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세계로 몰아붙이는 하나님의 사랑
기도의 세계로 몰아붙이는
하나님의 사랑
(낙망치 않는 기도의 승리)
다니엘 9:1-19, 누가복음 18:1-8
평강교회의 저를 비롯한 전체 성도님들이 기도의 권세와 능력을 받으면 기도 안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이 ‘기도의 세계로 몰아붙이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기도하기 싫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도의 세계로 몰아붙입니다. 다그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기도는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눅 18:1). 낙망치 않는 기도를 해야만 마음에 원하는 소원대로 아브라함 같은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제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믿음의 기도는 아침을 여는 열쇠이고, 밤을 잠그는 자물쇠입니다. 영원히 잊지 마세요.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아침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말씀을 믿어야 기도가 됩니다. 언약 된 말씀을 믿지 못하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전부 인간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롬 8:5). 인간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됩니다. 아무것도 못 합니다. 우리 생활이 낮이 돼야 합니다. 밤을 만나면 괴롭고 암담합니다. “때가 낮이 아니냐?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셨습니다(요 9:4).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거짓 없이 기도한다면 모든 생활에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일이 절대 없습니다. 성도가 기도 생활을 멈추고 있다면 영적으로 이미 노아 홍수를 만난 것입니다. 걷잡을 수 없습니다. ‘그놈, 나쁜 놈이야. 그놈 때문에 속아 넘어갔다.’고 하지 마십시오. 기도하지 않은 죄 때문입니다. 제가 목사라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믿는 똑같은 심정을 가지고 성경에 있는 대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 제가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삼상 12:23). 기도 안 하는 것이 죄, 그것도 무서운 죄라는 것입니다. 되는 법이 없습니다. 다 막힙니다. 돈 아껴서 뭘 하려고 했는데 엉뚱한 사고가 터져서 다 쓰게 됩니다. 늘 구멍 난 주머니입니다(학 2). 이때는 자신의 영적 상태를 스스로 점검할 수도 없습니다. 당장 사건이 터졌는데 엎드려 기도하게 됩니까? 몹시 어려움을 당하면 기도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기도는 호흡이라고 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살전 5:17). 숨 쉬다가 몇 분 멈춰보세요. 죽습니다. 기도 안 하면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송장과 마찬가지입니다.
간절함이 있어야 대낮의 기도다
성도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큰 이상을 갖는 것도 좋지만 이 근본 된 말씀을 지켜 기도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기차 칸들이 연결되듯 하나님과 연결돼야 하는데 끊어집니다. 우리 머리에 꼭 입력돼야 할 것은 ‘기도는 나의 숨결이다. 숨 안 쉬면 죽는 것처럼 기도 안 하면 나는 산송장이다.’ 이것만 깨달아도 기도 안 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무시로 해야 합니다(엡 6:18). 정해 놓은 시간 없이 낮이고 밤이고, 어디 가든 오든 기도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18은 공동번역으로는 ‘언제나 기도하며, 늘 깨어서 꾸준히 끊어지지 않도록 기도하라’로 번역돼 있습니다. ‘깨어서’는 무엇입니까. 믿음도 없이 ‘하나님 주시옵소서.’ 하는 것은 잠꼬대하는 신앙입니다. 꼭 받아야겠다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대낮에는 다 보입니다. 밤에는 사물을 분간할 수 없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대낮입니다. “꼭! 하나님께서 주셔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주겠으면 주고, 싫으면 관두고’ 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이 막 조르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비유로 “생선 달라는데 뱀을 줄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천부께서 소원대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기도 안 하면 ‘나는 밤을 만났구나.’ 생각하십시오. 기도 생활 안 하면 금방울(출 28:34)이 아니라 잠자는 방울입니다. 다윗은 ‘내가 기도하고 기도하였더니’라 했습니다. 한번 기도했는데 응답이 안 와서 두 번 했더니 응답이 왔다는 것입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하나 더하기 하나구나!’. 더하기 기도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기도에 기도를 더하라는 말씀! 기도의 계속, 기도의 연속, 기도의 연장, 기도의 행진입니다. ‘앞으로 가!’ 하는 것입니다. 어느 때까지? 응답받을 때까지입니다. 마태복음 7:7에 “구하라! 주겠다.”, “찾으라! 찾게 해주겠다.”, “두드리라! 내가 대문을 열어주겠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참 귀한 말씀입니다.
