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내가 지금 왔습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 왔습니다
시편 40:1-7
평강의 날 기념설교
시편 40:7 그때에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기적적인 축복과 하나님의 권념(眷念)과 권고(眷顧)의 축복으로 이렇게 삼 년 반 만에 사랑하는 그립던 마음들과 얼굴을 보게 됨을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함을 드립니다. 성경을 볼 때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은 회개로 설명하는가 하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영혼의 전락’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걸핏하면 말씀에 순종하지 않거나 우상 숭배를 위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때마다 예언자들은 그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호소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를 볼 때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 다른 나라로 떠갔다가 한 인간이 굴러떨어질 수 있는 밑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패배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더 비참한 것은 그의 영혼의 전락이었던 것입니다 (눅 15:11-17). 성도 여러분, 경제적으로 실패해도 정신적 각성을 잃지 아니한다면 다시 재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상태가 무너지면, 경제도 건강도 삶의 의지도 함께 무너져 버립니다. 그것을 가리켜 ‘전인적(全人的) 전락’이라고 말합니다.
현대 사회는 성공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올라가는 것만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내려가는 것은 실패, 패배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비행기가 한번 뜨면 계속 올라갑니까? 아닙니다. 내려와야 합니다. 활주로에 착륙해야 가족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고 사랑하는 애인도 만납니다. 인생이란 높아지는 때와 낮아지는 때, 둘 다 있는 법입니다 (전 3:1-11). 하나님만큼 올라가려다가 타락한 천사가 마귀가 되었습니다. 제아무리 인기의 정상을 누리는 사람도 내리막을 생각해야 합니다 (겔 28:1-19). 신앙도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자기 처신을 잘해야 불평불만이 없고 주의 몸 된 교회를 자기 몸같이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3년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진 적 없이 읽고 기도한 시편 40편은 하나님을 향하여 도움을 구하는 다윗의 기도입니다. 시편 40편과 출애굽기 14장 말씀은 그 나라 가서도 잊지 못할 제 권고이자 축복의 말씀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시편 기자의 태도와 신앙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흔히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이나 간구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다윗은 기다리고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시 40:1).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순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사정과 삶의 정황을 말씀드려야 합니다. 고상한 것만 골라서 말씀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유치하다고 망설일 필요는 없습니다. 요한복음 14:13-14을 보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실행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구하든지’라고 하셨으니, 나의 행복은 물론 슬픔, 불행, 죄까지도 하나님께 기도로 말씀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림’입니다. 끝까지 기다려야 복을 받죠.
저는 여러분들 얼굴과 마음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 교회에 다시 발을 딛기 위해서 많은 눈물로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들으셨도다”. 이 말씀은 1997년 8월 6일 기도의 응답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과 여기서 함께 은혜를 나눈 이 순간 바로 기도의 응답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 응답입니다. ‘기다렸더니’ 이러한 축복을 받은 순간입니다.
대화할 때 상대방에게는 도무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자기 혼자만 떠들어 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대화할 상대가 못 되죠. 기도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습니다’도 좋습니다. ‘주시옵소서’도 좋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답이 속히 올 때도 있고 응답이 오지 않아서 초조하고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합 2:3, 습 3:8, 사 8:17, 히 10:36-37, 시 27:14, 33:20). 성질 급한 사람은 아마도 짜증이 치솟을 것입니다. 잠언 14:29을 보면 조급한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무너지게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승리의 기도를 하시고 난 다음에 악당들이 예수님을 죄인같이 잡으러 왔죠. 그때 성질 급한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베었습니다. 땅에 떨어져 흙이 묻은 그의 귀를 툭툭 털어 다시 붙여주면서 ‘이것까지 참으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눅 22:51). 끝까지 견디는 자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습니다. 그 응답을 듣기 위해서 큰 믿음들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마 24:13~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는 사람은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기도의 결과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처분을 바라봐야 합니다. 예루살렘 근교 베다니 마을에 살고 있던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대 지방은 열대성 기후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이 죽은 당일에 장례를 치릅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는 즉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슬픈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소식을 듣고도 이틀이나 기다렸다가 베다니로 향하셨습니다 (요 11:6-7). 예수께서 도착하셨을 때는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나 지나 장례도 끝나고 시체가 썩고 있었습니다 (요 11:17,39). 마르다와 마르다, 이웃들은 모두 슬픔에 지쳐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온몸이 베로 싸인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기다리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심이었던 것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요 11:4, 25-26, 40).
기독교는 기다림의 종교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일관된 사상입니다. 늘 깨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피와 땀을 흘리면서 하신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시는 기도가 아닙니까 (눅 22:42). 여러분이 기도의 사람이라면 기다리는 은혜를 받아야 할 줄 압니다.
하나님을 절대 의지했습니다.
존 H. 스탁턴(John H. Stockton,1813-1877)이 작곡한 찬송가 326장의 후렴, ‘의지하세 의지하세 주 의지하세, 구하시네 구하시네 곧 구하시네’를 부를 때 은혜를 받죠.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산성(山城)이신 하나님, 반석이신 하나님이시므로 절대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40:4을 보면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 했습니다 (시 2:11, 34:8, 37:5, 50:14-15, 84:12, 146:5, 잠 3:5-6, 16:20, 사 30:18, 벧전 5:7). 의지한다는 것은 믿을 수 있는 대상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다윗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합한 사람이 되십시오(행 13:22).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삼상 3:19, 16:18, 18:12, 14). 하나님이 함께할 때 만사형통입니다. 예레미야 17:7-8을 보면 얼마나 축복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떠난 자는 저주받습니다 (렘 17:5-6).
하나님께서 모세가 죽은 뒤 여호수아에게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 1:5-7). 사도 바울도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말했습니다 (딤후 1:7-8).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 (시 46:2-3) 평강제일교회 전체 믿음이 바로 이겁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 신앙인입니까?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요동하는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누가 인생의 성공자입니까? 우리의 구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튼튼히 붙잡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의 일에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으며 항상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고전 15:57-58).
하나님 아버지
내가 왔습니다
성경을 보면 가라는 명령보다 오라는 명령이 더 많습니다 (호 14:1-2, 사 1:18, 마 11:28). 가라는 것은 복음을 들고 전하러 가라는 것이고 오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대면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모리아 성전에 왔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둘째, 여러분들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그리하면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신다” (호 6:1)라고 했습니다.
구약 때는 짐승의 피로 대속했지만, 지금은 십자가의 공로를 믿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여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원하시는 것은 제사도 예물도 아니요, 번제와 속죄제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다윗 자신이 돌아오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시 40:6). 그때 다윗이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시 40:7)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두루마리 책에 자신에 관한 모든 행위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허물과 죄의 말살을 위하여 직접 하나님께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하신 베드로후서 3:14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빌 1:10-17, 살전 3:13, 5:23).
성도 여러분, “내가 왔습니다” 란 고백은 “주님 제가 곁에 있습니다” 란 속삭임입니다. 주님 곁에 서는 사람이 가장 복이 많은 사람, 행복한 사람, 가장 강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다른 것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 왔습니다” 이 한마디밖에 없습니다.
1997년 8월 6일 수요예배 휘선 박윤식 목사 설교
- 21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