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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감에 충실한 사도 바울

2021.09.01 17:26

사명감에 충실한 사도 바울
사도행전 20:17-24, 디모데후서 4:6-8

세월에 “억울합니다, 안타깝습니다. 잠깐 얘기합시다. 내일 만날까요?” 해봐야 소용없습니다. 불러도 서지 않고, “내일 만납시다.” 대답하지도 않습니다. 이 순간에도 세월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세월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우리 인생에 대해 냉정합니다. 핑계 대 봐야 세월 앞에는 소용이 없습니다.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지 못합니다. 사정해도 들은 척도 안 합니다. 그래서 많은 시인이 ‘세월을 놓치지 말라’고 노래했습니다.

사도 바울

성경에는 ‘세월을 붙잡고 일한 사람’이 나옵니다. 여호수아입니다. 기브온의 중천에 떠 있는 태양을 명해 그 자리에 머무르게 했습니다. 사실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던 지구가 멈춘 것이죠.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사명을 받아 다 마친 뒤 다시 지구를 돌렸습니다. 그 믿음이 얼마나 뜨겁습니까. 태양의 열보다 여호수아의 마음속 하나님을 믿는 불이 더 뜨거웠습니다. 그러니 태양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사명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사명(使命)은 부릴 사, 목숨 명으로 ‘부려먹는다’는 뜻입니다. 자기 목숨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 뜻을 위해서라면 초개(草芥, 지푸라기) 같이 버리는 것이 사명입니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것에 순응하고, 그 말씀에 성실, 정직,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명에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와 함께했기 때문에 강했습니다. 요지부동(搖之不動)! 남산같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산은 제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 신앙을 아주 확고하게 가진 사람입니다. 누가 보든 말든 상관없었습니다. 강하므로 담대했습니다. 담대한 신앙으로 두려움이 없고, 죽음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우리 평강의 전 성도들이 정말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그 말씀의 권세와 능력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고 강해야 합니다. 강하면 벌써 모임이 달라집니다. 윤기가 납니다. 모든 생활에 기름이 번지르르하게 돕니다. 삶의 현장이 자신만만합니다. 담대합니다. 이렇게 죽음을 모르고 살았던 사도 바울이 진짜 ‘예수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바울 안에 계시고, 바울이 예수님 안에 있었습니다. 이런 삶을 살아야 천국 생활입니다. 천국은 죽어서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씀을 믿고 깨달을 때 이미 천국에 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천국입니다.

사명감이 있는 사람은 여전(如前)합니다.

사명감이 있는 사람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어떤 폭풍, 모진 바람이 불어와도 어엿합니다. 여전(如前)합니다. 하나님의 연대(年代)는 다 함이 없습니다(히 1:12). 여전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청년, 장년, 노년 때가 다릅니다. 변하고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닮아 여전합니다. 세상에도 ‘저 양반은 이팔청춘이야’ 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말씀에 사명감이 없는 사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기도를 집중해서 합니까? 전도를 집중해서 합니까? 성경 읽는 데 집중합니까? 그러니 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까지 50년 가까이 하루에 기도 2시간, 성경 읽기 3시간 이상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성경을 읽기 때문에 믿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 결과로 구속사 시리즈가 지금 제2권까지 나온 것입니다. 노아 때가 어느 때입니까. 아직도 많은 신학자, 성도들이 노아가 방주 지은 기간을 120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100년도 안 된다는 사실이 규명되니 깜짝 놀랍니다. 모세가 이 땅을 떠난 지 벌써 3,600년 가까이 됩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까지 42번 장막을 쳤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무미건조합니다.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42번 장막 친 장소를 지금까지 전 세계 신학자 누구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경을 1,700번 이상 읽는 가운데 세계 최초로 42곳이 실린 지도를 펴내니 신학자들이 역사적인 승리라고 무릎을 치고 있습니다. 제 머리에 대상포진이 온 지 3년이 지났지만, 사명이 있기 때문에 의사가 쉬라 해도 쉬지 않습니다. 사명이 있으니 잠잘 수가 없습니다. 오직 이 땅에서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기도와 성경 읽기를 늦추지 않는 것입니다. 내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에 초지일관하라는 것입니다. 초지일관 집중하면 누가 뭐라 해도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사명이 있으면 흔들림이 없습니다. 목적이 뚜렷하고, 자기 갈 길을 압니다.

