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마태복음 17:14-20
어느 날 예수님께서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다볼산(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다. 변화한 모습으로 모세, 엘리야와 함께 만인간의 구세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릴 것을 의논하시고, 내려오실 때 “내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아무에게도 이 광경을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이튿날 한 사람이 예수님께 절하며 간질병 심한 아들을 고쳐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 전에 산 아래 있던 예수님 제자들에게 고쳐 달라고 청했지만, 고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선택하실 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과 약한 것들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는데(마 10:1), 제자들은 고칠 엄두도 못 내고 있었으니 예수께서 얼마나 민망하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고 한탄하셨습니다. ‘패역’은 거스를 패(悖), 거스를 역(逆)으로 첫째, 이치에 어긋나다. 둘째, 흉악하기 짝이 없다. 셋째, 양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믿음의 양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욕망이 없습니다. 욕망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깨닫지 않고, 믿지 않게 만듭니다. 그것이 ‘패역한 세대’입니다. 예수님이 그 아들을 데려오게 하시고, 귀신을 꾸짖어 아이를 낫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하는 제자들의 질문에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으리라” 하셨습니다(마 17:20).
또 하루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남을 시험 들게 하지 말라’고 당부하시면서 “누군가 너희에게 하루에 일곱 번 죄를 범하고 일곱 번 회개하거든 용서해 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기 어려워, 근심하며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였습니다(눅 17:1~5). 그때도 예수님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은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입니다. 겨자씨는 참깨 알 반 정도의 가장 작은 씨지만, 생명력이 있습니다. 겨자씨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놀랍게도 성장하듯,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면, 어느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게 됩니다(엡 4:13).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진 자는 생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멈추지 않습니다. 활기차고 생기 감도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희생으로 많은 열매를 냅니다(요 12:24-25). 그 한 알의 밀알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더러운 누명 가운데도 골방에 있지 않고 활기차게 전도합니다. 생명세계는 중단이 없습니다. 언제나 성장합니다. 언제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만이 믿음의 장본인입니다(히 12:2). 우리는 믿음의 은혜로 구원받고(롬 5:1, 엡 2:8), 마음이 깨끗하게 됩니다(행 15:9). 그래서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엡 3:12). 그러니 우리에게 부러울 것이 어디 있습니까? 믿음만 있으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요일 5:4-5). 그러나 믿음은 아무나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줄 아는 자의 것입니다. 40년 동안 광야를 걷는 가운데 603,550명(민 1:46) 중에 603,548명은 죽고,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말씀만 믿고 좇아간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남았습니다(민 14:24, 30).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시몬아, 시몬아, 내가 앞으로 처참하게 죽임 당할 때 너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기도했다.”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시몬)와 모든 제자들은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하며 믿음을 장담했습니다(눅 22:31-33, 마 26:35).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는 모두 도망갔고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말았습니다(눅 22:34, 54-62).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고(히 11:6), 악령에게 사로잡히고 맙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세상이 여러분을 절대 사로잡지 못합니다. 믿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니, 믿음이 있으면 여러분이 예수님의 집이 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들어오셔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세상에 사로잡히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밀입니다(골 2:2). 하나님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절대로 놓치지 말고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 안에는 모든 지식과 지혜와 보화가 감추어 있기 때문에(골 2:3) 예수를 붙잡으면 부요(富饒)의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이 비밀을 모르니 하나님께서 오죽 답답하셨으면 “이방 사람들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겠다.”고 약속하신 것 아닙니까(마 6:31-33).
여러분, 믿음의 성장을 위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사랑하고 상고(詳考)했습니까? 예배 시간을 여러분이 아끼는 보물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해서 아무한테나 ‘엿 장사 마음대로’ 주시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영생인 줄 알고, 성경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 그에 한해서 믿음을 준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하나, 영원한 생명입니다(요일 2:25). 그 믿음의 약속을 받는 조건은 무엇이냐?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 10:17).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전부 감옥에 가둡니다. 주일에 교회 올 때 가방 속에서 딱 한 번 해방합니다. 말씀이 하나님 자신인데(요 1:1) 성경이 참 불쌍하죠. 성경 없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겠습니까? 성경 없이 어떻게 역대 선지자와 기적과 기사의 내용을 알겠습니까? 성경이야말로 믿음이 생기게 하는 요인입니다(요 5:39).
요한복음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말씀은 살아 있으므로 운동력이 있습니다(히 4:12). 그래서 말씀을 받은 자의 마음은 뜨겁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두 제자가 낙심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돌아가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더디 믿는 자들이여”하시며 이사야서에 기록된 것을 다 풀어 주셨습니다. 그날 저녁, 예수님께서 식사를 위해 축사(祝謝)하신 뒤 홀연히 사라지고 나서야,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며 부활하신 예수임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진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눅 24:13-35). 믿음의 성장은 핍박과 오해, 환란과 수난, 어떤 것이 와도 개의치 않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심한 핍박과 오해를 받았지만 그로 말미암아 더 기도하게 됐고, 더 열심히 전도하게 됐고, 더욱 주의 마음을 가지고 역사해, 백성들의 마음이 돌아오게 했습니다(행 8:5-8).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흘리면서 우리의 원죄, 유전죄, 자범죄를 단번에 사해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주신 분입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기다리십니다(롬 8:34). 기독교는 기다림의 종교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 40:1) 하신 것처럼, 기도에는 반드시 기다림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3-14)고 하신 말씀을 지식으로만 믿지 말고 그 말씀에 의지하십시오. 베드로가 밤새도록 물고기 한 마리 못 잡고 있을 때, 예수께서 “오른편에 던져 봐라” 하셨죠. 평생 어부로 살아온 베드로는 오른편에 던져봐야 물고기 한 마리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해 그물을 던졌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눅 5:1-8). 말씀에 의지하는 사람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않는 풍요의 생을 누립니다(렘 17:7-8). 우리 교회는 하나님 말씀이 충만하고, 하나님 의지하는 것이 충만하고, 은혜가 충만합니다. 이제는 사랑하세요. 사랑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입니다(갈 5:6). 평강제일교회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입니다. 믿음은 구원이고 생명이며, 구원의 열매는 사랑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사랑해야 하느냐? 아기가 너무 예뻐서 어머니가 안고 입에 물다시피 하면서 진저리치는 것 보세요. 예수님을 그 정도로 사랑하면 됩니다.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바나바같이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바나바는 착하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여, 그가 안디옥 사람들에게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할 때 큰 무리가 전도됩니다(행 11:24-25). 성령님은 여러분이 어려움 당할 때 위로의 세계로, 고난 겪을 때 축복의 세계로 인도하시고, 강력한 믿음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결국,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은 순종입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고후 1:20). 말씀 앞에 순종하면서 “겨자씨만한 믿음을 오늘 꼭 허락해 주시고,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받아 가지고 갑니다. 저를 돌봐주세요. 저를 붙잡아주세요. 저는 사나 죽으나,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존재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겠습니다” 하는 각오와 결심으로 하나님 앞에 서원(誓願)의 기도를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97년 8월 10일 주일 2부 예배 설교
- 21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