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인터뷰] 모든 믿는 사람의 조상 아브라함을 만나다
모든 믿는 사람의 조상
아브라함을 만나다
*이 글은 성경을 토대로 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참평안’이 연재중인 11번의 가상 인터뷰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10번째인 아브라함이다.
그는 구속사(救贖史)에서 결정적이고 신비로운 존재다(눅 3:34, 갈 3:16, 히 2:16). 하나님은 예수님의 족보를 ‘아담의 자손’이 아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 소개하셨다(마 1:1).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과, 바벨탑을 지은 노아 자손의 두 번의 중대한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아브라함을 택정해 구속사를 다시 시작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죄인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만드신다(눅 19:9). 그는 모든 믿는 성도의 아버지이자, 롤모델이다(갈 3:9).
그래서일까. 신약 기자(記者)들은 놀랍게도 아브라함을 구속사 완성의 종말적 존재로 기록하고 있다.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함께 천국에 앉는다(마 8:11). 거지 나사로는 낙원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다(눅 16:22-31).
고백컨대, 이번 인터뷰야말로 가장 설레는 인터뷰이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 준비한 인터뷰다.
인터뷰 허락해 주셔서 영광이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역시 하란이겠죠. 75세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어요. 물론 이미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한 번 겪은 일이죠. 그러나 이번엔 부친인 데라와 마음으로 절연해야 했고, 하란에서 만난 신앙 좋은 친척들과도 헤어져야 했어요.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습니다. 모든 것과의 완벽한 단절이었습니다. 그래도 떠났습니다. 몸이 출발하기 전에 마음으로 먼저 순종했습니다. 순종만이 살 길임을 알았던 때이니까요.
하나님은 한 걸음씩만 인도하시더군요. 최종 목적지도 모른 채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갔어요. 가나안에 도착할 때까지 610km의 머나먼 길에 하나님은 한 번도 직접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고독하고 막막했습니다. 마침내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그 음성에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1)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7대 언약, 10대 허락, 10대 명령이 시작되던 시기였지요.
그렇습니다.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내게 주신 모든 언약, 허락, 명령이 결국 하나님 나라 건설의 과정이었습니다. 나라는 국토, 국민, 주권의 3대 요소가 있어야 세워지죠. 하나님은 나를 통해 아브라함의 자손, 그들이 살 가나안 땅,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케 하시는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그때는 그런 큰 그림은 보지도 못한 채 그냥 따라간 겁니다. 하나님의 부르심부터(행 7:2-3), 모리아 산 정상에 도달하고(창 22장), 일생이 마칠 때까지 오직 순종하려고 무진 노력했습니다.
9년 후 조카 롯을 구하려고 출정하셨을 때는 어떤 심정이셨습니까. 매정하게 당신을 떠나 자기 잇속을 먼저 챙긴 롯이었는데요.
롯은 갈대아 우르를 함께 떠날 때부터 자식이나 다름없던 조카입니다. 인간이니 섭섭한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그렇지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게 무엇이겠습니까. 긍휼을 행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습니다. 긍휼 없이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조롱하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마지막 때 양과 염소를 분리하는 최후 심판의 중대한 기준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걸 아십니까?2)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제가 송구함을 무릅쓰고 끈덕지게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도 롯과 그 성에 살던 사람들이 너무나 불쌍했기 때문이에요.
가병(家兵) 318명으로 막강한 동방 4개국 동맹군을 대파하신 전설적 승리의 원동력은 결국 긍휼이었군요. 그 직후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횃불언약을 맺어주셨고요.
그렇습니다. 대승을 거뒀지만 그들이 복수하러 다시 쳐들어올까봐 불안했던 나날이었어요. 하나님이 오셔서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賞給)이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무엇을 상으로 주시겠습니까?”라고 물었던 건 그래서였죠. 자손을 약속하신지 10년이 다 돼 가는데 아들이 없으니 초조하고 의심도 들었어요. 충성스런 종 엘리에셀이 내 상속자라고 하나님께 억지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화내지 않으시고 자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너의 후사가 될 것이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가장 큰 상급이라는 걸요.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내 상이 되시면 모든 게 거기 다 들어 있는 겁니다. 그걸 잊어버리니까 밤새워 고민만 하고 하나님께는 구하지 않는 거예요. 구하지 않으니 환난 중에도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약 4:2). 구했는데도 못 받았다면 자기 욕심과 정욕이 섞인 기도를 올렸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과 주장을 다 버리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적신(赤身)이 되면(욥 1:21) 하나님께서 나의 상이 돼 주십니다. 보이는 상은 저절로 따라오는 거예요. 이미 남자로서, 여자로서 죽은 몸 같았던 우리 부부에게 어떻게 아들이 생기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와께 능치 못한3) 일이 있겠느냐”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바로 그 다음해에 하갈을 취하신 것은 어찌 된 겁니까?
