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운동의 시작은
교회 운동의 시작은
하동 섬진강변교회 개회예배(2010. 9. 10) 설교
저의 소원이 있다면 전국 방방곡곡, 시, 군, 동, 리에 다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경상남도 하동은 1948년 공비 토벌 때 제가 쌍계사, 화개장터 일대에서 두 달 동안 싸우고, 지리산, 덕유산 일대에서 참전했던 곳입니다. 나이가 들고 보니 그때 전우들이 스물 몇 살, 꽃도 피기 전에 스러지고 말았던 것이 늘 생각납니다. 이곳 섬진강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쳐들어오는데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울어대자 왜군 지휘관이 흉조라며 후퇴했고, 그러자마자 두꺼비들이 조용해졌다고 합니다. 그 후 두꺼비 섬(蟾), 나루 진(津)을 써서 섬진강이라고 부릅니다. 섬진강변교회 건물은 원래 건축하신 분이 18층 건물을 지어도 될 만큼 튼튼하게 기초공사를 한 곳이고, 하동에서 제일 잘 짓고 제일 큰 건물로 알려졌던 곳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이름이 머물러 있는 교회, 하나님의 눈동자가 떠나지 않는 교회입니다.
제자들이 “주여, 끝이 언제입니까” 물을 때 예수님께서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져야 한다”고 하셨죠. 구속사 시리즈를 읽으면 아시겠지만, 지혜 있고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에 느낌이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에 성경을 공부할 때 ‘우리 교회 부흥시키기 위해서’, ‘우리 가족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먼저 본인 자신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잣나무로 방주를 짓되 너를 위해서”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신 것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창 6:14)
교회 운동의 시작은
역사(歷史)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에서 일어난 인간의 체험과 사건을 기록하고 설명하는 지식의 분야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구원사(救援史)입니다. 인류 역사의 중심은 구원사입니다. 역사의 궁극적 주권자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로마서 11:36을 볼 때 역사의 본질적 의미와 목적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구속(救贖)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계시(啓示)의 역사이고, 계시의 역사의 중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역사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중심으로 역사의 연호(年號)가 주전(主前)과 주후(主後)로 나뉘죠. 우리 가정과 개인도 모든 면에서 예수님이 중심이 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운동은 교회 운동을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러 시대, 여러 모양으로 말입니다(요일 1:1-2).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교회 운동은 가짜입니다. 교회 운동의 본질은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는 말씀! 바로 말씀 운동, 즉 설교 운동입니다.
1. 에덴동산
교회 운동의 기원은 구속 운동의 기원과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셨죠. 그것이 설교, 즉 복음의 본질입니다. 그 말씀은 ‘여인의 후손, 즉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메시야가 올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창 3:15). 타락한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기 위해 동물이 희생된 것처럼, 둘째 아담이 십자가에서 희생하실 것을 예표하신 것입니다(창 3:21).
2. 족장 시대
족장 시대의 교회 운동은 경건한 가정 제단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1) 가인과 아벨의 제단이다
가인의 제단은 불신앙의 제단이죠. 그래서 가인과 그 제물은 하나님이 열납(悅納)하지 않았습니다(창 4:5). 그러나 아벨은 더 나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기에 열납 됐습니다(히 11:4, 창 4:4). 이 제단은 바로 교회 운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사는 예배 행위입니다.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창 4:4-8, 요일 3:8, 잠 15:8, 렘 7:22, 암 5:22, 미 6:7, 잠 21:21, 딤전 6:11, 잠 11:19).
(2) 노아의 제단은 방주 운동으로 나타났다.
노아 때 죄악이 관영(貫盈)해 모두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노아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창 6:8). 노아는 방주를 통한 구원 계시를 받았습니다(창 6:13-22). 아직 보지 못한 장래 일의 계시를 받아 믿음으로 방주를 예비해 그와 그의 집이 구원을 받았습니다(히 11:7). 이 방주는 하나님 자신의 계시, 즉 구원의 계시에 의한 것입니다. 홍수 심판에서의 구원입니다. 하나뿐인 구원의 계시인 ‘방주’의 밖에 남은 자는 모두 멸망했습니다. 노아는 오랜 기상예보를 예언했습니다.
(3) 아브라함의 교회, 아브라함의 제단은 여호와 이레를 체험했다(창 12:7, 13:18, 15:17, 22:1-19).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곳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곳이 아브라함 가정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모리아 정상에서 계시를 받고 거기서 여호와 이레를 체험했습니다. 특히 창세기 22:14-18 말씀을 끝난 뒤에 꼭 읽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 욥의 제단은 성결의 제단이다(욥1:1-5).
욥은 항상 그 가정의 명수(名數)대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욥의 삶의 주요 일과였습니다. 그의 행사가 항상 그러했습니다(욥 1:5). 하나님은 족장 시대에 경건한 가정 교회의 제단 운동을 통해 구속 운동을 계시하셨습니다.