강청하는 기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비유와 상징으로 이해하기 쉽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눅 11:5-10). 밤늦어 모든 동네가 문을 닫았는데 친구 집에 가서 요란스럽게 대문을 꽈당꽈당 치며 떡 덩어리 세 개를 청했습니다. 주님 말씀이 ‘벗 됨을 인하여는 주지 않지만, 강청(强請)함을 인하여 준다.’(공동번역 “우정만으로는 일어나서 빵을 내어 주지 않겠지만, 귀찮게 졸라대면 마침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청을 들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강청’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물러서지 않는 것입니다. 누워 자던 친구가 자꾸 핑계를 대지만 물러서지 않습니다. 밤중에 문을 두드리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일이지만 강청하기 때문에 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평강 성도들은 그 나라 갈 때까지 육신의 병, 개인 문제, 이자도 다 못 갚은 것에 대해 “하나님, 그 나라 가기 전까지 다 갚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길을 통해서라도 부요(富饒)의 축복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하고 꼭 기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리겠습니다. 평강교회 성도들은 나라의 국방력이고, 병기(兵器)입니다. 아브라함 같은 복, 범사(凡事)의 복을 받았습니다. 범사에 근심이 없고, 마음에 욕심도 없습니다. 앞뒤를 봐도, 아래위를 봐도 참 질서가 정연하고 규모 있고 생활에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남이 우러러보고 부러워할 정도로, 신명기 28장 말씀처럼 꼬리가 아닌 머리가 되고, 위에 있을망정 아래에 처지지 않고, 남한테 꿔줄지언정 꿔 먹지 않고,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는 산 역사가 모든 성도의 가정마다 임하기를 축원하겠습니다. 제가 믿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누가복음 18:1에는 기도하다가 낙망, 실망, 염려치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불쌍한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해 뇌물 좋아하는 재판장에게 갔습니다. 돈이 안 생기게 생겼으니 재판장이 상대도 안 해줬습니다. 그런데 과부가 매일 아침 찾아가니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입니다.
‘아휴, 귀찮다! 오늘 오면 그 억울함을 들어줘야겠다.’고 딱 마음먹고 있는데 그날따라 안 왔습니다. 며칠 구하다가 응답도 없고 집안이 어려움 당하면 다 포기합니다. 그런 자에게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인자가 이 땅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인자는 세상의 억울함을 풀려고 오셨는데, 과부는 시종일관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고, 육의 생각으로 ‘재판장이 풀어주면 내가 재판 이기겠지’ 하는 생각만 했던 것입니다. 기도란 신념을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반드시 해결된다!’는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해결되겠지…’ 이게 아닙니다. ‘해결된다!’입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집 가면 헛걸음하지 않을까? 가봐야 또 안 들을 거야.’ 하면서 하나님 자리에서 먼저 심판하고 갑니다. 기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제가 갑니다. 함께 해 주시고, 제가 말주변도 없지만, 말씀 전할 때 성령님이 그 마음에 역사해서 제 말을 듣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의 하나님입니다.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세상 끝날 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 것은 그만큼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에는 반드시 역사가 일어나고 큰 기적이 일어납니다.
‘분명히 된다’는 신념으로 기도하십시오.
