과를 국내외 유력 언론들이 모두 보도했다.

 

이 설교는 구속사 시리즈 저자인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가 2006년 미국 올랜도 푸른동산교회에서 처음 설교한 뒤, 2012년 3월 3일(토) 평강의 날 기념예배와 3월 11일(주일) 2부 예배에서 두 번에 걸쳐 선포한 설교를 종합한 것입니다. 요일 계산은 1년을 360일로 계산한 당시의 달력을 따른 것입니다. 요일 계산의 근거는 구속사 시리즈 제8권 「횃불 언약의 성취」 (박윤식 저, 도서출판 휘선)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22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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