그러나 어영부영하는 사람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다. 기도도 집중 안 하고, 말씀도 집중 못 하고, 교회에서 헌신, 봉사도 안 합니다. 1년 365일 중 주일이 52일 뿐인데 그것도 철두철미하게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내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날, 특별한 날인데 그것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도 제대로 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십일조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명심하는 것입니다. 계명대로 사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이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십일조 드리지 않는 것을 “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라 하셨겠습니까(말 3:8). 실은 나머지 아홉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이라는 걸 인정하는 사람은 십일조를 드려도 더 감사가 나오고, 더 헌신하게 됩니다. 주일 성수(聖守)와 십일조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무엇을 믿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명문 다소대학 출신, 가말리엘 교법사(敎法師)의 문하생,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며 율법에 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세상의 자랑거리들을 배설물같이 여겼습니다(빌 3:7).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高尙)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으면 사명감이 없습니다. 평생의 삶이 흔들립니다. 줏대가 없습니다. 그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즉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행 20:24). 이처럼 자기 목숨을 떼어놓은 사람에게는 겁날 것이 없습니다. 강하고 담대합니다. 죽음을 모릅니다. 우리 평강 성도들은 살아서 죽지 않고 변화돼 하늘로 올라가는 변화(고전 15:51)의 축복을 받기 위해 이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은혜를 기다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사명감이 없을 때 시험이 찾아옵니다.

많은 성도가 말씀 충만, 성령 충만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갑자기 시험에 듭니다. 시험은 예고도 문안도 소리도 없이 옵니다. 시험 드는 데에는 계획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명감이 있으면 시험이 마음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시험은 사람의 중심을 싹 봅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명감이 없구나. 교회에서 목사, 장로, 권사, 집사라고 큰소리치고 있지만, 사명감이 없구나’ 하면 그 사람에게 들어갑니다. 그러나 바울처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하는 사명감이 있는 사람에게는 못 들어갑니다. 그런 각오와 믿음이 있으면 마귀도 벌써 알아차립니다. ‘내가 저 사람 속에 들어갔다가는 내 머리가 박살나겠구나’ 하는 걸 알고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험 들려고 할 때, ‘아! 내가 사명감이 없구나’ 깨닫고 사도행전 20장 24절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뜻을 알고 성령 충만을 외쳐야죠. 말로만 외친다고 성령 충만이 됩니까.

사명과 내 생명을 비교하면, 내 생명은 한참 뒤입니다. 주의 복음의 사명이 먼저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업을 해 보세요. ‘돈 벌면 내 가족들 남부럽지 않게 고생 안 시키고 먹여 살려야지’ 하는 생각만 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 때문에 먹고, 복음 때문에 일하고, 복음 때문에 잠자고, 복음 때문에 잠도 안 잔다! 이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즐거워했습니다(히 11:25-26).

사명감이 없으면 우리 마음에 시험이 들어옵니다. 마음속의 빛을 다 몰아냅니다. 칠흑(漆黑) 같은 밤, 흑암, 먹장같이 까만 것을 마음에 깔아 놓습니다. 마음에 만족도 기쁨도 웃음도 없어집니다. 매사에 입이 나오고, 불평불만이 가득합니다. ‘그것들이 잘 믿어 봤자 그렇지 뭐’ 하며 비아냥거립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사람을 총칼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죽이게 됩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면 혀를 금하라고 하셨습니다. 혀는 깃들일 집이 없습니다. 지옥불입니다(약 3:6).

사명감이 없으면 교회 오는 것이 싫어집니다. 찬송 부르는 것도, 전도하는 것도 싫습니다. 그저 육신의 일, 육신의 생각에 얽매입니다. 내 부모, 내 자식, 내 직장, 내 사업이라면 덜덜 떱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상관도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권태증이 나고 모든 것이 짜증 납니다. 다 귀찮습니다.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누구를 만나도 마음이 시원치 않습니다. 화장실 갔다가 뒤처리 안 하고 나온 것처럼 꺼림칙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평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생활에는 향기가 없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에게는 향기가 있어야 합니다(고후 2:14). 그런데 왜 모든 삶의 현장에 향기가 없습니까? 오히려 사망에 이르는 냄새, 악취가 가득하지 않습니까?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예수님 믿는 사람이 사명감 없는 것입니다. ‘네가 목사, 장로, 권사, 집사야? 웃기지 마라. 사명감 없으면 내 것이다’ 합니다. 자기 것이니 그 집에 들락날락합니다. 헤헤 웃다가, 몇 시간 지나면 얼굴이 뚱해서 구름이 낍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명감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했습니다(고전 10:31-33, 롬 14:7-8). 사명감이 있어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것 아닙니까.