약이나 음식은 유효 기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효력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입니다. 아니, 그 나라 가서도 기도는 효력이 있습니다. 연대가 다함이 없습니다. 저는 낙망치 않습니다. 지도자에게 ‘분명히 된다.’는 신념과 확신이 없으면 이 교회를 끌고 가지 못합니다. 자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거짓말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잘 안 될 것이라고 하시는 일도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눈물을 쏟으며 통곡으로 기도하신 것을 보십시오(눅 19:42-44, 히 5:7).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右便)에서 평강교회 전 성도를 위해서 기도해 준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히 8:1-6, 롬 8:34). 그것을 생각할 때 저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보좌에 가셔서도 쉬지도 못하고 기도하고 계신다는데 나 같은 게 뭔데 그 말씀도 무시하고 기도 안 하겠습니까? 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제가 잠을 덜 자면서 나라와 민족, 교회 위해 기도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더욱, 간절히, 힘써, 애써 땀방울이 변해 피가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눅 22:44).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내가 이 땅에 나기 전에 예수님께서 나를 벌써 보시고 기도하셨는데, 이 뜻을 알고서야 어떻게 편안히 잠자겠습니까. 어떻게 침대 위에 올라가 속옷 바람으로 기도하겠습니까? 시부모님이나 사돈 만날 때 속옷 바람으로 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천사가 금향로를 가지고 와서 기도를 받아 하나님 앞에 올라가 쏟습니다. 어떤 믿음과 마음가짐으로 기도했는지 벌써 다 아십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은 기도는 제쳐놓으십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동네에서는 이웃을 잘 만나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교회를, 목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 보통으로 기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고, 교회 나간 지 20년 넘었는데 아직도 저렇게 성령도 못 받고, 성경도 몇 번 못 읽고, 기도 쉬는 죄를 범하고 있구나.’ 하며 기막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때문에 탄식하시고 뼈가 부스러지듯 통곡하십니다(롬 8:26). 기도할 때 의심치 말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으십시오. 내 기도에 다 묶어서 실어 보내십시오. 모든 행사(行事)를 맡기십시오. ‘우리 아들딸 장가, 시집 보내야 할 텐데’, ‘시작한 사업이 잘돼야 할 텐데’ 하는 근심, 걱정을 다 맡기십시오(시 55:22, 잠 16:3, 벧전 5:7). 예수님께서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가서 너 있을 곳을 준비하고 다시 오겠다’ (요 14:1)며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극심한 고통 중에 있던 욥에게 친구 엘리바스가 따가운 충고를 했습니다. “욥이여, 나 같으면 내 하나님께 기도하겠다.”(욥 5:8-9, 공동번역 “내가 만일 자네라면 나는 하나님을 찾겠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겠네, 측량할 수 없이 큰일을 하시고 헤아릴 수 없이 놀라운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 아닌가!”) 이 말 한마디에 욥이 정신 차리고 생애에 기도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전보다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같은 구역원 중에 기도 안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 상하게 하지 말고 같이 기도하자고 유도하십시오. 서로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누가 낙심할 때 외면하지 말고 “권사님, 집사님. 왜 약해집니까?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하고 격려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나는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내가 믿어온 분이 어떤 분인지 잘 알고 있으며 또 그분이 내게 맡긴 것을 채워 주실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딤후 1:12, 공동번역) 하나님이 자신을 외면치 않고, 끝까지 자신을 통해 일하신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다니엘을 기도의 세계로 몰아붙이신 하나님
오늘 본문에서 다니엘 선지자는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바벨론 포로 기간이 70년이라는 예언(렘 25:11, 29:10)을 깨닫고, 잡혀 온 지 68년 됐으니 이제 2년 남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족들은 이미 바벨론 문화에 젖고 민족의식마저 희미해졌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기도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걸머졌습니다. 다니엘서 9장을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평생 열 번 이상은 읽어야 하는 것이 다니엘서 9장입니다. 다니엘은 조상 때부터 지은 죄를 다 걸머지고 재에 무릎을 꿇고 금식기도 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땅을 치니 재가 날아와 얼굴이 시꺼매졌습니다.
