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교회 이야기⑤ – 사데 교회
일곱 교회 이야기⑤
사데 교회(계 3:1-6)
요한계시록의 1차적인 수신자는 사도 요한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있던 일곱 교회들이다. 물론 당시 세계의 교회가 단 일곱 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편지의 수신자이며(계 1:11), 종말까지 있을 모든 교회의 모형으로서, 사도 요한이 편지를 기록하기까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제 있을 미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로 자신을 소개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데 교회에 대한 말씀을 시작하신다. 사데 교회에 대한 말씀에는 칭찬이 없다.
[ 책망과 권면 ]
요한계시록 3:1下-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사데는 주전 1200년경 세워진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다. 리디아 왕국은 셈의 아들 ‘룻’의 자손이 세운 국가로(창 10:22), 성경에 ‘루딤’으로 기록돼 있다(렘 46:9). 구약성경에서 ‘활을 당기는 사람’이라고 표현됐듯이, 리디아 왕국은 강력한 군사력, 풍부한 금,은, 헬라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번영을 이뤘다. 아프리카(애굽)와 아시아(메소포타미아), 유럽(헬라)을 연결하는 가장 대표적 길인 ‘왕의 대로’가 사데를 지나갔다. 리디아 왕국은 신 바벨론 왕국이 세계의 패권국가로 떠오를 때 자웅을 겨뤘지만 고레스 2세에 의해서 멸망당했다. 그러나 사데는 신약 시대에도 번영을 누렸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사데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대 공동체와 100m 넘는 길이의 거대한 유대교 회당이 있었다.
사데 교회는 초대교회 중 아시아에서 가장 큰 예배당을 갖춘 대형 교회였고, 사도 바울이 세우고 사도 요한이 양육한 교회였다. 다른 초대교회들과 달리 유대인 회당의 유대인들과 큰 충돌이 없었다. 그래서 로마인, 헬라인들도 사데의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사데 교회는 육신적인 평화를 누렸지만, 영적으로는 세상과 전투하는 교회로서의 생명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육신적 평화에 취해 내적 갱신에 대한 필요성조차 망각해버렸다. 다행히 사데교회에는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들이 일부 남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권위를 상징하는 비싼 자주색 옷을 입고 뽐냈지만, 남아있는 의로운 자들은 흰옷을 입고 신앙을 지켰다. 많은 사람들이 사데교회의 규모와 권위를 찬양했지만, 주님의 인정을 받은 것은 신앙의 순결을 지킨 극소수의 남은 자들이었다.
[ 약속 ]
요한계시록 3:5-6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예수님께서는 사데교회를 향해 이기는 자에게 흰 옷을 입게 해주시고,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고 그 이름을 시인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흰옷은 순결의 옷(사 1:18, 슥 3:3-5, 계 7:14),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의 옷(사 61:10, 계 19:7-8), 구원과 찬양의 옷(사 61:3-10), 그리스도의 옷이다(롬 13:12-14, 갈 3:27). 당시 책을 기록하는데 사용된 양피지는 양 가죽을 두드려 편 뒤 먹을 찔러 새겨 넣는 방식으로 글을 기록했다. 글을 지울 때는 흐르는 물에 양피지를 천천히 흔들어 글씨를 씻어냈다. 도시마다 로마 시민권자들을 기록한 명부가 있었는데,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아니하고’는 이름이 기록된 양피지를 씻어 지우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교황 시대가 시작된 후 교황과 신성로마제국 황제간의 권력 싸움으로 교회는 철저하게 세속화고 말았다. 치열한 싸움 끝에 교황권이 서구를 지배하게 되면서 교회에 대한 공격은 사라졌지만, 교회의 생명력은 상실된 암흑기가 시작됐다. 교회는 ‘신성한 성경은 사제 외에는 읽을 수 없다’는 논리로 신자의 삶을 성경에서 분리시켰고, 복음을 예전과 계급에 예속시켰다. 교회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졌지만, 영적 생명력은 완전히 상실한 비참한 시대였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도 성경으로 돌아가야 할 것을 부르짖는 이들이 있었다. 종교개혁 시작 전, 부패한 교황과 카톨릭 교회를 비판하며 갱신운동을 벌였던 ‘전(前)종교개혁자’들이다. 성경만이 신앙의 표준임을 부르짖은 존 위클리프(1324-1384)는 이단으로 정죄됐고, 면죄부 판매를 비난하고 교황 정치를 비판한 얀 후스(1367-1415)와, 심판을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한 제롬 사바나룰라(1452-1498)는 화형당했다. 남은 자의 수는 적고 힘은 미약하였지만, 순교자의 피는 제단 아래 뿌려지며 그 수를 채워나갔다. 그리고 순교자의 피를 신원하는 놀라운 회복의 날, 종교개혁 시대로 이어지게 된다.
글_정디모데 목사
- 21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