저는 오늘 아침 기도한 뒤 비가 오기에 기도처에 올라가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으면 주머니에 지갑 잊어버린 것처럼 께름칙합니다. 사명감을 놓칠까 봐 기도하게 됩니다. 성도들의 영혼을 생각하며 손들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사명입니다. 사명이 없으면 목적도 없습니다. 내가 왜 밥을 먹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릅니다. 자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딸을 위해 “하나님, 이 아이가 주 안에서 믿음으로 자라게 해 주시고, 그 나라 갈 때까지 하나님 은혜의 복음을 위해서 철두철미한 사명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해야죠. 그런 기도는 안 하고 그냥 성공시켜 달라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사명자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세상 성공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따라오는 것입니다. 상감마마의 아들딸을 예뻐하고 잘 돌봐주면, 상감마마가 그 사람에게 벼슬을 안 주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위해 사명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걸어갈 때 걸음의 복을 주시고, 손으로 일할 때 만사형통의 복을 주십니다.

 

성령으로 말씀을 깨달아야 사명감이 생깁니다.

수요일은 기도하는 날입니다. 무슨 팔자가 좋아서 예배에 안 나오고 기도도 안 합니까. 하나님이 지정하신 장소가 교회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성전마다 꽉 차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평강교회는 수요일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식당까지 꽉 차서 예배 드린다’는 소문이 나면 ‘그래?’ 하면서 와보게 됩니다. 은혜의 불이 확 붙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또 가만히 있겠습니까. 또 다른 사람에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지금 모두 불이 꺼져 있지는 않습니까? 텅텅 비어있지는 않습니까? 많이 모여야 합니다. 모이면 놀라운 깊은 복된 은혜의 말씀이 샘과 같이 터져 나옵니다. 힘써 모이면 이상할 정도로 집안도 펴고, 가족이 하나가 돼서 서로 존경하고, 서로 기다리고, 부모 생각을 늘 하게 됩니다.

사명감이 없으면 행복도 없고,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습니다. 왜 사는지 모릅니다. 죽지 못해 밥이나 먹는 것입니다. ‘목숨이 뭔지, 이 목숨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면서 산다’는 소리를 합니다. 사명감과 목적이 없는 사람은 시험 들면 넘어집니다. 일어나지 못합니다. 눈만 깜박거립니다. 교회도 멀어지고, 말씀도 멀어지고, 기도도 멀어집니다. 찬송가 책은 보기도 싫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송아지처럼 고삐를 매고 줄을 잡아당기니 마지못해 끌려가는 것입니다. 주인이 못 되고 밤낮 노예입니다. 주는 것 받아먹기만 합니다. 불쌍합니다. 사명감을 깨닫기 위해 애쓰면 마귀가 질겁하고 시험을 더 줍니다. 그러면 결심하다가도 주저앉습니다.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성도가 사명감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 쉬는 것이 죄입니다(삼상 12:23). 기도하면 사명을 깨닫게 되니 마귀가 그러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말씀 깨닫는 것, 전도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하게 합니다. 말씀은 성령을 통해서 오시게 돼 있는데 성령의 능력을 못 받으면 말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 장래 일을 가르치십니다(요 15:26, 16:13). 성령의 능력을 잃어버리면 반신불수처럼 힘을 못 씁니다. 온전한 걸음을 못합니다. 앞발은 내밀지만 뒷발은 끌려 다닙니다. 마귀가 그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사명이 있고 은혜가 넘치면 말씀이, 기도가, 찬송이, 복음 전도가 차고 넘칩니다. 몇 시간이고 복음을 전한 뒤에 또 와서 사업을 합니다.

성령 충만해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맛봅니다. 어딜 가든 담대합니다.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므로 말씀의 권세가 내 마음을 강하게 만듭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딸이다’ 하는 믿음으로 선이 분명해집니다. 그렇게 움직여야 합니다. 사명을 잊어버리면 “저것들 한참 신바람 내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심방 간다고 떠들더니, 요새는 조용해. 기가 꺾이고 풀이 팍 죽었어” 하는 비아냥과 손가락질을 받게 됩니다.

 

사명감을 잃고 두 눈이 뽑힌 삼손

사사기 13장에 삼손이 나옵니다. 그의 사명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여서 힘을 얻게 하고 일치단결해서 오직 만군의 주 여호와만 섬기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명을 주셔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삼손이라는 이름의 뜻은 ‘태양의 사람’입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빛이 환하게 비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블레셋 여인 들릴라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 여자는 간첩이었습니다. 블레셋 방백 다섯 명에게 은 1,100개씩 모두 5,500개를 받고 삼손의 힘이 어디서 나는지 비밀을 캐내기로 했습니다(삿 16:5). 오늘날의 가치로 하면 2억 5천만 원에 달합니다. 아브라함이 사들인 막벨라 굴 가격의 14배입니다(창 23:16).