“우리 민족이 범죄했습니다. 율례와 법도를 어겼습니다. 사신(邪神)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 자비와 긍휼로 죄를 사해 주시고, 기도한 대로 행하시옵소서.” 그때 하나님이 가브리엘 천사장을 보내셔서 전 세계의 종말에 대해, 70 이레에 대해 보여 주셨습니다.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고 민족 해방을 이룬 것입니다. 민족 문제가 해결되면 거기에 내 가정도 있고, 나도 있습니다.
다니엘서 9:1-3은 다니엘의 깨달음과 기도의 결심, 9:4-10은 다니엘의 기도, 9:20-27은 기도의 응답입니다. 다니엘은 굳게 결심했습니다. 여러분도 기도할 때 ‘시간 있으면 해야지’ 하지 말고 굳게 결심하십시오. 반드시 큰 역사가 이뤄질 줄 믿습니다. 당시는 바벨론이 무너지고 바사 제국의 다리오 왕 앞에서 다니엘이 총리 직을 지내고 있을 때입니다(단 6:1-2).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가 무색할 정도로 죄가 가득 차 천지에 진동하는 악의 냄새로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국가 장래를 근심하여 수심에 가득 차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뒤에 그것을 통해 기도의 세계로 몰아붙이신 것입니다. 수심에 차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도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질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별한 조치를 원합니다”
기도는 반드시 제목이 있어야 합니다. “제 큰아들이 이렇습니다. 제 사업이 지금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는 제목이 있어야 합니다. 제목을 딱 걸어놓고, “하나님! 특별한 조치를 원합니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될 수 없습니다. 이 기도의 내용만큼은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죄악 세상에서 기도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자신과 가족, 사업, 육신의 건강, 자신의 앞날, 나라를 위해 꼭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는 자만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내가 못합니다. 은혜가 와서 기도할 수 있도록 해주셔야 합니다. 밥 먹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를 모르면 깨작깨작하며 겨우 빌어먹듯이 먹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복스럽게, 맛있게 먹습니다.
기도에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주신다, 이뤄진다는 확신! (마 21:22, 막 11:24, 마 7:7, 눅 11:5-8) ‘나 같은 게 기도하면 될까?’ 하지 마십시오. 그런 기도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기도입니다. 때를 분별하는 자는 언제나 기도해야 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워져 옴을 아는 자는 기도해야 합니다(롬 13:12). 개인과 사업과 교회가 어려운 시험 당하는 밤에는 기도 못합니다. 입방아 찧기 바쁩니다. ‘그럴 줄 알았어. 그 사람 혼나야 돼.’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주여! 몰라서 그런 줄 압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합니다. 다니엘처럼 이웃의 가정의 문제를 걸머지고 기도하는 도고(禱考)의 제사를 드리면 내가 복 받습니다. 내가 남을 위해 기도해서 그분이 받을 자격이 없으면 그 기도가 나에게 축복으로 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손해가 없습니다.
결단이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에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굳게 마음을 정하는 것입니다. 결단한 것은 자기 생명같이 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도하다가 바쁘다고 중단합니다. ‘며칠 있다 할게.’ 합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뜻을 정해 왕의 진미를 먹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단 1:8).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謙卑)하기로 결심할 때 그날부터 ‘내 말이 들으신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단 10:12). 룻도 시어머니 나오미를 끝까지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머니 가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고, 어머니 고향이 내 고향입니다.”하며 끝까지 봉사하고 따라갔을 때 보아스를 통해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을 낳았습니다. 그 혈통에서 예수님이 오시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믿음의 결단이 있을 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여러분의 가족 가운데 큰 부요(富饒)의 축복을 받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믿는 사람입니다. 히스기야 왕의 결심(대하 30:19), 사도 바울의 결심(행 21:13, 20:21-24)을 보십시오.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인류의 죄를 걸머지시고, 우물쭈물함 없이 마음에 굳게 결심하시고 앞장서셨습니다(막 10:32, 눅 19:28). 제자들은 ‘이번에 가면 마지막 아니냐. 가다 잡히면 어떻게 하냐.’