3. 모세 시대에는 민족적 집합체로 성소(聖所) 운동으로 나타났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430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 기간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성막, 즉 성소를 계시하셨습니다. 그곳은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 장소, 즉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 이름은 ①회막(출 33:7, 39:32) ②여호와의 전(출 23:19) ③성막(출 26:9, 39:33) ④하나님의 집(대상 6:48) ⑤여호와의 전 혹은 여호와의 성막(대상9:23) ⑥법막(대하 24:6) 혹은 증거막 등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의 규모, 내용, 의미, 용도, 목적을 모세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성막 안의 번제단, 물두멍, 성소 안의 떡상, 등대, 향단, 그리고 지성소 안의 법궤 등을 통해 교회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성막을 중심으로 광야 행군을 계속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중심으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자기 임재(臨在)를 나타내셨습니다(출 40:34-38).
광야 시대 이후 이스라엘의 성소는 실로-놉-벧엘-세겜-기브아로 이동했습니다. 이 가운데 놉은 제사장의 성읍이죠(삼상 22:11).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도망가다가 놉에 있던 제사장 아비멜렉에게 후하게 대접받았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이 그곳의 제사장 84명을 가족까지 처참하게 죽였습니다(삼상 21:1-9, 22:11-19)
4. 왕국 시대의 교회 운동
국가적 조직체로서의 성전 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사 시대 이후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을 준비하시고,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세우셨습니다(왕상 6:37-38). 예루살렘의 성전은 바로 이스라엘 역사의 심장과 동맥이었습니다. 같은 자리에 성전이 세 번이나 세워졌습니다. 솔로몬 성전, 포로 귀환 후 스룹바벨 성전, 그리고 헤롯 왕이 46년 동안 지은 성전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아들을 바친 곳이 모리아입니다(창 22:1-14). 그에 앞서 아브라함이 가병(家兵) 318명을 이끌고 가나안 왕들에게 롯의 가족들을 찾아올 때 멜기세덱을 만나,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아브라함에게 준 곳, 그 장소가 예배 장소입니다(창 14). 훗날 다윗 왕이 사탄에게 속아 인구조사를 하는 바람에 하나님이 노하셔서 백성들이 온역에 걸려 죽을 때 다윗이 회개하고 제물을 바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 그곳이 바로 성전의 장소입니다(대하 3:1-2).
역대하 3:1-2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솔로몬이 왕위에 나아간지 사년 이월 초이일에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예루살렘 성전은 여호와를 중심에 둔 종교 운동의 산실입니다. 거기서 여호와의 눈이 떠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왕상 5:1-9, 렘 24:6, 왕상 9:3, 신 11:12).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마음의 욕심도 있지만, 눈의 욕심입니다. 눈의 욕심이 무섭습니다(민 15:39). 참고로 적으시기 바랍니다. 욥 31:7, 전 11:9, 겔 6:9, 시 73:27, 106:39.
욥기 31:7 언제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던가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라갔던가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던가
전도서 11: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에스겔 6:9 너희 중 피한 자가 사로잡혀 이방인 중에 있어서 나를 기억하되 그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나를 떠나고 음란한 눈으로 우상을 섬겨 나로 근심케 한 것을 기억하고 스스로 한탄하리니 이는 그 모든 가증한 일로 악을 행하였음이라
시편 73:27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시편 106:39 저희는 그 행위로 더러워지며 그 행동이 음탕하도다
5. 포로 시대에는 회당 운동으로 나타났다.
회당의 기원은 성경에 확실히 나타나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근거는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과 관계돼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 지역에 포로로 흩어져 살면서 안식일을 맞이할 때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토라 즉 율법을 공부할 임시 예배 처소인 회당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선지자의 집에 모였고(겔 8:1, 20:1-3), 후에는 신자의 집(백성의 집)으로 확산됐습니다(렘 39:8-14). 나중에 예수님도 회당의 모임에 참석하셨고, 바울의 선교에도 회당은 큰 역할을 했습니다. 회당 예배는 대체로 성경 봉독(奉讀), 기도, 찬양 등으로 이뤄졌습니다.
6. 신약 시대에는 우주적 복음 운동, 교회 운동으로 나타났다.
