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내게는 축복이었다 – 이경준 몽골 선교사
코로나가 내게는 축복이었다
이경준 몽골 선교사
저는 몽골에서 15년간 선교하고, 코로나 19 때문에 국내에 잠시 머물러 있는 선교사입니다. 2020년 3월 처음 평강제일교회에 와서 목요 구국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 전 성도님들이 모두 일어서서 애국가와 통일을 위한 노래를 부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신의주, 아버지는 황해도가 고향이라 북한 선교에 대해 각별한 뜻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머무르는 1년 반 동안 춘천에서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있는 평강제일교회에 목요일마다 와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 공부를 하고 깨달은 것이 ‘아, 선교를 내가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것이 선교구나’ 였습니다. 그런데 그 토대는 구속사 말씀을 바로 가르치는 사역이라는 각오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몽골에 가서 보니 몽골사람들은 북한에 비자 없이도 갈 수 있습니다. 그 루트를 통해 구속사 말씀을 전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성경 공부하는 내내 들었고, 저의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몽골로 들어가기 전 느낀 것이 창세기의 족보에 나오는 족장들이 대를 이어 말씀을 전수한 것입니다. 전에는 아담과 노아가 몇 년을 같이 살았고, 셈과 아브라함이 동시대를 살았다는 성경 공부를 들은 적이 없었거든요. 후대에 하나님 말씀을 바로 전수해야 한다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 더욱이 제가 늘 생각하고 있었던 선교지에서의 사역과 일치되는 것 같았습니다. 마태복음 28:19-20의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도 ‘제자를 삼으라’는 건데, 내가 먼저 말씀을 제대로 배우는 게 우선이겠고, 그것이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 일들을 하도록 하시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몽골에서 통역하는 친구들한테도 베리트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이가 있어서 주님이 부르시면 가더라도, 나보다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죠. 16세부터 한글을 가르쳤던 몽골인 ‘첼멘’이라는 청년이 베리트에서 신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한국 선교사를 위해 통역하는 몽골인들이 뭔가를 얻으려고 남아 있다가, 선교사가 떠나고 나면 받은 것 다 팔고 목회를 안 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선교사들이 말씀을 전하지 않고 자꾸 선교사의 손을 보게 만든 책임도 있는 거예요. 이제 눈앞에 하나님의 때가 다가왔는데, 우리가 할 것은 자녀들에게 살아갈 길을 전해야 하잖아요.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고 하나님과 300년 동행했잖아요. 이 시대에 에녹처럼 자식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로 해서는 안 되니까 돌판에 새겨서 계명을 주신 것처럼 이 말씀을 마음 판에 새겨서 다시 몽골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구속사 말씀을 머리에 저장하기보다 심비(心碑)에 새겨서 말이죠. 이 귀한 말씀을 몽골인의 마음 판에도 새기게 하는 것이 내 사역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구속사 말씀을 배우고 때를 알게 되니 후배 목사님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말씀은 이렇게 달려가고 있는데, 여전히 성경을 깊이 연구해서 가르치지 않고, ‘평안하다’ ‘안전하다’ 이런 설교만 하니까요. 때를 알게 해 주시고 구속사 말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정말 감사하죠. 오히려 코로나가 기회가 되어 구속사 말씀을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하고, 이 시점에서 해야 할 일을 깨닫게 해 주신 것에도 감사하고요. 귀한 말씀을 접할 기회가 왔어도 거절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말씀을 전할 자들은 부르시고 기회를 주시는 것 같아요. 지리산 기도처에 가서 ‘박윤식 목사님을 이런 험악한 곳에 올라오게 하시고 3년 6개월 7일이나 말씀을 붙잡도록 하셨구나’ 생각하며 저도 바위 붙들고 이런 기도를 했어요. ‘저에게도 구속사 말씀을 붙잡을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감사하고, 생명 바쳐 박윤식 목사님께 주신 그 말씀을 한 자라도 바로 전할 수 있도록 저를 붙잡아 주세요.’
구술 정리_권오연 기자
- 21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