고 빠졌지만, 예수님은 앞장서 가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영을 받은 우리가 왜 위대한 기도의 결심을 하지 않습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 성 멸망할 때 굳은 각오로 기도하는 것을 보십시오(창 18:22-33). 자기 생명을 담보로 바치고 기도했습니다. 위대한 광야의 영도자 모세도 민족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담보로 기도했습니다(출 14:21,32:31-33).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동기는 간단합니다. 자신을 담보로 잡히시고 인류의 생명을 위해 속죄제물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초지일관 그것입니다(마 20:28).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이 말씀 하나로 전 생애에 걸쳐 결심하고 결단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 영을 받은 여러분들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조상이 시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친구,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이삭이 있고, 야곱이 있고, 여러 선지자가 있고,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로마서 3:24 말씀처럼 죄를 다 사해 주시고 당신의 의를 선물로 주시며 ‘너는 의인이다’라고 인(印)쳐 주시고 천국 기업으로 소망 주시고 후사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끝까지 결심하셨습니다. 도망가지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 저들이 나한테 이렇게 하는 것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모르고 저렇게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육체가 깨지고 부서지고 터지는 가운데 이렇게 기도하시는 그 사랑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못 믿을 것, 못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천사를 동원하셔서 우리를 지키도록 딱 버티고 계십니다(히 1:14, 시 34:7, 단 6:22). 수십만의 아람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엘리사 선지자를 지키기 위해 천군 천사, 불 말, 불 수레가 아람 군대보다 더 많이 와 있는 것을 게하시가 보지 않았습니까. 그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입니다. ‘나 같은 게 기도해 봤자 뭐 있냐’ 하고 낙심 말고 끝까지! 낙망치 말고! 기도하십시오. “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하실 때 “끝까지 믿음으로 기도하는 성도가 여기 있습니다” 하는 평강교회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빠서 기도 못 한다고 핑계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일생은 기도의 삶입니다. 기도로 시작하고, 진행하고, 마치셨습니다. 바쁘다 핑계 대지 않으시고 바쁠수록 틈만 나면 수만 명을 놓아두고 따로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마 14:23, 막 1:35, 눅 5:16). 예수님은 중대한 일을 앞두고 꼭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먼저 사람에게 부탁하고, 사람 만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 다 빼 팽개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진정으로 성경 말씀을 믿는다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무릎 꿇고 기도하고, 그다음에 사람을 만나고 조치를 취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뒷전에 두고 사람 만나서 해결하려고 왔다 갔다 해봐야 되지도 않습니다. 안 됩니다. 12제자를 택할 때도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눅 6:12-13, 막 3:13-15). 예수님이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변화산에 데리고 올라가신 뒤, 기도의 맛을 모르는 제자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네가 먼저 들어왔냐?’ 며 자리다툼만 하고, 우쭐대며 따라다니던 제자들입니다. 사람들이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를 데려와 고쳐달라고 부탁했지만 고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오셔서, 패역한 세대가 믿음이 없는 것을 말할 수 없이 탄식하시고 고쳐주셨습니다(마 17). 제자들이 한마디도 못 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다음 집의 문에 당도했을 때 “선생님 우리는 왜 안 됩니까?” 하자 예수님께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類)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막 9:17-29).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내 몸에 무슨 병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마다 병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다 맡기십시오. 기도 외에는 되지 않습니다. 기도로 우리 몸 전체를 하나님 앞에 영육 간 다 맡기고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범죄의 원인은 말씀을 떠난 것에 있습니다.