신약 시대의 교회 운동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 그의 분부를 받아 기도하던 무리가 성령 강림과 함께 교회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신 날인 주일, 즉 안식 후 첫날을 중심으로, 회당 예배에서 교회 예배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약 교회 운동의 특색은 예배의 대상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예배의 지역은 전 우주적, 즉 예루살렘과 온 유다, 사마리아 땅끝까지였습니다. 예배의 성원(成員)이 우주적 가족이었습니다. 헬라인이나 유대인, 남녀, 노유(老幼), 빈부, 귀천 차별 없이 초인종적으로 모였습니다. 신령과 진정의 구속적(救贖的) 예배입니다. 말씀과 성령이 주도하는 구속 성취의 예배였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감사와 증거의 예배였습니다. 신약 시대의 교회를 가리켜 ① 큰 집 ② 신령한 집 ③ 내 아버지의 집 ④ 만민이 기도하는 집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전국 각지에서 시무하시는 동역자 목사님들, 시무하시는 장로, 권사, 집사님들! 섬진강변교회에서 이렇게 개회 예배를 드린다는 것, 꿈에도 생각 못 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세계 역사 속에 나타난 교회 운동을 살펴봤습니다. 교회 운동의 양태는 여러 시대, 여러 모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나타내는 계시 양태가 여러 모양이었기 때문입니다. 히 1:1-3을 꼭 읽어보세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직 교회 운동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운동을 계시하는 방편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계시가 교회 운동을 통해 인간에게 나타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말하면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 이를 수가 없습니다. 교회의 본질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엡 1:22-23, 4:15-16, 요 2:20-22).
교회 운동은 만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 구원 운동의 과정에 필수적으로 나타내시는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뜻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시의 역사는 교회를 통해서, 말씀 선포 행위라는 방편을 통해서 죄인들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성경 중심의 원리는 참으로 중대한 것입니다. 역사(歷史) 세계에서 참된 교회야말로 그 역사의 핵(核)입니다. 중심입니다. 구심점입니다. 거룩한 불기둥입니다. 거룩한 구름 기둥입니다. 광야의 반석에서 솟은 생수입니다.
구속사에 나타난 교회 운동은 제물, 제단, 성소, 성전, 회막, 하나님의 집, 여호와의 집 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주적 교회 운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천상(天上)의 교회로 나타납니다. 요한계시록 4, 5장을 보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이 땅 위의 교회는 천국의 그림자입니다. 천국에는 지역적인 교회가 없습니다. 주님 자신이 한 분의 목자로, 그분만이 알고, 그분이 창조하셨고, 그분이 좌지우지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또 동역자 여러분, 주님을 마음속에 뜨겁게 참 목자로 모시고, 날마다 구속의 은총에 감사 감격하고 사는 것은 그분이 나의 계시이고, 말씀이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한 분만 내 마음 가운데 목자로 모시고 살면 역사 시대의 모든 가족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회원이 됩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생각 밖에 하동 섬진강변교회를 허락해 주셔서 유구한 역사 가운데 세계 최초로 이 자리에 계시는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고, 또 이 기념 예배, 개회 예배를 드리게 됐다는 것을 생각할 때, 모두가 감사하고 감격하는 벅찬 가슴을 품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
기도 올리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국경이 없는데 무슨 도(道)가 필요하고, 무슨 군(郡)이 필요하고 무슨 리(里)가 필요합니까. 인간의 편리를 위해서 저희가 정한 데에 살고 있지만, 말씀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오늘 예배드리는 저를 비롯한 모든 분이 죄와 관계없는, 무죄 세계에서 은혜 가운데서 예배드린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안에 무슨 죄가 있습니까? 주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오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게 됨을 진심으로 마음 뜨겁게 하나님 앞에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의 귀한 아들딸들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섬기는 교회와 가정, 교인들의 직장, 사업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먹고 마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은혜의 자리를 뜨겁게 지키고 감사하는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말씀 충만히 깨닫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명철과 지혜와 지식을 보내 주셔서 말씀을 깨닫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끝까지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살아서 말씀 다 선포할 때까지 모두 건강해서 하나님의 사업에 더더욱 충성하고 감사가 차고 넘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의 열매, 은혜의 열매, 감사의 열매, 기도의 열매, 남을 사랑하는 사랑의 열매, 화목의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아서 주 앞에 갈 때까지 걱정 근심 없이 이 땅에서 신앙생활 잘하고 주님만을 모시고 살다가 주 앞에 도착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섬기는 교회에 어둠이 틈타지 못하도록 주님, 함께해 주시고 성령의 불담으로 지켜 주시고 막아주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만날 때까지 주 안에서 근심 없는 기쁨과 평강으로 만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교회 시작한 날부터 주님 재림할 때까지 악한 마귀 틈타지 못하도록 성령의 불담으로 이중 삼중으로 지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이 교회를 섬기는 이승현 목사님에게 영력을 더하여 주시고 말씀의 지혜와 권세와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동역자들이 전국에서 한자리에 모여 하나님 앞에 개회 예배드리게 된 것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감사를, 저희들의 감격을, 저희들의 고마움을 하나님 받아 주시옵소서. 돌아가는 발걸음마다 복된 발걸음, 은혜의 발걸음, 믿음의 발걸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의 소원이 성취되는 발걸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빌고 원하올 때에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서 감사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10. 9. 10. 하동 섬진강변교회 개회 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