삼손이 자기 비밀을 들릴라에게 알려준 뒤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왔습니다. 삼손은 이미 하나님의 능력이 빠져나간 것도 모른 채 일어섰다가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두 눈을 빼임 당하고 짐승처럼 사람 키 하나 반만 한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됐습니다. 여자에게 무릎 꿇고 사명을 잊어버린 결과입니다. 얼마나 처참합니까. 옛날 삼손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사명을 잃어버리면 눈이 뽑힌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목적, 방향, 의식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무섭습니다. 모든 생활에 빛이 하나도 없이 캄캄해집니다. 갈 길을 모릅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8장 12절과 9장 5절에 “나는 세상의 빛이니 빛이 있을 동안 빛을 믿으라, 밤이 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명감을 잊어버리면 밤입니다. 암담합니다. 오늘이 그날이고, 내일도 그날입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사명감이 있으면 평지에서 물이 터집니다.

삼손이 사명감을 가지고 있을 때는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였습니다. 장작만 많이 패도 땀이 나고 목이 마르는데, 나귀 턱뼈로 천명을 죽였으니 목이 말라 쓰러지기 직전이었습니다. “하나님, 내가 목말라 죽을 지경입니다. 이 자리에 쓰러지면 할례받지 못한 블레셋인들이 나를 죽일 것이니 물 좀 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앞에 있던 조그만 웅덩이에서 갑자기 물이 꽝 터졌습니다. 땅을 판 것이 아닙니다. 평지인데 약간 우묵한 곳에서 생수가 터졌습니다. 물이 얼마나 시원하고 달았는지, 마시고 기운을 차렸습니다(삿 15:15-19).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부르짖은 자의 샘)’라 했습니다. 이스라엘도, 블레셋도 놀라서 ‘삼손이 힘만 센 줄 알았더니, 그가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들어주시는구나.’ 하고 이중삼중으로 두려워했습니다. 사명감이 있고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살 때는 여러분이 부르짖는 것마다 개인과 가정과 직장과 사업에 소원대로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물이 “오늘까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삿 15:19). 사명감이 있으면 목마름이 없습니다. 남편 봐도, 아내 봐도, 자식 봐도, 사업을 봐도 목마름이 없습니다. 형통으로 잘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늘 믿음으로 가슴 속에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쉬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살전 5:17). 기도는 숨과 마찬가지입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습니다. 기도 안 하면 죽은 사람입니다.

사명감이 있을 때 그렇게 위대했던 삼손은 사명감을 잃어버리자 세상 여자의 유혹에 빠져 세상에 넘어갔습니다. 말씀의 비밀을 알려주고 말았습니다. 세상과 간음한 것입니다. 칠흑 같은 밤입니다. 목적의식과 감각이 없습니다. 사명이 있을 때 그렇게 강건했고, 기도할 때 평지에서 물이 솟아 ‘오늘까지 있었는데’ 말입니다.

 

 

사사기 16:20下 그는 전과 같이 털고 일어나 뛰쳐나갈 수 있으려니 여겼다. 야훼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공동번역)
요한일서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하나님의 능력의 신이 빠져나갈 때 이미 사명감을 다 뺏긴 것입니다. 예수 믿는 이름을 빼앗겼습니다. 빈껍데기입니다. 아무리 성령 충만, 말씀 충만 외치고, 집사, 권사, 목사 다 떠들어도 성령의 은혜를 놓치면 큰일 납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데리고 하나님 앞에 가십니다. 그때까지 성령님이 우리에게 인(印)치고, 하나님 앞에 데려다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13-14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완전히 구원받을 때까지, 영육 간 죽지 않고 살 때까지 보장으로 도장 치신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므로 성령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령 받아야 사명감이 있습니다. 우리 평강교회 전 성도가 항상 은혜 충만! 성령 충만! 말씀 충만! 기도 충만! 찬송 충만! 모든 맡은 바 직분에 사명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정과 개인과 직장, 사업에 모든 어둠이 다 달아나고, 의의 태양 되시는 영원한 빛이 두루두루 비취는 가운데 생활에 웃음이 가득한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8년 6월 18일 수요예배 휘선(暉宣) 박윤식 목사 설교

 

*2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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