제가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하갈을 취하지 않았다면 이스마엘과 그 후손들이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전쟁, 테러, 분쟁도 인류 역사에 없었겠지요. 내 인생에 가장 괴로운 세월이었어요. 한 번의 불신은 오랜 고통과 후유증을 남깁니다. 잊으시면 안 돼요. 그로부터 15년 동안 하나님은 내게 나타나지도 않으셨습니다. 마침내 99세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회개를 촉구하시는 사랑과 은혜의 음성을 주셨을 때 제 심정이 어땠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고 잘 잊어버리는 존재인지요. 바로 그 직후 저는 남방 그랄로 옮겨가 살면서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23년 전 애굽에서 했던 부끄러운 짓을 또 반복한 겁니다. 그들이 나를 죽일까봐 정말 두려웠어요. 하나님이 이삭을 우리 부부에게 주시기 직전입니다. 만약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했다면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모든 구속사의 경륜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을 겁니다. 그걸 아는 사단이 나를 격동시켜서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이 이뤄지지 못하게 방해한 거예요.
그렇지만 이렇게 스스로도 용납하기 어려운 저를 하나님은 보호해 주시고, 강권적으로 건져주셨습니다. 인간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정하신 때가 되면 반드시 주권대로 약속을 성취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걸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절대 순탄하게 이뤄지지 않아요. 많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도 75세에 가나안에 들어와 25년 만인 100세에 이삭을 얻었어요. 제 아들 이삭도 40세에 결혼해서 60세에야 야곱을 얻었지요. 길이 참고, 길이 견뎌야만 합니다.4)
그렇게 어렵게 받은 이삭을 도대체 어떻게 바치실 수 있었습니까. 우리 나약한 인간들에게 그게 정말 가능한 일입니까.
그것은 나의 힘으로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이지요. 나를 몰아가주신 것입니다. 이삭과 함께 모리아산까지 삼일길을 걸으며 많은 기도를 드리고, 많은 응답을 받았습니다. 먹구름처럼 검게 타들어가던 마음에 환하게 동이 터오더군요. 그래서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으로 마지막 오르기 전에는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우리가 함께 돌아오리라”5)고 하인들에게 말할 수 있었어요. 나는 이삭이 죽어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네 자손으로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음이라”고 언약하셨고, 이삭은 아직 장가도 가기 전이었으니 그렇게 믿은 것이지요. 하나님이 믿음을 주셨기에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결단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시험을 통과한 뒤 당신의 삶은 최고의 평안에 도달했던 것 같습니다. 참으로 부러운 경지입니다.
하나님의 의(義)에 이르기 위해 목마르고 주린 삶을 살면 하나님은 반드시 배부르게 채워 주시는 분이더군요. 그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아무도 반겨 주지 않는 낯선 이방 땅에 살며 하나님이 주신 건 약속 뿐, 확실하게 손에 주어진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그네로 고달팠고, 타국이기에 억울한 대접을 받았고, 말 못하고 참으며 눈물로 지냈습니다. 쓸쓸하고 고독했습니다. 그래도 약속만 믿고 한 걸음씩 나아가며,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때마다 지시해 주셨고, 결국은 임마누엘을 체험하는 삶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참고, 인간적인 정을 끊으며, 여러분이 받은 구속사 완성의 약속을 기쁘게 기다려야 합니다. 저에게도 최고의 복은 메시아의 복입니다. 제 족보를 통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지요. 저는 2천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속 역사를 행하시는 모습 보고 즐거워했습니다(요 8:56). 그것이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지요. 예수님도 2천여 년 후에 이미 육신적으로 죽고 없는 나를 ‘산 자’라고 선포하셨고요.(마 22:32, 막 12:26, 눅 20:37-38)
물론 하나님은 땅의 복도 넘치게 주셨습니다. 나는 수많은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거느린 거부가 됐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세밀하고 속 깊은 분입니다. 당신을 믿는 성도에게는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사 45:3)까지 주시는 분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얘기하는 아브라함의 얼굴을 문득 다시 쳐다보았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적 실수들을 뼈아프게 회고하던 아브라함의 얼굴과, 지금 그의 얼굴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로 느껴졌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오늘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신다(요 8:39)
*이 글은 구속사 시리즈 제10권 「하나님 나라의 완성, 10대 허락과 10대 명령」 (도서출판 휘선, 박윤식 저)의 내용 일부를 정리한 것입니다. 책의 모든 내용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이며, 인용된 성경 구절이 너무 방대해 다 옮기지 못했습니다. 책을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 창12:7. 이때부터 세겜은 가나안 전체를 대표하는 곳이 됐다. 요셉의 뼈가 세겜에 묻힘으로써 횃불언약이 성취됐고, 예수님은 세겜에 있는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자신이 메시아임을 알려주셨다.
2) 마25:31-40
3) ‘능치 못한’은 히브리어 ‘팔라’로 ‘놀라운, 경이로운, 어려운’이란 뜻이다. 인간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경이로운 일도 하나님께는 간단하고 일상적인 일이다.
4) 히6:14-15 ‘아브라함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다’의 원어는 헬라어 ‘마크로뒤메오’의 과거분사형. ‘계속 끈질기게 기다렸다’는 뜻이다. 눅 8:15, 히 10:36, 약 5:7-11
5)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 라.”(창 22:5)의 히브리 원문에 ‘돌아오리라’는 1인칭 복수형이다. 아브라함은 “우리가 돌아오리라”고 말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다는 근거는 히브리서 11:18-19
- 21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