기도의 자세는 간절해야 합니다. 몸부림쳐야 합니다. 내 눈으로 물건을 보듯이, ‘이것 해결 안 되면 안 됩니다’ 하고 내 속에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보십시오. 예수님이 믿음의 주입니다(히 12:2). 내 안에 예수님이 안 계시면 버리운 자입니다. 예수님이 믿음 자체이시고 장본인이십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보십시오. 다 ‘믿음으로’ 낳은 것입니다. 바울이 그 뜻을 깨닫고 ‘왜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육신으로 마치느냐’ 했습니다. 믿음으로 시작하면 믿음으로 마쳐야 합니다. 기도로 시작했으면 기도로 마쳐야 합니다. 반드시 제가 증거한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면 응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산에 가서 기도하시고, 철야기도 하십시오.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죄를 자복하고 철두철미하게 회개하십시오. 다니엘 선지자는 자기가 지은 죄도 아니고 얼굴도 모르는 조상들이 지은 죄를 걸머지고, 이스라엘 전 민족을 위해 애절하게 기도했습니다(단 9:5, 8, 11, 15). 하나님 말씀을 건성으로 들은 것, 진지하게 믿음으로 듣지 않은 죄,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지 않은 죄 때문에 벌 받고 있음을 깨닫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교회 나오기만 하면 뭐합니까. 근심, 걱정, 허탄한 데 빠져 멍하니 있어서는 안 됩니다. 큰일납니다. 말씀 듣지 못한 죄가 다니엘서 9:10-11에 기록돼 있습니다. 가족들이 은혜로 하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 편, 딸은 어머니 편으로 38선이 그어져 있지 않습니까. 평강 성도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꼭 붙잡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범죄의 원인은 말씀을 떠난 것에 있습니다(단 9:5). 가정에 무엇이 안 된다고 가족을 책망하지 말고 나 자신이 말씀 받지 못한 죄 때문에 내 가정이 이렇게 됐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죄 짓는 것도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한 죄, 말씀을 사모하지 않고 간절함 없이 들은 죄 때문입니다(단 9:6-10). 호세아 선지자는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라고 했습니다(호 14:2).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요 8:47). 말씀을 듣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은 것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영원히 거룩하게 되는 길은 말씀과 기도뿐입니다(딤전 4:5).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기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 하나님께 영광 올리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운 일이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은 것이 문제임을 시인하면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단 9:13-14). 하나님은 상과 벌을 공평하고 공의롭게 내리시는 분임을 깨닫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아버지는 죄를 많이 짓고도 복 받고 살았는데, 나는 왜 죄도 안 지었는데 집안이 이렇게 어지러우냐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1, 2대를 지나 3, 4대까지 죄를 간직해 두셨다가 그것을 펴시고 심판으로 쏟아부으실 때,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만 생기면 ‘하나님이 왜 이래? 나는 조상 때부터 믿었고, 이 교회 지을 때 헌금 바쳤어, 기도원 다 따라다녔어. 그런데 왜 집안을 이렇게 쑥밭 만들어?’ 하는 것은 무서운 죄입니다. 덮어놓고 괴로움, 염려를 가져가 달라고 하지 말고, 다니엘같이 느긋하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공의로우십니다. 하나님! 제가 뜻을 깨달았사오니 이젠 우리 집안에 더 이상 괴로움과 환난과 걱정 당치 않도록 저를 보시고 저의 간구를 들어주시고 다 거둬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범죄하여 수욕을 당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하나님, 그래도 수천만만 가운데 깨닫고 기도하는 다니엘 저 하나를 보셔서라도 지체하지 마시고 응답해 주시고, 이 민족을 살려 주시옵소서.” 하는 다니엘의 기도! 얼마나 애절하고 간절하며 결단성 있는 기도, 강청하는 기도입니까. 그런 기도가 평강교회에서 끊이지 않고, 다니엘과 똑같은 축복의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다니엘서 9:15-19을 볼 때 얼마나 급했던지 ‘내 하나님이여, 우리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우리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하며 연속적으로 부르는 다니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봐서라도 우리 죄를 이제는 더 이상 쏟지 말고, 심판하지 마시고, 다 거두어 달라고 하는 다니엘의 기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것은 다 공의로우시니, 내가 이제 깨닫고 조상의 죄를 걸머지고 대신 회개하고 기도합니다. 이제 거두어 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이제부터 아브라함 같은 범사의 복을 받고 살기를 원합니다.”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고 기도하는 것은 반드시 역사가 일어납니다.
2006년 6월 18일 주일 3부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 21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